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타 니파타 3:9-618 자림 가사단상] - 3.큰 법문
9.바셋타의 경
618.[석가 세존]
인간중에 제사로서 살아가는 사람있다
한다하면 바쎗타여 그는제관 이라하지
바라문이 아니란걸 알아야만 하는거네
----2568.3.5 자림 심적 합장
[숫타 니파타 3:9-618 자림 시조단상]
인간 가운데에 제사로 살아가는
사람 있다면 바쎗타여 그는 제관이지
바라문 아니라는걸 알아야 합니다
●●●더하는 말○○○
석가 세존의 말씀은 주변부터 중심을 들어오는듯 하다.
풀 나무 부터 시작해서 다른 동물등을 이야기하시고
사람 즉 인간의 다양한 직업의 예를 들어 말씀하시고
이제 제관 즉 제사를 지내는 사람까지 왔다.
제관을 제사를 주관하고 관할하는 사람으로
당시의 바라문만 할 수있는 특권에 해당되었으며
이러한 행위를 통해서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구조로
보통의 제사지내는 사람이 아닌 절대권력형의 제관이었다.
석가 세존은 진정한 수행자 즉 진정한 아라한은 제관이 아니란 뜻이니
제사의 의식과 준비 진행등이 정해진 방법에 따라 주관하는
바라문만 알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천주교에서도 의식과 예식을 주관하는 신부는
따로 있으며 일반 신부는 그러한 의식을 주관하지 못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불교의 실정은 의식의 집전[제사나 행사집전]
이나 수행과 포교를 모두 겸하는 형태로 되어 있는데
석가 세존 당시는 불교의 수행자는 의식을 집전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제사라는 형태의 의례의식은 제관이 하는 일이지
수행자나 유행자가 하는 일이 아니며 바라문이 하는일이 아니란
의를 분명하게 지적한 부분으로 여기에서 권투로 본다면
어퍼컷 같은 상대를 무너트릴 수 있는 좀 강도가 있는 한 방이다.
이 부분에서 아마도 바라문 학인 바드라와자는 조금은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본다.
이러한 제관에 대해 바라문이 아니라는 부정은
그들 행위의 근간을 흔드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석가 세존은 당시의 계급적인 구조를 인정하지 않으신
진정한 평등 무차별의 진리를 추구하시고 가르치신 분이니
석가 세존은 당연한 말씀이나 기득권의 보수 세력에 흐름에
젖어있는 사람들은 참으로 블편한 이야기로 성질이 급하거나
못된 성격을 가지고 있거나 성인 즉 석가 세존이 명망이 없는
분 이었다면 한 미디 하여 반박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석가 세존의 말씀은 말 그대로 접입가경
점점 아름다움의 절정으로 빠져들게 하는 말씀으로
두 학인은 한 마디의 반론도 없이 석가 세존의 말씀을 듣는다.
제사를 지내는 사람은 제관이지 바라문이 아니라는 사자후
당시의 사회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으며
완전하게 위 없는 깨침을 얻은 붓다의 자신에 넘치는
지혜로운 진리의 말씀이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사유해본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현재의 제사는 유교적인 형식과 불교식이
섞인 제사이므로 석가 세존의 제자라면 이 부분부터
바르게 잡아 형식적이고 의례 의식적인 제사가 아닌
진정한 제사는 무엇인지 분명하게 정의하고 정립되어
시행되어야 한다고 이야기 하고 싶다.
석가 세존의 가르침은 제사를 지내서 살라는 가르침이 아닌데
영가 천도와 납골당 운영 제사로 살아가고 그것이 주가 된다면
그는 영가팔이며 납골당 경영자 제관이지 승려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