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 야 |
내 용 |
주거관련 |
실버타운, 유료양로원,3세대 주택, 노인전용아파트 |
유료재가 복지서비스 |
가정봉사요원파견사업, 주간보호시설, 단기보호시설, 급식배달, 가사대행서비스 |
유료양로시설 |
일반요양시설, 치매등 중증노인대상 요양시설 |
의료치료분야 |
노인전문병원, 의료기기, 노인건강관련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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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 보험, 신탁, 자산관리 |
여가활동 |
스포츠, 취미, 여행, 오락, 노인대학 |
직업관련 |
직업알선, 직업교육, 정보제공, 컴퓨터 및 실버넷 |
생활관련 |
실버패션, 건강기능성식품 |
평균수명연장과 출산율의 감소로 우리나라 노인인구는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으며 이것은 인구의 고령화를 의미한다.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수명과 노인인구증가경향을 <표2>에서 볼 수 있다. 인구의 고령화는 젊은 노동력의 부족, 세대간의 부담문제, 노인복지에 대한 공적복지의 한계와 이에 따른 민간참여부분의 역할증대문제를 야기---
노인의 라이프스타일 변화<표2>
|
과거의 노인층 |
새로운 노인층 |
심신상태 |
병약, 어둡고, 고집셈 |
건강, 밝고, 유연함 |
생활의식 |
보수적, 비관적인 인생관 |
합리적, 미래지향적 인생관 |
노년기의 인식 |
인생의 종말기 |
자기실현의 기회, 제 3의 인생 |
삶의 태도 |
검약, 소박, 무취미 |
여유, 즐김, 개성있는 다양한 취미 |
독립성 |
자녀에 의지, 독립성 약함 |
배우자/ 사회시스템에 의지, 독립성강함 |
노후설계 |
자녀세대에 의존 |
계획적인 노후설계, 독립세대유지 |
가치관 |
노인은 노인답게 |
나이와 젊음은 별개 |
레저생활 |
여가는 수단 |
여가자체의 가치부여 |
자산처분 |
자손에게 상속 |
자기를 위해 사용 |
여행형태 |
친목단체등 단체여행 |
여유있는 부부여행 |
취미생활 |
게이트볼등 노인끼리 교류 |
취미의 다양화, 다른 세대와 교류 |
생활스타일 |
한국전통식 생활 |
타문화 교류적 생활 |
유행감각 |
둔함, 후기추종자 |
예민, 초기채용자 |
자궁경암 예방 왁친
자궁경암(子宮頸癌)의 주된 원인인 히드바비로마바이르스(HPV) 가염증을 예방하는 왁친 명 백신(vaccine)이 미국식품의약국(FDA)에 의해 승인되었다고, HPV는 세계적으로 많이 발생하는 성감염증(性感染症)으로써 자궁경암의 원인으로 70%를 점유하고 있는 외, 전암성성기병변(前癌性性器病変)과 성기우췌(性器疣贅=피부에 생기는 모반(母斑)
의 일종, =돌기(突起)를 생기게 한다고--
이번에 승인을 받은 데는 메르크 회사제의 Gardasil 로써9-26세의 여성한테 6개월마다 3회 주사 하는 걸로 허가
미국질병관리예방 센터(CDC)의 추정에 의하면 미구국내에서만 년 간 약 200만인이 성기의 HPV에 감염했었다고, 대개가 합병증은 없으나 일부 증상에 따라 자궁경부내의 이상세포증식(異常細胞増殖)이 되어, 초종 즉 나이 들어서는 암이 된다는 연구 결과를 얻었다고---
이 백신은 일반적이지 않은 HPV에 대한 예방효과는 없어, 자궁경부 암을 조기 발견 치료하기 위한 정기적 검사(바버니코로(Pap=세포진 검사로 자궁 경부에 염증이 있는지를 검사를 하는 것)가 중요하다고 FDA는 강조하고 있다고---
20세기 역사일지
1924년
1월=레닌 사망
2월=토마스 왓슨, IBM 창립
4월=히틀러 정부 전복 혐의로 6년 선고
5월=경성제국대학(서울대학교) 설립.
스탈린, 레닌의 불신임 불구 서기장직 고수
6월=미국, 인디언에 완전 시민권 부여
8월=독일, 화폐개혁 단행
9월=마하트마 간디, 참회의 단식 시작
11월=에티오피아에서 정식으로 노예제 폐지
12월=히틀러 석방
히틀러 Adolf Hitler (1889-1945)의 여성관계
히틀러의 아버지 알로이스 히틀러는 사생아로 태어나 시클그루버라는 어머니의 성을 사용하다가 1876년 히틀러로 성을 바꾸었다.
알로이스는 국민학교를 나왔지만 열심히 노력하여 오스트리아 재무부의 세관원이 되었다.
아버지가 퇴직한 후 오버외스터라이히의 수도인 린츠 근교로 이사하여 아돌프 히틀러는 그곳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히틀러는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레알슐레(실업계중등학교)에 입학했으나 성적이 불량해서 졸업장을 받지 못했다.
1906년 16세 때 학업을 중단하고 2년 동안 린츠에서 방황하다가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는데, 그의 어머니도 이에 찬성했다.
1903, 1908년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각각 죽었지만 히틀러는 부모의 유산과 국가의 고아연금이 있었으므로 생활에 큰 곤란을 겪지는 않았다. 그는 화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빈에 있는 미술학교에 2차례(1907, 1908) 응시했으나 모두 낙방했다.
그 후 몇 년 간 빈에서 생활하면서 여러 가지 책과 신문, 소책자를 읽었고, 역사·정치·민족 문제에 대해 공부했다.
그는 술·담배·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았고 생활은 검소했다.
이복누이의 딸인 겔리를 깊이 사랑하게 되었고, 1931년 9월 18일 그녀가 자살할 때까지 항상 행동을 같이했다.
겔리는 히틀러가 진정으로 사랑한 유일한 여성이었다.
조카인 겔리가 자살한 후에는 에바 브라운을 사랑하여 그녀를 개인비서로 채용했다.
스포츠와 유행과 가정밖에는 관심이 없는 평범한 여자였던 그녀는 히틀러의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 백과사전을 찾아보기도 했으나 이러한 노력은 오래가지 않았다.
1945년 4월 29일 히틀러는 그녀와 결혼식을 올렸는데, 다음날 이들 부부는 함께 자살했다.
브라운 Eva Braun (1912-1945)
바이에른의 중하층계급 출신으로 짐바흐암인의 가톨릭 청년여성학교에서 교육받았다.
1930년 히틀러의 전속사진사 하인리히 호프만의 가게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하다가 히틀러를 만났다.
그 뒤 히틀러의 정부가 되어 히틀러가 마련해준 뮌헨의 집에서 살았다.
1936년부터는 베르히테스가덴에 있던 히틀러의 별장 베르크호프에서 지냈다.
히틀러와 에바 브라운의 관계가 정상적이 아니었다는 증거는 없다.
다만 그녀가 히틀러에게 안겨준 기쁨이란 성적(性的)인 면보다는 단란함이나 편안함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을 뿐이다.
그녀는 수영과 스키 실력이 뛰어났지만 그녀의 관심은 대개 사소한 일에 있었다. 히틀러는 한 번도 그녀와 함께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으며, 베를린으로 데려간 적도 없다. 그녀는 히틀러의 정치생활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
1945년 4월 브라운은 히틀러의 명령을 어기고 베를린으로 가 끝까지 그의 곁에 머물렀다.
그녀의 마음에 감동한 히틀러는 결혼하기로 결심하고, 같은 해 4월 29일 총통관저 벙커에서 식을 올렸다.
다음날 에바 히틀러와 아돌프 히틀러는 음독자살했다.
첫댓글 잘 읽었어요. 히틀러의 비운에 한참 머물어 봅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