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용 비구니스님의 피로 쓴 사경
2002년의 중원(中原) 여행은 나에게 자신의 피〔血〕로 몇 부의 경전을 사경한 묘용(妙容) 비구니스님을 만나는 행운을 가져왔다. 스님의 이러한 거룩한 행위는 중국불교사에서 흔치 않은 일이다. 묘용 스님은 금년 28세로서 출가한 지 3년밖에 안 되며, 자신의 피로 불경을 사경하는 것은 출가하기 전부터 시작하였다. 현재 사경하고 있는 것은 36만 자의 『대방광불화엄경』으로 이미 6만 자를 완성하였으며, 그 후에는 『묘법연화경』을 사경하려고 한다. 의학을 아는 거사가 말하기를, “이러한 경을 다 사경하려면 온몸의 혈액을 송두리째 써야 하며, 이것은 전신의 혈액이 한번 새롭게 바뀌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묘용 스님은 따뜻한 가정에서 자상한 모친의 보살핌 속에 자랐다. 귀여운 용모에 명성 있는 군의(軍醫)대학의 졸업생이다. 중위로 군 전역 후 모 개발구에 근무하면서 후한 대우를 받고 생활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좋은 여건도 속세에 머물게 하지 못하고, 불교에 헌신하게 되었다. 스님은 평범하지 않은 모친의 격려 하에 의연히 남하하여 강서성(江西省) 청원산(靑原山) 정거사(淨居寺)에서 삭발하고, 현재 덕이 높고 명망이 있는 체광(體光) 대화상의 제자가 되었다. 운문사(云門寺)는 스님이 상주하며 수행한 도량인데, 화장실의 분뇨 푸는 일을 시작으로 고행(苦行)의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러한 불문의 희유한 인재가 21세기 오늘날 출현한 것은 어느 누가 들어도 찬탄할 만하다. 나는 스님의 추천 하에 체광 대화상께 귀의한 몇 분의 신도와 함께 청원산으로 내려와 체광 대화상을 친견하게 되었다. 우리들은 십여 일을 같이 지내면서 친히 묘용 스님의 수행경계를 볼 수 있었다. 스님의 수행은 이 나이(60세)까지 십수년간 불교를 공부한 나를 부끄럽게 하였다. 나는 묘용 스님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서 깊이 감동하여 눈물이 눈에 가득하였다. 어느 날 식사 후 모두 일어나려고 하는데, 스님은 어느 거사의 그릇에서 먹지 않은 깨끗한 음식을 발견하고는 즉시 자기의 앞으로 가져와, “거사님이 먹지 않은 것을 제가 대신 먹겠습니다. 함부로 낭비하면 안 됩니다.”라고 말하면서 남긴 음식을 먹어치웠다. 묘리 거사가 감동하여 말하였다. “묘용 스님! 대단하십니다. 다른 사람이 먹다 남은 음식을 드시니, 저희들이 배워야겠습니다.” 같은 식탁에서 식사하신 묘견 스님이 말하기를, “이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뱉어내 남긴 것도 먹습니다.” 나는 감동되어 찬탄하였다. “스님은 미국에 계신 선화 상인께서 다른 사람이 씹었던 음식도 드시는 무아상(無我相)의 경계에 곧 도달할 것입니다.” 묘용 스님이 말하였다.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티베트에 가본 적이 있는데, 그곳의 수행인들이 먹는 음식은 제가 먹는 ‘남은 음식’에 비하여 차이가 많았습니다. 그곳의 경험에 의하면 여기서 먹는 어떤 것도 못 먹을 게 없으며, 어떤 고생도 못할 고생이 없습니다.” 묘용 스님은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스님이 갓 출가하였을 때 화장실의 분뇨를 퍼 짊어지고 밭에 나가 뿌리는 일을 하였다. 그때 신발 밑에 똥이 묻는 것은 피할 수 없어, 불전에 오를 때 공경의 마음을 내어 신발은 전각 밖에 벗어두고 양말만 신고 들어갔다. 그러한 시간이 반복되자 발과 다리에 냉기가 들어, 두 다리와 무릎이 부어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아팠다고 한다. 스님은 이러한 고통은 자신의 업장이 현전(現前)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여전히 매일 이를 악물고 분뇨 푸는 작업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나중에는 병세가 갈수록 더욱 심해져 산속 절에서는 치료할 수가 없어 부득이 어머니가 계신 집으로 되돌아왔다. 의사가 진단하기를, 이 병은 풍습(風濕)으로서 불치의 병이며, 풍습이 점차 심장까지 전이되면 온 몸이 마비될 수 있다고 하였다. 스님은 의사의 말을 듣고도 두려워하지는 않았으나 마음속으로 다소 불안하였다고 한다. 자신은 아직 중생을 돕는 작은 일도 하지 못했는데, 반신불수가 되어 남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산다면 차라리 죽느니만 못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불보살께 지극정성으로 기도하였다. “이 제자는 거짓 몸뚱이가 오래 살려고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병이 나아 죄업의 목숨이 연장되면 제 피로 『화엄경』을 사경하겠습니다. 이를 법계의 모든 중생에게 회향하여 함께 불도 이루기를 빌며, 사경을 마치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그 후 생각지도 않게 기적이 출현하였다. 스님이 사경의 과정을 말씀해주셨다. “저는 삼릉침으로 열 손가락을 찔러 피를 모았으며, 피가 모자라면 침으로 손등의 혈관에 꽂아 피를 뽑았습니다. 어머니는 안타까워서 피 뽑는 것을 보지 않으려고, 집안일을 해야 된다면서 일부러 피했습니다. 저는 보지 못했으나, 제가 사경을 할 때 어머니는 제 온몸에서 금빛 광명이 발하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아마도 부처님의 가피로 어머니에게 무엇을 느끼게 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제가 네 권의 경을 완성하였을 때 두 발과 다리의 부종은 완전히 없어져 정상대로 회복되었습니다. 정말로 불보살께서 가피를 내려 저에게 새 생명을 얻게 하였으니,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습니다. 보답할 길이 없어 단지 마음속으로 다음과 같이 발원하였습니다. ‘저는 미래세가 다하는 날까지 불보살께 공양하기를 원하옵니다. 세세생생 신구의(身口意) 삼업을 청정하게 하여 불보살께 공양하겠습니다. 미래 겁이 다하도록 중생을 위하여 살고 중생을 위하여 죽겠습니다.’ 다음날 병원에 가서 검사해보니 의사도 놀랐으며, 제가 완전히 회복되었다는 것을 선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스님은 이어서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제가 회복된 것을 기뻐하는 동시에,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엄하게 말하였습니다. ‘묘용 스님, 스님의 병은 이미 좋아졌으니 사원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세요. 스님은 출가인이니 오랫동안 이곳에 머무는 것은 법도에 맞지 않습니다.’ 갑자기 어머니의 이런 매정한 말을 들으니 받아들이기가 힘들어, 억지로 눈물을 참으면서 목이 메어 말했습니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그래서 곧바로 행장을 간단하게 수습하여, 기차역에 가기 위해 택시를 불렀습니다. 차가 떠나려고 할 때 창문을 열고 어머니에게 ‘곽 보살님, 집 열쇠는 탁자에 놓아두었습니다.’라고 말하고는 얼굴을 돌렸습니다. 택시가 출발할 때 저는 난생 처음으로 두 눈 가득한 어머니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기차가 급히 달릴 때 저의 마음은 평정을 되찾았으나, 두 눈은 눈물로 흐려졌습니다. 아! 어머니! 이 딸은 당신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당신은 제가 세상이 그리워 돌아오면 수행을 그르칠까를 걱정하신 것입니다. 당신은 저를 불법의 길로 인도하였으며, 당신은 제 출가의 길을 지지하였으며, 당신은 제가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는 것을 보면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이 딸의 견고한 도심(道心)이 되었습니다. 안심하세요, 어머니! 활을 쏘면 되돌아오는 화살은 없습니다. 저는 철저히 개과천선하여 죽을 때까지 불법을 널리 펴고 중생을 이롭게 할 것입니다.” 현재 묘용 스님은 많은 신도들의 요청에 의하여 이미 적합한 장소를 선택하여 중원지구에 퇴직자, 노년의 거사들이 상주하면서 염불, 법회, 거주, 의료 및 왕생할 수 있는 도량을 지으려고 준비하고 있다. 의사, 간호사와 종사인원은 완전히 자원봉사자로 모집하고, 상주하며 수행하는 거사들은 단지 최소한의 생활비만 낼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따라서 의료 인원은 보수를 받지 않으며 의료비도 최저수준으로 받을 것이다. 이것은 당연히 묘용 스님의 개략적인 구상이며, 아직 많은 도반들의 협력이 있어야 일이 성사될 수 있을 것이다. 묘용 스님은 이미 묘법 노스님과 나에게도 그곳에 와서 대중들과 함께 거주할 수 있도록 초청하였다. 만약 하루 빨리 이 일이 성사된다면 많은 재가의 수행인들이 함께 수행하는 도량이 될 것이다. (엮은이 주: 묘용 스님의 이야기를 쓴 것은 스님의 공덕을 칭송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내 대중들의 출가인에 대한 오해를 바꾸기 위해서이다.) 묘용 스님이 출가인의 모범이 되기를 희망하며, 더욱 많은 지식인들이 불교의 홍법사업에 투신하여 사회의 풍습을 바로잡고, 덕으로 나라를 다스리며, 국가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힘을 다하기를 바란다. 내가 쓰려는 것은 인과실록(因果實錄)이기 때문에 찬탄할 만한 스님들이 많이 있지만, 다 소개할 수 없는 것을 양해하기 바란다.
문 : 어떻게 하여야 조상 또는 고혼을 천도할 수 있습니까?
답 : 만약 수행이 높은 대덕 고승이 선정력을 가지고 있으면 고혼의 영혼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고 천계로 오르게 할 수 있습니다. 마치 명대의 용고 선사(龍袴禪師)가 만력 황제의 어머니를 천도한 것과 같습니다. 그 분이 등단하여 이르시기를, “나는 본래 오지 않았으며, 당신은 기어코 사랑하려고 하네. 일념이 하나가 아니면, 삼계를 벗어나네.” 이와 같이 네 구의 법어로 황제의 어머니를 천계로 오르게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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