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을 확산시킨 장로교와 감리교 선교스테이션
한국에 온 미국의 북장로교, 호주장로교, 남장로교, 캐나다장로교와 북감리교, 남감리교는 복음전파와 교육과 의료를 동시에 실행하는 미션스테이션 체제와 조직으로 선교를 수행하였다. 그들은 같은 지역에서 중복, 경쟁하지 않고 서로 협의한 끝에 선교구역을 분할하여 한반도 동서남북으로 흩어졌다. 선교사들은 고난과 불편, 죽음과 위험을 무릅쓰고 순회하며 오지로 들어갔고 거점이 되는 곳에 미션스테이션을 세워 복음, 사랑의 도, 십자가의 도를 가르쳤으며 근대교육과 의료행위를 사랑으로 실천하였다.
복음을 들고 온 선교사들은 일제 식민지 억압 속에 있는 조선인에게 5천년 역사에서 한 번도 없었던 놀라운 일을 행하였다. 생명의 존엄과 평등사상으로 사람을 대한 것이다. 그리고 양반과 상놈, 남녀노소 모두에게 동시에 교육과 의료 혜택을 베풀었다. 도시와 시골을 가리지 않고 어둠과 죄악에 빠져 종노릇하는 자들에게 회개와 용서, 죄 사함의 복음을 전하였다.
개개인의 인권이 소중하고 신 앞에서 만인이 평등하다는 사실만으로도 종놈과 백정과 광대들은 십자가가 사랑에서 해방을 체험하였다.
조선 역사에서 아이들이 독립된 인격체로서 인정과 사랑을 받은 적이 없었다.
조선 역사에서 여성들이 독립된 인격체로서 격려와 사랑을 받은 적이 없었다.
조선 역사에서 상놈과 7천역의 사람들이 독립된 인격체로서 존중과 사랑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미션스테이션의 선교사들과 조사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아동과 여성, 상놈과 천민들과 어울렸다. 그들을 사람으로 존중하고 예우하며 사랑하며 인정하였다. 사람으로 사랑하고 축복하며 격려하였다. 그리하여 내적으로 해방되고 자유 함을 얻은 그들은 조국을 위해 진리를 위해 살고자하는 열망을 품었다.
기독교는 주자학의 계급의식과 허례와 허식과 계급 차별, 성차별로부터 아이들, 여성들, 상놈, 천민들을 구원하였다. 그 해방과 구원의 작업이 한 시대에 한반도에서 동시에 진행된 것이다. 이 놀라운 사건은 장로교와 감리교의 선교지 분할정책과 미션스테이션에서 기인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로교와 감리교는 분할된 각각의 선교지에 최선을 다하여 미션스테이션을 세웠다. 스테이션마다 교회, 학교, 병원이 세워졌고, 뜻을 세운 크리스천들이 선교사들의 격려를 입어 마을마다 사립학교를 세워 신앙의 터 위에 항일교육과 민족교육을 실시하였다. 농한기에는 사경회와 어린이 성경학교, 부인 성경학교 등이 활발하게 진행되어 식민지의 암울한 상황에도 희망을 가지고 조국 광복에의 꿈을 품게 되었다.
1919년 3.1만세운동이 있어났던 당시 조선의 8도에는 장감의 34개의 스테이션이 있었다. 34개 스테이션 산하에는 대표적인 남녀학교와 초등학교가 있었고 스테이션의 근대식 교육에 공감하는 지사들과 교우들에 의한 학교 건립이 활발하여 웬만큼 큰 마을에는 학교가 세워졌다.
1915년 개정사립학교령이 발표된 이후, 일본총독부가 밝힌 “종교계사립학교 교파별 통계를 보면 장로교는 12개의 도에 300개의 학교, 감리교는 87개의 학교가 있었다. 천주교는 37개, 성공회는 5개의 학교가 있었다. 1919년에는 사립학교령으로 많은 학교들이 문을 닫았지만 여전히 기독교계가 운영하던 사립학교는 전국에 분포되어 있었다. 게다가 교회는 전국 곳곳에 있었다. 감리교회와 장로교회의 교계 이양 이후, 한국 교회는 전국적인 조직망을 가진 유일한 단체로 오지까지 교회가 확장되고 있었다.
흔히들 3.1운동의 공로를 천도교에 돌리고 있지만 천도교는 교회처럼 집중적인 에너지를 만들 수 없었다. 1914년 현재, 47개 교구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지만 교회와는 달리 매주일 모이는 시스템이 아니었다. 교회처럼 교회와 교회 간의 행정적이고 정치적 조직의 형태로 움직이는 집단도 아니었다. 1)
당시 기독교 세력이 천도교의 10분의 1 정도도 안 되는 형편에 민족대표 33인 중에 기독교인이 16명이라는 것은 참으로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3.1운동이 시작될 때부터 전국의 많은 교회가 참여했고, 연희전문, 배재, 이화, 숭실, 숭덕, 숭의 등 미션스쿨 교사들과 학생들이 선도에 섰다. 대부분의 지방도 마찬가지였다. 전주는 신흥학교와 기전학교 학생들이, 군산은 영명학교와 멜볼딘학교 학생들이 광주는 숭일학교와 수피아여학교가, 목포는 영흥학교와 정명여학교가 앞장을 섰다.
1920년 3월 1일까지 3.1만세시위로 인한 사망자 7,509명, 부상자 15,961명, 체포된 자 49,818명, 가옥 소각 724채, 교회 소각 59개소, 학교 소각 3개교였다.2)
당시 장로교 총회에 보고된 자료에 의하면 누락된 것을 감안하지 않고도 체포 3,804명(목사 및 장로 134명, 지도자 202명, 남자 신도 2,125명, 여자 신도 531명), 매 맞고 나온 자 2,162명, 사살된 자 41명, 매 맞고 죽은 자 6명, 파괴된 예배당이 12동이었다.3) 일제가 조사한 바로는 3.1운동으로 체포된 사람들 중 기독교인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특히 여성 피검자의 경우, 총 471명 가운데 309명이 기독교인이었다.4)
3.1운동은 식민지 통치하에서 일어난 가장 위대한 민중들의 독립운동이었다.
위대한 민중들의 독립운동은 그냥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결코 아니었다.
선교사들의 합의하에 만들어진 선교지 분할정책의 결과로 미션스테이션이 전국 곳곳에 만들어진 결과이다. 한반도에 골고루 분포된 34개의 미션스테이션은 청년, 여성, 아동들을 하나님 나라의 미래 지도자, 미래 희망으로 양육하였다. 10여 년 사이에 의식화된 그들은 민족의 비참한 운명에 대한 자각과 성찰을 하였다. 그들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대한 기대와 고종황제의 독살설, 그리고 일본의 가혹한 식민지 통치에 대한 분노를 교회를 통하여 결집하였다. 교회는 그 동안 망국의 젊은이들을 하나님의 섭리와 기독교 역사의식, 근대문명과 근대의식,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으로 무장시켰다. 그리하여 그들은 각계각층에서 민족의 지도자로 자리를 잡아 교회와 함께 독립운동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었으며 마침내는 만세 시위를 조직적으로 벌였다. 특별히 미션스쿨에서 양육된 청년들이 비밀 조직망으로 상호연락을 취하며 독립선언서를 서울에서 지방으로, 지방에서 오지로 나름으로 3.1만세시위는 바람에 날아가는 불꽃처럼 삼천리 방방곡곡으로 순식간에 확산되었다.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주체가 되어 일으킨 3.1만세운동은 우리 민족의 독립에의 의지와 자존심을 전 세계에 알렸으며 일본의 통치전략을 문화정치로 바꾸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상해에 임시정부를 출범시켰으며 중국의 5.4운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고 식민지 지배를 받고 있는 아시아인들에게 저항할 용기를 주었다.
5천년 한민족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독립운동, 저항운동, 비폭력운동으로 태두가 된 3.1만세운동의 배후에는 기독교를 서양종교라는 이유로 배타하며 기독교의 공로와 기여를 무시하며 외면하는 민족주의 사가들이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장감의 선교지 분할정책과 미션스테이션 정책이 있었다.
미션스테이션과 3.1운동
(강성호 저 ⌜저항하는 그리스도인: 세상을 밝힌 한국 기독교 저항사⌟, 31쪽 참고
선교회 | 선교스테이션 | 3.1운동 관련 내용 | |||
지역 | 거점 도시 | 설치연도 | |||
미국 북장로회 | 경기도 | 경성 | 1885 | 3월 1일, 독립선언서 서명 민족대표 33인 중 16인 기독교인(길선주, 이승훈, 김창준,이명룡,유여대,이필주,김병조,양전백,이갑성,박희도,신석구,정춘수,박동완, 최성모, 신흥식, 오화영, *파고다공원 집회 독립선언서 낭독자-정재용(경신학교 졸업생, 교회학교 교사) | |
평안남도 | 평양 | 1893 | 평남 최초의 시위지역(공동) (3월 1일, * 기독교인의 만세 시위는 33인 중의 1명인 이승훈 장로의 주도 준비됨. *장로교, 숭덕학교에서 태황제 봉도식 후 시가 행진. 김선두 목사가 중심이 되어 시위를 진행. 강규찬목사, 주기원, 이일영, 김이제. 정일선, 김찬흥, 곽권응(숭덕학교 교사), 소양묵, 박인관, 김기풍을 비롯하여 목사 30여 명이 체포됨. 숭실학교, 숭덕학교, 숭현여학교 *감리교, 남산현교회담임인 신홍식목사는 33인 중의 1인, 3.1 만세 시위는 남산현교회 부목사인 박석훈 목사주도. 김찬홍목사는 윤원삼에게 독립선언서 100장을 받아 3월 1일에 배포. 선언식 후에 시내로 행진. *천도교, 설암리 옛 대성학교 자리, 교구당에서 독립선언식을 하고 시내로 행진하여 합류. | ||
평안북도 | 선천 | 1901 | 평북 최초의 시위지역 (3월 1일/이승훈, 양전백, 선천남교회, 김석창목사, 홍성익교사, 신성중학교 중심) | ||
강계 | 1909 | 4월 8일, 계례지병원, 강계읍교회, 차학연장로 | |||
황해도 | 재령 | 1906 | 3월 10일(9일) 재령교회 | ||
경상북도 | 대구 | 1899 | 경북 최초의 시위지역 (3월 8일, 이갑성 방문, 남성교회, 이만집목사, 백남채, 이상백, 이용상(세브란스 의전)계성학교, 신명여학교, 대구성경학원) | ||
안동 | 1910 | 3월 13일, 안동교회(김영옥목사, 이중희장로, 이상동 조사, 이재명(세브란스의전재학생), 강대극(동경유학생), 김원진/ 3월 18일, 김병우 장로, 송기식, 김정숙, 계명학교 학생들) 3월 18일- 교회와 천도교인 연합 | |||
충청북도 | 청주 | 1908 | 충북 최초의 시위지역 (3월 23일 시작, 4월 6일까지 총 19회 만세 시위) *3월 19일과 20일에 괴산지역 시위가 먼저 있었다. | ||
미국 남장로회 | 전라도 | 전주 | 1895 | 3월 13일, 신흥학교, 기전여학교, 서문교회, | |
군산 | 1896 | 전북 최초의 시위지역 (3월 5일, 구암교회, 영명학교, 멜볼딘여학교, 김병수, 박연세 등) | |||
목포 | 1898 | 3월 21일, 양동교회, 박연세목사, 이경필목사, 서상술, 박상봉, 영흥학교,정명여학교 | |||
광주 | 1904 | 전남 최초의 시위지역 (3월 10일, 양림교회, 숭일학교, 수피아여학교. 남궁혁, 교사 김철, 김강, 최병준, 황상호 등) | |||
순천 | 1913 | 순천은 1916년 매산학교가 폐교되어 교회 중심의 만세시위가 일어나지 않았다. 4월 13일, 순천 낙안읍성, 구국결사대, 유흥주, 김종주 4월 9일, 도란계, 이팔사, 이병채, 안호영, 안구휴, 김규석, 오병원, | |||
호주 장로회 | 경상남도 | 부산 | 1891 | 경남 최초의 시위지역 (3월 11일, 일신여학교) | |
진주 | 1905 | 3월 18일, 교회와 미션스쿨학생, 유림 연합) 3월 19일 | |||
마산 | 1911 | 문창교회 이상소장로, 손덕우 장로이승규장로, 창신학교, 의신학교, | |||
거창 | 1913 | 3월 20일, 거창교회 주남선, 오형선장로, 고운서 등과 만세시위 주도, 이덕생, 김태연 등 13명과 함께 검거됨. 3월 20일 장기리 장터 시위. 김병직, 어명준 주도. 3월 22일 거창 가조시위 이석종을 비롯한 5인 거창가조의 만세시위 시위 중 5명 사망. 곽종석은 유림대표로 독립호소문을 써서 파리장서사건을 일으킴,) | |||
통영 | 1913 | 3월 13일, 3회 걸쳐 일어난 만세시위에 충무교회가 중심. 진평헌을 비롯한 19명의 청년이 송정택의 집에서 3월 13일, 남망산 공원에서 거사하기로 합의함. | |||
캐나다 장로회 | 함경남도 | 원산 | 1898 | 함경남도 최초의 시위지역(3월 1일) 7회에 걸친 원산시위에 정춘수목사의 주도로 감리교와 장로교가 협력하였고 원산의 미션스쿨 학생들 참여. | |
함흥 | 1904 | 3월 3일에 시작하여 3월 6일까지 계속됨. 강봉우의 강연, 조영신, 홍기진 (신창리교회 전도사), 이근재, 이순기, 한영호(영신학교 교사), 장도원, 채선탁이 주도하고 진행, 이명봉, 김기섭, 조동훈(교회 청년들) (신창리교회, 중하리교회, 영신학교, 영생학교, 영생여학교, 함흥고등보통학교, 함흥농학교, 제혜병원, 던칸 선교사) | |||
함경북도 | 성진 | 1901 | 3월 10일(강학린목사, 김상필, 강희원, 김영배. 제동병원, 그리어슨 선교사, 욱정교회, 보신학교) | ||
회령 | 1912 | 3월 25일, 회령읍교회, 최경재, 강창기 시위주도, 회령보통학교 졸업식 날 거시, 신흥학교, 보흥여학교 학생들 참여, 교인들 투옥, 예배당 파괴, | |||
연변지역 | 용정 | 1913 | 북간도 최초의 시위지역(3월 13일) (용정, 화룡, 연길, 왕청, 도문의 캐나다장로회 교회들 외 간도의 단체들, 구춘선, 김영학, 류례균, 배형식, 마진,이봉우, 이동춘, 강백규, 정동학교, 창동학교, 광성학교, 명동학교 등 ) 푸트, 베이커, 마틴 등) | ||
미국 북감리회 | 경기도 | 경성 | 1896 | 3월 1일. | |
제물포 | 1891 | ||||
수원 | 1901 | ||||
강원도 | 원주 | 1909 | |||
충청남도 | 공주 | 1903 | |||
평안북도 | 영변 | 1905 | |||
평안남도 | 평양 | 1893 | 평남 최초의 시위지역(공동) (3월 1일, 남산현교회) | ||
황해도 | 해주 | 1904 | 황해도 최초의 시위지역 (3월 1일/ 최성모 목사, 남본정교회 오현경 목사) | ||
미국 남감리회 | 경기도 | 경성 | 1895 | 3월 1일 | |
개성 | 1897 | 경기도 최초의 시위지역 (3월 3일, 감리교회 중심) | |||
강원도 | 춘천 | 1908 | |||
철원 | 1920 | 강원도 최초의 시위지역 (3월 10일, 김리교회 중심) | |||
함경남도 | 원산 | 1900 | 3월 1일, 남촌동감리교회, 정춘수목사, |
* 감리교스테이션에서 일어난 3.1운동 관련 내용을 자료부족으로 정하지 못했습니다.
2021.10.18.
우담초라하니
*미주
1.김명구 저, ⌜한국 기독교사 1 – 1945년까지 ⌟, 363,364, 365쪽, 예영커뮤니케이션, 2018
2.김인수 저, ⌜한국 기독교회사⌟, 221쪽, 한국장로교출판사, 2014
3.같은 책, 221쪽
4.강성호 저, ⌜저항하는 그리스도인: 세상을 밝힌 한국 기독교 저항사⌟,17쪽, 복 있는 사람, 2019
*참고서적
강성호 저, ⌜저항하는 그리스도인: 세상을 밝힌 한국 기독교 저항사⌟, 복 있는 사람, 2019
차종환, 이갑산 저, ⌜3 ‧ 1운동 숨은 이야기⌟, 다락방, 2019
김명구 저, ⌜한국 기독교사 1 – 1945년까지 ⌟, 예영커뮤니케이션, 2018
김인수 저, ⌜한국 기독교회사⌟, 한국장로교출판사, 2014
에디스 커, 조지 앤더슨 저, 양명득 편역 ⌜호주장로교 한국 선교 역사 1889-1941⌟,
동연, 2017
윌리엄 스코트 저, 연규홍 번역, ⌜한국에 온 캐나다인들⌟, 한국기독교장로회출판사, 2009
임경근 저, ⌜한국 교회사 걷기⌟, 두란노, 2021
박은식 저, 남만성 역 ⌜한국독립운동지혈사⌟,2019
박시백 작, ⌜35년 1916-1920 3.1혁명과 대한민국임시정부⌟, 바이북, 2018
C.W. 켄달 저, ⌜한국 독립 운동의 진상⌟, 집문당,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