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냐
창업주 'ermenegildo zegna'는 1892년 이탈리아 북부 산간 지방인 트리베로에서 출생하여, 20세 때 아버지가 경영하던
소형 공장을 물려받아 'ermenegildo zegna'기업을 탄생시켰다.
1966년 'ermenegildo zegna'가 세상을
떠난 뒤 'zegna'기업은 그의 아들인 알도 제냐(aldo zegna)가, 다시 손자인 안젤로 제냐(anjelro zegna)로 이어졌다.
현재는 질도 제냐(jido zegna)와 파울로 제냐(paolo zegna), 안나 제냐(anna zegna), 라 우라 제냐(laura
zegna), 베네데타 제냐(benededa zegna)등 제냐가의 4세대들에 의해 경영되고 있다.
'ermenegildo
zegna'는 1910년 비엘라알�OO봉� 작은 지역인 트리베로에서 'ermenegildo zegna'에 의해 창립되었다.
'ermenegildo zegna'는 그의 아버지의 원단 사업을 시작으로 남성복을 위한 최고 품질의 원단을 생산하기 위해 기술개발은 물론이고,
직원들의 훈련과 브랜드 프로모션 등을 통해 최상의 상품을 탄생시켰다.
살토리얼 라인은 전통적 품위가 느껴지는 정장 라인으로 다양한
도시적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는 셔츠와 타이를 포함한 모든 컬렉션을 유지하고 확대 강화한다. 이 라인에 주로 사용되는 원단은 매우 극히 소량만
생산되는 최상의 섬세한 울로 계절의 구분 없이 입을 수 있는 특성을 지녔다.
특히 'ermenegildo zegna'는 고객의
체형에 맞도록 기성복을 보완해 만드는 반 맞춤복 시스템인 '수 미주라'를 특징으로 하는데, 이는 이탈리아어로 '당신의 사이즈에 맞춘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로 기성복을 보완해 만드는 반 맞춤복 시스템을 가리킨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치수와 체형에 맞게 커팅된 원단으로 호주 산
메리노 울, 내몽고 산 캐시미어, 중국산 실크 원사 등을 사용해 최상의 퀄리티를 창조하는 데 최선을 다한다. 품질 검사는 손으로 직접하며 레이저
기술을 사용하여 직물의 흠집을 찾아낸다. 이 흠집의 수공, 역시 손으로 직접 하며, 가장 놀라운 점은 남부 이탈리아에서 야생하는
티슬(teasels:토끼풀의 일종)을 사용하여 캐시미어를 더욱 부드럽게 하기 위한 기모가공을 모두 수공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옷 안쪽에는 Taglio Exclusive라는 문구를 새기며, 원하면 착용자의 이름을 새길 수도 있다.
창업자인
ermenegildo zegna의 이름을 딴 이탈리아 남성복 'ermenegildo zegna'의 반 맞춤복 라인인 '수 미주라'는 최상의
제품들을 만들고자 하는 장인정신을 반영한다. ermenegildo zegna는 자신의 사업을 통해 그의 원단 생산지였던 산악 지대를 개조하는
그의 꿈을 실현했다.
양복 한벌에 200 ~ 300만원대의 전 세계 최고급 남성복 브랜드 시장의 30%를 점유하면서 전체
매출의80%이상을 수출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4000여명의 직원을 두고있다.
셀린느
어린이의 구두에서부터 시작된
세계 유명브랜드인 'CELINE'은 작은 상점에서 일약 세계적인 브랜드가 되었다. 1946년 파리의 작은 부띠끄로 시작하여 1959년 신발
앞쪽에 금속장식이 있는 여성용 잉카 로퍼를 제작하게되어 명성을 얻는것을 시작으로 고객층을 어린이 에서 성인으로 넓히게 되었다.
이후,
포니백으로 그명성을 더해가자 'CELINE'은 의류 사업까지 영역을 확장하게 되었으며, 1969년 첫의류 콜렉션을 출시하게 되면서 그명성을
프랑스 전역으로 확대해 나가게 되었다. 1975년 세계시장으로 진출을 위해 세계 쇼핑의 중심가에 매장을 오픈한 당시의 성공은 'CELINE'의
모조 상품들이 극성을 부리고 이에 대한 방지책으로 모조상품 대책위원회를 설립한 역사가 대변하여 준다.
특히 아시아 시징에서의
성공은 주목할 만한 것으로 1984년까지 28개의 매장이 일본에서 오픈하고 동남아시아까지 시장을 확대하였으며 그 결과로 1985년에는 아시아
지역의 매출이 'CELINE'의 전세계 매출의 60%를 차지할 정도였다. 'CELINE' 로고의 탄생은 'CELINE'이 전세계적으로 매장을
확장할 때 선두에 서서 얼굴 역할을 해온 로고는 'CELINE'의 탄생보다 조금 더 뒤의 일이다.
착실하게 프랑스의
명품브랜드로서의 발자국을 내디뎌온 'CELINE'은 1971년에 파리 개선문 안의 장식 문에서 영감을 얻고 여기에 'CELINE'의 앞글자인
C를 결합시켜 체인 모양의 'CELINE'의 로고 'C-Blason'을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로고는 가죽 제품과 신발에 사용되어왔으며
최근에는 로고 프린트의 열풍으로 루이비통(louis vuitton)이나 크리스찬 디올(christian dior), 샤넬(chanel)등과 함께
명품브랜드를 대표하는 로고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처음에 'CELINE'에서 볼수 있었던 로고는'C-Blason'을 연결시킨
모양이었지만, 최근에는 라틴어 C와'C-Blason'을 혼합한 형태의 로고와 'CELINE'이라는 브랜드네임까지 다양하게 만나볼수있다.
'CELINE'은 1980년대 후반부터 새로운 디자이너의 영입으로 과거의 이미지와의 탈피를 시도하게 된다. 사실 프랑스의
명품하우스 이미지의 'CELINE'을 뉴욕 근교의 롱아일랜드 출신으로 FIT에서 공부를 한 미국적인 감성을 지닌 마이클 코스가 맡는다는 것은
하나의 도전이었다. 그러나 이 인상좋은 디자이너는 외모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카리스마로 'CELINE'의 이미지를 완벽하게 변화시켰다. 그는
미국적인 실용주의를 스포티한 감각과 고급스러움으로 포장하는 그만의 스타일로 파리의 명품 하우스 'CELINE'에 젊은 활기를 불어넣었고, 동시에
그 자신도 1998년 6월에 뉴욕 7번가의 동료들이 수여하는 올해의 디자이너'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글래머러스하면서도 편안한
것, 매니시한 동시에 페미닌한 것, 스포티하면서도 럭셔리한 것, 이것이 바로 마이클 코스가 이끄는 'CELINE'의 패션이다.
샤넬
'Chanel'이라는 브랜드의 탄생은 가브리엘 코코샤넬(gabrielle "coco" chanel)이 1941년
파리에 모자 가게를 오픈으로 시작이되었다. 1916년 오토크? 콜렉션을 발표후 당시 상복에만 사용되던 검은색을 사용해 화제가 되었으며, 또한
'CC'의 로고 마크와 '샤넬 슈츠' 는 꽤 유명해 졌다.
Chanel 자신도 사교계에 몸을 담고 화려한 생활로 행동 반경을 넓혀
갔으며, 현 디자이너 칼라가 필트는 1983년부터 'Chanel'에 근무하게 되었다. 뒤로 묶은 은발의 헤어스타일, 검은 선그라스, 그리고
동양적 스타일인 부채가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이다.
기본적으로 여성을 주 타겟으로 하고 있으며 'Chanel'은 시대를 앞서가는
대담성과 정확한 판단력으로 현대적 의복의 창조와 여성의 개성을 강조하였다. 그녀는 당시의 관습을 타파하고 자유와 활동성을 추구하는 여성을 위한
옷을 만들어냈다.
의복의 역사에 혁신을 일으킨 샤넬은 또한 액세서리와 보석을 디자인하여 패셔너블한 여성을 더욱 돋보이게 하였는데
미국의 보그지는 'Chanel'이 의상에서 액세서리까지 총 망라한 이 모든 작업을 "토탈룩"이라고 표현했다. 이 때부터 토탈 패션이라는 개념이
생겨났으며, 'Chanel' 은 'Chanel'의 상징이기도 한 금 체인의 누빈 핸드백, 검정 토우베이지샌달, 다리를 더욱 더 날씬하게 보이게
하는 'Chanel' 라인의 창조 등을 통한 토탈 룩을 실현해냈다.
'Chanel'의 토탈룩은 무엇보다 여성을 위한 실용성을
부여하려는 노력이 깃들어 있다. 즉, 여성의 손을 해방시키기 위해 금 체인이 달린 핸드백을 창조해 냈고, 다리를 더 길어 보이게 하기 위해
베이지색을 이용한 슈즈를 고안해냈으며, 포켓은 손을 넣기 위해서 실용성을 바탕으로 디자인되었다.
'Chanel'의 창조정신은 지난
1983년부터 'Chanel'의 패션 디자인을 맡은 칼 라거펠트에 의해 이어지고 있다. 그녀는'Chanel'의 근본 스타일을 잊지않고 보다
창의적이고, 미래적인 디자인을 선보여 브랜드의 명성에 걸맞는 독창성과 고급스러움을 만들어내어 'Chanel'의 정통 후계자로 인정받고 있다.
오늘날 'Chanel'은 파리 패션의 자존심으로 오뜨 꾸뛰르의 주역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전 세계의 많은 여성들의 선망을 한 몸에
받는 브랜드가 되었다.
샤넬 백 (Chanel Bag)
1955년에 등장한 'Chanel' 의 메인가방. 덮개 잠금쇠 부분에
코코 마크가 특징이다.
1929년이후 가브리엘 코코 샤넬 (gabrielle "coco" Chanel) 자신이 계속해서 사용해왔던 백이
제품화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코코 마크 (Coco Mark)
'Chanel'의 심벌 마크.
창시자 가브리엘 코코
샤넬(gabrielle "coco" Chanel)의 이니셜을 겹쳐서 만든 것이다.
버버리
패션 명품
'burberry'의 창시자인 토마스 버버리(Thomasr burberry)는 원래 포목상으로 당시 농부나 목동들이 즐겨 입었던 스목-프록이라는
옷감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소재 개발과 연구를 거듭하여 '개버딘'이라는 혁신적인 원단을 개발했다. 이 소재는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며, 입고 난 후 세탁이 수월하고 비교적 습기의 영향을 덜 받기 때문에, 비가 자주 오고 축축한 영국 기후에 적합한 레인코트에
안성맞춤이었다. 이처럼 우수한 품질과 실용성 덕분에 개버딘 버버리는 영국 국왕 에드워드 7세에 의해 많은 사랑을 받으며 명품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화려하면서도 고전적인 'Burberry'는 가장 영국적인 브랜드로 국제적으로 인정받으며 눈에 띄는 성장을 보여왔다.
영국여왕으로부터 여섯 번에 걸쳐서 수출상을 수상하는 등 영국의 타의류 회사와는 필적할수 없는 성과를 거두면서 세계적으로 고품질의 전통적인 의류로
명성을 얻고 있다.
국왕이 코마스 버버리의 개버딘 코트를 입을 때마다 입버릇처럼 "내 버버리를 가져오게" 라고 말한 것이 널리
퍼져, 버버리가 곧 트랜치코트를 지칭하는 패션용어가 되어 버렸다.
많은 스포츠 광들과 탐험가들에 의해 사랑을 받으며 남극 탐험가
아문젠과 최초의 대서양 횡단자 알콕경과 같은 모험가들의 역사적인 현장에 함께 하며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다.
'burberry'
남성의류 컬렉션은 클래식한 버버리에 스포티하지만 세련된 느낌의 새로운 라인을 더한다. fabric은 부드럽고 유연하며 풍부하다. 가죽제품과
shearling이 선보이며, 은은하고 연한 체크가 돋보이는 washed fabric과 overdyed fabric,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새로운 스트레치이 주요 소재로 등장했다. 또한 Prorsum collection에서 영향을 받은 지퍼와 포켓의 디테일링은 클래식한
'burberry'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 넣는다.
루이뷔통
현재 프레타 포르테 라인을 담당하는 마크 제이콥은
1963년 뉴욕 출신이며, 파슨즈 재학 중부터 디자인을 시작하여 1987년에는 최연소로 '페리 엘리스' 상을 수상한 천재이며,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 거점을 두고 있다.
연한 참나무 빛깔의 가구와 베이지의 카펫,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조명은 한눈에 150년 전통으로
귀족풍을 대표하는 'Luis Vuitton' 매장임을 알게 해준다. 멋을 아는 이들 가운데 진한 고동색 배경에 반복되는 꽃과 별무늬, 그리고
`LV자'가 겹쳐진 'Luis Vuitton' 모노캔버스 가방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가장 프랑스적이면서도 가장 보편적인 명품으로
통하는 'Luis Vuitton', 150여년 역사가 만들어낸 철저한 귀족성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금할 수 없게 한다.
1854년 오페라하우스가 있는 파리중심가 루데브데 "까푸 신느"에 첫 매장을 열고 혁신적인 디자인의 여행용 트렁크를 내놓았다.
당시의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이후로 모조품이 판을 치기 시작해 이를 막기위해 처음 고안한 것이 연속적으로 반복되는 빨간줄과 격자무늬
문양이었다.
1854년 파리에 여행가방 전문점으로 오픈하여, '다미에', '모노그램', '에피', '타이거' 등 차례로 인기상품을
내놓았으며, 이런 노력은 2세인 조르쥬 비통이 1896년 부친의 이름 첫 글자인 'LV'와 당시 유행하던 아르누보 경향의 꽃과 별무늬를 결합해
모노그램 캔버스를 선보이면서 절정에 달한다.
1987년에는 모헤 헤네시사와 합병, 산하 브랜드로 크리스챤 디올, 지방시 등을 거느린
최고의 브랜드 제국이 되었다. 1996년에는 마크 제이콥스를 디자이너로 영입해 프레타 포르테에 진출하여 '모노그램 베르니'를 시작으로,
엘레강스한 컨셉에 아방가르드한 디자인으로 현재 가장 주목 받고 있는 브랜드 중 하나이다.
고가품, 전통적인 클래식에 디자인의
중점을 둔 전통을 자랑하는 품위와 명품의 상징 루이비통에 1997년 마크 제이콥스가 합류하면서 많은 변화가 생겼다. 뉴욕 출신의 마크 제이콥스는
전통적인 루이비통을 젊고 신선하고 발랄한 브랜드로 거듭나게 한것이다.
과거 고가품이라는 브랜드 이미지에 중후하고 클래식한
디자인에만 촛점을 맞췄던 것에서 탈피하여 캐쥬얼 라인을 새롭게 선보이는 젊어진 루이비통의 변화에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것이다.
모노그램 캔버스 (Monogram Canvas)
브랜드 로고 등을 반복 패턴으로 짜나간 캔버스 원단을
말한다.
'luis vuitton'의 가방 등에 사용되는 원단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캔버스란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 굵은 실을
빽빽하게 짜서 만든 원단을 가리킨다.
베르니 (Vernis)
전통적인 'Luis Vuitton'의 모노그램 패턴을 마치
진주를 생각나게 하듯이 컬러플한 소재에 새겨넣은 새로운 시리즈이다. 베르니는 '광택이 있는' 이란 뜻이다.
클러치 백 (Clutch
bag)
어깨에 매기도 하고 손으로 들고 다닐 수 있는 백의 총칭한다.
까르띠에
"보석상의 왕, 왕의 보석상" -
Cartier
1백 50여 년 역사를 통해 명품의 자리를 지켜 온 'cartier', 이를 흉내낸 가짜 상품들은 'cartier'의
정교하고 완벽한 기술까지 따라잡지는 못한다. 시계줄이나 부품, 가죽등 진짜 상품과는 어딘가 한 군데씩 다르게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1847년 아돌프 피카드(Adolphe Picard)의 견습생이었던 루이-프랑수아 까르띠에가 한 보석 작업장의 책임을 맡으면서
시작된'cartier'의 역사, 그때부터 1백 5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 그 찬사는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루이 프랑소와
까르띠에는 여행, 사람들과의 만남, 그리고 독서를 통해 얻은 영감 등에서 상상력의 소재를 찾았다.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기록하기 위해
팬과 노트를 늘상 지니고 다녔으며 평범함에서 찾아낸 그의 번득이는 아이디어들은 노트와 스케치북에 기록되어 마침내 보석 영역을 예술장르로
승화시켰다.
왕가와 유명인사들에 의해 특별한 지지를 받고 분별력있는 대중의 사랑을 받는 '왕들의 보석가'인'cartier'는 현재
전 세계 180개 부티크, 1만 2,000여개 샵을 가진 거대한 전 세계적인 브랜드로 발전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cartier'는 일찍이
영국의 에드워드 7세로부터 '보석상중의 왕'이라는 칭소을 받을 정도로 보석상으로서의 명성을 높여 갔다.
파샤 C (Pasha
C)
1985년에 출시한'cartier'의 인기 손목시계.
기능성이 뛰어난 스포츠 타입으로 크고 둥근 숫자판이 돋보이는 감각적
디자인으로 소매 없는 옷에 어울린다.
탱크 (Tank)
'cartier'사의 최고 인기모델 시계.
탱크라는 의미에서 알
수 있듯 견고함을 느낄 수 있다. 사각의 문자판이 특징이다.
구찌
1913년, 구찌오 구찌(guccio gucci)가
피렌체에 고급피혁 제품점을 오픈하면서 더블 G 마크가 붙은 캔버스와 빨간색과 그린색 조화의 워브라인등을 발표하면서 196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게 된다.
집요한 장인 정신, 일상을 넘어서는 획기적인 크리에이티브, 뛰어난 품질, 이 세가지는 명품이 지녀야할 필수 요소인
동시에'GUCCI'의 신화를 일으킨 원동력이기도 하다. 1953년 해외 매장의 성공적인 진입과 함께 'GUCCI'는 세계 유명 인사들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 받으며 명품으로 자리를 잡았다.
오늘날 'GUCCI'의 이름 뒤에는 1백년 전통이란 수식어와 명품 중의 명품이라는
찬사가 붙는데 'GUCCI'는 정통성을 기반으로 한 클래식한 패션, 디자이너 브랜드의 일관성과 현대적 패션과 조화를 통해 'GUCCI'만의
스타일을통해 'GUCCI'만의 스타일을 완성해 그 명성을 더해가고 있다.
구찌오 구찌(guccio gucci)는 "최상의 전통을
최상의 품질로, 그리고 과거의 뛰어난 제품을 현대에 반영시킨 상품만들기"를 컨셉으로 한다.
품질 보증을 하기 위해서 디자이너 이름을
넣어서 판매한 것이 브랜드 상품의 원조이다. 구찌오 구찌(guccio gucci)가 고안한 자신의 이니셜을 모태로 한 더블G 의 모노그램은 매우
유명하다. 밀라노의'GUCCI'는 지금도 세계 트랜드의 센터이지만 구찌사는 지금 구찌가의 손을 떠나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 상태이다. 현재
구찌그룹 N.V.의 사장 겸 최고책임자는 'GUCCI' 재건의 입안자이기도한 도메니코 데 소레이다.
산로랑과 세루지오 로시를
매수하는등, 프라다(prada)의 패트릿시오 벨테리와 함께 패션업계를 독점한다는 착각이 드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남자이다.
'GUCCI'의 역사는 19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탈리아 중부 플로렌스에서 장인의 아들로 태어난 구찌오
구찌(guccio gucci)에 의해 창업 되었다.
처음에는 세련된 세공 기술과 최상의 재질로 승마에 필요한 가죽 제품을 선보여
귀족 사회에서 인기를 누렸고, 이후 자전거가 상류 사회에 보급되면서 핸드백과 같은 일반 가죽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유럽의 역사와 문화를
혼란에 빠뜨린 2차 세계 대전에'GUCCI'는새로운 창조와 도약의 시기를 맞는다. 부족한 가죽 제품을 대신해 만든 캔버스천 가방이 역사적인
디자인으로 자리잡으며 'GUCCI'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것이다.
2000년 이후에는 수많은 브랜드를 흡수,
입생로랑(Yvessaint Laurent)등을 거느리게 됐다.
가방을 비롯해 신발, 의류, 시계와 안경 등의 각종 소품과 보석, 향수, 홈
켈렉션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장르의'GUCCI' 제품은 'GUCCI' 만의 오리지널 컨셉트 속에서 명품의 품위를 지켜 나가고 있다.
뿌리를 잃지 않는 정통성의 집념, 새로운 정통성에대한 집념, 새로운 것을 더욱 새롭게 하는 유연함, 최고로서의 책임감과 자존심은
'GUCCI'의 명성을 더욱 확고히 지키며, 세계 패션사에 아름다운 전통을 세우고 있다.
더블 G (Double G)
'GG
마크'라고도 한다.
창시자 구찌오 구찌(guccio gucci)의 이니셜을 배열한 'GUCCI'의 심볼마크로써 1940년대부터 사용된이
로고를 기하학적으로 짜넣은 캔버스를 사용한 제품이 'GUCCI'의 대표상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재키 백 (Jackey
Bag)
미국 대통령 부인이고 1950, 1960년대의 패션 리더였던 재키 케네디가 애용했던 'GUCCI'의 메인 백이다. 클래식하고
모던한 실루엣이 특징이며,1999년 재 등장하고서 다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제품이다. 'J 백'이라고도 한다.
비트 모카싱 (bit
moccasin) 발등 부분이 V자형 가죽조각으로 봉제 된 구두를 모카싱이라 한다. 여기에 호스비트(horse bit : 말의 재갈을 두개 이은
모양의 금속구)를 붙인 스피폰 슈즈, 대략'GUCCI'의 로퍼를 가르킨다고 해도 무방하다.
명품브랜드의 브랜드
관리 - 사례를 중심으로
오랜 역사와 나름의 철학, 그리고 독특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명품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하고 있는 몇몇 브랜드의
사례를 통하여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주요 성장 코드들을 짚어 보자.
사례 1)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을 위해
사는 'PRADA'
앞서가지만 너무 진보적이지 않은, 패셔너블하지만 한 시즌의 유행에 머물지 않는, 친숙하지만 늘 새로운, 그것이 바로
프라다의 기본 컨셉이다. 프라다는 제품 하나 하나가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에 장인정신에서 우러나오는 엄격하고도 세심한 주의와 정성을 기울임으로써
하나의 예술품에 버금가는 완벽한 제품을 탄생시킨다. 전세계에 펼쳐져 있는 프라다 제품에 대한 이미지관리와 구입정책, 가격정책의 기본 전략은 모두
밀라노에 있는 본사에서 결정함으로써 전세계 고객들에게 프라다의 패션정신을 보다 일관되게 전달하고 있다. 또한 프라다는 인기 연예인들에게 자사
제품을 입히는 스타 마케팅 전략으로도 유명한 브랜드이다.
사례 2) 보석 세공 예술의 살아있는 전설
'CHAUMET'
세계 최고의 보석으로 인정받는 보석 쇼메의 현재 주 고객은 유럽 왕실을 비롯하여 일본 황실과 중동의 석유 재벌, 미국의
케네디家 등이다. 파리 방돔 광장에 자리잡고 있는 쇼메하우스 1층에는 예약에 의해서만 방문이 가능한 부띠끄가, 2층에는 쇼메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쇼메하우스의 중심인 안뜰에는 아뜨리에가 있다. 이곳에서는 하얀 가운을 입은 숙련된 장인들이 초창기부터 이어진 행동 규칙과 제작원리에 따라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사용하는 장비들은 3세기 이상 된 것들로 아뜨리에의 모든 기구들은 곧 역사적인 유물이며, 따라서 아뜨리에
자체는 2백 2십 년 동안 살아 숨쉬는 쥬얼리의 역사책이자, 박물관이라 할 수 있다. 쇼메의 전 과정들은 모두 장인들의 손으로 이루어져 제품에
더욱 큰 가치를 부여한다. 또한 모든 쇼메 보석에는 음각으로 새긴 작은 다이아몬드 모양의 각인(刻印)이 찍히며 그것이 바로 쇼메의 감정사 역할을
하게 된다.
사례 3) 장인 정신으로 빛나는 명품 'HERMES'
에르메스는 오늘날 국제적인 그룹의 규모를
자랑하지만, 여전히 인간의 손길이 살아 숨쉬는 회사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 에르메스의 전 제품은 4~5백 여명의 장인들의 완전한 수작업으로
만들어지며, 각각의 모델에는 그것을 제작한 장인의 고유 번호가 찍히게 된다. 또 한편 에르메스에서는 문화예술지원 부서를 운영하고 있다. 이
부서에서는 갤러리 건립, 다양한 예술 지원활동, 문화행사 개최를 맡고 있는데 전세계의 그림, 조각, 무용 등 다방면에서 예술세계를 펼쳐나가는
작가들을 후원하고 있다. 이러한 에르메스의 메세나(Mecenat) 활동들은 자사의 모든 제품이 예술가적 정신에 기초하고 있다는 자부심에 따른
것이며 '예술가적 철학'으로 대변되는 에르메스의 기업정신을 나타내는 것이다. 올해로 2회 째를 맞는 에르메스 코리아 미술상은 이러한 에르메스의
기업정신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앞서 보았듯이 명품브랜드에는 다음과 같은 공통적인 특징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긴
역사와 전통을 이어가는 한결 같은 품질. 둘째, 철저한 장인정신. 셋째, 동시대적이면서도 새로움을 창조해 가는 끊임없는 제품 개발. 넷째,
일관된 브랜드 이미지 유지를 위해 가격 정책, 광고 전략, 매장 디스플레이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본사에서 관리하는 수직 통합 체제. 이러한
요소들이 모여 오늘날 고품질·고가치의 명품을 낳은 것이다. 그렇다면 명품 이라는 타이틀을 유지하기 위한 그들만의 특별한 마케팅과 홍보기법은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보자.
1) 브랜드를 함부로 노출 시키지 않는다
명품 브랜드는 TV에서 광고를 하지 않는다. 한
예로 조르지오 아르마니(GEORGIO ARMANI)의 경우 소량의 카달로그를 서점에서만 판매한다.
2) Anti-status 심벌
전략
일반적으로 명품 브랜드들은 로고 문양을 찍는 디자인 자체가 유행일 때를 제외하고는 되도록 작게 박거나 안쪽으로 숨긴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로고문양 자체가 모든 아이템에 기본으로 들어가는 브랜드도 있다. 예를 들어 루이비통(Louis Vuitton)이나 샤넬(CHANEL)
등과 같은 브랜드들이다.
3) 스타마케팅 전략
명품 브랜드와 인기 연예인과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스타들이 자사 제품을
착용함으로써 브랜드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면서도 마케팅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많이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대중 매체에서의 홍보를
통해 수요를 높이기보다는 고객층을 제한함으로써 브랜드 이미지와 가치를 지키겠다는 의도에서 스타 마케팅을 피하는 브랜드들도 있다.
4) 보수와 혁신의 적절한 조화
명품 브랜드는 저마다 역사에 남을 만한 제품을 보유하고 있는데 그것들은 당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정도로 획기적이고 혁신적인 제품이었다. 그럼에도 이들이 가진 혁신과 조화되는 보수성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동일하게
유지시켜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5) 꾸준한 메세나(Mecenat:기업의 예술후원활동)와 자선활동
국제 시장을 기반으로
예술에 투자함으로써 기업 이미지를 고양하고 잠재적 고객을 개발하는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에르메스에서는 예술가를 후원하는 메세나
활동을, 루이비통에서는 에이즈퇴치기금 마련을, 그리고 페라가모에서는 불우어린이 기금 마련 등 사회 공헌활동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