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28:20 그런즉 지혜는 어디서 오며 명철이 머무는 곳은 어디인고
21 모든 생물의 눈에 숨겨졌고 공중의 새에게 가려졌으며
22 멸망과 사망도 이르기를 우리가 귀로 그 소문은 들었다 하느니라
23 하나님이 그 길을 아시며 있는 곳을 아시나니
24 이는 그가 땅 끝까지 감찰하시며 온 천하를 살피시며
25 바람의 무게를 정하시며 물의 분량을 정하시며
26 비 내리는 법칙을 정하시고 비구름의 길과 우레의 법칙을 만드셨음이라
27 그 때에 그가 보시고 선포하시며 굳게 세우시며 탐구하셨고
28 또 사람에게 말씀하셨도다 보라 주를 경외함이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니라
A. 욥의 고난 (1-2장)
B. 욥이 자신의 생일을 저주함 (3장)
C. 세번의 대화 (4-27장)
첫 번째 대화 (4-14장)
두 번째 대화 (15-21장)
세 번째 대화 (22-27장)
D. 지혜란 무엇인가? (28장)
C’. 세 번의 발언 (29-41장)
B’. 욥이 세 친구들을 위해 중보함 (42장7-9절)
A’. 욥의 회복 (42장10-27절)
지혜란 무엇인가?
세 친구들은 고난 속에서 스스로 의롭다 하는 욥을
세 번의 대화를 통해서 비난하였습니다.
세 번의 대화 이후 욥기는 지혜의 본질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욥기가 말하는 지혜는 곧 구원의 지혜로, 기능적인 정보의 이해나,
도덕적인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깨닫고 알아가는 구원의 지혜를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욥의 독백
욥기28장에서 지혜를 설명한 후
욥기는 욥의 세 번의 독백을 29장부터 31장까지 합니다.
29장은 과거의 행복했던 자신의 모습을 회고하는 내용이고,
30장은 현재 당하고 있는 고난을 진술하며,
31장까지 자신의 결백에 대한 증거를 몇 가지 예를 들면서 진술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32장에서 엘리후가 나타나 욥을 비난합니다.
고난 속에서 깨닫게 된 말씀
욥은 이러한 고난 속에서 결국 마지막 하나를 깨닫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의 지혜에 관한 것입니다.
단순히 과거의 행복을 회고하고, 현재의 고난을 진술하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것 정도가 아니라,
설명될 수 없는 현재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지혜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고난을 극복하려는 자들
늘 말씀 드리지만, 인생이 당하는 고난 자체에 어떤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흔히 고난을 받아야 성장하고 성숙한다고 말하지만,
고난을 받았기 때문에 성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 고난을 잘 해석하였기 때문에 성숙하는 것입니다.
해석 없는 고난은 그냥 고생하고 고통 받는 것뿐입니다.
사람들이 고난을 통과하기보다 극복하려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자신이 그 고난의 현실을 통제하고 뛰어 넘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은 지독한 자기 사랑, 자기 의입니다.
거기에는 고난을 통해 깨닫게 된 지혜가 아니라, 고난을 극복한 나 자신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들에게 고난을 주실 때는
그 고난을 극복하여 자신의 옳음을 입증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고난의 과정을 잘 통과함으로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라는 것입니다.
그 고난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지혜에 이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고난을 상징하는 광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신 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주심
하나님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광야의 길을 걸어가게 하신 이유는
광야를 극복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을 통과하라는 것입니다.
그 광야 속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낮추신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낮추다가 “아나”라는 단어인데, 괴롭히다, 학대하다란 뜻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는
시편에서 시인들이 고난을 당할 때 자주 사용된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괴롭히신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시 119:50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
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92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
107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고난 당한 것이 유익이라
71절에 맨 앞에 있는 단어가 “토브”로 “선하다”란 뜻입니다.
무엇이 선한 것이냐면, 고난을 당하는 선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고난을 당하다가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낮추실 때 사용된 “아나”라는 동사입니다.
“아나”라는 단어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게 괴로움을 당할 때 표현된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시인이 고난 받는 것은
단순히 인간의 육체가 당하는 괴로움이나 불편함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아래 있는 인생들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율법 아래서 학대를 당하는 것을 “토브”라고 하는 이유는
이것을 통해서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새겨지는 말씀
여기서 말하는 율례인 ‘호크’는 마음에 새겨진 말씀이란 의미입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에서는 소득이나 분깃이라고 번역되기도 했습니다.
광야의 길이 선한 이유, 고난당한 것이 선인 이유는
그 길을 통과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통해서 주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혜의 본질
이것을 성경은 한 마디로 “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지혜의 본질은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다섯 권의 시가서가 지혜를 말하고 있는데,
그 지혜는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교회로 하여금 지혜로워야한다는 명령과 당위는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펼쳐지는
하나님의 구속의 사역을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고난과 지혜
욥기가 정확이 이 지혜를 욥의 고난을 통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욥에게 고난이 필연적으로 허락된 이유가 이 하나님의 지혜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지한 인생, 지혜롭지 못한 인생에게
반드시 필연적으로 따르게 되는 것이 바로 “고난”인 것입니다.
무지한 인생은 오직 고난의 과정을 통과함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지혜를 배우기 때문입니다.
이 고난을 우리 인생은 무엇으로 감지 하냐면
하나님이 나를 공격하는 것으로 감지합니다.
그래서 원시복음의 약속 안에 하나님이 우리를 공격하는 것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이 말씀은 여자의 후손인 그리스도가
사탄을 상징하는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만 보면 일차적으로만 보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여기서 사탄을 상징하는 뱀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어떤 실체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로 서 있는 인생들의 개별적인 자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뱀으로 상징하여 설명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의 지팡이가 애굽의 뱀을 삼키는 것으로 구원을 설명하기도 한 것입니다.
출 7:9 바로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이적을 보이라 하거든
너는 아론에게 명하기를 너의 지팡이를 가져 바로 앞에 던지라 하라 그것이 [뱀이] 되리라
10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여호와의 명하신대로 행하여
아론이 바로와 그 신하 앞에 지팡이를 던졌더니 [뱀이] 된지라
11 바로도 현인들과 마술사들을 부르매 그 애굽 요술사들도 그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하되
12 각 사람이 지팡이를 던지매 [뱀이] 되었으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키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
지혜는 이렇게 하나님이 나를 진리의 말씀으로 공격하는 분임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이 뱀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나를 만드신 분이 나를 공격하고 나를 침공하고
결국 나를 죽이는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기에 보편 인생으로서 욥의 고난이 있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이렇게 하나님의 뱀이
애굽의 뱀으로 살고 있는 나를 삼키는 것으로 설명된 것입니다.
성경에서 뱀을 의미하는 단어가 몇 개 있습니다.
나하쉬
히브리어는 원래 모음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단어를 연구할 때 모음을 빼고 자음을 중심으로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하쉬”의 자음은 눈, 헤, 쉰입니다.
스트롱사전을 보면 눈, 헤, 쉰으로 조합된 단어가
1572번부터 1576번까지 총 다섯 개가 있습니다.
이들 단어들의 기본적인 뜻은
“점을 치다, 경험으로 알다, 징조로 알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뱀이라는 징조를 통해서
그 안에 있는 내용을 의미로 알기를 원하셨는데,
탐욕이 가득한 인간은 이것을 통해서 우상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왕하 18:4 여러 산당을 제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느후스단
모세가 광야에서 놋으로 만든 놋 뱀이 히스기야 왕 때가지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것으로 우상 숭배를 했습니다.
하나님을 알라고 주신 놋 뱀으로 우상을 숭배한 것입니다.
이 우상숭배의 본질은 세상의 힘으로 나를 자랑하겠다는 가인들의 발상입니다.
가인이 탁월한 우상숭배자입니다.
“나하쉬”가 뱀이라는 뜻인데,
여기서 파생되어 “네호셰트”가 나왔는데,
네호세트는 “놋, 청동, 구리”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가인이 이 놋으로
가인의 문명, 전쟁 무기를 만들어 세상을 정복한 것입니다.
창 4:16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17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18 에녹이 이랏을 낳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19 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20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21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22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탄닌
사 27:1 그 날에 여호와께서 그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랜 [뱀] 리워야단
곧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며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리라
뱀이라는 단어와 동의어가 “탄닌”입니다.
이 단어 뜻은 “뱀, 용, 바다괴물”입니다.
욥 7:12 내가 바다니이까 [용]이니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나를 지키시나이까
내가 바다의 용이니까?
욥의 고백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 앞에 있을 때
자신의 처지가 용, 괴물이라고 자각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그에게 하나님이 용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용을 죽이십니다.
이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은
바다에서 용으로 살고 있는 나를 죽이시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일들, 온 우주와 역사를 주관하시는 이유는
바다에서 뱀 노릇 하고 있는 나를 죽여 하나님의 나라로 이끄시기 위함입니다.
드라콘
계 20:1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의 손에 가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2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3 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천년왕국
계시록이 말하는 천년 왕국은
성령이 임하여 전 세계에 복음이 전파되는 교회의 시대를 의미합니다.
그 시대의 내용은 뱀, 마귀, 사탄이 결박당하는 것이고,
반대로 성도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동안 왕 노릇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서로 같은 사건입니다.
성도의 왕 노릇은 뱀의 머리로 살고 있는 내가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의 옛 자아가 공격당하여 머리가 잘려지고 있는 지금이 천년왕국이고,
그것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하고 있는 성도의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자
욥기는 이러한 우주적인 천녕왕국의 현실을
욥 개인의 영역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욥의 고난은 그가 견디고 참고 인내해서 극복해야 할 것이 아닙니다.
욥의 고난은 지금도 여전히 성도 안에서 진행되고 있는 하나님의 정복전쟁의 현실입니다.
나의 “나하쉬”와, “탄닌”과, “드라콘”이 발각되고,
폭로되어 무너지는 것이 이 전쟁의 본질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안에 있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바로 지혜이고, 지혜로운 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지혜로운 자만이 구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이렇게 역설적으로, 비밀스럽게 일어나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삶으로 체화하는 자를 지혜로운 자라고 합니다.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