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기억 때문에 성인이 되어서도 힘든 삶을 살고 있다는 어떤 형제님의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너무나 컸습니다. 저는 이 형제님께 “어린 시절의 그 치명적인 상처가 없다면 지금 튼튼한 자아를 가지고 있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졌지요. 그러자 어렸을 때의 버려진 상처가 없었다면 분명히 지금보다는 나을 것이`라면서 눈물을 흘리시더군요.
상처 하나 없이 성장한 사람이 세상에 과연 있을까요?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크고 작은 상처를 받으면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순탄한 성장과정을 겪었다고 해도 무의식적으로 부모나 형제들에게 받은 상처가 분명히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상처 자체가 지금의 삶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끔찍한 유년 생활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더 크게 성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미국의 토크쇼 여왕 오프라 윈프리이지요. 그녀는 어린 시절에 가난, 인종차별, 성폭행 등을 통해 큰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타임지 선정 3년 연속 21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뽑힐 정도로 어린 시절의 아픔에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했던 말 몇 가지만 옮겨 봅니다.
“삶을 이끄는 것은 당신 자신이다.”, “나는 실패를 믿지 않는다. 과정을 즐겼다면 그것은 실패가 아니다.”, “설사 과거가 불행했더라도 그것에 사로잡히지 말고 최선의 인생을 살아가세요.”
자신이 지금 행복해질 수 없는 이유를 찾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행복할 수 없는 이유, 즉 핑계를 댈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찾고 이를 실행하는 것이 행복해지는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잔치의 비유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초대했지만, 하나같이 양해를 구하면서 참석하지 못한다고 하지요. 각종 이유를 대면서 말입니다. 결국 이 잔치에 초대되어 즐겼던 사람은 처음에 불리움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 등이었습니다. 바로 주인의 특별한 사랑이 보이는 부분입니다. 초대를 받았음에도 잔치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 주인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바로 자기 자신으로, 이 잔치에 갈 수 없는 이유와 핑계를 대고 있기 때문이었지요.
우리 역시 주님의 잔치에 초대받았습니다. 사랑의 잔치에 들어가야지만 행복해질 수 있는 삶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세상 것들에 대한 욕심과 이기심을 담긴 이유와 핑계를 대면서 갈 수 없다며 초대에 응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행복하지 못한 것을 다른 것에서 두고 있습니다. 가족 때문에, 이웃 때문에, 심지어 주님 때문에...
주님의 잔치에 기쁜 마음으로 응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잔치에 응하는 방법은 바로 주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사랑의 실천이었습니다.
때로는 사랑하다가 균형을 잃지만 그래야 더 큰 균형을 찾아가는 거야(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중에서)
동창신부 아버님의 장례미사 후 동창신부들과 점심식사.
내가 먼저 변화하면...
어떤 문제의 해결을 볼 수 있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쉬운 길, 또 하나는 어려운 길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길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당연히 쉬운 길을 선택하겠지요. 그런데 우리들은 알면서도 어려운 길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갈등 관계에 처했을 경우, 대부분 상대가 변화해야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그리고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상대방을 변화시키려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되지요. 그런데 그 노력의 결실을 맺게 됩니까? 실제로 여러분들 스스로가 한두 번은 그런 경험을 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나의 노력으로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운 일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이 갈등 관계를 풀 수 있는 쉬운 길은 내가 변화하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변화하면 의외로 쉽게 갈등도 해결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상대도 바뀌는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정말로 그렇지요. 남을 변화시키기는 정말로 어렵지만, 내 몸이니 나를 변화시키는 것은 남을 변화시키는 것보다는 훨씬 쉬운 일입니다. 문제는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내가 손해보고 있다는 생각 등으로 인해서 우리는 쉬운 길이 아닌 어려운 길을 선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찾아오고 있는 많은 갈등들... 과연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쉬운 방법으로? 아니면 어려운 방법으로? 그 선택은 여러분 각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어제 장례미사가 있었던 서울 논현2동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