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홍의 나쁜 생각813 - 그는
그는 금새 자신을 용서하고
보듬고 자위하고 잊으려 했다
그럴수록 뻔뻔해져 갔다
“그”는 성性으로 구별된 남성만을 가리키는 말은 아니다. 언제부턴가 프랑스에서는 성차별이라는 이유로 '마드모아젤'을 쓰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모든 여성을 '마담'으로 통일했다고 한다. 연식인 좀 된 필자는 '마담'이란 말은 종종 술집, 다방, 혹은 카페의 나이가 좀 든 여자의 호칭으로 들린다. 물론 오류이다. 어쩌면 외국어를 폄하하고 싶은 열등감의 발로였을 것이다. 필자는 대학 때 딱 한 학기 불어를 배웠지만, 문외한이나 다름없다. 그래도 학점을 이수한 건 아마 교수님의 따뜻한 배려였을 것이다. 필자가 불어에 관심을 갖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이브몽땅의 <고엽>이라는 노래 때문이다. 그리고 한때 열등감으로 읽은 자크 프레베르, 랭보, 말라르메의 詩들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불어로 읽어내진 못했고 지금도 그렇다.
필자는 삼십 대에 딱 한 번 프랑스 여행을 한 적이 있었고, 그 당시 프랑스에서 받은 인상은 동양인을 백안시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 후론 프랑스엔 가지 않았다. 내 돈 쓰며 하는 여행이 무시당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혹독하게 학대했다.
그럴수록 겸손을 위장한 오만한 갑옷을 입었다.
시월의 시 / 딜런 토마스 /이상섭 옮김(6)
유독 시월 바람이
유독 시월 바람이1) 서릿발 손가락으로
내 머리칼 괴롭힐 때면,
움켜 잡는 태양에게 붙들려 불 위를 걸으며,
땅 위에 게의 그림자2)를 던진다.
바닷가, 새들의 지꺼림을 들으면서
겨울 막대기 사이 까마귀 기침 소릴 들으면서
떨며 지껄이는 바쁜 내 심장
마디마디 피 흘려 낱말들을 쏟아 낸다.
또한 낱말 탑에 갇혀서 나는,
지평 위에 나무처럼 걷고 있는
여인들의 수다스런 모습과
공원의 별 몸짓한 아이들 소릴 본다.
당신에게 홀소리의 너도나무로 몇 마디 말을 지어 드리지3)
또는 참나무 목소리로, 가시 돋힌 여러 지방의 뿌리에서
당신들께 몇 가락 들려 드리지.
물의 말씀으로 몇 줄 말을 지어 드리지.
은화식물4) 화분 뒤 까딱대는 시계가
시간의 말을 들려 주고, 신경성의 의미가
지침 달린 원판 위를 난다, 아침을 웅변한다.
그리고 수탉 풍향계5) 속 바람 찬 일기를 알린다.
당신들께 초원의 신호로 몇 마디 지어 드리지.
내가 다 아는 소리 말하는 신호 깃발 초목이
벌레 꿈틀대는 겨울6)과 더불어 눈알 속에 파고든다.
까마귀의 죄에 대하여 몇 마디 해드리지.
유독 시월 바람이
(거미 혓바닥7)의 가을 주문으로, 훼일스의 큰 목소리 산으로
당신들께 몇 마디 지어 드리지.)
무우의 주먹으로 땅을 괴롭힐 때면,
무심한 낱말들로 당신들께 몇 줄 지어 드리지.
연금술의 혈액이 분주히 달리며 글자 쓰면서,
닥쳐오는 광란을 경고하던 심장을 고갈시켰다.
바닷가, 어두운 홑소리의 새 소릴 들어라.
1) 10월 27일은 토마스의 생일. 따라서 시월을 주제로 한 시는 모두 그의 시인으로서의 생활, 사상, 희망과 관계 있다.
2) 게의 그림자: 자연의 세력에 위압당한 듯이 납작한 꼴로 횡보하는 게와 자기를 비교한다. 시월의 뻘건 태양은 성난 듯이 토마스를 게 잡듯 위압한다.
3) 당신에게 ---- 말을 지어 드리지: 모든 자연, 물과 사물이 그에게는 시의 낱말로만 인식된다. 심장조차 음절처럼 뛴다. 그것은 시인인 그의 괴로운 운명이다. 광란(죽음)을 예고하던 심장의 피도 시가 되어 다 쏟아져 버릴 판이다.
4) 은화식물: <fern>은 양치류의 식물. 식물 중 가장 원시적 식물, 즉 진화가 가장 늦은(혹은 정지된) 식물로서, 살아 있는 죽음을 상징한다.
5) 수탉 풍향계: 수탉 모양의 풍향계. 겨울 바람은 죽음의 입김이다.
6) 벌레 꿈틀대는 겨울: 겨울엔 벌레가 없으나, 죽음을 상징하는 겨울 자체가 생명을 파먹는 하나의 벌레이면 궤변이다. <벌레>는 궁극적으로 큰 뱀, 용, 즉 사탄이다.
7) 거미 혓바닥: 게로 상징되던 시인이 다시 <거미>로 상징된다. 거미는 외롭게 살며 제 속의 것을 뱉아 집을 짓는 (창작하는) 동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