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조시인(民調詩人) 비백(飛白) 여윤동(呂閏東)은, 약 30 년 간 새 민족정형시 개척을 위해 고군분투한 시인․연극평론가 아산(鵝山) 신세훈(申世薰)의 추천을 받아 계간 ꡔ자유문학ꡕ 제18회 신인상 당선으로 문단에 나왔다. 추천자는 그 당시 ‘여윤동님을 발견하게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1)여, ‘이 나라의 민조시 개척 선두에 서서 지휘해 줄 것을 당부’2)했거니와, 그 당부가 마침내 ꡔ天山의 피붙이ꡕ 상재(월간문학사, 2005. 10. 20)로 실현되었으니, 기쁜 나머지 ‘민조시 만세를 불러봐도 되겠다’3)고 했던 바, 이는 곧 이 작품집이 우리의 새 定型
민조시의 전범(典範)임을 뒷받침해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렇게 비백을 민조시인으로 키은 아산 시인은, 지난 5월 27일, 배제학술지원센터에서 열린 ‘한국시문학아카데미 강연회’에서 ‘민조시 제안’을 발제한 자리에서, ‘우리의 전통 가락의 현대적 구현’인 ‘3․4․5․6 조’가 ‘ 사상의 실천’이라 하고, 그 특성을 아래와 같이 열거하였다.
민조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로의 설명으로 구체화시켜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민조시는 정형률에 의한 정형시이다.
둘째, 민조시는 ‘3․4․5․6’의 자수율을 근간으로 한다.
셋째, 민조시는 추임새와 거듭장단을 지닌다.
그리고 민조시의 의의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가 있습니다.
첫째, 사상을 근간으로 한다.
둘째, 현대적 요구와 의식의 표현에 부응할 수 있는 율조와 형태이다.
셋째, 한국적인 정서를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다.
넷째, 창작 주체에 있어, 민중성이라는 입장을 고려한 것이다.4)
이 중에서 ‘3․4․5․6’의 수리(數理)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면, ‘3’으로 시작하는 이유는 ꡔ천부경ꡕ에 나오는 ‘천(天)․지(地)․인(人) 3재(三才)’나 ‘원(圓)․방(方)․각(角)-(○□△)’ 3원(三元) 체계와 같은 기본 수리이고, ‘4’는 가사나 시조에서와 같이 널리 선호되는 수리이며, ‘5’를 거치는 이유는 짝수 ‘1․3․5․7․9’의 중간인 기둥소리이기 때문이며, ‘6’은 짝수 ‘2․4․6․8․10’의 중간 기둥소리이기 때문인데, 특히 후자는 ‘3+3’으로 나뉘어지므로 결과적으론 ‘3’으로 끝맺는 구실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7’ 이상의 수들은 ‘3+4’처럼 분석되므로 굳이 설정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런 민조시의 성격과 의의를 시인․평론가 문덕수(文는德守)는 ‘21세기의 우리 詩, 다시 언어를 생각한다’는 좌담회에서, ‘인간의 생체의 기본 리듬 단위인 16초와 가깝’고, ‘일본의 정형시인 하이쿠(俳句)와 중국의 한시인 근체시 5언 절구의 가운데’ 든다는 점을 들어, ‘申世薰의 탁견에 놀라움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5)고 높이 평가한 바 있거니와, 이는 아산 시인 개인만이 아니라 민조시 자체의 양식의 우수함도 아울러 인정한 것이어서, 필경은 비백 시인의 이 작품집의 뛰어남과도 연결이 닿는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런 민조시의 특징을 유감없이 살려내어 10년 동안 창작한 76편을 묶어 상재한 것이 본 작품집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민조시의 창안자말고는 처음으로 이 땅에 내놓은 민조시집이어서, 그 의의가 자못 크다는 말이다.
이제 이 민조시집 ꡔ天山의 피붙이ꡕ의 분석함에 있어 5부 중 가장 핵심이 되는 제1부를 자세히 다루고 나서, 나머지(제2~5부) 작품들은 부(部)와 관계없이 해설자가 임의로 나눈 세 가지 유형에 따라 서술해 나가는 방식을 취하기로 한다.
I. 겨레의 뿌리 찾기와 自尊心 되찾기(제1부)
제1부에 수록한 17편의 민조시들은 우리 겨레의 뿌리를 찾거나 자존심을 되찾은 격조 높은 작품들이 많다. 그 전형적인 예가 시집의 벽두를 장식한 표제시 「天山의 피붙이」이니, 이는 正史 이전의 신화를 다룬 작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비백 시인의 시야의 크기와 겨레에 쏟은 애정의 깊이가 함께 반영되어있다.
西紀元 8천 9백 36년 전 天山 산기슭 伊甸 숲속에 天帝 桓因氏 하늘문 열었다. ‘한’나라 세웠다.
伊甸園 천산할배 그 혈통이어 도읍 阿斯達 옛조선 세웠다. 在世理化했다.
슬프다, 곰새끼 개국 신화 어미아비도 알지 못하는 천산할배 손 그 피붙이들, 그늘도 없는 들풀숲
에서 일어서려나 일어서려나.
언젠가 밝혀질.
이 한 편의 민조시는 4연으로 구성되었으나, 민조시의 수수(首數)는 제1연과 제2연이 각각 두 수씩인 데 반하여. 제3연과 제4연은 합해서 한 수를 이루어, 모두 다섯 수인 연민조시(連民調詩)이다. 참고로 이 작품의 음수율을 숫자와 부호로 표시하기로 한다.
[연(聯) 구분은 꺾쇠괄호숫자 ‘[1] [2] [3]’ 등으로, 수(首)의 거듭됨은 원내숫자 ‘① ② ③’
등으로 각각 표시하되, 연결부분은 더하기표 ‘+’로 표시한다. 같은 음수의 되풀이는 소괄호
‘( )’ 속에 넣어 표시하는 반면, 복수행이나 복수연이 합쳐 하나의 음수율을 이룬 경우에는
각개 행의 숫자를, 합쳐진 음수율 뒤에 추기한다.]
[1] = ① : 3․4(4)․5(5)(5)(5)․6(6). + ② : 3․4․5(5)․6(6).
[2] = ① : 3․4․5(5)(5)․6. + ② : 3․4․5(5)(5)(5)․6.
[3] = ① : 3(3)․4․5(5)(5)(5)(5)(5)(5)(5)
[4] = + (6)
추임새와 되풀이가 허용되는 이런 3․4․5․6조를 구사하여 일만 년도 넘은 아득한 선사시대에 중원대륙에다 나라를 세운 ‘天帝 桓因氏’와 새로이 태어난 단군을 노래함으로써, 많은 국민들이 여태껏 알고있는 반만년에 걸친 한반도 중심설이나 만주설을 뛰어넘어, 어쩌면 황인종의 시조가 될, 일만 년이 넘는 거룩한 우리 겨레의 뿌리[긍지]를 노래한 민조시인 데 큰 의의가 있다.6)
또한 ‘곰’과 ‘호랑이’가 실재의 짐승이 아니라 종족 이름임을 깨달으면, 지금까지 우리가 들어온 ‘곰의 후예’라는 설은 너무도 황당하고 왜소하여 스스로를 낮춰온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면서도 같은 종족간에 치러진 내혼(內婚)이기 때문에, 부모를 확실히 모르는 설움과 그것이 밝혀지기 바라는 소망이 간절하다. 요약하면 ‘나’를 포함한 ‘우리’ 겨레의 뿌리를 제대로 추구하여 새로운 음수율로 표현했고, 그 규모 또한 일찍이 유례를 볼 수 없을 만큼 웅혼한 점이 특징이다.
여기서 민조시의 구성상 고려되어야할 점을 지적하면, 제4연의 ‘언젠가 밝혀질’(6음)을 독립된 연으로 설정한 것은, 앞의 도해에 의해서도 부자연스러운 점이 드러난다. 왜냐하면 비록 그 이유가 강조에서 말미암은 것이긴 하나, 자유시와는 달리 음수율의 제한을 받는 정형시에선, 정해진 음수율이 완결되지 않은 채 새로운 연이 구성되는 건 무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표기면에서 또 한 가지 아쉬움으로 남는 것은, ‘者無與爲婚’나 ‘伊甸’ 같은 한문이나 ‘리’[女性器] 같은 없어진 옛글자도 섞인 점이다. 그러나 이 작품과 유사한 내용을 다룬 「太初의 소리」나 「伊甸園 꽃」에선 한문이나 없어진 글자가 사라지고 한자표기도 한결 줄어 다행스럽다.
이렇게 선사시대 우리 겨레의 위대성 내지는 긍지를 노래한 비백 시인이기에, 현대사를 노래할 경우 외침으로 멍든 치욕을 간과할 리가 없었으니, 과거 5백여 년 간 우리 왕조정치의 중심 무대를 소재로 한 연작 「‘勤政殿’ 햇살․1」과 「‘勤政殿’ 햇살․2」가 그 좋은 예이다.
총독부 건물이 무너진다,
원숭이들이 노래를 한다,
벚나무가질 타고내리던 원숭이들이
원숭이들이 난장을 벌인다.
줄비한 벚꽂에도
재롱부리던 원숭이들의 두 눈가에도
그 긴세월을 어둔 빛으로
물들여놓았던.
‘광화문․광화문’
총독 건물 내려앉는다,
무릎을 꿇은 히로히토의
볼멘 목소리,
구름사이로 들리어온다.
‘勤政殿’ 앞뜰에.
착공한 지 장장 8년 2개월만(1926연 10월)에 낙성된 후 갖은 악명을 떨친 조선 침략의 牙城이자 세계정복의 총 사령탑이던 복마전(伏魔殿) ― 일본국화 ‘벚꽃’에 들러싸인 조선총독부 건물이 헐리는 역사의 장을 읊은 이 작품은, 각개 한 수씩으로 된 모두 3연 구성인 연민조시인데, 철거공사가 시작되자 ‘원숭이들’의 난장판이 벌어지며, 여태 그 건물 때문에 빛을 잃었던 광화문이 빛을 되찾아, 그 뒤쪽 근정전 앞뜰에 침략의 정점인 일왕 ‘히로히토’의 무릎 꿇어 지르는 ‘볼멘 목소리’가 들려옴으로써, 국권을 강탈당한 겨레로서 자존심이 회복된 긍지를 간직하면서도, 광복 50년이 되도록 친일(親日)을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잘못도 뼈저리게 반성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히로히토의 ‘볼멘 목소리’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탄이 떨어진 후 무조건항복을 했을 때만이 아니고, 그들의 한국침략의 흔적이 사라지는 총독부 철거 때도 함께 의미하는 것인즉, 그 ‘볼멘 목소리’에 접하자 해설자에게는 약 70년 전 총독부 청사를 짓는다고 우리의 혼과 빛의 상징인 ‘光化門’을 헐겠다고 나선 그들의 만행이 연상되어, 그로 말미암은 우리 선민의 비탄의 문학이던 「헐려 짓는 光化門」(薛貞植의 수필)이 떠올라, 그토록 당대 선인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철거의 ‘망치 소리’가, 이제 무릎 꿇은 히로히토의 ‘볼멘 목소리’와 겹쳐짐으로써, 약 40년 간 국권을 빼앗긴 데다가 해방 50주년(작품발표 당시, 현재로선 60주년)이 되도록 친일을 청산 못한 겨레의 부끄러움을 절감케 하니, 이 작품은 얼마나 큰 힘을 지니고 있는가.
이렇게 조선에서 시작된 일제침략은 그 뒤 중일․러일 전쟁을 거쳐 마침내 진주만 기습공격으로 치달음으로써, 지난 7월 14일 미국 하원에서 통과된 ‘태평양전쟁승전기념결의안’에 명시된 바, ‘일본군국주의’야말로 ‘전쟁의 주범’으로 규정지었으니, 그 침략의 우두머리를 무릎 꿇려 ‘목멘 목소리’를 지르는 희화적인 장면을 마련한 이 작품의 창작수법은 매우 독특하여 독자에게 큰 감동을 준다.
다만 표현에 있어, 마지막 연 끝 무렵에 나오는 ‘들리어온다’는 공교롭게도 한 대중가요의 가사와 똑같으니, 연상을 막기 위해 ‘들리쟎느냐’와 같은 의문형으로 바꾸면, 읽기에는 다소 딱딱하지만 품격의 유지와 단순서술에서 오는 산문화의 우려도 막을 수 있다고 본다.
이번에는, 연작 후편인 「‘勤政殿’․2」로 넘어가자. ‘원숭이’는 간 데 없고 깍쟁이의 화신 인 ‘불여우’가 대신 자리를 잡고 있다.
첫 연에 마구간이 무너지는 데도 교활한 습성은 여전한 ‘불여우’를 등장시켜 ‘원폭버섯구름’의 상징인 ‘버섯꽃가루’를 뒤집어쓰는 희화적(戱畵的) 장면으로 시작하여, 2연에선 이미 만여 전 환인씨에 의해 개국된 백의민족의 후예에게 깊은 상처를 입힌 침략자의 자업자득임을 노래한 다음, 3연에서 심기일전 아픔을 딛고 일어서 민족정기 말살의 도구인 ‘쇠뿌리’를 뽑아내어 반전(反轉)의 기틀을 마련, 끝 연에서 시공간 양면으로 무한한 번영을 누릴 결연한 의지로 매듭지었으니, 뜨거운 민족애를 새로운 우리의 가락으로 훌륭히 노래하는 데 성공한 수작이다.
이렇게 욕된 과거를 극복하여 대과거의 상태로 회귀하는 시상을 전개시킨 것은 우리의 뿌리 찾기를 염두에 둔 때문이었으니, 비백 시인의 이런 과거에로의 회귀는 고향 찾기와 관련을 맺는데, 두 연으로 짜여진 「천궁 그리버」에도 잘 나타나있다.
아기는 아장이다, 애간장을 쓸어낸다,
천궁 그리버, 세상 더러버 두 눈 꼭 감고
실비내리는 차가운 밤에 혼불태우는
가녀린 줄을음.
꿈속에 들려온다, 끊어질 듯,
이어질 듯
천궁풀숲 이어매진 명주실올 손에 꼭 쥐고
여름 한낮엔 그늘도 없는 들풀숲에서 노해해야 할
서리내리는 초가을밤엔 감출 수 없는 알몸 그대로
애달피 푸는 들꽃노래소리.
첫 연은 1~2행에서 시조의 초장 ‘3․4․4․4’를 그대로 썼으나, 단조로운 반복을 피해 그 다음 3~6행에선 ‘5’음으로 바꾸었다가, 마지막 행에서 ‘6’음으로 마무리지었으니, 민조시가 시조의 가락을 일부 수용하면서도 다양하게 발전시킴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시어 및 활용형 선택에서 볼 때, ‘그리버’라는 사투리(고어활용형이기도 함)가 개인적 삶의 근원이자 겨레의 뿌리를 상징하는 ‘천궁’과 썩 잘 어울릴 뿐만 아니라, 그 동작의 주체인 ‘아기’와도 호흡이 맞는다. 나아가 2연에서는 그리도 ‘그리’븐 까닭이 값진 우리의 것이기에 ‘명주실올’에 의한 양자의 연관이 긴밀해진 것도 특기할 만하다.
그런데 이 ‘그리버’란 독특한 활용형이, 실은 아산 시인의 ‘월남전’을 다룬 「고국의 울엄매 그리버서」7)에도 쓰이었으니, 이는 두 시인사이의 끈끈한 정을 말해주는 듯하다.
말이 난 김에 덧붙이면, ‘월남전’을 배경으로 한 아산의 작품에선 ‘그리’븐 먼 조국과 대비된 현실(전쟁터)의 고통이 행간에 숨어 있는 데 반해, 비백의 작품에선 이상과 너무도 거리가 먼 현실이 ‘세상 더러버’로 뚜렷이 적시된 차이가 난다.
이번에는 「실릭원(失樂園)」을 상기시키는 「헐벗은 꽃가슴」으로 넘어가자.
태초엔
실올 하나 걸침도 없이
날것들놀이 함께 즐기던
들꽃이었다, 바람에 춤추는.
달콤한 혓소리에 몰래 따먹은
벗은 몸으로 함께 단맛본
사과 하나로 알몸 감추게 된.
벗은 몸 앞에서도 벗질 못하는
부끄런 속살 감출 수 없어
눈을 감으며 혀를 날름대며.
꽃봉들 춤을 춘다, 노란꽃술 흔들어댄다,
또
그 무엇을 따먹으라는,
겨울이 와도 벗은 몸으로
꽃내흘리는 독가시꽃술
헐벗은 꽃가슴.
이 작품은 제2연의 ‘사과 하나로/ 알몸 감추게 된’으로 보아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가 연상되니, 어쩌면 ‘에덴’도 ‘伊甸’이 아니겠는가 하는 추정을 가능케 해준다.
제3연에서의 1~2행은 2중의 역설인 점에서 주목을 끄는 바, ‘벗은 몸 앞에서도 벗질 못하는’ 것이 그 하나고, 옷을 입어도 ‘부끄런 속살 감출 수 없는’ 것이 또 다른 하나이다. 이렇게 우리의 민조시는 일정한 음수율을 지키면서도 심오한 내용세계를 자유시에 버금갈 만큼 잘 표현해내는 장점이 있음을 실증해준다.
제1부의 작품 해설은 「흙이 되는 봄」의 언급으로 마무리하기로 하자.
갈잎이 길바닥에 널려있다,
햇볕쪼이며
밤이슬말리며.
발길에 짓밟히다,
어디론가 사라져갈,
푸르던 한땐
그늘밑에서 땀을 말리던 그들마저도
멀어져만 가고.
바람에 나뒹굴다, 한 줌 흙이 될
꽃을 기다린다.
이 작품의 시상은, 만물은 변하기에 외로우면서도 필경은 남을 위해 이바지하는 존재라는 깨달음을 안겨줌으로써, 외롭게 닫힌 문을 열게 해주는 힘이 있을 뿐만 아니라, 늘 푸르름을 갈망하며 새 희망으로 살아가는 비백 시인 자신의 건강미가 담겨 있다.
II. 힘겨운 삶의 現場 捕捉 表現(제2~5장)
제2~5부의 작품들 중에서 뛰어난 시편들을 뽑아 보니, 타고 난 목숨에 대한 연민의 정을 읊은 것과,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풍자, 그리고 이산 가족․분단 현실의 극복 의지 등 세 부류로 갈라지니, 차례대로 작품 두어 편씩을 설명해 나가겠다.
1. 타고 난 목숨에 대한 憐憫
이에 해당하는 시편은 음식점에서 ‘매운탕’을 사 먹다가 ‘메기’에 대한 생각을 고쳐 먹는「「양수리에서」가 대표작이다.
수족관 메기들은 평화로웠다, 죽음앞에서 자유로웠다, 굵은막대기 그물에 담겨 파닥거리는 동료를
보며 냇물밑에서 세상밖으로 끌려나오던 그땔 기억할까. 마지막 가는 길, 또다른 세계로 가는 길, 넓
고넓은 이세상보다 더 넓고높은 세계를 꿈꾸며.
양 볼에 취기가 엷게 물든 그녀를 끌며 아기 보채듯 말을 던졌다. ‘보시하시오’ ‘보시는 무슨’ 배부
른 돼지 울음소리가 슬픈 까닭을 알 리 없었다, 양수리달은 그날 그렇게 기울고 있었다.
갑자기 누군가 저높고먼 우주밖에서 날 훔쳐보고 있는 것같았다. 배불리 메기를 잡아먹고, 한가로
이 놀고있는 수족관메길 훔쳐보고 있듯. (부분)
모두 3연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각 연마다 여느 시처럼 개행(改行) 처리하지 않고 산문시 형태로 내리적었지만, 저마다 ‘3․4․5․6조’로 짜여져 있다.
내용에 있어서는, 음식점에서 매운탕을 사 먹는 일상적인 삶의 현장에서 불현듯 죄 없이 죽은 메기가 가여워지면서 세상이 낯설어진 내면세계를 읊은 것으로, 고려시대 이규보(李奎報)의「견슬설(犬蝨說)」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개’와 ‘이’의 목숨이 몸집의 크기에 따라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님을 말했거니와, 비백 시인은 하찮은 물고기나마 사람의 식욕 때문에, 타고난 그 목숨이 지상에서 사라져버리는 데 대해 연민의 눈물을 쏟고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만물의 영장인 ‘사람’에 비해 너무도 보잘 것 없는 미물인 ‘메기’의 존재 때문에 별로 큰 관심을 환기시키지 못할 것 같지만, 다른 한편으론 미물로 태어난 것밖엔 근거가 없는 죽음이기에 안쓰러운 공감을 얻게되는 것이다.
이런 양면성이 하나로 지양돼 나가는 과정이, 첫 연의 ‘더 넓고 높은 세계를 꿈꾸며’ 가는 길이 죽음의 길이 되는 의미심장한 역설에 의해 강화되어, 끝 연의 역지사지(易地思之)의 필요성에 의해 더욱 심화되어 나간다.
목숨은 너․나 할 것 없이 소중한 것인데도 각박해진 현대는 미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사람의 목숨까지 대량살생무기 앞에서 맥을 못 추게 만들어버린다. 아산 시인은 일찍이「지금 참으로 중요한 것은」에서 “사상이 다르다는 그 이유 하나로/ 나를 죽이러 온다는 그 이유 하나로/ 내가 먼저 죽여놓아야 돌아갈 수 있을까.”8) 하고 고민한 바 있거니와, 그 뒤를 따른 비백 시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지금 사람 아닌 미물의 목숨이 사라져버리는 데 대해 안쓰러워하고 있다.
이제 표현면을 살펴보면, 두 수의 민조시로 짜여진 제3연에서 첫 수의 거듭되는 ‘5음수’와, 일단 마무리되는 ‘6음수’가 검토 대상이다.
[3] = ① : 3(3)․4․5(5)․6 + ② : 3(3)․4(4)(4)․5․6 .
“날 훔쳐보고 ∨ 있는 것같았다”에서 ‘훔쳐보고’는 복합어로 된 본용언이고, ‘있는’은 보조용언이기 때문에, 의미에 있어서나 발음과정에 있어서나 따로따로 떨어지지 않고 한 덩어리가 되기 때문에, 이를 갈라놓는 것은 인위적이어서 부자연스럽다. 그러기에 붙여써야하겠는데, 그러자니 음수가 넘쳐 ‘7음수’가 되어버린다. 따라서 맨 앞에 있는 ‘날’을 일단 떼어 뒤쪽으로 옮겨보면, 도치 현상이 나타나 변화를 일으켜 좋은데, 이번에는 음수가 모자라 ‘5음수’밖에 안 된다. 하는 수 없이 미운 오리 새끼 같은 목적격조사지만 ‘를’을 붙이는 궁여지책을 써 본다. 이때 ‘것같았다’에 쉼표를 찍는 걸 잊지 말아야 하니, 왜냐하면 곧 도치된 문형임을 알리는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원작과 퇴고의 차이를 도시해 보이면 아래와 같다.
지극히 옹색한 닭장 안에서, 그저 ‘알낳는 재주’밖에 없는 암탉, 그나마 생명의 핵인 ‘씨’가 없는 알만 낳는 암탉과, ‘김빠진 연장’으로 부질없이 ‘암탉소릴’ 내는 수탉에 대해 연민을 쏟는 바, 주야를 가리지 않고 되풀이되는 단조로운 삶의 바탕에는 대량생산으로 오직 이윤 챙기기에만 급급한 규격화돼버린 현대인의 메마른 정서가 도사리고 있음이 행간에 시사된다. 따라서 이 작품은 인간의 단점을 짐승을 빌려 빗대어 표현하는 풍자문학과의 거리가 그다지 멀지 않다고 본다.
이미 2300여 년 전, 고대 희랍의 아리스토텔레스는『시학(詩學)』에서 비극은 ‘연민(憐憫)’의 정을 환기시키고, 희극은 평상인보다 부족한 이의 결점을 찌른다고 말했거니와, 비백 시인의 이 작품은 한 작품 속에 그 두 가지 씨앗이 모두 잉태되고 있다고 할 만하다.
한편 작품공간에 자리잡은 ‘랩’이나 ‘무스’ 같은 외래어로 미루어[그 남용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민조시가 현대인의 삶을 표현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는 훌륭한 정형시임이 확인된다.
2. 不條理에 대한 諷刺
이 민조시집에는 부조리에 대한 풍자 작품이 눈에 띈다. 풍자는 권위를 부정하는 것이어서, 곧잘 인간을 동물의 위치로 끌어내리며, 웃음을 퍼붓기 위해서도 동물의 등장을 선호한다. 이미 앞에서 살펴본 바 있는 「勤政殿 햇살․1」의 무릎 꿇은 히로히토의 볼멘 목소리가 원숭이의 난장 장면이어서 어딘가 우스꽝스러웠고, 「勤政殿 햇살․2」에서의 ‘불여우’도 어딘가 예사롭지 않았던 이유를, 이제 제대로 깨닫게되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이다.
이런 의미에서, 어찌 보면 여성을 ‘동물’과 연관시켜 노래한 「꿈꾸는 꽃뱀」도 종족 유지를 위한 생식과는 무관계한 짓거리를 노래한 점에서, ‘양면적’이긴 하나 풍자에 접근하는 작품이라 볼 수 있다. 아니면 아담의 마음에 양면적인 감정을 불러일으켰던 ‘이브’의 형상화일 수도 있다. 두 연 내지는 세 연씩 묶어 각각 ‘1’․‘2’ 번호를 매긴 특이한 구성방식을 취한 이 작품에서, 앞 부분을 인용한다.
1.
여자는 꽃뱀인가, 또아리를 예쁘게 틀고 문열리기를 노리고있는 능구렁인가, 깊은 밤이면 번들거
리는 몸뚱어리로 사나운 혀를 날름거린다, 새벽종소리 덩덩 울 때까지.
밤마다 달겨들어 뱀질해대는, 징그럽지만 귀엽기도 한, 잘못 손대면 독을 내뿜는, 곁에 없으면 귀
엽기도 한 여자는, 여자는.
부분이나마 인용한 김에 창작상의 장점을 들면, 우선 여체를 ‘뱀’의 몸을 빌려 표현한 상호관계에 있어 밀도가 있고, 둘째론 그 유사성이 육체만이 아니라 집념의 강도까지 표현해낸 점이며, 셋째는 ‘징그럽지만 귀엽기도 한’처럼 한 대상 속에서 이중으로 나타나는 복잡 미묘한 감정세계까지 그려낸 점이다.
이제 이 민조시집에서 가장 필봉이 날카로운 풍자의 표본인 「장안의 개짖는 소리」로 넘어가겠다.
바람이 불어온다, 물바람인지 돈바람인지, 길거리마다 선술집마다 불가슴들이 술을 거른다, 가슴
들끼리 들숨 몰아쉰다.
그토록 보통사람 되자 권하던 ‘믿어주세요’ 단 한 곡조로 티뷔 스타된 그이후부터 푸른기와집 지
붕밑에서 덩덩대더니, ‘울고 싶어라’ 바꿔 불러도 햇눈은 멀똥, 돌아앉아 웃다.
제5공화국의 몸통이던 최고 거물급 인사를 다룬 이 작품은, 바람 부는 거리 선술집에서 빙허(憑虛)의 「술 권하는 사회」를 방불케 하는 술꾼들을 내세워, 권좌에 앉겠다며 애원하던 ‘믿어주세요’란 ‘보통사람’ 타령이, 어처구니없이 변질돼버린 역사적 상황을 노래한 것인데, 매우 기발한 착상과 더불어, 장밋빛 약속이 별안간 ‘울고싶어라’와 ‘꽁보리밥’에 의해 급전직하, 낙차가 무척 커짐으로 빚어진 아이러니의 효과와 함께, 공약이 빛 좋은 개살구인 양 한낱 속임수에 불과했음이 ‘바람소리’나 ‘개 짖는 소리’, 특히 동물을 등장시켜 권위를 떨어뜨린 후자에 의한 풍자의 효과는 유례를 볼 수 없는 일품이다
문득 해설자의 머리에, 19세기 러시아의 세계적 시인 뿌쉬낀의 「아락쳬프」가 쟁쟁히 들려온다. 계제에 ‘3․4․5․6조’ 민조시로 옮겨보자꾸나.
그 자는 온 러시아 전제자지
총독이자 박해자며,
자문관에다 국정조정관,
황제에게는 친구에 연배,
악의․복수에 사로잡힌 몸,
슬기도 없고, 인정도 없고, 체통도 없는
그는 누구인고, 아첨 없는 충성
< ― ― ― !> 형편없는 졸병.9)
초기에는 자유주의적 개혁에 힘썼다가 이른바 ‘조국전쟁’ 후로는 반동정치로 말안장을 갈아치운 알렉산드르 I세(1777-1825)와 죽이 척척 맞아, 극단적인 군사전제정책을 강행한 군인․정치가 알렉세이 안드레비치 아락쳬프(1769-1834)에게 하고많은 관직과 모든 악덕을 열거하여 맹렬히 공격을 강행한 시인데, 비백 시인의 풍자와 한 쌍의 멋진 상호대(相好對)가 될 만하다. 그러고 보니, 우리 민조시는 풍자시를 포함한 외국시를 옮기는 데도 별 손색이 없는 시 양식임이 확인된 셈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미 아산 시인이 앞에서 밝힌 ‘현대적 욕구와 의식의 표현에 부응할 수 있는 율조와 형태’인 데다가, ‘추임새와 거듭 장단을 지닌다’고 지적한 내용들이 훌륭히 말해 준다.
그러면 새로운 항목으로 넘어가기에 즈음하여,「장안의 개짖는 소리」와 대척적인 위치에 놓인 「밤 家長, 낮 社卒」이, 비백 시인 자신의 평범하면서도 청렴한 사람됨을 추정할 수 있는 작품임을 덧붙여둔다.
3. 分斷克服의 意志
일만 년이 넘는 대과거에 우리의 뿌리를 찾아 그 긍지를 노래했고, 한 세기 전부터 시작된 일제 침략의 가혹성도 노래하여 전철(前轍)을 밟지 말도록 경계한 시인이었기에, 8․15 광복 이후 현재에 이르는 장장 갑년 동안 지속돼온 분단 현실에 눈을 감을 리가 없었던 비백은, 시집의 제5부에 이의 극복 의지를 다진 작품을 서너 편 실었으니, 그 중 제목만 봐도 금방 짐작할 수 있는 것이 곧 분단상황을 은유한 「허리띠」이다.
갯내음 풀어내는 샐녘항구엔
滿船 춤춘다, 기지개질한다.
조각달 어슴푸레 꼬리 감출 적,
녹슨 가시울 젖가슴 두른 얼룩진 바위
지워볼까,
말까.
누가 준 선물일까, 남방 한계선 북방 한계선
두 개나 되는 이 낡은 허리띠.
이대로 가면 언제까지나 ‘가시울’에서 살아야할 분단의 아픔을 노래한 이 작품은, 끝 연의 ‘남방 한계선 북방한계선/ 두 개나 되는’ ‘허리띠’를 ‘선물’이란 반의어로 표현한 데서 부자연하고 반민족적인 것임이 강조되었으니, 이는 곧 그것의 극복이야말로 민족적 당면과제임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런 부자연한 ‘허리띠’가 주어지기 전인 1945년 8월 15일부터 1948년 8월14일까지는 그런대로 다행스러운 시기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 ‘해방공간’이라고들 일러 오지만 아산은 정확히 말하면 이는 ‘광복공간’이라 해야 한다고 말하여, 앞으로 통일과업을 완수하여 자유를 만끽할 날이야말로 참다운 해방공간이라고 주장한 바 있거니와,10) 비백의 이 작품은 그런 길로 나아가는 정지작업이라 평가할 만하다.
그러고 보면 이 작품에서 ‘철조망’이란 한자어 대신 ‘가시울’이란 순수국어 어휘를 쓴 것은 매우 상징성이 깊다고 하겠으니, 왜냐하면 ‘울’이란 본디 ‘울타리[籬]’ 곧 공동운명체로서, 바로 1인칭 대명사 ‘우리’를 어원으로 한 어휘여서, 본디 하나이어야 할 우리 겨레를 고의로 둘로 갈라놓은 ‘분단’이야말로 부당한 것임을 단적으로 말해주기 때문이다.
‘분단’이 화제가 된 자리에 다시금 떠올릴 일은. 바로 이런 분단을 가져오게 한 책임에 있어 약 40년 간 침략을 감행한 일본이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이다. 사리가 이렇게 분명한데도 그들은 몰염치한 역사 왜곡과 독도 영유권 생떼, 배타적 수역에서의 우리 어선 나포시도와 폭행 등. 전비(前非)를 뉘우칠 기색이 전혀 없어, 우리만이 아니라 중국 등 아시아 전체가 규탄하는 데도 오불관언(吾不關焉)하며, 도리어 전범의 집결지인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감행하고 있으니, 제국주의 침략의 망상에 사로잡힌 상황에서, 잠시도 경계태세를 늦춰서는 안 되는 이치를 독자에게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분단이 부자연스럽다는 것은, 반세기 동안 종전을 이루지 못한 채 정전으로 일관하고있는 휴전선이 실감케 해주니, 이를 지키는 이들을 다룬 「휴전선지기」가 큰 의의를 지님은 새삼스레 강조한 필요가 없다. 최근에 발생한 비무장지대 내 초소[GP]에서 벌어진 끔찍한 불상사도 따기고 보면 남북 대치의 치열함과 무관할 수는 없으므로, 필경은 휴전선을 극복할 필요성을 시의 언어로 표현해낸 것이다.
슬프다,
티뷔에도 신문에도 화약내난다,
꽃이슬 맺힌다.
날샐녘 뒤흔들던 그해 6월
발가숭이 물놀이가 싸움되었나,
물보라안개 날빛가렸나,
가시울 저편
채 피지 못한
빛바랜 풀꽃들.
어두운 대낮이다, 휴전선은
여름날에도 방한 두건을 벗질 못하는
휴전선지기들,
봄을 기다리는.
언제든 재연될 수 있는 비극적 대치이기에 작품은 ‘슬프다’는 감정 토로로 시작되어, 그 이유가 ‘티뷔에도 신문에도 화약내’가 날만한 ‘6월’의 동족상잔에서 비롯됨이 밝혀진 뒤, 그 부자연하고 부당함이 제3연의 ‘가시울’을 거쳐 제4연의 ‘어두운 대낮’과 ‘여름날에도 세찬 바람’이 부는 모순어법으로 표현되었으니, 바로 이 모순의 지양(止揚)을 바라는 소망, 궁극적으로는 통일의 의지를 다진 데 작품의 주제가 설정돼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평화를 지향하여 남북의 화해를 바라는 의미에서, 아산 시인의 「북한으로 간다․2」11)와 한 흐름 속에 있다.
민조시집의 대미를 차지한 「사격장에서」는 남북분단을 포함한 모든 전쟁행위에 의한 희생자를 다룬 점에서 인류애를 바탕으로 한 평화애호 정신이 강조된 데 큰 의의가 있다.
풀숲에 엎드린 채 알낳기한다,
산꿩이 날은다.
젖봉을 부드럽게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조준선 정열’
‘거총! 사격 개시!’
오르가즘이다,
구멍이 뚫렸다.
산에서, 들에서, 바다에서
구멍나 죽은 한맺힌 꽃봉
진달래 꽃물 산을 적신다,
꽃불 타오른다.
사람을 죽이는 야만적 도구이기에 총기를 문화의 산물이라 말하기도 쑥스러운데도, 지구촌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 더군다나 무고한 사람들이 날마다 목숨을 잃는가. 그런데도, 몇 마디 구령에 의해 아무런 반성 없이 습관처럼 치러지는 살육이 지구촌의 현상이거니와, 이 작품은 이런 살생행위를 불과 세 마디로 축약하여, 그에 의해 ‘구멍나 죽은 한맺힌 꽃봉’으로 바뀌는 비극이 읊어짐으로써, 사람 목숨의 덧없음과 인류의 미래에 대해 의구심을 자아내게한다.
더군다나 그 희생자가 ‘진달래꽃물’과 연관을 맺기에 이르러서는 비통함을 금치 못하게 하니, 그것은 일찍이 이별의 장에 뿌려졌던 아름다운 선물이던 ’진달래꽃‘이, 이제는 민족적 대치구도로 말미암아 사자(死者)의 전신을 흠뻑 적시는 붉은 피를 표현하는 객관적 상관물로 변모되고 말았기 때문이니, 오래도록 ’진달래꽃‘을 사랑해온 순박한 겨레로 하여금 마땅히 뜨거운 눈물과 깊은 반성에 잠기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끔찍한 비극을 끝내기 위해 인간애와 평화애호를 강조한 비백 시인의 시문학적 표현 역시 또한 아산과 무관한 것은 아니니, 왜냐하면 전자의 “구멍나 죽은 한맺힌 꽃/ 진달래 꽃물 산을 적신다.”가 후자의 「시체의 눈물」에 나오는 “먼 뜨거운 땅위에 와 쓰러진 이후/ 이미 시체는 눈물을 흘리지않는다/ 이 지구의 피와 뼈와 살로 분해된다/ 바람으로 변해 별빛이 된 영혼.”12)과 비록 종족과 배경은 다를망정, 다같이 인간의 생명과 지상의 평화를 갈망한 데서 터져나온 피맺힌 절규이기 때문이다.
분석을 마무리하기에 앞서, 분류가 수월치 않아 다루지 않은 작품 중에 「진달래꽃물」․「유에프오(UFO)」 등을 비롯한 우수한 민조시가 많이 있음을 덧붙여 둔다.
나오는 말
지금까지 해설한 내용만으로도, 비백(飛白) 여윤동(呂閏東) 시인의 첫 민조시집 ꡔ天山의 피붙이ꡕ가, 민조시의 창안 선포자 아산 신세훈(申世薰) 시인과 뜻을 모아, 초인적인 노력으로 이룩해낸 값진 작품집임이 밝혀졌거니와, 그 핵심이야말로 넓디넓은 중원대륙에서 장장 일만 년이 넘는 장구한 세월에 걸쳐 형성된 우리 겨레의 얼을 새 시대에도 썩 잘 어울리는 ‘3․4․5․6조’로 표현해낸 획기적인 전범(典範)인 점이다. 그런데도 저자는 <시집을 내면서>에서 ‘시조 다음으로 뿌리내릴 민조시’라고 말하고 있으나, 이는 겸손해한 발언인 줄 안다.
ꡔ天山의 피붙이ꡕ가 더욱 의의 깊은 것은, 이 민조시집이 나온 지 불과 한 달 남짓하여(11월 24일) 문협의 정관 개정으로 말미암아, ‘민조시 분과’가 ‘청소년 분과와 더불어 12월부터새로이 신설되는 학국 시문학사상 획기적인 사건을 예고한 점이어서, 저자가 앞으로 민조시 발전에 문자 그대로 선도적인 역할을 할 것임이 분명해졌다.
졸고를 마무리짓는 마당에, 문득 떠오르는 명시, 다름 아닌 동양 최초로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안은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의 작품 「코리어」이니, 비백 시인이 줄곧 추구 표현해온 이 작품집의 성격에 썩 잘 어울리는 내용, 곧 백의민족의 뿌리가 원대하여 앞으로의 가능성 또한 무궁하다는 것을 통찰해 읊은 한국 칭송의 뛰어난 시이므로,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3․4․5․6조로 옮겨 보겠다.
일찍이 아시아의 등불 코리어
그 등불 다시 켜지는 날에 동방 나라 비칠 밝은 빛 되리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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