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홍의 나쁜 생각811 - 비루한 집착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기행문과 사진들이 실린 책들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어서 비슷한 내용의 책 몇 권 가지고 있다. 저자에게 사인까지 받아 선물 받은 것도 있지만, 서점에서 구입한 책도 있다. 퇴직하던 해, 큰맘 먹고 스페인과 포르투칼 여행을 다녀왔지만 페키지 여행이어서 산티아고 순례길은 엄두도 못 내었다. 아마 끝내 난 가 보진 못할 것이고, 이는 이유 불문하고 열정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아침이면 출근하듯 걷는 동네 산책길, 체력이 좀 남아있으면 북한산 가장자리 둘레길까지 갔다 돌아온다. 산티아고 순례길이려니 하고, 걷기 시작한 것이 벌써 내가 퇴직한 햇수와 같은 꼭 10년이 되었다. 병원에 가거나 특별한 일, 지방공연 같은 것을 빼고는 하루도 거른 적이 거의 없다. 마음에만 품고 있던 제주도 올레길과 한탄강 근처 트레킹 코스는- 사진으로만 접했을 뿐,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내가 가장 멀리 걸으러 간 곳은 지인이 살고 있는 횡성 근처 횡성호 둘레길과 양수리 두물머리 근처 강변길, 그리고 다산 기념관이 있는 마현리 팔당호수길 정도이다. 그리고 강화도 트레킹 코스는 노을 보러 잠시 다녀오곤 한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 아직 걸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서울에서 집값이 제일 허름하지만 북한산 국립공원 권에 살고 있다는 것. 생각하면 과분한 축복인데도 왜 필자는 행복하게 느끼지는 못하는 걸까? 아직도 말끔히 털지 못한 인생에 대한 비루한 집착들이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는 요즘 이 비루한 집착을 털어버리려 애쓰고 있지만, 아직 내공이 부족하다. 비루한 집착이 대체 무어냐고 묻진 마시길 바란다.
시월의 시 / 딜런 토마스 / 이상섭 옮김(5)
내가 떼는 이 떡은
내가 떼는 이 떡은* 한때는 귀리.
이 포도주는 이국의 나무,
그 열매 속에 뛰놀았더라.
낮에 사람이, 혹은 밤에 바람이
곡식 넘어뜨리고, 포도의 기쁨 깨뜨렸느니.
한 때 여름의 피가 이 포도*에 취하여
넝쿨 치장한 살 속에 펄덕였고
한때 이 떡 속에 귀리는 바람에 즐거웠더라
사람이 해를 깨뜨리고 바람을 무너뜨렸느니.
네가 떼는 이 살,
혈관에 황폐를 가져 오는 이 피는
살아 있는 뿌리와 수액에서 태어난
귀리와 포도였더라.
내 숲 너 마시고, 내 떡 너 떼느니.
* 떡과 포도주: 기독교의 성만찬의 상징. 예수가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면서
(내 살이니 받아 먹으라) 하고 포도주를 주면서 내 피니 받아 마시라)고 한 이래,
기독교도들은 떡과 포도주로 예수와 한 몸이 되는 예식을 행한다. 이 시 역시 자
연과 사람의 한 몸됨을 말한다. <마태복음, 26장 26~29절 참조)
꽉 잡아라 뻐꾸기의 달 이 태고의 순간에1)
꽉 잡아라, 몰아가는 시간을, 뻐꾸기의 달 이 태고의 순간에
글라몰간 산 위, 가느다란 네번째 목표물 아래
푸른 꽃들이 위를 향해 달리는 이때,
어리석음2) 타고 달리는 기사처럼 시간은,
마치 사냥개 바짝 뒤따르며
숲속 사냥길 위를 휙휙 지나치는 사냥꾼 양반처럼,
나의 사람, 나의 아이들은 닥쳐오는 남녘의 봄에서
몰아내고 있다.
시골, 너의 즐거움은 여름,
그리고 십이월의 웅덩이들은
이 다섯째 달에 기중기, 급수탑, 씨 많은 나무 곁에서
스케이트도 안 지친 채 놓였고, 새들은 날아가 없다.
옛이야기 세계의 나의 시골 아이들아,
꽉 붙들어라, 여름 놀이를
사슴이 길목에서 쓰러지듯 푸른 숲은 죽어 가는데
이 처음 경주 놀이하는 계절에.
이제 잉글랜드의 뿔피리들, 형상의 음향으로,
너희 흰 눈 같은 기사3)들을 부른다.
사현금의 산4)은 바닷가 협곡 위에 큰소리 울리며
바윗돌을 살아 움직이게 한다.
바위들이 들먹이자
장애물과 총과 경주코스 난간들이
집게의 스프링처럼 뼈 부수는 사월을 깨뜨린다.
가느다란 어리석음의 사냥꾼과 꽉 붙든 희망을 망가뜨린다.
터벅걸음의 네 가지 기후5)가 빨간 땅 위에 나리어,
피의 꼬리를 끌며 내 아이들의 얼굴에 몰래 다가선다.
안장 얹은 계곡에서 시간은 기사의 모습으로 솟아 오르는데.
꽉 붙들어라, 나의 지방 아이들아, 떨어지는 새들을.
매6) 한 마리 나리니, 황금의 글라몰간 산이 팽팽히 긴장한다.
봄이 성나서 달리는데 너희 즐거움은 여름7)
1) 이 험한 시는 그러나 대단히 난해하다. 시간은 사냥꾼처럼, 또는 산, 강, 바위 같은 자연 장애물을 돌파하여 먼 곳에 세운 목표물을 향해 달리는 steeple - chase라는 말 달리기의 경주자처럼, (잔인한) 시, 오월의 봄을 쫓고 있다.
2) folly: 논란이 많은 낱말, 장애물 경주의 목표물이란 뜻도 있고, <어리석음> <사월은 잔인할 뿐 아니라 바보의 달, 어처구니없는 춘정, 우행의 달이다>이란 뜻도 있다. 사월의 봄은 생명의 성장을 재촉하지만, 그것은 다시 말하면 죽음에의 길을 재촉하는 것도 된다. 잔인한 사냥꾼이다. 봄을 즐겨 따라다니는 사람은 역시 사냥꾼이나 시간이라는 사냥꾼에게 그만 당하고 마는 어리석은 사냥꾼이다.
3) 흰 눈 같은 기사: 묵시록의 네 기사. 곧 죽음의 상징. 토마스는 묵시록적 상징을 도처에 사용했다.
4) 사현금의 산: 4라는 수는 기분 나쁜 숫자. 봄이 되어 산은 생명으로 충일하여 하나의 악기가 되지만, 제풀에 망가질 운명에 있다.
5) 네 가지 기후: 역시 4라는 불길한 묵시록의 숫자. 사계절, 즉 시간. 여기서는 네 마리 짐승의 형태로 죽음의 입김이 닥친다.
6) 매: 느닷없이 닥치는 죽음을 상징
7) 여름: 시간이 쉬는 듯한 기간. 생명의 전성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