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테제_ 『고전시가 쉽게 읽기: 옛사람의 사랑과 욕망』 (이정선 지음, 보고사, 214쪽, 2024.02)
『고전시가 쉽게 읽기』는 ‘고전시가’를 어렵게만 생각하는 독자를 위해 쉽게 풀어 쓴 안내서이다. ‘고전시가’라고 하면 고서점 책장에 꽂혀서 현재 우리와는 별개의 공간과 사연이 담겨있는 것으로 치부하기 쉽다. 그것은 고전시가를 연구하는 전공자들에게나 필요한 것이지 일반 대중에게는 별개의 언어요, 낯선 세계를 노래하고 있다고 여길 수 있다. 학창 시절 우리에게 고전 작품은 감상의 대상이 아닌 늘 시험이라는 목적을 가진 부담스러운 대상이었다. 고전을 이해하려면 지금과는 다른 정서와 문화의 강을 건너야 하는 것도 버거운데 옛말로 쓰인 표기법은 마음의 짐을 더했다. 이러한 저간의 사정들이 고전에 대한 두려움으로 비화하여 고전을 기피하는 데 한몫을 했으리라 생각된다. 만약 이것이 원인이라면 이런 두려움을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더라도 장벽에 대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따라서 고전시가를 이해하기 쉽도록 현대어로 바꾸고, 거기에 담긴 정서와 감정이 오늘날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가儒家의 경전인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은 당시의 정치와 풍속을 그 시절의 언어로 옮긴 글이다. 서양에서 최고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셰익스피어의 희곡도 그가 살던 때에 인기가 있었던 통속극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고전인 향가나 고려가요, 시조, 판소리, 민요도 그 당시에는 대중들이 즐겨 부르던 유행가요였다. 이처럼 지금 고전으로 불리는 것은 작품이 쓰인 당시에는 가장 통속적인 언어로 백성들의 정서를 표현한 것이다. 시대가 지나면서 그런 작품을 일러 ‘고전’이라 부를 뿐이다. 이런 원리라면 미래의 노래 또한 현재의 노래가 되고, 과거의 노래가 되는 셈이다. 『고전시가 쉽게 읽기』는 이런 생각에서 출발했다.
먼저 고전시가를 내 삶의 언저리에서 찾기 시작했고, 정서와 감동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싶었다. 자녀들 학교 때문에 이사를 갔던 곳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어려움을 겪으면서 왜 이곳으로 이사를 왔을까? 이곳으로 이사만 오지 않았더라면 이런 고통은 없었을 것이라고 후회하며 <청산별곡>의 화자를 만났다. 한 달 반 정도의 간격으로 우리 곁을 떠나셨던 부모님을 생각하며 <사모곡>과 <공무도하가>를 해석하였다. 나보다 6살 위 누이를 떠나보내면서 든 생각을 월명사의 <제망매가>에 이입시켰다. 작품 속 화자의 입장에서 상대[임]를 바라보게 되었다. 화자와 임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때로는 내 자신이 화자가 되기도 하고, 매정한 임이 되어 그들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또한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현대가요와 가곡, 현대시와 소설, 영화와 광고 등 다양한 재료를 버무려 작품 해석의 도구로 삼았다. 이를테면 <가시리>의 작품을 가수 선미의 <가시나>노래와 견주어 설명하였다. <서경별곡>에서 등장하는 ‘배’는 ‘이별의 매개체’가 된 점을 착안하여, 양중해 시인의 <떠나가는 배>를 나란히 두고 감상하였다. 양중해 시인의 작품에는 시인 박목월 선생과의 일화가 담겨있었고, 이를 변훈 선생이 작곡을 하여 가곡으로 부르게 된 점이 고려시대 궁중악으로 사용된 <서경별곡>과 유사한 점이 많음을 알 수 있었다. 신라 성덕왕 때 백발노인이 수로부인에게 꽃을 꺾어 바치면서 불렀다는 <헌화가>에서 지난 1998년 6월 현대그룹 창업자인 고 정주영 회장이 소를 태우고 방북했던 사건을 소환했다. 신라 시대의 노인이 몸소 소를 끌고 가는 모습이 소를 트럭에 싣고 가는 것으로 바뀌었을 뿐 소를 데리고 가는 두 노인의 모습과 그 의도가 너무 흡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책을 출간하기 전 학생들에게 먼저 선을 보였다. 수강 신청을 한 학생들은 고전시가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과 문학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을 보면서 요즘 학생들이 무조건 눈에 보이는 실용적 가치에만 관심을 두고 있을 것이라는 편견을 바꾸게 되었다. 옛사람들의 사랑과 욕망에 관련된 작품을 한 편씩 들려주며 그들의 생각을 정리하게 하였다. 또한 이런 작품과 유사한 혹은 대비되는 작품을 찾아보라고 과제를 부여하기도 했다. 오늘날 빠르게 변모하는 현대 가요나 영화, 드라마 등의 흐름에 둔한 나와는 달리 학생들은 관련 작품을 소개하며 그동안 자신들이 어려워만 했던 고전시가 작품을 그들의 방식으로 쉽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그동안 고전시가를 공부할 기회가 없었고, 방법을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었을 뿐이지 처음부터 고전시가를 무조건 배격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런 사실들이 책을 출간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했다.
고전시가에는 오늘 우리들의 삶과 다를 바 없는 마음의 표현과 삶의 희로애락이 녹아있다. 문학은 누군가의 삶을 대신 체험하게 하는 매체이다. 아무도 살아보지 않는 미지의 세계를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문학을 사랑하고 가까이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모쪼록 이 책이 고전시가를 어려워하는 이에게 쉽게 안내하는 이정표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 책은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아련한 추억 - 간절한 소망 - 불붙은 정열 - 지난날의 후회”로 구분하여 해당하는 작품을 배치하였다. 그러나 구분을 넘나들 수 있는 작품도 더러 있을 수 있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주제를 요목화 한 것임을 밝힌다. 이 책에 수록한 작품은 고려가요를 위주로 선별하였고 고조선과 신라시대 몇 작품을 포함하였다. 이는 고전시가의 범주에 들 수 있는 향가를 위시하여 고려가요, 시조나 가사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번에 다루지 못한 작품들은 시간을 갖고 살펴볼 생각이다. “고전시가 쉽게 읽기”라는 책 제목처럼 독자들의 눈높이를 맞추고자 했지만 독자가 어렵게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오로지 저자의 책임이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질책을 바란다.
이정선 호서대·고전시가
호서대학교 창의교양학부 교수.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고전시가를 전공하였다. 「조선후기 한시의 조선풍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시대를 거슬러 고려시대 사람들의 사랑과 욕망을 엿볼 수 있는 고려가요를 탐구하였다. 10여 년의 결과물을 『고려시대의 삶과 노래』로 출간하였다. 『조선후기 조선풍 한시 연구』, 『고전시가 엮어 읽기』(공저), 『퇴근길 인문학수업』(공저), 『청소년 인문학수업』(공저)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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