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한산이씨 일가님에게 문안인사와 더불어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자 삼가 글을 게시해 봅니다
몇달 전 한산이가네 카페에서 논쟁의 화두로 부각된 이야기로 한산이씨 시조와 중시조 논쟁은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다
우리는 얼마나 선조님에 대해 알고 있을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가까우면 가까울 수록 가까운 사람의 존재 가치를 생각해 보아야하지만 너무 모르고 지나치는 것이 많았던것 아닌지 스스로 반성해 보는 시간이 필요한것 같다
아무리 설령 본인의 주장이 옳다고 하여도 현대화에 퇴색되어가지만 항렬은 보존되어 경을 생각해 하고 경을 모르면 사람이 아닌것이다
유학의 의미를 알면 알수록 되새겨 보고 싶은 말이다
간단 논쟁의 결론을 보면
첫째 한산이씨는 휘 윤경 선조님을 단일시조로 하는 성씨 이며 한산이씨 휘 윤우와는 혈연이 아니다라는 것이며
둘째 중시조이신
목은 휘 색은 일제식민시대 위안부 성노예 전쟁 등의 명목때문에 한산이씨 중시조를 가정 휘 곡에서 목은 휘 색으로 변화시키기 시작하였다는 이야기 이다
그러므로 한산이씨 중시조는 대략 600년동안은 고려말 대학자이신 목은 휘 색의 부친이신 가정 휘 곡 선조님이 중시조 였다는 것이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문양공파 해산공파 수은공파 강동할배 이야기로 넘어가보고 싶다
어제는 한산이씨 부산화수회 춘계 총회였다
신일가로 숭구 할배를 만났다 물론 안동소호리 문중이다
휘 석보 의 자 후 재화 휘 명화 휘 의화 휘 공화로 휘 석보 선조님 후손이니 반가움은 글로 표현이 안된다
혹시 휘 석보할아버지 후손 중 현재 1988년 파보를 보면 휘 석구 후손 수은종택 군수 1 명 석보 후손 군수1명 석보 후손 사법고시 2 명 행정고시 1 명등 소호문중이 부각되었던 시기인것은 사실이었던 같다
미국에 있는 주원씨도 대산종택을 이었고 휘 석보 할아버지의 첫째 손주 약와 휘 현정 강동할배의 자 곤 암 경 상목 중 휘 곤의 후대 후손도 대산종택중 긍암 휘 돈우 고종때 이조참판의 동생 휘 돈희 후손으로
약와 휘 현정의 종손을 잇고 있다
분명한것은 수은공파는 세월이 흘러도 아직도 형제의 정을 나누고 있다는 증거는 아닌지 생각을 더듬어 본다
아래 자료는 이제는 한산이씨라면 누구나 한번쯤 아는 자료가 되었지만 지금껏 행장을 올린적이 없어서 게시해 보았다
바로 일명 강동파 시조 약와 휘 현정과 설죽 휘 병은의 행장이다
(가계도 휘 현정 ~휘 경~휘 병은 )
유학 공부 중 어려운 단계인 심경 공부를 긍암 휘 돈우 선조님이 배우신 부분을 보며 다시금 화합과 족친의 힘을 되새겨보고자 한다
첫째 약와 휘 현정 행장은 매촌집의 저자 금시술이 찬하였다
금시술은 가계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계문(繼聞), 호는 매촌(梅村). 아버지는 금여옥(琴汝玉), 어머니는 예안김씨(禮安金氏)로 김홍명(金弘命)의 딸이다.
금시술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부포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는 후계(後溪) 이이순(李頤淳)에게 수학하다가,
관례를 치르고는 면암(俛庵) 이우(李)에게는 『중용(中庸)』을 수업받았으며,
광뢰(光瀨) 이야순(李野淳)에게는 의심나는 것을 묻기도 하였다.
중년 이후로는 『논어(論語)』에 잠심하기도 하였다. 1844년(헌종 10)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감찰과 성균관전적에 제수되고, 1845년 사헌부감찰에 다시 제수되었다.
1848년에 사헌부지평에 제수되고 1851년(철종 2) 사간원정언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부임치 않다가 그해 10월에 죽었다.
금시술은 평소 지조가 곧고 성품이 고결하며 문장에 능하였다.
저술 및 작품 문집으로 『매촌집(梅村集)』 6권 3책이 있다. 문집 중 시는 문사(文辭)가 평이하면서도 내용이 심오하고 도덕적 교훈을 주제로 한 것이 많다.
소(疏)는 사림을 대표하여 지은 것인데 김령을 서원에 향사하게 해줄 것, 월천(月川) 조목(趙穆)의 사시(賜諡)를 청한 것 등으로 해당 인물의 행적, 이력, 도학연원(道學淵源) 등을 소상하게 진술하고 있다.
편지글 중 이중문(李仲聞)에게 답한 서한은 사단칠정(四端七情)을 논한 것으로 선유(先儒)들의 학설을 절충하여 이기이원(理氣二元)의 측면에서 논설하였다.
잡저에는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심통성정중도(心統性情中圖)」를 구도(舊圖)와 비교하여 당시 개정된 부분을 세밀하게 해설한 것이 있으며
또 「기삼백산법도설(朞三百筭法圖說)」은 선유(先儒)들의 산법(算法)을 참고하여 천체의 운행(運行) 도수를 계산한 뒤 나름대로 도표를 만들고 알기 쉽게 풀어놓은 것이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면화산(綿花山)에 있다. 참고문헌 『매촌집(梅村集)』 『고서해제』(안동대학교도서관, 2000)
출처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한산이씨 매촌집의 저자 금시술이 찬한 묘지명 한산이씨 약와 휘 현정을 찾아가다
通訓大夫行弘文館校理兼經筵侍讀官春秋 館記注官約窩李公墓地銘 約窩 李顯靖(1721~1789)을 위해서 琴詩述이 지은 묘지명이다.
이현정의 본관은 韓山, 자는 孟休, 호는 約窩. 고려 말의 名臣인 牧隱 李穡의 후손이다. 대사간을 지낸 允蕃의 9세 후손이며, 고조부는 현감을 지낸 弘祚이다.
홍조는 西厓 柳成龍의 외손자로 홍조가 외가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와서부터 安東에 터를 잡고 살았다.
증조부는 孝濟, 조부는 碩輔, 아버지는 命和, 어머니는 進士 呂以一의 딸이다. 伯父 再和가 일찍 죽었으므로 백부에 입양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총명하였으며 커서는 친척되는 大山 李象靖 문하에서 공부를 하였다. 1747년(영조 23) 생원시에 합격하고, 1763년(영조 39)에 대과에 급제하였다.
예조정랑, 황해도 도사, 사간원 정원, 병조좌랑, 사헌부 지평, 홍문관 교리 등을 역임하였다. 홍문관에 있을 때는 임금에게 자신이 가진 생각을 말할 기회가 많았다.
1784년(정조 8)에 평안도 지역에 큰 흉년이 들자 여섯 가지 항목으로 즉 ① 嚴懲討를(탐관오리를 엄하게 징벌할 것) ② 正王法(나라의 법도를 공정하게 실행할 것) ③ 勤修省(관리된 자는 자신을 수양하는 데 부지런히 할 것) ④ 急救活(흉년이 들었으면 구제를 시급히 할 것) ⑤ 用賢才(뛰어난 인재를 등용할 것) ⑥ 崇儉約(검소한 생활을 숭상할 것)이라고 올리자, 正祖는 “나라를 사랑하는 너의 정성이 가상하다. 내가 마음에 담아두겠다”는 비답을 내렸다.
자신을 단속하는데 엄격하였으며 ‘莊敬日彊, 安肆日偸(장엄하고 공경한 마음으로 있으면 나날이 굳세지고, 편안하고 방종하는 마음으로 지내면 나날이 마음이 구차해 진다.)’를 좌우명으로 삼았다.
그리고 자신의 거처하는 곳을 ‘約窩(자신을 엄격히 단속하는 집)’라고 지으면서 매일 읽어보고 자신을 엄격히 반성하도록 하였다.
부인은 禮安金氏로 맞이하여 아들 넷을 두었으며 1789년 4월에 세상을 떠났다. 자식들에게는 ‘樂天知命(주어진 삶을 즐거워하고 자신의 분수를 알아라)’이라는 유언을 남겼다.
출처 매촌집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넷
두번째는 설죽 휘 병은의 행장이다
한산이씨 긍암 휘 돈우가 찬한 긍암집에 기술된 설죽 휘 병은의 행장을 찾아가다
雪竹 李秉殷의 행장이다.
공의 자는 質汝, 본관은 한산이다.
1782년(정조 6)에 태어나 1860년(철종 11)에 돌아가시니 향년 79세이다.
관례를 한 뒤부터 俛庵 李㙖 선생의 문하에 나아가 공부하였다.
집에 돌아오면 형 信庵公과 함께 책상을 대하고 정진하였다.
과거 시험공부도 틈틈이 하여 향시는 통과하였으나 회시에서 낙방하였다.
1823년(순조 23)에 의성 금호리로 이사하였는데 친가와 5리 정도 떨어진 곳이었으나 매일 부모님을 찾아뵈었다.
1836년(현조 2)에 친가로 다시 돌아와 형 신암공과 학문을 토론하며 지냈다.
1858년(철종 9)에 내가 『심경』을 들고 찾아가 배움을 청하니 공께서 자상하게 깨우쳐 주셨다.
출처 긍암집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넷
위 설죽 휘 병은 선조님의 후손이신 분중 저자의 작은 집 숙부이신 용복아제는 청송과실에서 지금도 기억으로 저자의 형님이 공부나 문중이야기에서 매번 이야기 하시는 사법고시 합격으로 소호리문중의 위상을 높이신 분이었다
물론 안동에서 부산으로 이주해서 부산 기장군에서 초중고 시절 항상 전교 1등만 하고 울산여고 재학시절도 전교 1등을 한 살아생전 부친이 소중히 간직한 상장속에 저자의 누나도 있지만 그 이야기는 다음을 기약하고자 한다
약와 휘 현정과 설죽 휘 병은 선조님의 행장을 후손 이대원 삼가 글로 다시 생각해 보다
첫댓글 선조에 대한 연구 활동이 대단하십니다.
회장님 춘계총회 준비하신다고 수고많으셨습니다 아직도 부족한 것이 많아서 사료다운 사료는 연구도 못해보았습니다 많이 배워야할것 같습니다
서산서원향사에 그리고 다음날 9시 한산영당 에 참배했습니다
안동 에서 주원일가 재종형을 만나 고은사도 둘러보고 왔습니다
약와공후손인 대원일가도 항상 좋은 글에 감사드리며
주원일가 의 글도 기대해 봅니다
운계교수님 잘지내시지요 항상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미진하여 일일히 정보를 몰랐습니다
음력 3월말 향시로 알고있었는데 잘못된 정보였군요
다음에 가실때는 저한테도 일시와 시간 정보를 혹시 외람된 부탁이지만 가르쳐 주신다면 서산서원 향시때나 기타행사시 많은 좋은 정보를 배우고 싶습니다
부족한 자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은공파에 저하고 이름 같은 분이 몇분 계셔서요 저 위에 저와 같은 이름은 소산쪽인지 아니면 약와쪽에 저희 작은집 예전에는 저희 형님이 어릴적 청송과실에 있었는데 그쪽 인지 아니면 다른 파보쪽인지 왠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한동안 개인적인 일로 바빠서 카페활동에 브레이크가 걸렸습니다. 이제 여유가 곧 생기면 분발해서 글도 좀 올리고 소식도 자주 전하도록 하지요. 저의 재종형님을 안동에서 뵈었다니 반갑기 그지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대원일가님의 열성과 관심엔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좋은 글 올리시는라 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이주원 (周遠) 형님 잘지내신다니 반가운 소식입니다
좋은 글 기대해 봅니다
소산 종손이 대원으로 대산종손 방수와 같이 갓쓰고 참여했으며
향사일은 중정 일이 속하는 주일의 앞일요일에 그리고 고산서원은 초청 일이 속하는 일요일에 치러지는 것으로
초정일에 갔다가 헛걸음하고 유일제 굉산김씨향사에 참배했답니다
일시가 바뀌었군요 혹시 시간 맞아 뵙게되면 좋은 이야기 정보 부탁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요 교수님
저도 요즈음 주원형님 글이 기다려집니다 많이 바쁘신것 같기도 하고 잘 지낸다고는 하는데요 기다려 집니다 미국대선 소식이나 미국 상황등도 궁금합니다
@대원 앞으로 노력 하겠네 아우님~ 앞으로 한달동안이 좀 고비이긴하네. 우리 회사 회장님이 한국방문으로 3주간 자리를 비우시는 바람에 내가 두 사람의 일을 좀 하느라 바쁘네. 그리고 주말에 또 스케줄이 잡혀있어서..한 달 정도 지나서 여유생기면 분발해서 글도 좀 올리고 미국소식을 자주 전하도록 하겠네. 관심과 걱정에 항상 감사하고 있다네. ^^
위에 왼쪽에서 두번째 계시는분 이정수그분이 약와공 종손 위대에 대산에서 출하여 약와공 종손이되신분 같습니다
부친이 살아생전 하도 이야기 많이 해서요 족보를 통째로 누가누구인지 다외운다고 해서요
제가 소실적 한번 기억에 본것도 같고합니다
대종회 보에 향사일 공고에도 중정 일로 되어 있는데 그날이 속하는 일요일 로 향사일을 정정해야 하곘습니다
교수님 좋은 정보감사합니다 교수님이 집필하신 문혜공저 사료 확인하였습니다 대단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