제 36장 대혈륜이 멈추는 곳 -3
개봉부를 중심으로 한 칠백 리 안에 있는 백도인들의 명단!
그런 글 아래, 사람 이름이 수백 명 적혀 있었다.
하남성(河南省)의 요충지 개봉부, 그 근처 칠백 리 안이라면 무림
계의 중심지와도 같다.
그 곳에 머물러 사는 고수라면 가히 천하에 이름이 쟁쟁한 고수들
일 것이다.
주인은 도저히 영문을 모르고 계속 뒤로만 물러났다.
두 노인, 그들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천마(天魔), 결국 해야 하는 것이냐?"
비쩍 마른 노인이 말하자…….
"지마(地魔), 하는 수 없다. 그의 주구가 되어 행동한다는 것은
치욕스러운 일이나, 독에 걸린 제자들을 생각한다면… 해야 한
다!"
"으음!"
"자아, 어서……!"
"해야 한다면… 더 이상 고민할 것은 없지!"
지마는 손을 내저었다.
쌕-!
누에실같이 가는 경기가 흘러 명단을 반으로 갈랐다.
지마는 위쪽을 취했고, 나머지 반쪽은 천마의 손으로 들어갔다.
천마는 명단을 쥐고 천천히 일어났다.
"새벽 안개가 개봉부를 뒤덮기 전, 이 안에 적힌 모든 이름을…
영원히 제명(除名)하는 것이다!"
"모소적(牟少賊)도 더 이상은 우리들을 부려먹지 못하겠지?"
두 명의 노인은 중얼거리다가, 아주 맑은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도박에 취미가 많으신가 보오. 훗훗, 소생… 한 가지 물건을 걸
고 도박을 하고 싶소!"
하늘 위에서 내려온 듯 뛰어나게 생긴 젊은이 하나가 흰 손바닥으
로 탁자를 짚고 있었다.
손바닥 아래에는 무엇인가가 깔려 있었다.
"나는 내 손바닥 아래에 있는 것을 걸겠소. 대신, 두 노인은 품안
에 있는 영부(令符)를 하나씩 걸어야 하오!"
말하는 청년은 바로 광무군이었다.
그가 왜 갑자기 도박 제의를 하는 것일까?
두 노인은 서로 얼굴을 마주 봤다.
그들은 어이없다는 표정들이었다. 특히 지마노인은 끓어오르는 살
기(煞氣)를 억누르느라 꽤나 애를 썼다.
"으으… 음, 실없는 청년이군."
"훗훗… 지존지명(至尊之命)에 불복하고, 이 곳에서 빈둥빈둥 소
일하는 두 노인이야말로 실없는 분들이 아니겠소?"
"뭐… 뭐라고?"
두 노인의 옷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천마성자(天魔聖者),
지마성자(地魔聖者).
두 사람은 천마지존전에서도 알아주는 고수들이었다.
그들은 칠백 의협(七百義俠)을 죽이라는 명을 받고 개봉부로 왔으
나, 아직까지 명령을 이행하지 않았다.
명령 이행의 시한은 내일 새벽이었다.
두 사람은 고민하다가 결국 살인하리라 작정을 한 것인데, 그 때
광무군이 끼어든 것이었다.
"누… 누구냐?"
"우리들의 정체를 알고 있다니?"
두 사람이 놀랄 때.
"훗훗… 천지쌍노(天地雙老), 너희들은 나의 수하들에 의해 완전
히 포위되었음을 아느냐?"
광무군의 흰 이가 드러났다.
"포… 포위되었다고?"
"그… 그럴 리가?"
둘이 얼떨떨해하는데…….
"훗훗… 너희들을 기다리며 사흘 전부터 복우산령(伏牛山嶺)에 숨
어 있던 오백 살수단( 百煞手團)을 보고 싶지 않느냐?"
"그것을 어찌……?"
"으으, 너… 너는 누구냐?"
둘이 얼굴을 희게 물들일 때.
"개방주( 主), 들어오십시오! 제가 방주를 너무 오랫동안 기다
리게 했나 봅니다."
광무군이 말한 직후, 창문이 박살나며 한 사람이 떨어져 내렸다.
흰 수염을 바람에 휘날리는 늙은 거지였는데, 그는 큰 자루 하나
를 짊어지고 있었다.
"맹주, 여기 갖고 왔소이다. 맹주가 오늘 저녁쯤 오시리라 여기고
있었는데, 한밤에야 뵙게 되다니… 헛헛, 그 사이 목이 세 치는
길어졌소!"
노개는 개방의 신임방주였다.
천풍노개(天風老 ) 위지형(慰遲衡).
그는 개방을 암중에 부흥시킨 사람이었다.
물론, 광무군의 무림일품부가 돕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
다.
제 36장 대혈륜이 멈추는 곳 -4
천풍노개는 자루를 내려 바닥에 그 안의 물건을 쏟았다.
쫘르르-!
마룻바닥으로 흘러내리는 것은 오백 개의 철패(鐵牌)였다.
"이… 이럴 수가?"
"으으……!"
천지쌍노의 얼굴빛은 새까매졌다.
<살수단 일 호(煞手團一號).>
<살수단 백이십칠 호(煞手團百二十七號).>
…….
철패에는 그런 글들이 적혀 있었다.
번쩍거리는 철패, 그것은 두 노인이 막 가려 했던 곳에 대기하고
있어야 할 오백 명의 고수들이 하나씩 지니고 있던 물건들이었다.
"모두 다 제압되다니……!"
"으으, 너… 너희들은 대체 무엇이냐?"
천지쌍노의 머리카락이 빳빳해졌다.
"훗훗… 봐라!"
광무군은 손을 쳐들었다.
바로 직후, 그는 손으로 무엇인가를 다시 뒤덮었다.
그가 손을 떼었다가 제자리에 놓는데 걸린 시간은 거의 무(無)였
다.
한 찰나, 그의 손바닥 아래 깔린 물건이 무엇이었는지를 알아본다
는 것은 족히 이백 년의 공력이 필요한 것이었다.
한데, 천마성자와 지마성자는 그것을 알아봤다.
"그… 그대는?"
"어… 어이해 군림각(君臨角)을?"
둘은 넋을 잃고 말았다.
"무릎을 꿇겠는가? 아니면, 내 손 아래 죽겠는가?"
광무군은 두 사람을 쓸어 봤다.
그의 눈에서 금망이 폭사되었다.
천마성자와 지마성자!
두 사람은 과거 군림지존전(君臨至尊殿)의 쌍노(雙老)였었다. 지
금은 천마지존전 휘하 살수단(撒水團)의 양대단주(兩大團主)들이
었고…….
광무군이 보인 것은 군림각(君臨角)이었다.
그것은 그들이 이십일 년 만에 처음 보는 것이었다.
"지… 지존(至尊)!"
"지존이시여!"
두 사람은 털썩 무릎을 꿇었다.
'지존이라니?'
한판 싸움을 기대했던 천풍노개는 놀라 눈을 까뒤집었다.
광무군은 눈에서 광망을 없앴다.
'이들이 절을 한다는 것은… 십만 명이 내 편이 되었다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광무군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전음으로 무엇인가를 이야기했다.
"……."
"……."
"……!"
침묵이 꽤 오래 이어졌다.
광무군이 담담한 표정인데 반해, 두 노인의 표정은 몇 번씩 바뀌
었다.
어느 순간, 그들은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이야기가 거의 다 끝나 갈 때, 그들은 주먹을 거머쥐었다.
"해독약(解毒藥)을 만들 방법이 있으시다니 다행이나, 속하들은
해독약을 먹지 못한다 해도 모탁률과 싸울 것이오!"
"저희 쌍노는 대역죄인이오. 이제껏 너무도 굴욕적으로 살았소.
군림지존전 사람들을 다 죽게 한다는 모탁률의 위협에 굴복했던
것이오. 그 이유는 하나, 바로… 군림마종(君臨魔宗)을 기다린다
는 것이었소!"
군- 림- 마- 종-!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은 무엇이든 지배한다.
그의 뜻은 바로 천하를 바꾸는 힘이 된다.
모탁률은 그 지위에 오르기 위해 대혈륜을 굴린 것이다.
하나, 광무군은 그 자리를 버리려고 하는데도 자꾸만 그렇게 불리
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