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과 글쓰기에 대한 오해와 이해
<글>이란 글쓴이의 생각과 느낌, 정서 등을 글로써 표현하는 ‘의사소통 행위’다. 따라서 글쓴이의 의도가 독자들에게 정확(正確)하고 분명(分明)하게 전달(傳達)되어야 쌍방의 의사소통(意思疏通)이 잘 이루어진다. 이런 맥락에서 글은 독자들이 읽기에 쉽고 간결(簡潔)해야 하고, 재미있어야 하고, 의미 전달도 분명(分明)해야 한다. 마치 다정한 연인에게 기쁜 마음으로 말을 하듯,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부담 없이 자연스럽게 써 내려가야 한다. 거창하고 멋진 표현을 쓴다거나 자신의 지적 수준을 뽐내려 한다거나 무게 있고 깊이 있는 글을 쓰겠다는 마음부터 버려야 한다.
글을 쓰기 전에 욕심부터 키운다면 글이 잘 씌어지지도 않고 좋은 글을 쓸 수도 없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욕심이 지나치면 오히려 부족한 것보다 못하다. 욕심을 버리고 글의 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일관된 관점(觀點)을 가지고 자연스럽게 써 내려가야 한다. 한 문장에는 하나의 생각만을 담아서 정확하고 논리적으로 써야 한다. 글을 자주 써보지도 않고 글을 쓰는 것이 두렵고 어렵다고 단정하는 것은 근거 없는 막연한 기우(杞憂)일 뿐이다. 글쓰기는 어렵고 두려운 것이 아니다. 누구나 잘 할 수 있다.
글을 쓰는 것이 어렵고 두렵다는 것은 글을 써 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의 어리석은 주장일 뿐이다. 부드럽고, 쉽고, 재미있고, 간결한 문장으로 쓴 글이면 그것이 좋은 글이 되는 것이다. 글의 수준이 높고, 주제도 거창하고, 문장 표현도 멋있게 해야 좋은 글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문장이 길어지면 내용 이 애매모호(曖昧模糊)하거나, 문장도 정확하지 않은 비문(非文)이 되기 쉽다. 또한 문맥(文脈)의 흐름과 글쓴이의 생각에 어울리지 않는 부적절한 어휘(語彙) 선택을 하기 쉽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글을 쓰겠다.’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글쓰기는 다양한 공식을 암기해서 어려운 수학 문제를 푸는 것과 다르다. 글쓰기는 제시된 글을 읽고 주제에 맞는 혹은 쟁점을 비교 분석하여 자신의 주관적 견해를 논리적으로 밝힌다는 점에서 수학 문제를 푸는 것처럼 일종의 ‘문제 해결의 과정’일 수는 있다. 하지만 글쓰기의 절차나 방법, 서론-본론-결론에 따른 논리 체계 등을 줄줄 외우거나 기계적으로 적용해서 문제(問題)를 해결(解決)하는 과정은 아니다.
글쓰기의 방법은 다양하고, 설령 동일한 글쓰기의 방법으로 글을 쓴다고 하더라도 글쓴이의 사고력이나 논리 전개 능력, 문장 표현력 등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글쓰기의 생명은 글쓴이의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고력과 일관성 있는 논리 전개 능력,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문장 표현력에 있다. 대학 논술고사도 마찬가지다. 기계적인 글쓰기는 글의 생명력이 없는 ‘죽은 글쓰기’일 뿐이다. 자신의 견해를 글쓰기의 이론과 형식에 끼워 맞추어서 쓰려는 것은 자신의 자유로운 사고와 독창적인 글의 전개 능력을 스스로 가로막는 자해행위나 다름없다.
주제 설정 및 주제문 작성 요령, 글의 개요 작성, 논리 전개 방식, ‘서론-본론-결론 쓰기’ 등과 같은 이론 공부는 형식상의 충분조건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실제로 글을 써 본 경험이 많은 사람이나 자주 글을 쓰는 사람들은 논술 이론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또한 논술 이론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논술을 비롯한 각종 글쓰기를 잘한다는 보장도 결코 없다. 논술의 이론 공부는 절차상 ‘아하, 이렇게 쓰는 것이구나.’ 하는 느낌과 글의 전개 방법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했다면 그것으로 끝이다.
강을 건널 때에는 뗏목이 소중한 물건이었으나 강을 건넜으면 아깝더라도 버릴 줄 알아야 한다. 육지에 도착해서 걸어갈 때에도 뗏목을 짊어지고 가겠다는 욕심은 어리석은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론 공부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면서까지 매달리거나 완벽한 이론을 채우기 위해 고액의 과외(課外)까지 받아가며 밤늦게까지 공부할 필요는 없다.
이론 공부는 이론 공부 그 자체로 만족해야 한다. 이론 공부를 더 하고 싶다면 차라리 한 문장이라도 직접 더 써보고 다른 사람이 써 놓은 좋은 글을 한 편이라도 더 읽는 것이 앞서가는 사람들의 지혜로운 선택이다. 글을 잘 쓰는 사람 가운데는 글쓰기와 논술의 이론을 거의 모르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글을 자주 쓰다 보면 이론 공부는 스스로 저절로 터득되기 때문이다. 반면 글쓰기의 이론 강의는 수준급이지만 막상 글을 잘 쓰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론을 잘 아는 것과 글을 잘 쓴다는 것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배경지식(背景知識)은 글의 내용을 논리적으로 폭넓게 전개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배경지식이 없거나 부족해도 글을 잘 쓸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벼락치기 집중 교육이나 개인 과외를 부추기는 기만적인 선전술일 뿐이다. 배경지식이 부족한 사람이 글을 쓰고자 할 때에는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가 막연하고 답답하여 고민과 시간 낭비를 많이 한다. 하지만 배경지식이 풍부하면, 다양한 글감이 잘 떠오르고 내용도 풍부하게 전개할 수 있고 독창적인 발상을 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글쓰기에서 배경지식의 효과는 글쓴이가 글을 본격적으로 쓰기 전에 기존의 지식이나 정보, 사례 등을 ‘얼마나 많이 이해하고 습득하고 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또한 배경지식은 대학 논술고사든 잡지나 신문의 논평이든, 자신이 쓰고자 하는 글의 내용 체계를 구상하는데도 큰 도움을 준다. 배경지식이 없어도 글을 잘 쓸 수 있다는 것은 글을 써 본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의 면피성 자기방어책에 지나지 않는다. 배경지식은 다다익선(多多益善)이다. 따라서 독서력(讀書力)은 배경지식의 보물 창고다. 독서력, 배경지식, 글쓰기 능력은 깊은 상관관계를 갖는다.
그렇다고 배경지식을 많이 습득(習得)해야만 좋은 글을 잘 쓸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배경지식이 많은 사람과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논리적인 글이나 연구 논문이 아닌 개인적 차원의 지극히 주관적이고 감상적인 글, 비망록(備忘錄), 일기(日記), 시(詩), 수필(隨筆) 등과 같은 글은 배경지식이나 논리보다는 감성과 느낌, 순간적인 영감 등이 더 중요하다. 대학 논술고사나 신문의 논평 등과 같은 글에서는 논리 전개와 근거 제시 능력, 창의적이고 폭넓은 내용, 정확한 문장 표현 등이 중요시되기 때문에 배경지식의 습득은 글을 쓰는데 상대적으로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글을 잘 쓰고 싶고, 배경지식도 풍부하게 넓히고자 한다면 평소에 ‘책 읽는 습관’을 생활화해야 한다. 풍부하고 다양한 독서력은 배경지식 습득의 보고일 뿐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줌으로써 훗날 다양한 글쓰기나 논술을 할 때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독서하는 생활 없이, 무작정 생각을 많이 하고 이론 공부에 열중한다고 해서 글을 잘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두꺼운 책이나 철학 사상서처럼 내용도 딱딱하고 어려워서 읽기에 심리적․정신적 부담감을 느낀다면, ‘짧은 글 읽기’로 방대한 분량의 독서를 대신할 수도 있다. 예컨대 신문이나 잡지에 실린 사회적 쟁점 사항들에 대한 논객들의 짧은 논평이나 사설, 칼럼을 모은 사회평론 서적 등을 자주 읽고 자신의 견해를 글로써 정리해 본다거나 친구들과 토론을 해봄으로써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갈 수 있다.
또한, 독서노트 혹은, 독서일기를 준비해서 틈틈이 읽은 짧은 글이나 책의 내용을 요약 정리하거나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메모하는 “기록 습관”(記錄 習慣)을 익힐 필요가 있다. 자신의 호주머니에는 항상 필기도구와 수첩 등을 휴대하고 다니면서 ①보고 듣고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하는 습관’, ②주변의 수많은 사물과 현상들에 대한 ‘관찰력을 기르려는 습관’, ③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일관성 있게 자료를 모아가는 ‘스크랩하는 습관’을 기른다거나 ④평소 독서 과정에서 중요한 문구나 내용을 간략히 독서노트에 기록해 두는 습관 등을 길러간다면, 글쓰기의 막연한 두려움을 해소시켜줄 것이다. 좋은 독서 습관과 생활 습관은 책읽기의 즐거움과 글쓰기의 자신감을 한층 높여 줄 것이다.
글쓰기에서 논술은 자신이 직접 글을 자주 써보는 것이 최고(最古)의 방법이다. 하지만 남이 쓴 좋은 글들을 많이 읽어보거나 그 글을 친구들과 상호 평가(相互 評價)와 토론(討論)하는 경험(經驗)을 쌓아간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가 된다. 무작정 글만 많이 써본다고 해서 문장력이 좋아지고 사고력이 깊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이 쓴 좋은 글들을 많이 읽어 보고, 다양한 관점에서 깊이 사색(思索)해 보고, 틈나면 그동안 읽고 사색한 내용들이나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내용들을 한 문장이라도 더 많이 메모하며 써보는 습관들여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쓴 글에 대해 다른 사람의 평가(評價)를 반드시 받는 것은 필수적이다. 평소에 독서력이 뒷받침되지 않았거나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갖지도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글만 많이 쓰려고 덤비는 것은, 자칫 글쓰기에 대한 편견이나 좋지 않은 이미지만을 갖게 만들 수도 있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독서의 힘, 곧 자신의 독서력을 폭넓게 기르는 것밖에 없다. 철학 사상(哲學 思想)․문학 예술(文學藝術)․역사(歷史)․사회(社會)․문화(文化)․환경(環境)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독서량이 풍부한 사람은 글을 잘 쓸 수 있는 기본 조건을 갖춘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좋은 글을 쓰려면 자신의 사고능력, 곧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독서(讀書)를 생활화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그런 연후에 쉽고 부드럽고 정확한 문장 표현력을 길러야 한다.
다만 대학 논술사에서 논술문은 여기에다가 글의 논리적 구성과 전개능력, 창의적인 발상력(發想力)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 새롭게 추가될 뿐이다. 처음 글을 쓰고자할 때에는, ‘긴 글’보다는 자기 자신이 관심(關心)과 흥미(興味)를 가지고 있는 어떤 주제나 시사적인 쟁점들, 혹은 그동안 재미있게 읽고 감동을 받은 작품들을 대상으로 ‘짧은 글’을 많이 자주 써 보는 것이 좋다. 어느 정도 글쓰기에 자신감이 생기고 즐거운 느낌마저 들면 ‘긴 글’ 쓰기를 시작하면 된다. 처음부터 ‘긴 글’을 쓰려고 하면, 욕심이 앞서서 글이 딱딱해지고 잘 씌어지지도 않아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과 짜증스러움을 느낄 수도 있다.
특히, 글쓰기 경험이 거의 없거나 초보 단계에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문장 표현력과 사고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글을 쓰다말고 지우기를 자주 반복하기 쉽다. 하지만 자신이 쓰고 있는 글이 비록 허점투성이가 많아 미숙하고 많은 부분에서 틀렸다하더라도 끝까지 계속해서 써보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처음부터 글을 잘 쓰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만족스럽지도 않고 엉성한 글이라 하더라도, 한 번 글을 쓰기 시작했다면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가듯 끝까지 인내하면서 계속 써나가는 것이 좋다.
첫 숟갈에 배부를 수는 없다. 숟가락질을 잘해야 진수성찬의 맛있는 음식을 잘 골라 먹을 수 있지 않은가? 글을 쓰는 과정에서 자주 지우고 첨가하는 것은 좋지 않다. 물론 글쓰기에 자신감이 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이렇게 할 필요는 없지만, 글쓰기의 초보단계에 있는 사람들은 쉬지 말고 처음부터 끝까지 써나가는 태도를 갖도록 하자.
논술은 철학적인 내용과 유명한 문장(文章)을 많이 암기하여 정연한 논리에 따라 옮겨 적는 것이 아니다. 논술이론을 이것저것 달달 외운다고 해서 논술 실력이 느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논술은 자신의 생각을 명쾌한 논리(論理)와 정확한 표현(表現)으로 자유자재하게 드러내는 창의적이고 개성적인 글쓰기 행위다. 그러므로 논술 실력은 유명한 문장을 외웠다거나 이론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았다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또한 논술은 한두 달 혹은 서너 달 동안의 집중교육이나 유명 과외수업으로도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설령 효과를 보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땜질식 벼락치기 응급처치일 뿐 진정한 글쓰기 실력이 아니다.
그런데 자신의 응급처지 실력을 마치 자기 자신이 글쓰기나 논술을 잘한다고 판단했다면 그것은 어리석고 우둔한 자의 착시현상(錯視現象)일 뿐이다.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지역에서는 대학수능시험이 끝나면 곧바로 고액 논술과외가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기 일쑤다. 고액 논술과외를 부추기는 선전 광고나 이를 믿고 찾아가는 수험생들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이는 글쓰기도 논술도 아니다. 일시적인 시험 대비를 위한 기계적인 글쓰기의 주입(注入)이요 강요(强要)일 뿐이다.
글쓰기는 냄비가 아니라 뚝배기를 다루는 마과 자세로 받아들여야 한다. 냄비는 열전도율이 높아 짧은 시간에 빨리 뜨거워지고 빨리 식어버린다. 반면 투박한 뚝배기는 서서히 뜨거워지면서 뜨거운 열도 오래도록 보존된다. 글쓰기와 논술에 대해 일방적으로 주입된 자신의 생각, 주변의 편견(偏見), 고정관념(固定觀念) 등에 현혹되거나 얽매여서도 안 된다. 단기간의 족집게 과외로 이루려는 것은 논술과 글쓰기의 참된 의미와 즐거움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생각이며 혹세무민(惑世誣民)의 그릇된 이데올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