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홍의 나쁜 생각816 - 트랜드trend
동향이나 추세라는 말보다 트랜드라는 말이 더 익숙하게 통용되고 있다. 하긴, 동향이나 추세도 한자어인 動向과 趨勢에서 온 말이니 영어권에서 건너온 trend와 시대감만 다를 뿐 외래어라는 점은 같다. 주민등록증 이름 옆에 한자를 병기한 것을 중국에서는 중국의 아류라고 우리를 폄하하기도 한다. 문화적 대국 옆에서 그래도 꿋꿋이 생존한 우리의 힘은 외래어를 당당하게 수용하는 개방적, 즉 열린 기질 때문이라는 것을 그들은 읽어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오늘 하고 싶은 말은 이런 외래어의 문제가 아니라, 갈수록 트랜드에 뒤처진 문화는 그 힘을 잃어간다는 말이다. 그리고 지금 동북공정이니 뭐니 하면서 우리를 폄하하고 있는 중국의 근현대사도 트랜드에 뒤처져 혹독한 시대를 겪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렇게 말하고 있는 필자도 현대의 경제제일주의의 트랜드에 잘 적응하지 못했고, 그렇다고 무슨 정신주의 동향이나 추세에도 적응하지 못한 채, 여기 기웃 저기 기웃 눈치만 보며 살아온 셈이니 한심하다는 말이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갑자기 대중음악계에 트롯이 대세가 되었다. 필자는 모든 음악 장르엔 명곡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고, 곡에 따라 트로트도 좋아한다. 다만, 여기저기, 심지어 어린아이조차 한에 절은 트로트를 능숙하게 꺾어 재끼는 모습을 보다 보면 소름이 끼친다. 물론, 이 소름은 음악적 감동에서 오는 것은 아니다.
작별의 공동체 / 김혜순
새의 일지
아빠, 네가 죽은 방에서 나는 새가 된다
갈비뼈가 동그래지고
쉴 새 없이 두리번거리는 새가 된다
차곡차곡 오그라드는 풍경들이 책꽂이에 꽂힌 방
마야의 여자가 죽은 남자의 머리통에서 해골을 부수어내고
가죽만 남은 머리통을 뜨거운 모래 속에서 굽는다
그러자 주먹보다 작게 오그라든
머리통이 모래 속에서 출토된다
머리카락이 길게 붙은 새의 얼굴이다
여자가 남자의 양쪽 귀에 실을 꿰어 가슴에 매단다
나는 문에 구멍을 내고 간밤의 새를 들여다본다
저것의 눈에서 흰자위가 사라지고
검은 눈동자만 남았다
수영장 바닥에 누워 나는 생각한다 내 방에는 새가 있다
털 없는 새끼를 여럿 낳을 수 있는 새가 있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갑자기 수영장 바닥에서 커다란 새가 솟구친다
누군가의 허리춤을 잡고 오토바이를 타고
새벽 도로를 달려간다 나는 생각한다 내게는 새가 있지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갑자기 오토바이 뒷자리에 커다란 새가 앉아 있다
내게는 마야 여자의 가슴에 매달린 해골의 껍데기처럼 오그라든 얼굴이 있다
내게는 새가 있다 나를 혼자 두면 둘수록 새가 되는 새가 있다
쪼르르 달려가서 벽에 머리를 박는
이게 무슨 일이람
한 번도 포기하지 않고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책꽂이에 꽂힌 채
부리를 뾰족이 세우고
테니스 경기 관람하는 얼굴들이
이쪽저쪽 쉬지 않고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방에는 새가 있다
뜨거운 겨드랑이에 체온계를 꽂은 현기증이 있다
너 괜찮니? 물어도
고개를 까닥까닥 혼자 있으면서도
사교를 쉬지 않는 저 태도
너무 예민해져서 그 방에 들어갈 수가 없는데도
달아나면 어떡하나 자주 새를 보러 갔다
점점 새가 된다
힐끗새 문득새 잠깐새가 된다
만원 지하철에서 새가 된다
나보다 뇌가 천 배나 작은 새가 된다
지하철 바닥에 모여든 쥐 떼 같은
이빨을 갈아대는 신발들 사이에서
발발 떠는 새가 된다
아저씨가 엘리베이터에서 재채기를 한다
새가 된다
전봇대 아래서 비둘기가 자동차에 깔린다
새가 된다
자주새 더자주새 점점더자주새가 된다
백야의 밤에 태어난 새처럼
잠을 자지 않는 새가 된다
내가 들여다보면 노래하지 않다가
내가 떠나면 노래하는 새가 된다
빨대 같은 목구멍에서
커다란 숲을 게우는 새가 된다
먼저 살을 벗고
그다음 뼈를 벗고
이제 새만 남은
새가 된다
그 새가
저를 들여다보는 초라한 나를 본다
이제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내 인생의 유일한 기적으로
이렇게 되었다
내가 또 방을 들여다보자
새가 처음으로 입을 열어 내게 말했다
가
가
아빠, 네가
죽은 방에서 나는 새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