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부엌 / 정희경
-수필과 우리, 고추밭 연가
그 여자의 첫 부엌은 시멘트 민벽, 민바닥이었다. 칠도 하지 않고 타일도 붙이지 않은 좁은 공간은 어둡고 습했다. 백열등과 수도꼭지 하나가 편의 시설의 전부였다. 스물셋 가을, 그 부엌에서 여자는 생의 첫 살림을 시작했다. 그릇을 번갈아 받쳐 가며 쌀과 반찬거리를 씻고 설거지를 했다. 셋방의 물이 나오는 구멍은 그것 하나뿐이어서 세숫대야를 받쳐 놓고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고 발을 씻고 빨래를 하고 걸레도 빨았다. 한여름 밤엔 풋내 나는 알몸에 찰박찰박 바가지 물을 끼얹기도 했다. 좀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물 거리를 헹구거나 설거지를 하다가 슬그머니 속옷을 내려 오줌을 누곤 재빨리 옷매무새를 고칠 때도 있었다. 늦깎이 대학생과 살림부터 낸 대학가 골목의 자취방은 여자의 신혼 집이었던 셈이다. 한 여자의 일생에 신혼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도 모르는 순진한 시작이었다.
"그 애가 밥을 못 챙겨 먹을까 봐서……."
그의 어머니는 지방에서 홀로 대학에 다니는 아들의 끼니가 걱정스러웠던 모양이다. 산골에서 몇 마지기 땅을 겨우 부쳐 먹고 사는 여자의 부모님은 다 자란 딸을 논밭에 매어 둘 수는 없었다. 딸이 없는 예비 시부모님은 희고 곱상한 여자의 첫인상이 순순해 보였나 보다. 산골 여자의 집에서는 그와 여자를 맺어 주는 일에 뜸을 들였고 대도시 시집에서는 서두르는 눈치였다. 어린 여자의 마음은, 적은 월급에 옷도 구두도 못 사고 꼬박꼬박 빠져나가는 월세방 값이 물 새는 듯 아까웠다. 그의 부모님은 육백오십만 원을 부쳐 주었다. 방에는 전화를 들여놓았고 부엌엔 가스레인지를 설치했다. 그리고 여자는 그의 아내 그의 부모님의 며느리가 되었다. 어쩔 수 없이 결혼식은 좀 미루기로 했지만. 여자는 자신의 마음을 너무 깊이 들여다보지 않기로 했다.
아주 가끔 짐작하지 못한 일들이 생겼다. 시부모님이 내려오신다는 전화가 화들짝 휴일의 늦잠을 깨웠다. 부랴부랴 동네 시장으로 갔다. 지금쯤 차는 타셨을까. 화장품을 요리조리 만져 보고 샘플을 얻는 재미 대신, 청바지 차림에 한 갈래로 질끈 묶은 생머리를 찰랑이며 대파와 마늘, 시금치, 고등어 값을 몇 백 원씩 깎으면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조목조목 거두어 온 것들을 부엌 바닥에 쏟아 놓고 쪼그리고 앉아 다듬고 씻고 썰고 무치고 볶고 졸이고 끓였다. 걸레를 빨고 오줌을 누던 시멘트 바닥은 잔뜩 긴장한 풋내기 요리사의 어지러운 조리대로 둔갑했다.
그와 데이트를 하다가 사 온 그릇 몇 점이 있었다. 가게 안에서 거리의 좌판으로 밀려난 유행 지난 그릇들이었다. 도톰히 담긴 먼지를 후, 불어냈다. 행여 깨질세라 갓난아이 안고 오듯 겹겹이 신문지에 싸서 여자의 부엌으로 데려왔다. 거품을 내어 닦고 또 닦고 헹구고 또 헹궜다. 세상 무엇보다도 귀하고 소중하고 값싼, 여자의 첫 살림이었다.
행여 누가 될까 긴장 속에서 정성스레 마련한 반찬들을 양념 한 방울 덧묻지 않게 조심조심 한 줌씩 접시에 담았다. 시부모님을 위해 처음 차린 밥상이었고 정성 들여 누군가를 대접한 여자의 생의 첫 음식이었다. 그 후 몇 번인가 누군가를 위해 또 그렇게 밥상을 차렸다. 이름난 식당의 화려하고 근사한 요리와 비교할 수는 없었지만 여자는 적은 돈과 제 손으로 정갈한 밥상을 차려 사람을 대접하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기 시작했다. 스물다섯 봄, 비로소 여자는 빨래터이자 욕실이자 화장실이자 부엌인 습하고 어두운 공간을 떠났다. 화장품보다 빨랫비누와 고춧가루에게 더욱 정이 들어서.
두 번째로 얻은 집은 붉은 벽돌집 이층이었다. 집주인은 아파트식 흰색 철제 현관 문을 강조했다. 그러나 문을 열면 정작 현관은 없는 그대로 주방 바닥이어서 한 쌍의 신발은 늘 문밖에서 하늘바라기를 해야 했다. 그래도 좋았다. 장판이 깔린 바닥과 하얀 타일 벽, 더 이상 걸레를 빨거나 오줌을 누지 않아도 되는 싱크대, 신발의 비박쯤은 어떠랴. 젊고 싱싱한 여자의 두 손은 한껏 들떠서 가스레인지대에 잔뜩 눌러 붙은 더께를 열심히 닦아냈다. 수납장 구석구석, 타일 사이의 때, 바닥 모서리의 숨은 얼룩까지 찾아내며 신명이 났다.
'누가 주인이든 이제부터는 내 부엌이니까.'
남이 버리는 것을 주워 쓰던 냉장고를 버리고 뽀얀 우윳빛 냉장고도 새로 장만했다. 장롱이 없는 살림에 가장 덩치 큰 세간이 생긴 것이다. 혼수용 그릇 세트는 엄두도 못 냈지만 새집을 얻은 기쁨에 시장에서 냄비와 그릇 몇 점도 좀 더 마련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기 시작하는 그를 위해 도시락을 싸는 일도 좋았다. 눈처럼 흰 밥을 솔솔 퍼 담고 노란 계란 지단을 하트 모양으로 오려 덮었다. 고만고만한 반찬통에 감자조림이나 오이무침 따위를 담고 국까지 챙겨 작은 가방을 들려 보냈다. 몸을 놀려 사람을 챙기는 것은 기쁜 일이어서 그 순간만큼은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행복한 아내가 된 듯했다. 퇴근길 주방 창 너머로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오는 그의 구두 소리에 여자는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환해지곤 했다. 보글보글 끓는 찌개 냄비에 여자의 마음 마중이 조미료로 녹아들었다. 저녁 밥상 앞에서 도시락 반찬에 대한 동료 직원들의 품평을 건네 들을 때면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번졌다. 주방 밖에서 잠든 한 쌍의 신발도 행복했을 것이다.
김치통이 헐렁해지면 마음은 헛배 부른 듯 갑갑했다. 주말 퇴근길에 아랫동네 시장에 들러 서너 포기 배추와 대파 한 단을 샀다. 어깨에 멘 가방이 자꾸만 흘러내렸다. 커다란 배추 봉지를 길바닥에 떨어뜨리듯 내려놓고 손바닥을 펴 보려는데 붉게 굳은 손마디가 따가웠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개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 여름 한낮의 텅 빈 골목은 태양의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여자는 가늘게 뜬 눈으로 주위를 쏘아보았다. 모두 어디로 숨었을까.
좁은 계단을 올라 현관 문을 열었다. 후 , 둔기로 얻어맞은 듯 여자는 엉겁결에 뒤로 물러났다. 종일 닫혀 있던 이층 셋방은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향해 거대한 김 덩어리를 퍽, 쏟아냈다. 시멘트 옥상 아래 작은 부엌은 견딜 수 없는 열기를 저 혼자 끌어안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여자는 한 방의 펀치 따위로 울지 않았다. 자신이 힘들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배추는 아직 싱싱했고 여자의 가난은 뿌리가 굵고 길어 배추보다 시퍼랬다. 휴일 오후, 그와 여자는 웨딩드레스처럼 새하얀 냉장고와 시골에서 부쳐 준 육중한 쌀자루, 그리고 국물이 차 오르기 시작하는 김치통을 바라보며 서로 미소 지었다.
'한동안 걱정 없겠지, 우리?'
그 무렵, 여자와 그는 결혼식을 올리고 정식 부부가 되었다. 부엌이 뜨거웠던 이층집이었다.
드디어 아파트라는 집을 얻었다. 여자는 욕실이 있는 작고 오래된 집이 너무나 좋았다. 전용 세제를 넣어도 자꾸만 막히는 개수 구멍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개수대 아래에 머리를 들이밀고 Y자형 플라스틱 주름관을 풀었다. 괴어 있던 물이 받쳐 둔 세숫대야에 푸룩, 쏟아졌다. 솔과 수세미로 썩은 내장 같은 주름관 구석구석을 닦았다. 가난한 여자는 세상 거의 모든 것을 너그럽게 대했지만 조금도 용서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한 점 검은 때였다. 생선이거나 채소이거나 달콤한 과일이었을 찌꺼기들이 불쾌한 냄새를 풍기며 검은 거품물 속에 둥둥 우글거렸다. 여자는 자신이 먹은 과일의 껍질조차 더럽다고 제 손으로 치우기를 싫어하는 어떤 여자를 인상 깊게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여자는 자신의 희고 고운 손이 들락거리는 검은 구정물조차 더럽다고 여기지 않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용서할 수 없는 땟국물조차 정이 들었던 것일까. 아니다. 누가 때를 좋아하겠는가. 다만 자신의 손을 믿는 부지런함의 징표이기 때문이겠지. 밤늦도록 낡은 수납장 문짝에 시트지도 붙였다. 헐거운 나사들도 단단히 조였다. 더 이상 자신의 힘으로 손볼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여자는 바닥에 퍼더버렸다.
'이제 내 부엌이 되었구나. 수세미와 걸레와 드라이버에까지 정이 들어서.'
무겁게 감기는 눈 속으로 자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아버지 환갑을 맞았다. 여자는 만 원짜리 몇 장을 종잣돈처럼 꼭 움켜쥐고 시장으로 갔다. 생쥐가 들락거리듯 이 집 저 집 들어갔다 나오기가 바빴다. 그때 알았다. 얼마나 많은 돈을 쥐고 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주인의 안색이 변하기 전에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의 품목과 그 물량을 판단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다듬고 씻고 무치고 볶고 졸이고 끓이고 부치다 보니 밤도 잠도 잊었다. 새벽 동이 트기 전에 생채소들은 모두 사라져야 했다. 그릇이란 그릇은 다 나와서 잔치 준비를 도왔다. 냄비도 반찬통도 다 들어찼다. 기절한 듯한 형광등 불빛 아래 부엌은 기름 냄새로 가득 차 술렁거렸다. 자꾸만 눈은 감겼다. 프라이팬의 부침개를 뒤집다가 화들짝 눈을 뜨면 무거운 눈꺼풀 아래 부침개들이 어룽어룽 출렁거렸다.
'이젠 거의 다 했어. 조금만, 조금만, 더 참으면 다 끝나.'
밑 빠진 독을 채워야 하는 일 때문에 원님의 생일잔치에 가지 못하는 콩쥐의 심정이 그러했을까. 여자는 눈을 조금 붙이고 고속버스를 탔다. 좌석 아래 짐칸엔 밤새워 만든 잔치 음식들이 임금님을 위한 진상품처럼 함께 달리고 있었다.
시집에 도착해 음식을 풀어 놓고 시어머니와 함께 온종일 상을 차리고 또 차리고 치우고 또 치웠다. 저녁이 되자 모든 음식들은 깨끗이 바닥이 났다. 다음 날 돌아오는 기차 안, 여자의 눈에서 자신도 모르게 줄줄 눈물이 흘렀다. 빠르게 지나가는 유리창 풍경 속으로 고개를 돌려 눈물을 숨겼다. 아무도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집에 도착해서야 여자는 두들겨 맞은 듯 몸이 아프다는 것을 알았다. 사흘을 누워 있었다.
이사를 했다. 또 부엌이 있는 집이었다. 또 부엌이 좁은 집이었다. 그리고 또 이사를 했다. 여자의 네 번째 부엌과 다섯 번째 부엌은 같은 모양이었다. 같은 아파트에서 방만 한 칸 더 있는 집으로 이사했으니까. 네 번째 부엌에서 사 년 다섯 번째 부엌에서 육 년, 두 부엌에 여자는 자신의 삼십대를 고스란히 바쳤다. 공간이 작은 부엌은 아니었지만 조리대는 턱없이 작았다. 가스레인지대와 베개만 한 조리대 하나, 정사각형 개수대 한 칸, 그리고 그릇 건조대까지 모두 합쳐 봐야 두 팔을 벌린 정도의 넓이에 불과했다. 조리대에 도마를 놓으면 나물 무칠 양푼은 바닥에 내려놓아야 했다. 개수대엔 압력솥 하나만 들어가면 다른 것은 씻을 수가 없었다. 국이나 찌개가 남은 냄비들은 바닥에 내려놓아야 했다. 이것저것 해 먹고 이것저것 치웠다. 어쩌다 보니 여자는 음식 만드는 일을 귀찮고 힘들어하면서도 늪처럼 부엌에 점점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부추 한 단을 사서 부추전을 부쳐 먹고 남은 것은 양파와 무치고 그리고 또 조금 남은 것은 끓는 된장에 살짝 넣어 먹었다. 여자에게 부엌은 월급이 없는 공장이었다.
곰국을 끓이고 갈비찜을 만들고 돼지등뼈감자탕을 끓이고 전복죽을 끓이고 약밥을 찌고 팥양갱을 만들고 닭개장을 끓이고 카레를 만들고 백숙을 끓이고 대합죽을 끓이고 코다리를 졸이고 수육을 삶고 조기를 찌고 장떡을 부치고 꼬치를 끼우고 삼색 나물을 무치고 불고기를 볶고 아귀를 찌고 잡채를 버무리고 잔치국수를 말아 내고……, 열쇠가 없어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우는 앞집 아이를 불러 미역국에 밥을 말아 먹였다. 혼자 사는 이웃 할머니에게 김치와 백설기 한 덩어리를 드렸다.
여자의 시어머니는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했고 시아버지는 시어머니와 식성이 달라서, 고기를 좋아했고 친정 엄마는 일찍 늙었고 아버지는 고된 여름이면 입맛이 없다 했다. 아내가 없는 막내 작은아버지는 빈 소주병을 세워 놓고 눈시울을 적셨고 어린 사촌 동생들은 방바닥에 참치 캔 하나를 따 놓고 밥을 먹었다. 한 숙모는 당뇨병이었고 다른 숙모는 자궁을 수술을 했다. 그는 한여름에 바깥 음식을 먹고 장염에 걸렸고 외지에 터를 잡은 남동생들에게는 따뜻한 국물이라도 먹이고 싶었다. 조카의 첫돌도 무시할 수 없었고 오랜만에 찾아가는 시가의 큰댁에 빈손으로 갈 수도 없었다. 시아버지는 폐암 수술을 했고 이웃과 인사 없이 지내는 앞집 새댁도 마음에 걸렸다. 여자의 사람들에겐 늘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부지런히 몸을 놀린 대가로 여자는 종종 칭찬을 들었다. 그러나 맛 좋은 음식을 만들어 칭찬을 듣는 것이 여자의 꿈은 아니었다. 고등학교도 더 거슬러 올라가 중학교 때부터…… '작가'가 되는 것, 오로지 그것만이 여자의 소망이었다. 그늘진 뒤안 검은 항아리 속 장아찌처럼 오래 오래 묵은.
언제부턴가 여자는 자신과 더불어 살고 있는 실존 인물들보다 책 속의 등장인물들에게서 더욱 깊은 삶의 고통과 그들의 내면에서 커다란 신비로움을 느꼈다. 금이나 루비 진주 따위로 만들어진 장신구들보다 위대한 작가들의 영혼을 일깨우는 문장들에 전율했다.
국자와 칼과 냄비 사이의 제 손조차 잊을 때면 여자는 자신의 깊은 곳 어딘가에 뜨거운 불길이 벌컥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꼈다. 모든 것을 그대로 내팽개쳐 둔 채 책과 펜에게로 달려가고 싶었던 때가 어디 한두 번이었으랴. 불행이 닥친 주위 사람들을 위해 자신에겐 아무런 실질적 이득도 없이 누가 시킨 것도 아닌 자신이 먹을 것도 아닌 음식을 만들 때면 시간과 열정을 낭비하고 있다는 억울함에 눈물이 비줄비줄 새어 나오곤 했다. 여자는 뜨거운 불길을 다루는 법을 알고 있었을까. 그 순간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뿐이었다. 뜨거운 눈물을 어서 닦아내는 것,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꿋꿋이 견디는 것.
'지금 나에겐 아픈 사람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인지도 몰라. 언젠가 젊고 분주한 시간이 다 흘러가고 할머니가 되면 느린 시간이 아주 많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지. 그땐 도서관 서가에 빼곡히 꽂혀 있는 아름답고 두꺼운 책들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읽으며 매일매일 행복할 거야. 그렇게 나는 늙어도 늙지 않을 거야. 신이 내게 그만큼의 시간은 남겨 주실 거야. 최대한 빨리 이 음식을 만들어 따뜻함이 식기 전에 아픈 사람에게 갖다 주고 책과 펜에게로 돌아오자.'
여자는 이렇게 한 발 물러나 먼 앞날을 헤아려 보았다. 자신에게도 행복해질 시간이 남아 있는 것 같아 위안을 느꼈다. 여자는 음식을 만드는 일은 오래된 때를 닦는 일과도 같은 일이라고 믿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무심함으로 낀 때, 낡고 부서진 인정을 새로 고치는 일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내 남편 내 아이만 내 식구가 아니라 아프고 어려운 사람들은 잠시나마 모두 식구 같았다.
여자는 지금 자신의 생의 여섯 번째 부엌에 와 있다. 조리대도 넓고 개수대도 두 칸이다. 넓은 조리대를 얼마나 바랐던가. 언젠가는 언젠가는…… 지금은 참아야지 조금만 더 참아야지, 스스로 달래 왔던 시간들. 두 칸짜리 개수대의 행운은 그저 운이 좋은 탓만은 아닐 것이다. 열심히 일하는 콩쥐에게 원님이 꽃신 대신 넓은 조리대를 선물해 주신 것이라고 여자는 믿는다. 넓은 새 부엌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동안 자신이 지나쳐 온 작은 부엌들이 차례로 떠오른다. 그곳들은 그저 배를 채우는 음식만 만드는 공장이 아니었다. 불편을 견디면서도 주위를 돌아볼 줄 아는 눈으로 익게 했고 더불어 글쓰기의 꿈도 더욱 크게 살찌워 준 작은 부엌들, 어리고 철없는 여자를 성숙한 부인으로 키워 준 학교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