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출발일시 : 2013년 3월 10일(일요일) 오전 7시 50분
2. 출발장소 및 버스 탑승하는 곳
■ 잠실역 3번 출구 너구리상 앞 (07시50분)
■ 양재역 1번 출구 서초구청 맞은편 농협 앞 (08시10분)
■ 경부고속도로 신갈 간이정류장 (08시 30분)
■ 오산 IC 앞 (08시 50분)
3. 이동경로 : 잠실→양재역→경부고속도로→신갈 간이정류장→오산IC→경부고속도로→회덕분기점→호남고속도로→유성IC→대전학하도시개발지구→자운대 수운교(시산제)→전민동 김반 묘→관동묘려 은진송씨 고흥류씨 묘→세종시→청원IC→경부고속도로→오산→신갈 간이정류장→양재동→잠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15C8B45511E15AF12)
4. 답사지 (답사지는 사정에 따라 장소와 순서가 바뀌거나 일부는 취소 될 수도 있습니다.)
1) 대전 학하도시개발지구
![](https://t1.daumcdn.net/cfile/cafe/143F6745511E147632)
대전의 신개발지구 중 하나인 학하지구는 유성구 학하동, 계산동, 덕명동 일원 179만㎡(약54만평) 2만 3천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이다. 주변에 계룡산, 빈계산, 수통골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화산천이 지구 중심을 관통하여 흐르는 명당의 조건을 갖춘 곳이다. 주변 자연경관이 수려하여 오랫동안 그린벨트로 묶어졌다가 2003년 그린벨트가 해제됨과 동시에 지구단위계획 구역으로 지정하여 사업을 추진해왔다. 2007년 착공하여 2011년 완공 예정이나 지금도 도시기반시설이 진행 중이다. 학이 알을 품은 비학포란형으로 알려진 학하지구는 향후 도안신도시나 노은지구를 넘어 최고의 쾌적성을 갖춘 명품도시로 발전할 것으로 예측된다.
인근에 호남고속도로 유성IC가 위치해 있으며 경부고속도로, 대전고속도로, 대전-당진고속도로,대전외곽순환도로 등과 연결되는 지점으로 사통팔달의 교통망이 있다. 또한 주변에 유성온천, 한밭대, 유성컨트리클럽, 계룡산 등이 위치하고 있다.
2) 금병산 자운대 수운교에서 시산제
![](https://t1.daumcdn.net/cfile/cafe/2043DD36511E04A11A)
대전시 유성구 추목동 403-1번지에 위치한다. 수운교 도솔천궁을 옹위하고 있는 금병산은 해발 382미터로 신라시대에는 금평산, 고려시대는 만인산이라 불리었다. 이성계가 조선 창업의 뜻을 품고 8도 명산 기도 중 비단 병풍을 갖추고 치성하라는 현몽에 이곳이 바로 비단 병풍 같은 지라 금병산(錦屛山, 372m)이라 이름하고 산천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일찍이 동학의 창시자인 수운 최제우가 “금병산 아래로 모여 참고 살면 반드시 좋은날이 올 것”이라고 게시했다고 한다. 이곳은 후천개벽의 5만년 기지라는 설(設)도 있으니, 이곳에서 한토회 2013년 계사년 시산제를 지낼 예정이다.
수운교는 이상용(李象龍)이 1923년 세운 동학계 신흥종교로 유·불·선의 원리를 합일하여 포덕천하(布德天下)·광제창생(廣濟蒼生)·보국안민(輔國安民)함으로써 동서양이 합덕되는 용화세계, 지상천국을 건설하자는 불천심일원(佛天心一圓)을 종지로 한다. 이상용은 경주에서 출생하여 일찍이 전국 명산대찰을 돌아다니며 수도하다가 수운 최재우의 영이 그에게로 옮겨와 재생한 것이라고 선전하며 포교활동을 하였다. 그러자 전국에서 신자들이 모여들어 수운교촌을 형성하였으며 현재도 신도가 약6만 명에 이른다.
수운교의 교리는 그 동안 유도와 불도가 인류를 지배해 왔으나 그 도의 운이 다하고 다시 태극의 도(선도)가 오게 된다. 태극의 도가 이루어지려면 천도(天道)를 알고 행해야 하는데, 이 천도는 바로 동학의 수운 최재우가 밝힌 이치로서 후천 선도운을 따라 머지않아 다가올 선경의 낙원을 만들 원리이다. 다시 말하면 천도는 선천의 종교인 유·불·선의 종지를 모두 합한 대도라고 보는 것이다. 우리 인간이 이 천도를 깨달을 때 바로 성인이 된다. 인간은 곧 하늘인 인내천(人乃天) 사상인 것이다. 사람이 곧 하늘이기 때문에 사람 섬기기를 하늘과 같이 하고 사인여천(事人如天)과 수심정기(守心正氣)로 성경신(誠敬信)을 잘 실천하면, 죄악으로부터 구제되어 지상천국에서 살게 된다는 교리다.
[축문(祝文)]
유세차(維歲次)
단기 4346년 계사년(癸巳年) 양력 3월 10일
음력 1월 29일 을해(乙亥)
한국토지개발지리연구회 회원 일동은
후천개벽의 5만년 기지라는 금병산 자운대에서
소박한 제물을 진설하고 천지신명과 금병산 산신님께 삼가 고하나이다.
한토회는 2007년 1월 7일 결성하여
2007년 1월 20일 제주도 답사를 시작으로 2013년 3월 10일 현재까지
6년 동안 두 달에 한번 37회에 걸쳐 답사를 실시하였습니다.
그동안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했던 것은 모두가 천지신명과 산신님의 보살핌이라 믿고 감사드리옵니다.
우리 한토회는 자연과 토지를 원형 그대로 보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불가피하게 개발을 할 때는 자연친화적 이용이라는 모토로 풍수지리를 배우며 전국을 두루 답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걸으며 몸과 마음을 수련하고 회원들 간에 우정을 돈독히 다지고 있습니다.
삼가 바라옵건대
앞으로도 우리 한토회가 무궁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고
회원간에도 서로 화합하고 사랑하며 늘 안전하고 즐거운 답사가 되게 해주시옵소서
아울러 계사년 올 한 해도 우리 회원들과 가족들 모두가 아무 탈 없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시옵소서
여기 회원들의 정성을 모아
맑은 술과 떡과 포와 과일을 올리오니
부디 이 정성을 흔쾌히 받아주시옵소서
한국토지개발지리연구회 회원 일동 상향
3) 김반(金槃) 묘
![](https://t1.daumcdn.net/cfile/cafe/032CD834511E055A1F)
대전시 유성구 전민동 산18-17에 소재한다. 광산김씨는 조선시대 최고의 명문가로 꼽히는 가문인데 이는 대제학을 많이 배출했기 때문이다. 대제학(大提學)의 품계는 정2품으로 판서와 동등하지만 정승(정1품) 열이 한 대제학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이는 문을 숭상했던 조선시대에 학문의 최고봉으로 꼽는 대제학을 영예로운 벼슬로 우대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5명 이상의 대제학을 배출한 가문으로는 전주이씨(7명), 광산김씨(7명), 연안이씨(7명), 달성서씨(6명), 안동김씨(6명), 의령남씨(7명), 덕수이씨(5명)이다. 이중 음택의 발복을 믿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이 광산김씨의 경우 김반의 후손에서만 7명의 대제학이 모두 나왔다는 점이다. 연안이씨의 경우는 이석형(경기도 용인시 모현면 능원리 소재)의 후손에서 6명의 대제학이 나왔다. 이 때문에 광산김씨 중에서도 김반의 후손, 연안이씨 중에서도 이석형의 후손을 조선 최고의 명문으로 꼽는다.
김반(金槃, 1580∼1640)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아들이며, 신독재(愼獨齋) 김집(金潗)의 아우이다. 자는 사일(士逸)이고 호는 허주(虛舟)이다. 사마시에 합격되어 성균관 유생이 되었으나 계축옥사가 일어나자 벼슬길을 단념하고 낙향, 은거했다가 인조반정 후에 이괄이 난을 일으킴에 인조대왕을 공주에 호종(扈從)했다. 왕이 공주에 있을 때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한 후 여러 호직을 거쳐 대사간에 이르렀고 병자호란 때 왕을 호종한 후 대사헌을 지내고 이조참판으로 세상을 떠났다.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이곳은 조선시대에 정민역(貞民驛)이 설치되어 있던 지역으로 이 일대를 나라에서 광산김씨 가문에게 사패지(賜牌地)로 하사하였다. 이 묘역에는 두 개의 능선이 있는데 하나는 김반의 묘와 3자 익겸(益兼)의 묘가 역장으로 위에 있다. 다른 하나에는 장자인 익렬(益烈)과 그의 아들 만준(萬埈)의 묘가 있다. 김반의 후손들 중에서도 특히 익겸의 후손들이 더 번창한 것으로 보아 김반과 익겸의 묘가 진혈처로 보인다. 익겸의 두 아들 만기와 만중이 대제학을 했고, 만기의 아들 진귀는 판서, 진규는 대제학, 진규의 아들 양택이 대재학을 하여 3대 대제학을 하여 가문을 빛냈다. 진귀의 8세손 영수가 대제학을 또한 하였다.
4) 은진송씨 발복지 고흥류씨 묘(관동묘려)
![](https://t1.daumcdn.net/cfile/cafe/16027B3A511E068425)
대전시 동구 마산동 96에 소재한다. 은진송씨(恩津宋氏)가 회덕(懷德:지금의 대전광역시 동구지역)에 세거하게 된 것은 4세 송명의(宋明誼)가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 사헌부집의를 지내다가 고려 말에 국운이 기울자 비로소 회덕으로 내려와 은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아들 송극기(宋克己)가 고려 성균관 진사로 젊은 나이에 태학(太學)에 들어가 공부하다가 일찍 죽었다. 그러자 부인 고흥류씨(高興柳氏, 1371∼1452)는 22세의 청상과부로 친정부모의 개가 권유를 뿌리치고 네 살 난 아들 송유를 등에 업고 개성에서 회덕까지 7백리 길을 걸어서 시부모 곁으로 내려와 아들을 훌륭하게 길렀으니 오늘날 은진송씨는 모두 그의 후손들이다.
쌍청당(雙淸堂) 송유(宋愉, 1389∼1446)는 관례(冠禮)도 치르기 전인 12세에 호분위부사정(虎賁衛副司正:종7품의 군직)이 되었는데, 13세에 신덕왕후(神德王后) 강씨(康氏)가 죽은 위패가 태조묘(太祖廟)에 모셔지지 않자 이를 한탄하는 글을 지어 올린 후 관직을 버리고 회덕에 돌아와 학문에 힘썼다. 이때 지은 조그만 정사(精舍)가 현재 대전광역시 대덕구 중리동에 있는 쌍청당(雙淸堂)이다. 은진송씨가 지금의 대전광역시 대덕구 송촌동(宋村洞)에 정착한 것은 할아버지 때부터이지만, 은진송씨가 회송(懷宋)이라고 불릴 만큼 지역사회의 깊은 연고를 가지게 된 것은 그가 와서 살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이후 은진송씨는 조선조에 문과 급제자 74명을 배출한 명문으로 특히 유자(儒者)의 최고 영예인 문묘배향을 2명(우암 송시열, 동춘당 송준길)을 배출했다. 문묘배향을 한 집안에서 두 사람이나 배출한 것은 광산김씨(사계 김장생, 신독재 김집)와 은진송씨 뿐이다.
5) 세종시
![](https://t1.daumcdn.net/cfile/cafe/134A2A37511E07163F)
국무총리실과 국토해양부 등 6개 정부 부처의 세종시 이전이 시작된 후 6개월여가 지나고 있다. 한토회에서 여러 번 답사를 했지만 달라지고 있는 도시를 다시 한 번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현재 공무원들과 공사현장 인력들로 인하여 전세대란이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첫댓글 교수님께서 천지신명께 한토회원의![안녕](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3.gif)
을 위하여 염원하시는 기도의 울림이 귀전을 쟁쟁 울리는 듯![~](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퍼져가네요 ![종](https://t1.daumcdn.net/daumtop_deco/icon/deco.hanmail.net/contents/emoticon/things_34.gif)
시의 변화하는 모습을 다시한번 살펴볼 수 있는 답사가 기대됩니다.
상세한 안내까지 겸비하여 주시니 더욱 세
교수님 안녕하세요 ? 그동안 두 분 교수님과 여러 분을 뵙지 못하여 죄송합니다. 교수님의 덕담과 구수한 말씀을 들은 지도 오래되었군요. 3월 답사에 조상님도 뵈올 겸 필히 참석하겠습니다. 소생의 문중을 어여삐 평가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소생은 광산김 문중 "상호군파-부시공파-.....-익미공파" 41세손입니다. 감사합니다. 3월 답사에 뵙겠습니다.
3월에는 평택으로 답사를 하고자 햇으나, 정교수님에게 부탁하여 시산제를 드리기 위하여 기운이 좋은 명산을 추천해달라고 하여 대전으로 정햇는데, 너무나 좋은 장소를 정햇습니다.
이강선님께서 축문을 써오실 때 임진년은 계사년으로 수정하여 붓글씨로 써오시기 바랍니다.
" 하나님 " 으로 수정하면 이의제기를 하는 종교를 가지신 분들이 계실터이니, 그냥 원래대로 하심이 어떠실지 --- .
좋은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극우경화의 길을 걷고 있는 작금의 일본인들의 경향에 대해 상대적 보복적 심리로 우경화되어 가고 있는 저 자신을 돌아 보면서 갑자기 비약적 미래 예측을 하게 됩니다.
'이에는 이'라는 대응방식은 분명 공멸적인 방법이 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직은 별 다른 합리적이면서 적당하다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이 또한 너무 심약적인 사고에서 기인한 망상적 상념의 한 부류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왜 '대마도의 날'을 정하지 않는가?--- 이런 식이죠.
인간사에 관한 모든 해결책은 성경에 들어 있다는 오늘날 저의 깨달음이 지혜라는 생각일 뿐입니다.
마음은 꿀 같은데 이미 선약도 있고 무슨 청첩은 그리 많은지
몸과 마음이 아닌 땡전으로 처리해야 하는 세상입니다.
이번 기회는 아니더라도 다음 기회는 참석하도록 노력 해 보겠습니다.
향심 학우야 워낙 활동적이니까 알겠지만 박윤호 박창석 학우는 이제 신입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알고 회원이 되신건지 궁금 해 지네요. 다음에 뵙게 되면 답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