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세의 지배와 참혹한 전쟁의 상흔을 지닌 나라, 베트남
1975년 어느 가을 저녁에 학생들과 구 부산여자고등학교자리에 있던 월남피난민수용소를 위문방문한 적이 있었다. 쌀쌀한 저녁바람을 맞으면서 난민들이 운동장에서 저녁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나마 그들은 아비규환이었던 월남을 탈출하여 안전한 한국에 왔으니 다행이었을 것이다.
그후 1980년 3월 26일, 김포발 미국 Seattle행 비행기 Northwest Airline를 타고 출국한 적이 있었다. 그날 내가 탄 비행기에 계절에 맞지 않는 여름옷을 입고 약 100명정도의 동남아인 어른과 아이들도 동승하였다. 여행객인 줄 알았다.
다음 날 아침 비행기가 Tacoma국제공항에 도착한 후에 비로소 그들이 한국에 있던 월남난민(Boat People: 소형선박을 타고 월남을 탈출한 난민)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일반 숭객과는 달리 미국입국심사대 앞 대리석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공항직원들의 거친 별도검사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행운아들이다. 살아서 미국에서 살게 되었으니....
Seattle에 있는 동안 대학교내 식당에서 가끔 월남난민 학생들을 볼 수 있었다. 내가 한국인 것을 알고 피하는 것 같았다.
지금도 그때의 충격은 지울 수 없다.
지금 젊은 세대는 베트남의 쌀국수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베트남의 참혹한 전쟁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다. 월남이 패망한 지 40년이상 지났기 때문에.....
베트남(Vietnam)은 인도차이나 반도 동부에 위치하고 있는 나라이다.
베트남은 우리 나라와 깊은 사연이 있는 나라이다. 1960년대에 ‘맹호', 청룡', '백마, 백구, 십자성’ 등의 우리 군대가 용병형태로 베트남전쟁에 참전을 하였다. 우리 세대의 젊은이들이 전장에서 고귀한 희생으로 벌어온 돈으로 우리 나라는 경제발전의 기반을 다진 것이다. 그들의 고귀한 희생으로 만들어진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지금 사람들은 그 당시 우리 세대의 젊은이들의 희생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당시 제대로 된 도로하나 없는 우리나라가 파월장병들이 벌어 온 달러로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였다. 경부고속도로의 건설목적은 서울을 비롯한 내륙의 공업지역에서 생산한 제품을 수출하기 위해 부산까지 신속히 운송하기 위한 것이었다.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된 초기에는 이도로를 달리면서 음주가무를 자제했던 것도 바로 우리들의 고귀한 파월장병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 지금은 모두 망각한 재 음주가무를 하지만....경부고속도로는 베트남에 파병된 우리 젊은이들의 고귀한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베트남전쟁은 베트남 국민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뼈 아픈 기억을 남긴 전쟁이다.
한국동란으로 처참하게 파괴되었던 우리 나라가 1960년대 이후 경제개발에 힘입어 지금 선진국 대열에 있는 것을 보고 한국동란에 참전했던 우방의 노병들이 감탄사를 보내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베트남도 20여년 간의 전쟁의 아픔과 상처를 극복하고 지금 통일된 나라에 활기를 불어 넣어 도약을 꿈꾸고 있다. 아직은 빈곤하지만, 베트남은 왕성한 생산력을 가진 자연과 풍부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어 머잖아 우리처럼 부유한 국가로 성장할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는 아직까지도 분단상태에 있는데........
외세의 침입과 지배의 역사를 가진 나라
베트남은 일찍부터 외세의 지배를 자주 받아왔다. 이러한 역사적 불행은 국토의 위치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시아의 내륙과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도서국가간을 연결하는 육교적 역할을 하는 인도차이나 반도 동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외세의 침략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지정학적 특성을 띄고 있다. 이 때문에 일찍부터 외세의 침략과 지배를 자주 받는 불행한 역사의 나라가 된 것이다.
베트남에 대한 외세의 영향이 시작된 것은 BC 219년, 중국 진(秦)나라 시황제(始皇帝)의 베트남에 대한 남정(南征)에서 비롯되었다.
BC 111년에는 한(漢)나라 무제(武帝)가 중국 남부에서 베트남에 이르는 지역에 9군(郡)을 두고 통치하였다. 당시 베트남의 3군에 죄인들의 유배로 인해 중국의 언어와 관습이 베트남에 확산되었다. 중국의 적극적인 교화정책으로 베트남의 화전농업이 중국식 농업으로 발전하였고, 혼인풍습도 중국식으로 변화하였다.
그후 민족주의시대에는 아시아를 진출한 서구세력의 지배를 받았다. 서구의 영향을 보면 1884년에 베트남은 프랑스 식민지가 되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편입되었다.
오랜 통일전쟁에 시달린 비극의 나라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됨에 따라 독립을 선언하고 베트민을 중심으로 베트남민주공화국을 발족시켰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 후에도 재차 외세들이 유입하면서 베트남은 1954년까지 정치적 혼란기를 맞게 되었다. 1954년에는 북베트남의 공산당정권이 북베트남에서 프랑스 식민세력을 완전히 패퇴시킨 후, 베트남은 북위 17도선을 경계로 남북으로 갈라졌다. 남북분단으로 남과 북 사이에 20여 년에 걸친 긴 전쟁이 계속되었다.
통일전쟁 중 남베트남의 공산화를 우려한 미국이 1961년에 참전하였고 한국, 필리핀, 타이,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이 지원군을 파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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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구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은 북베트남이 1975년 사이공을 함락시킴에 따라 전쟁은 북베트남의 승리로 끝나고 1976년 6월에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 탄생하였다.
베트남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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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패망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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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난민
난민 수용소(부산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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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패망의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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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간에 걸친 전쟁으로 황폐된 국토는 새로운 국가 건설에 큰 장애가 되었다. 더구나 1978년 남베트남의 개조(改造)사업으로 상점의 사회주의화, 통화개혁 등이 단행됨에 따라 경제적 실권을 가진 화교(華僑)의 대량 귀국사태를 야기시켜 대중공관계의 악화되어 중공의 군사적, 경제적 원조가 중단되었다. 또 1977년부터 격화된 캄보디아와의 국경분쟁으로 1979년에 중국과 전쟁을 치루었다.
장기간 전쟁 이후 1975년-1986년에 베트남은 전후의 황폐, 사회문제, 대규모 난민의 발생, 캄보디아와의 분쟁, 자연재해 등 많은 문제에 봉착했다. 또한 대외적으로는 미국과 유럽의 고립정책과 무역금지 정책이 베트남의 전후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되었다.
이러한 국내외의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베트남 정부는 1986년에 모든 부문에 걸친 개혁정책인 ‘도이 머이(Doi Moi)’ 정책을 시행하여 베트남의 경제를 개방하고 중앙계획적인 방식에서 시장 지향적인 방식으로 변경하였다.
어머니와 같은 메콩강
베트남을 여행하다보면 평야가 많은 것처럼 착각을 하기 쉽다. 그러나 베트남은 국토의 3/4이 산지이다.
북서부의 중국, 라오스와의 국경 부근이 가장 고도가 높고 이곳으로부터 히말라야 조산대(造山帶)의 남동부에 해당하는 라오스 국경을 따라 남쪽으로 뻗어 있다. 북쪽은 호앙리엔선 산맥이 중국과의 경계를 삼고 있는데 석회암 산지의 연속된다. 이 산지의 말단에 있는 ‘하롱만(Ha Long Bay)’은 석회암 지역으로 ‘바다의 계림’이라고 불리 울 정도로 자연경관이 수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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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윈난성(雲南省)에서 발원하여 베트남 북부를 흐르는 송코이강은 총길이가 1,200km에 이르며 베트남 영내에서 약 600km를 흐르다가 통킹만으로 유입한다. 송코이강 하류에 형성되어 있는 송코이 삼각주는 대부분 해발고도가 3m 이내로 예로부터 베트남인의 생활중심지를 이루었다.
특히 베트남 남부를 흐르는 메콩강은 인도차이나반도 최대의 하천으로 총길이가 4,020km이며, 중국 시짱(西藏 티베트)자치구에서 발원해 라오스와 캄보디아를 지나 베트남으로 흐른다. 메콩강은 베트남 영내에서 200km를 흐른 뒤 9개의 지류로 갈라져 광대한 메콩삼각주를 형성하고 남중국해로 유입한다. 메콩 삼각주의 해발고도는 1∼2m로 매우 낮은 비옥한 평지로 베트남의 2대 벼농사지대를 이룬다. 베트남 주민의 대다수가 이 강연안에 집중하여 생활을 의존하는 ‘어머니의 젓줄기’와 같은 강이다.
베트남 여행에는 메콩강을 빼 놓을 수 없다. 이들이 사는 모습을 보는데 가장 중요한 관광이기 때문이다.
메콩 삼각주의 중심, 빈롱(Vinh Long)
메콩강이 베트남의 국민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강인 지 여행자의 기행문에서 짐작할 수 있다.
불과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죽음과 절망의 땅이었던 메콩 델타의 칸토. 우리에게도 친숙한 명칭인 베트콩으로 알려진 베트남 해방군이 조직되고 활동의 중심지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하늘에서 뿌려지는 고엽제와 네이팜탄 등 열거하기도 힘든 종류의 폭탕을 몸으로 막아야 했던 곳이다. 베트남 현대사의 비극의 현장이 이제는 통일 베트남을 밑에서부터 받쳐주는 곡창 지대로서 제 몫을 톡톡히 하고 있는 곳으로 변모하고 있다.
미군과 베트콩 사이에 전투가 치열했던 아픔의 무대가 된 칸토(Can Tho)를 찾아가는 길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칸토의 새벽은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에 시작된다. 황토빛 강물을 분간하기도 힘든 어둠 위로 빨간 기운이 퍼지면서 사람들에게 이끌려 나온 조각배들이 하나 둘 메콩 강을 메워 나갔다. 메콩 강은 베트남인들에게는 행운의 상징인 ‘구(九)’와 신성한 영물인 ‘용(龍)’을 합친 의미인 '구룡강(九龍江)'으로 더 익숙하다. 메콩 강의 물빛은 황토색이다. 멀리에서부터 실려온 미세한 황토가 섞인 강물의 불투명함은 비옥한 토지를 연상시킨다. 넓은 메콩 강을 따라 흙을 가득 싣고 유유히 흘러가는 운반선, 바다처럼 넓은 강, 바나나와 야자수 잎사귀가 익어가는 벼처럼 줄지어 있는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처녀지를 탐험하는 느낌이 든다. 칸토는 메콩 강 전체를 이어주는 수상 육상 교통의 중심지로 메콩 델타에서 수확한 엄청난 쌀과 각종 농산물을 외지로 실어 나르는 요충지이기도 하다.
칸토에서 도보로 5분 정도면 메콩 강의 수상 시장을 둘러볼 수 있는 배들이 선착장에 줄지어 서 있다. 배를 잡아타고 물길에 올랐다. 아직까지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칸토에 들어오고 있지 않지만 프랑스를 비롯한 많은 유럽 국가의 관광객들이 메콩강의 진수를 보기 위해 이곳 칸토를 찾는다. 스쳐 지나가는 크고 작은 배 위에서 세면을 하고 있는 베트남 사람들. 메콩 강에서는 배가 조금 커지면 단순한 교통 수단을 넘어 집의 개념으로 발전한다. 메콩 강 사람들 중 8만여 명이 수상 가옥을 배경으로 생활한다. 물론 배 역시 예외는 아니다. 햇빛과 비바람을 막을 수 있는 지붕이 설치돼 있고 지붕 아래에는 그물 침대와 간단한 취사 도구가 갖춰져 있다. 고기를 잡는 어선을 제외하고는 메콩 강의 배는 하나같이 빨간 얼굴과 검은 눈동자를 한 얼굴을 뱃머리에 장식하고 있다. 눈을 부라린 모습은 부정한 물고기가 근접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칸토 주변에는 수상 시장이 여러 곳 있는데 시내에서 가장 가깝고 여행객들이 찾아가기 쉬은 곳은 카이랑(Cay Rang)시장이다. 칸토에서 배를 타고 약 30여분 뱃길을 달렸다. 칸토 주변에 있는 7개의 지류를 통해 수상 시장으로 가는 과일과 야채를 가득 실은 배들이 수면을 가르며 나타난다. 매일 아침, 날이 밝기 전부터 6시를 넘으면 약 1킬로미터 정도에 달하는 수상 시장이 생겨난다. 새벽 6시부터 오전 내내 메콩의 지류에서 짐을 가득 실은 배가 모여든 카이랑 시장에서 매매가 시작된다. 쌀 등 온갖 과일과 야채들이 잔뜩 쌓여 있는 크고 작은 배가 달라붙는 광경이 땅 위의 재래시장 못지않은 번잡함을 보인다.
카이랑은 칸토 주변에서 생산되는 생산물의 집산지다. 길게 꼬리를 이루고 있는 크고 작은 배들이 분주히 오가며 한 떼의 무리를 지어 작은 배는 큰 배의 옆에 붙어서 흥정을 하거나 판매를 성사시키고 있다. 큰 배는 도매 상인들의 배이며 작은 배는 농가의 사람들이 타고 있다. 농가에서 내놓은 것들은 미토나 호치민 시로 팔려 나간다. 물론 작은 배들끼리 물물교환의 형태로 사고 파는 즉석 거래도 이뤄진다. 좀 더 자세히 보고 있으면 재미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큰 배들에는 장대 같은 봉이 세워져 있고, 그 끝에 야채나 과일이 매달려 있다. 이것은 수상 시장식의 간판이다. 우리 배에서는 쌀을 산다 또는 라임을 취급한다는 표시다. 그중에는 한 개의 봉에 위에서부터 배추, 참외, 토마토, 고추 등 4종류가 매달려 있는 큰 배도 있다. 이 독특한 간판으로 나름대로 특별한 멋이 있다.
그리고 역시 시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먹거리다. 정박해 있는 배 사이를 오가며 쌀국수, 담배, 음료수를 파는 배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메콩 강의 지류인 칸토 강가에 노상 시장이 늘어서 있다. 근교의 선착장에는 야채와 과일을 비롯한 다양한 물품을 실은 배가 도착해 바로 옆 시장으로 운반해 간다. 길에는 노점이 펼쳐져 있고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찾아온다. 그렇게 메콩은 베트남 사람들 삶 그자체였다.
여름철 모순에 이어지는 주기적은 홍수가 영양분이 풍부한 메콩 상류의 토사를 하류 메콩 델타까지 몰고 내려와 세계 최대의 곡창 지대를 만들어냈듯이, 메콩 강은 베트남 사람들에게 절체절명의 삶의 원천으로서 어머니의 역할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출처: 세계여행을 꿈꾸는 사람들)
http://bomypapa.blog.me/40008803213
주민들의 생활을 지배하는 열대몬순(계절풍)기후
베트남은 북위 8° 30'-23° 22'에 걸쳐 국토 전체가 북회귀선(北回歸線)의 남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기후는 고지를 제외한 전 지역이 열대몬순기후를 이룬다. 대체로 5∼10월이 우기, 11월에서 이듬해 4월까지가 건기이다. 북부에서는 6∼7월, 중부와 남부에서는 8∼9월에 강우량이 많다.
북부의 경우 건기가 거의 없으나 남쪽으로 갈수록 우기와 건기의 차가 뚜렷하다. 하노이를 비롯한 북부 및 중부 지역은 연중 기온차가 심하며, 태풍의 영향권에 있어서 매년 피해가 발생한다. 남부 메콩 델타 지역도 태풍이나 침수 피해를 입는다.
배트남 여행때에 음식과 물을 주의해야하는 것은 동남아시아의 다른 나라의 경우와 같다.
왕성한 생산력을 가진 자연환경과 풍부한 천연자원을 지닌 나라
베트남의 노동인구 중 60% 이상이 1차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것은 전통적인 농업국으로서 벼농사가 중심을 이루기 때문이다. 기온이 벼농사에 적합하고 1년에 2, 3기작이 가능하여 아시아의 곡창지대를 이루며 북부의 통킹평야와 남부의 메콩 삼각주가 그 중심지이다. 1989년에 쌀의 자급자족을 달성한 이후, 쌀은 베트남의 중요한 외화 획득원이 되고 있으며 타이에 이어 세계 2위의 쌀 수출국으로 부상하였다.
또한 브라질에 이어 세계 제2위의 커피 수출 대국으로 저가 인스턴트 커피시장을 거의 독점하고 있다. 후추는 세계 수출시장 60%를 점하며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지하자원도 많이 매장되어 있다. 서북부에 주석, 인회석, 안티모니, 금, 은, 철광 등이 산출되며, 홍게이 탄전은 양질의 무연탄을 생산하는 노천굴이다. 원유는 베트남 대표 수출품목으로 국가 최대 수입원이 되고 있다.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국가
베트남은 54개의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이다. 인종적으로는 아시아의 내륙의 민족 이동의 결과이다. 인구의 약 87%를 차지하는 베트남인(킨족)이 평야지대에 거주하면서 벼농사에 종사하고 나머지 소수민족의 대부분은 산악 또는 고원지대에 산재하면서 유목이나 화전경작을 해 왔다. 특히 서부고원지대에는 약 30여개의 소수민족이 살고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6대 소수민족은 바나족, 쟈 라이족, 에데족, 꺼호 족, 세당 족, 므농 족으로 약 90만 명에 이른다. 그외에 소수민족들은 안남산맥을 따라서 몽족이나 먀오족(苗族)처럼 산지에 고립적으로 부족을 이루면서 살고 있다. 베트남에 거주하는 화교는 약 90만 명으로 베트남에서 규모가 큰 민족에 해당한다.
베트남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베트남인(킨족)은 수천 년 전에 중국 화남지방으로부터 북부 베트남으로 이동했다고 알려졌으나, 최근의 고고학적 발굴에 의하면 그 기원은 훨씬 오래된 수십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북부 베트남으로 이동한 킨족은 주로 송코이강 삼각주를 중심으로 문명을 이루었으며 중부와 남부베트남은 참파족의 지배하고 있었다. 베트남인이 부분적으로 남진하기 시작한 것은 1070년대 이후로 북위 17° 이남으로 남하가 이루어 졌다. 레왕조의 타인똥(聖宗) 왕이 참파국을 정벌하여 복속시켰으며, 이후 해안평야를 따라 남하하여 1650년경에 빈투언에 이르는데, 17세기 말에 사이공을 주변의 메콩 삼각주까지 진출하였다. 베트남인의 남진으로 17세기경 멸망한 참파족은 베트남 남부와 판랑지방에 소수민족으로 남아 있다. 17세기에 복속된 메콩강일대의 크메르 족(캄보디아인)의 상당수가 캄보디아 국경근처 메콩 삼각주 서부에 거주하고 있어 캄보디아와의 분쟁원인이 되고 있다.
중국 문화권의 나라
베트남은 다른 동남아시아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문화적으로 인도문화권과 중국문화권의 중간에 위치하여 일찍부터 인도문화와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아왔으며 특히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베트남은 일찍이 1,000년 동안이나 고대 및 중세 중국 제왕조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독자적인 문화를 유지하는 한편 중국문화의 영향도 받아왔다.
공용어는 로마자 위에 특수한 부호를 넣어 80여 개의 자모(字母)로 구성한 베트남어이다. 13세기 이래 한자의 음과 뜻을 차용하여 만든 쯔놈이라는 민족문자가 사용되었으나 전도를 위해 베트남에 온 예수회 사제들이 이를 라틴문자로 옮기면서 사용한 것이 오늘날의 베트남어가 되었다. 현대의 베트남어 단어의 상당부분이 한자에서 기원하였으며, 1910년대에까지 치르던 한학유학시험이 폐지됨으로서 한자와 쯔놈이 더 이상 사용되지 않고 있으며, 현재에는 베트남어가 사용되고 있다.
베트남의 건축물은 중국양식을 포함하고 있다.
상가의 간판에 한자를 병기하고 있다.
베트남의 주요 여행지
베트남을 여행하기 좋은 시기는 기온과 강수량이 적절한 가을-봄이다. 그러나 여행시에 조심해야하는 것은 열대성 전염병과 풍토병이며, 특히 음식을 조심해야한다.
베트남을 여행하는 목적이 사람들마다 각양각색으로 하롱만의 절경이나 멋진 휴양시설도 즐겨야 겠지만 관심있게 보아야 할 것은 메콩강연안의 주민생활, 베트남 전쟁과 관련된 유적, 후예에 남아있는 왕조의 문화유적들로서 베트남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베트남에서 관광할 만한 곳이 많겠지만 주요 도시로 호찌민, 하노이, 후예, 다낭, 냐짱, 롱쑤옌 등을 들 수 있다.
호찌민(Ho Chi Minh 胡志明)은 경제중심지로 메콩강삼각주에 위치하는 인도차이나 최대의 무역항 이다. 안남산맥의 남단에 있는 생자크곶(串) 북서쪽 약 100km 동나이강(江) 삼각주의 중심에 위치한다. 그 지류 사이공강에 면한 하항(河港)으로 바다로부터 약 55km쯤 떨어져 있다.
원래 남베트남의 수도(사이공)였다. 통일 후에 이나라의 독립 운동가로 추앙받는 국부의 이름 후치밍으로 바꾸었다. 1975년 북베트남(월맹)이 월남을 통일할 때까지는 사이공(Saigon)이라고 불렀으나, 1976년 주변의 위성도시를 병합하여 호찌민특별시로 개칭하였다.
17세기 후반 중국 국경지대에서 남하해온 베트남인에 의하여 개척이 시작되었다. 당시는 작은 촌락으로 습지가 많았으나, 프랑스인들이 점령한 후 이곳에 배수시설을 설치하여 전형적인 식민도시로 만들었다. 1908년 시(市)로 승격된 뒤부터 급속히 발전하였으며, 프랑스풍의 관청을 비롯하여 많은 건물이 건축되었다. 또 남부 메콩강 삼각주의 쌀, 북서부의 고무 수출을 위해 항구를 축조했다. 1954년 베트남이 남북으로 갈라지면서 남베트남(월남)의 수도가 되었으며 인구도 급격히 증가했다.
캄보디아와 가까워서 코친차이나의 정치·문화·교통의 중심을 이루어, 옛 총독부·지사(知事)관저·시립극장·교회·전신전화국·재판소·조선소·식물원 등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숄롱은 화교들이 많이 모여 있는 지구로 상업·경제의 중심지를 이루며, 쌀의 집산지로 정미소·창고 등이 많다. 항구는 상항(商港)에다 군항을 겸하며, 쌀을 비롯하여 고무·옥수수·코프라·티크재(材) 등을 수출한다. 호찌민은 프랑스의 식민지 도시로서 발달했기 때문에 역사적인 사적은 거의 없으나, 북동쪽의 식물원에서 남서쪽의 옛 대통령관저에 이르는 부근은 도로가 반듯하게 교차하며, 푸른 가로수가 늘어선 아름다운 풍치로 ‘동양의 파리’라고 하였다.
http://blog.daum.net/hanikoo/9273437
하노이( Hanoi, 河內 )는 원래 북베트남의 수도였으며 통일 후에도 계속 수도로 존속하고 있다. 베트남에서 두 번째 큰 규모의 도시이다. 송코이강 하류에 위치하며 통킹지방의 중심도시로서 농산물의 집산지일 뿐만 아니라 수도로서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 이다.
하노이는 ‘두 강 사이에 있는 도시’라는 뜻으로 1831년 구엔 왕조에 의해 불리워졌던 이름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하노이라는 이름 이전에는 레왕조(黎,1428~1787) 말기 '통킹'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1945년 9월 2일 베트남의 공식 수도가 되었으며, 2010년 9월 도시건설 1,000년을 맞이한 유서 깊은 도시이다.
하노이는 기원전 3,000년 경부터 사람들이 정착하여 살던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꼬 로아 성채는 기원전 200년 경으로 추정되는 최초 주거지로 평가받고 있다. 하노이가 베트남의 중심 도시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하노이의 지리적 위치 덕분이었다. 7세기 무렵 당나라가 지배하던 중국은 남중국해와 활발한 교역 관계를 유지하였는데, 하노이가 원난과 남중국해를 연결하는 교역로에 위치해 있어 자연스레 주요 거점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다. 안남도호부까지 설치되어 활발한 교역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었던 하노이는 당 말기가 되면서 중국이 다른 새로운 교역로를 개발함에 따라 중심지로서의 위상을 잃었다.
하노이는 베트남의 첫 번째 리 왕조(1009~1225)에 의해 ‘떠오르는 용’이라는 뜻의 탕롱으로 불리우며 베트남의 수도가 되어 마지막 왕조인 구엔왕조(1802~1945)가 집권한 1802년까지 베트남의 수도이자 정치행정 중심지로 남게 되었다. 이후 1902년 프랑스가 침략하여 지배하던 시절에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수도가 되었으며 1940년~1945년 일본점령기에도 여전히 행정중심지 역할을 수행했다.
하노이의 기후는 전형적인 아열대 습윤기후이다. 여름에는 덥고 습하지만, 겨울에는 비교적 시원하고 건조한 특징을 보인다. 여름은 5월에서 9월까지 이며, 11월 부터 이듬해 3월 까지 지속되는 겨울에는 다소 건조한 날씨가 계속된다.
하노이는 1990년대 이래 급속한 경제 성장을 경험하였다. 관광, 금융, 부동산, 은행업이 하노이의 경제 발전의 주요한 축이다. 또한 교통 중심지로서 주변 도시들과 연결성이 높아 무역 중심지로 각광받고 있다.
하노이의 주요 관광 명소로는 기원전 3세기에 세워진 코로아 성채, 하노이 문묘, 하노이대학교, 혁명박물관, 군사박물관, 하노이 호찌민박물관 등도 유명하다. 과거 프랑스 지배의 영향으로 프랑스 풍 건물을 많이 볼 수 있어 ‘아시아의 빠리’라고도 불리며, 대표 건축물로는 대통령궁, 하노이 오페라 하우스, 베트남 은행, 성요셉 성당, 소피텔 메트로폴 호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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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예(Hue, 順化)는 베트남 중부 안남산맥 기슭의 안남평야에 있는 도시로 베트남 마지막 왕조의 수도였다.
남중국해 연안에서 8㎞ 정도 떨어져 있으며 얕고 넓은 향(香)강이 가로질러 흐른다. 강 왼편의 도심부에는 19세기 초 중국식으로 지은 베트남제국의 왕궁 다이노이가 있는데 훼(阮)왕조는 이곳에서 수세기 동안 베트남을 통치했다.
식민지시대에 프랑스인들은 강 오른편에 거주했으며 오늘날 이 도시의 동쪽에는 상업지구가 들어서 있다. 기원전 200년경 남베트(南越)의 중국군사령부가 주둔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200년경에는 참족(族)이 지배하였다. 이후 중국에 정복당하기를 반복하다가 1635년 중부 및 남부 베트남을 지배하던 구엔가(家)의 수도가 되었으며, 1802년 베트남 통일 후 구엔왕조의 수도로 번영하였다.
1883년부터는 아시아에 진출하려는 프랑스에 점령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프랑스가 패퇴하고 1940∼1945년 일본 점령하에 있었으며 1947년 4월에는 비공산계의 베트남 임시 행정위원회가 여기서 조직되기도 하였다. 1949년 7월 1일 새로 수립된 베트남공화국이 수도를 사이공(지금의 호찌민)으로 정하면서 예로부터 중심지 역할을 하던 이곳은 그 기능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1946∼1954년 제1차 인도차이나전쟁 초기에 피해를 입었고 1963년과 1965년 심각한 내란에 휘말렸으며, 베트남전쟁 때인 1968년에는 베트공의 공습으로 심한 피해를 당했다. 이때 많은 옛 왕족의 건물과 박물관·도서관·불교사원 등이 파괴되어 그후 재건사업을 추진하고 일부가 복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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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낭( Da Nang )은 베트남 쾅남다낭주(州)의 주도(州都)이며 베트남 중부지역의 최대 상업도시이다. 남중국해에 면한 주요항구 도시로 오래전부터 동서무역의 국제무역항으로 발전하였고, 베트남 중부지역의 최대 상업도시이다.
다낭의 도심을 흐르는 한강(Song Han)을 사이에 두고 동부 남중국해에 면한 선짜반도와 시가지로 구분된다. 역사적으로는 참파왕국의 중요한 거점지역이었고 1858년 프랑스에 점령당한 시대에는 안남 왕국 내의 프랑스 직할 식민구역으로 투란(Tourane)이라고 하였다. 1965년 3월 베트남전쟁 당시 미국 파견군이 이 항구를 상륙지점으로 하였고, 한국의 청룡부대가 주둔하였다.
부근에는 참파왕국의 유적인 미선유적지가 있고 다낭 시내에는 참파의 유물을 보존하는 참박물관과 함께 석조물 300여점이 남아 있다. 다낭 시내에서 자동차도 20여분 거리에는 5개의 작은 산으로 이루어진 오행산이 있는데 이곳에서 대리석이 생산된다. 최근 다낭의 해안선을 구성하는 차이나비치에는 외국자본의 고급리조트가 들어서고 있으며, 관광객이 증가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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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짱( Nha Trang )은 베트남 칸호아 주(Khánh Hòa Province)의 주도로 호찌민(사이공)에서 북동쪽으로 320km쯤 떨어져 있다.
베트남 남부의 주요 어업기지이며, 예로부터 알려진 군사기지이다. 오랜 역사를 가진 도시로 1862년 프랑스인에게 점령당하기 전에는 베트남왕국에 속해 있었다. 프랑스 식민지시대에는 파스퇴르연구소가 설치되어 열대성 질병에 관한 연구를 하였고, 해안연구소가 세워져 남중국해의 어업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였다.
부근의 해변을 일찍부터 개발하여 해안휴양지가 개발되어 있고, 시의 북쪽 근교에는 참족(族)이 세운 포나가르 신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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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쑤옌( Long Xuyen, 龍川(용천) )는 베트남 남부에 있는 도시로 메콩강(江) 지류인 하우지앙강(江) 서안(西岸)에 자리잡고 있다. 칸토에서 북동쪽으로 60㎞ 떨어져 있다.
삼각주 북서부로 가는 주요 도로의 교차지로서 교통의 중심지이다. 주변지역에서는 고기잡이·양어·논농사가 주로 이루어진다.
볼거리로는 두 손을 모은 형태를 한 50m 높이의 종탑이 있는 대형 성당(1966~1973), 칸토 주민들이 70여 년 전에 세운 콴탄탑, 카오다이 교회 및 고대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안지앙박물관이 있다. 호찌민의 계승자인 톤 두크 탕이 이곳에서 출생하였다. 칸토와 차우도크까지 도로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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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보 감사히 읽어 봅니다
고은 하루 되십시요)))
좋은 하루를...
잘읽어 보구 갑니다
아름다운 오후가 되셔요^-^
즐거운 오후가 되시길....
잘 읽고 갑니다.
![즐](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12.gif)
거운 시간 보내세요.
좋은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