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홍의 나쁜 생각815 - 사람
필자는 디지털 세계에 익숙하지 않다. 기껏 이용하는 것이 휴대폰의 카톡이나 메일을 주고 받는 정도이고, 간혹 유튜브 검색 정도이다. 페이스북은 할 때마다 자꾸 비번을 잊어리곤 해서 포기했지만, 꼭 필요성을 느끼진 않는다. 요즘 극장은 말할 것도 없지만 조그만 우동 집에라도 가게 될 경우, 주문이 디지털화된 곳은 꺼리게 된다. 매일 가는 곳도 아니니 능숙해지는 것도 아니어서 낯설기 때문이다. 이런 내가 자랑스럽지도 부끄럽지도 않다. 늙을 만큼 늙었으니 노인 취급 받는 건 당연하겠지. 좀 쓸쓸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늙었음에도 아직 젊다고 우기고 싶진 않다. 우긴다고 젊어지는 것도 아니므로!
사람은 사람으로 인해 기쁘고 슬프고 행복하고 불행하다. 혼자서도 잘하고, 행복해하고, 기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필자는 동의하기 어렵다. 필자는 평생 사람을 그리워하고,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때론 혐오하며 살아왔다. 물론 이는 필자의 개인적 성향이겠지만. 필자는 한 번도 초월자를 꿈꿔 본 적이 없고, 될 수도 없고, 되고 싶지도 않다. 그냥 사람 속에서 부대끼며 살고 싶었을 뿐이고, 사람들에게서 사랑받기를 기대했지만, 사람과의 관계가 반드시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순 없다. 왜냐하면, 필자는 생의 대부분을 우울함과 질병과 소외감에 시달렸으니까. 그렇지만, 한 번도 사람 좋아하기를 포기한 적이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사는 동안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은 사람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도 그 음악을 만들고 연주한 이가 사람이듯,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느끼는 모든 것들은 다 사람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연이나 명상이나 신앙의 신비로움조차도 난 사람에게 배웠다. 자연이 아무리 아름답고 장엄하고 신비롭고 위대하다 하더라도 필자에겐 모두 인간사人間事의 은유로 읽혔고, 지금도 그렇게 읽힌다.
내 의지와 관계없이 사람으로 세상에 내 던져진 존재인 필자는 내 의지와 관계없이 생을 마감할 것이고, 사는 동안 여전히 사람을 그리워하며, 때론 기쁘고 상처도 받으며 살게 될 것이다. 가능하면 상처는 피하고 싶지만!
작별의 공동체 / 김혜순
우리에게 하양이 있을까
식탁 아래 걸레 뭉치
식탁 아래 몰아쉬는 솜처럼
뭉쳐져 있고
겨울 하늘 차가운 새처럼 쿨하고 싶었는데
가족을 너무 혐오해 두 손이 덜덜 떨려
숨 쉴 때마다 걸레가 오르락내리락해
푸드덕거리는 소리
와장창하는 소리
어디서나 죄송스러운 집
늘 오빠의 발뒤꿈치 밑에 새 한 마리 있는 꿈
저쪽 발뒤꿈치엔 조그만 엄마가 있었지만 구하러 갈 수가 없어
걸레 뭉치를 옷으로 싸서 어르는 소녀
저 소녀가 나일 리가 없어
아침엔 이빨을 세게 닦았지만 하얘지지 않았어
내 뼈는 닦지 않아도 하얀색일까 생각했어
흰색 빈두 차크라는 아빠에게서
빨간색 빈두 차크라는 엄마에게서
빨간색 생고기가 흰 이빨을 물들이는 나날
절간에서 초를 훔쳐 왔어
이 죄송스러운 집에 흰색을 밝혀볼까 생각했어
티베트 절간에서 나던 냄새
절간의 얼굴들처럼 번들번들한 마룻바닥에서 나는 냄새
뼈에 붙은 살냄새
날개를 질질 끌고 다 올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산이 없어
아, 그 지독한 흰 산이 없어
흰색의 잠복 기간은 길지 않아
꼭 더러워지고야 말아
나는 평평한 흰 산에서 편지를 쓴다
이놈의 산, 흰색을 연기演技하다니!
멀리멀리 죽었다가 돌아온
아빠, 너는 올빼미처럼
식탁 위에 올라앉아
낮에는 밤을 보고
밤에는 밤을 보고
너무 부끄러울 때
내가 나를 삼인칭으로 부르며 욕하는 것처럼
아빠, 너는 틈틈이 욕설이야
모두 내 탓이라고 했어
오빠 탓은 아니라고 했어
아빠, 너의 살색 대갈통은
흰색 트럼펫처럼 흰색 머리칼을 내뿜고
오빠의 살색 대갈통은
검은색 트럼펫처럼 검은 머리칼을 내뿜고
피보다 붉은 죄 눈보다 희게
빨래 장인 예수님은 엄마 무릎 위 늘 말씀 중이신데
예수여 백합을 너무 많이 치켜든 엄마의 예수여*
우리 엄마를 백합질식사시키는 예수여
식탁 아래 걸레 뭉치
그 소녀는 걸레 트럼펫처럼 걸레를 내뿜고
내 몸엔 흰색이 없어
나는 흰색을 연기하지 않아
* 주는 저 산 밑에 백합, 빛나는 새벽별 (찬송가. <내 진정 사모하는>)
피읍
피읍
나는 나의 그곳을 에이야피야라요쿠울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아빠와 나의 얼굴 모양의 죄책감
나의 동시성과 비동시성이
피읍 피읍 시작한다
누구도 이름 붙이지 않아서 아무도 그 이름을 모르는
(우리는 탄생할 때 새 이름을 받지만
죽을 땐 아무도 새 이름을 받지 못하는 것처럼)
새들이 밤하늘 높이 날아간다
매주 한 번 주사실에 누워 주사를 맞는다
침대에 누워 늘 내가 째려보는 천장의 한 조각 얼룩무늬
병원 침상에서 2년 동안 아빠가 쳐다보던 그 얼룩무늬
나는 나의 에이야피야라구요쿠올을 건드리지 말아달라고 외치고 싶다
나의 피읍과 아빠의 피읍
서로의 피읍이 그 구멍 바깥으로 피를 토하는 그 순간
밤하늘을 날던 새가 천장의 얼룩 밖으로 고개를 내밀락 말락 하는 그 순간
내가 시계을 차면
전 세계가 5분간 시계를 찬다
그러면 나는 짐짓 또 그 시계 기차를 탄다
내게서 사방으로 시계 기차가 흩어져 간다
두 줄 레일 위에서 5분간 신선한 머리칼을 날린다
아이슬란드 빙하가 내게 안겨온다
피읍
피읍
훌쩍이다가
땅속 깊이 묻혀 있던
신의 피처럼 파란 피가
9미터 높이로
갑자기 분출하는 그곳
그곳이 그곳에 있다는 것
날아가면서 똥을 갈리는 새가
병실 창문에 와 부딪힌다
백색소음 에이야피야라요쿠울이 전 세계로 전속력으로 흩어져 간다
가늘게 떠는 차가운 손목처럼 새벽의 새 떼가 전 세계 병원의 지붕을 넘어간다
불을 환하게 켠 유리 엘리베이터들이비 맞는 숲을 헤치고 하늘 높이 치솟는다
내가 지하로 내려갈수록 엘리베이터는 높이높이 떠오른다
그러면 다시 잠시 아이슬란드에는 푸른 상어처럼 에에야피야라요쿠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