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30.土. 자욱한 미세먼지
울어~라 색소폰아.
콩국수로 저녁식사를 마치고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두 보살님께 작별인사를 드리고 서울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오후6시가 조금 덜 된 시간이라 보통은 이렇게 일찍 길을 나서는 경우는 없었으나 오늘은 서울보살님도 함께 못 온데다가 자리를 만든 도반님도 조촐해서 길이라도 밝을 때 줄이고 싶어서였을 것입니다. 요즘은 꽃놀이 철은 끝나버렸고 하계 휴가철로는 조금 이른 시기라 휴일 고속도로가 심하게 밀리지는 않은 시기였습니다. 그렇지만 서해안 고속도로 상행선에서 언제나 차량이 밀리는 구간이 있습니다. 보통 당진에서 서평택JC 구간인데 이게 길어지면 화성휴게소까지 지체가 연장이 됩니다. 그래서 이 구간에서 짧으면 2,30분가량 길어지면 한 시간가량을 지체하게 됩니다. 그러면 나는 차안에서 상상을 합니다. 그게 무엇이든지 머릿속 깊은 곳으로부터 끌어내옵니다. 그리고 나누어보고, 쪼개보고, 흔들어보고, 이어보고, 붙여보고, 늘여보고, 주물러 본 뒤 관찰하고, 정리하고, 분석을 해봅니다. 생각이 사방으로 흩어져 날아오르면 상상想像이 되고, 한 줄로 이어져 줄을 맞춰서면 이야기가 됩니다.
금요일 밤이면 양재천에서 음악회가 열립니다. 오늘은 운동을 하려고 일부러 음악회 시간에 맞추어 양재천으로 나갔습니다. 이 음악회가 5월부터 9월까지 한시적으로 열리는 행사인데 한 여름인 7,8월에 관객들이 가장 많이 몰립니다. 아마 주말을 시작하는 즐거운 금요일 밤에, 그렇지 않아도 일터에서도 또 집에 돌아와서도 더위에 지쳐가는 판이니 그럴 바엔 차라리 시원한 양재천으로 나와 걷거나 운동을 하다가 신나는 음악을 듣는 편이 낫다고 생각들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양재천 주변으로 아파트 단지가 많은 것도 음악회 관객이 많은 것에 한몫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집에서 오후6시40분경에 나섰는데 공연장에 도착을 했더니 오후7시30분이 되었습니다. 공연을 시작한 지 벌써 30여분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다리 아래 설치된 아담한 공연장이지만 관객이 가득차면 300여 명은 너끈하게 수용할만한 열린 공간입니다. 오늘은 섹소폰 동호회 연주인데 이십여 명의 섹소폰 동호회 회원들이 악기와 장비 등을 가지고 나와 공연을 하고 있었습니다. 역시 아마추어인 동호회 회원들이라 개인에 따라 기량이나 기술의 차이가 꽤 커보였습니다. 나는 음악을 좋아하고 노래 부르기도 좋아하지만 악기를 다루거나 전문적인 음악교육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어서 전문가의 수준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는 그야말로 음악에 관한한 아마추어입니다. 그렇긴 합니다만 악기를 사용한 공연이나 노래를 들어보면 잘한다, 서툴다 정도를 느끼거나 판별할 줄은 알고 있습니다. 솔로로 알토 색소폰을 연주해준 여성회원은 아마 오늘 공연을 위해 근래에 많은 연습을 하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연주경력 자체가 짧은 듯해서 거친 듯 부드러운 색소폰 소리가 리듬을 타고 다양하게 감정을 실어내기까지에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해보였습니다. 깔끔한 소리로 ‘베사메 무초’를 연주해준 남성회원은 색소폰을 잘 다루는 분이었으나 소리가 너무 깨끗해서 ‘베사메 무초’의 자극적인 원초적 열정을 표현하는 데는 감성의 휘몰이가 조금 아쉬웠습니다. 조금만 더 구불구불 사연事緣과 곡절曲折이 있는 구성진 소리였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70대가 훨씬 넘었을 듯한 동호회 회장님 색소폰 소리는 오랜 경력만큼이나 무난한 소리로 한영애의 ‘누구 없소’를 연주해주었습니다. 색소폰 연주자가 바뀔 때마다 배경음악 컴퓨터를 조작하고 색소폰에 붙이는 소형 마이크 위치를 조정해서 달아주는 도우미 역할을 하는 사십대 중반의 남자가 있었습니다. 동그란 안경에 아담한 체격이 어쩌면 살이 약간 붙은 조용필 분위기가 풍기는 젊은 사람은 처음부터 연주회를 위한 기술보조를 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러려니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14명가량의 동호회 합동 연주가 끝나고 나서 마지막 연주가 색소폰 동호회를 지도하고 있는 원장님 차례라는 사회자의 안내가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그 40대 중반의 남자가 색소폰을 목에 걸고 무대 위로 올라왔습니다. 색소폰 동호회 회원들의 나이가 거의 60대나 70대인 것을 감안한다면 40대 중반의 남자는 회원 중 막내 격이어서 주로 연주회 때는 도우미역할을 하나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막상 원장님 연주 차례가 되자 그 젊은 사십대 중반의 남자가 무대 위에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런 예상치 못한 파격적破格的인 상황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배경음악이 흘러나오자 색소폰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아마추어들과 무엇이 달랐는가하면요, 다른 동호회 회원들은 색소폰 연주 첫 음을 시작할 때 다소간 신중하든지 순간 머뭇거리든지 라면 원장님은 그냥 첫 음을 날숨처럼 불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잡음이 섞이지 않은 악기 본래의 소리와 리듬에 실어내는 부드러운 감정이입感情移入이 동호회 회원보다 몇 수 높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색소폰을 불면서 손가락으로 운지법運指法을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대체로 손가락을 구부려 하나하나 짚고 있다는 느낌인데 원장님은 손가락을 편 채로 가만가만 접촉을 하는 기분으로 운지를 하고 있었습니다. 고음에서 튀지 않고 저음에서 둔하지 않다면 악기연주든 노래든 아주 빼어난 솜씨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를 색소폰 연주로는 처음 들어보았는데, 색소폰 소리에 힘입어 ‘낭만에 대하여’ 라는 곡이 아주 듣기 좋았습니다.
예전에는 애완견愛玩犬이라고 했고 요즘에는 반려견伴侶犬이라고 이름을 바꾸어 주었는데 이름이야 어찌됐든 집집마다 정성들여 개를 키우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오늘밤 음악회 공연장에도 개와 함께 양재천 산책을 나왔다가 색소폰 연주를 들으러 온 관객들이 꽤 많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공연 도중에 개들이 함부로 짖어대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습니다. 공연 중에 철없는 개가 짖어대면 개가 짖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를 하든지 아니면 개를 데리고 잠시 자리를 비우든지 해야 하는데 야외 공연장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개가 소리를 멈출 때까지 그대로 자리를 지키며 앉아있는 것이었습니다. 몇 달 동안 힘들여 준비를 해서 연주 중인 연주자에게나 옆 자리의 다른 관객들뿐만 아니라 음악에 대한 예의가 아닌 줄을 모르지 않을 텐데 자신에게 사랑스러운 반려견을 방치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국민 대부분이 각자 차를 운전하고 다니지만 자동차 문화는 아직 미숙한 것처럼 많은 가정들에서 개를 키우고는 있지만 반려견 문화도 역시 미숙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할 듯합니다. 우리에게 개의 문제라고하면 보신탕을 법으로 금지해야하느냐 혹은 자율적인 판단에 맡겨야하느냐 하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개를 가족의 한 사람으로 양육해야하느냐 개처럼 키워야하느냐의 문제도 있다는 점을 반려견 가족들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보신탕을 좋아하지도 않고 일부러 찾아 먹을 생각도 없으니 그런 법이 생기든 말든 별 상관은 없어 보이지만 아니, 왜 보신탕 먹는 문제를 법으로 금지해야한다고 일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그 발상이 궁금해집니다. 보신탕을 먹고 안 먹고는 나라가 관여할 사안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관이나 종교적 신념, 그리고 관습과 문화를 받아들이는 기호嗜好의 문제가 아닐까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월드컵 시합 중 우리나라 경기의 응원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토끼나 말고기도 소나 돼지와는 다른 경우이니 먹고 안 먹고 등등을 나라가 일일이 관여를 해야 한다고 하면 평화롭고 자율적이어야 할 일상이 법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틈새가 별로 없어 보입니다.
싱가포르에 있는 아들아이와 문자를 주고받다가 금요일 오전 중으로 서울에 도착한다는 내용을 보게 되었습니다. 새벽1시경에 출발해서 오전8시30분경에 도착하는 항공일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서울보살님과 함께 아들아이 마중을 나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서울로 오는 비행기 편이 대한항공이었습니다. 대한항공은 제2여객터미널을 사용하기 때문에 평소에 하듯이 제1여객터미널로 가면 안 됩니다. 그리고 올1월부터 개장했다는 제2여객터미널은 나도 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처음으로 구경을 하게 되겠습니다. 제1,2여객터미널 갈림길에서 제2여객터미널로 들어섰습니다. 물론 미리 인터넷으로 들어가 제1,2여객터미널 위치와 구조를 익혀두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위치와 방향은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제2여객터미널은 제1여객터미널에 비해 규모가 작은 대신 주차장부터 여객청사까지 한적하고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싱가포르 발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50분 남짓 연착을 한 대다가 아들아이가 비행기에서 내려 미국본사와 이메일을 주고받느라고 시간을 사용하는 바람에 거의 1시간30분가량을 입국장에서 기다려야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지루하지는 않았습니다. 청사 안을 돌아다니면서 구경도하고, 삼송빵집 단팥빵도 사먹고, 입국장을 빠져나오는 사람들의 옷차림이나 표정을 구경하기도 했습니다. 서울보살님 말로는 삼송빵집이 유명한 집이라고 하는데 나는 처음 들어보는 빵집이었습니다. 서울보살님이 들고 있는 종이봉투에 들어있는 단팥빵을 하나 얻어먹어보았는데 내 입맛에는 좀 달았습니다. 요즘 빵집들의 단팥빵이나 도넛은 어딜 가나 무척 달게 팥속을 만들어 넣습니다. 순수 팥이 이렇게 달리는 없고 삶은 팥 속에 설탕이나 달디 단 다른 첨가물을 집어넣는다는 이야기인데 음식점의 불고기 양념이 점점 달아지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을 합니다. 입안에 단맛만 남으니 천연의 고기 맛이나 양념 맛은 간 데 없는 불고기처럼 빵의 고소하고 천연의 다양한 맛보다는 단맛으로 획일화된 단팥빵 맛이 되어버립니다.
일본에 살고 있는 예쁜 보살님이 얼마 전 서울에 다니러왔는데 그 보살님과의 대화중에 일본빵 맛과 서울빵 맛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요약하면 일본빵에 비해 서울빵은 고소하고, 부드럽고, 쫄깃한 맛에서 상당한 차이로 감각이 뒤떨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달걀을 예로 들면서 식자재 자체에서도 양질의 제품과 신선도에서 질적인 차이가 난다는 것입니다. 일 년이면 삼 개월 가량은 서울에서 지내는 보살님이라 서울과 일본의 차이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서울과 일본에서의 빵맛과 식자재가 질적 차이가 나는 줄은 잘 모르겠으나 만일 차이가 있다면 역시 자재를 생산하는 방식과 기술력의 차이라고밖에는 생각을 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끌어올 수 있는 경험에 의하면 30여 년 전에 일본에 처음으로 가보았을 때 일본에서는 요우칸ようかん이라 부르고 우리들은 양갱羊羹이라고 부르는 일종의 화과자를 보면서 그 다양하고 수많은 종류와 맛에 새삼 호기심 넘치도록 양갱을 사먹어 본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어떻게 이토록 다양한 맛과 종류와 모양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사실 깜짝 놀라서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찰 앞에서 판매를 하고 있는 부적이나 호신구와 장신구, 노리개 등의 다양하고 섬세함에도 감탄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한국제품이 일본제품에 비해 뒤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마무리 기술과 집중력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그때 잠깐 해보았던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입국장에 아들아이 얼굴이 보이자 달려가서 반갑게 얼싸안아 준 뒤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점심만 먹고 재빨리 사무실로 나가버린 아들아이는 다음날 아침이 되어 집에 들어와 지금 잠을 자고 있는 중입니다. 그렇게 아빠의 시간들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