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한다는 이탈리아의 세리에A의 최고 강팀을 들라면 어느팀을 들까?
아마도 축구팬 10명중 6명 이상은 검은색과 흰색의 '얼룩말 무니' 유니폼으로 잘 알려진 '유벤투스 투린'팀을 꼽을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유벤투스의 유니폼에 달려있는 팀 앰블럼 위에 있는 두 개의 별이 유벤투스가 세리에 A의 강자였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별은 'Silver Star'라고 하여 이탈리아에서는 세리에 A의 시즌 우승(스쿠뎃토)를 10번 해야 하나를 붙일 수 있는 '강자의 상징'이다.
이러한 'Silver Star'를 AC밀란이나 인터 밀란이 1개를 달고 있는데 비해 유벤투스는 두 개를 달고 있다. 이쯤만으로도 '이탈리아의 최강자'라는 등식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1.이탈리아 축구의 출발
유벤투스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 전에 이탈리아 축구의 보급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 유벤투스에 대해 더 깊은 이해를 할 수 있다.
남유럽에 있는 스포츠 클럽들 특히 축구 클럽들은 영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한국도 영국인 해군이나 선원들이 항구에서 즐기기 시작한 것으로 축구의 시작을 잡고 있고 이탈리아도 남부의 항구도시 여럿에서 영국인 선원들이 즐기기 시작한 것이 이탈리아 축구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1895년 이후에야 이탈리아인들 스스로가 축구를 보급하고 즐기기 시작한다. 그 첨병은 고등학교 학생들이었고 이후 사회운동이 스포츠 보급을 주도했다.
이들이 만들기 시작한 이탈리아 북부의 체조단체들과 남부 항구도시의 항해 서클 등의 엘리트 스포츠 서클들이 탄생하면서 이탈리아 스포츠는 발전한다.
이 전통은 현재에도 남아있어 지금도 AS나 SS등의 이름이 들어가는 클럽이 있는데 이들은 이 당시의 스포츠 서클들이 그 전신을 이루고 있고, 현재도 축구 하나뿐이 아닌 다른 스포츠 종목에도 독자적인 팀을 가지고 있는 클럽들이다.
영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 있어서 스포츠는 부자 상류계층들이 즐기는 것이었으며 이것은 이후 남유럽과 북유럽의 대부분의 클럽에 영향을 끼친다.
각 지역의 유지나 상류층의 자제들은 그 클럽팀에 입단하던가 나중에는 평생 회원이 되는 등은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기도 했다.
이것은 현재도 마찬가지로 이탈리아나, 스페인 등에서 자기가 태어난 도시의 평생 회원권을 가진다는 것은 상당한 상류층 자제거나 부유층이 아니면 매우 어려운 일이다.
2.유벤투스의 탄생과 얼룩말 유니폼
1897년 아젤리오 고등학생들은 1897년 토리노 U.S를 떠났다. 축구팀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들은 첫 번째 사무실인 캄파리 형제가 운영하던 자전거 가게에서 장시간 토론 끝에 그들의 축구팀의 이름을 결정했다.
"JUVENTUS"
기존 축구팀이 지역명이나 지역에 관련된 고유명사를 이름에 붙이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이 고등학생들에게는 그러한 틀은 없었다. 자신들의 젊음을 발산하는 팀 이름으로 '젊음'이라는 이름말고 무엇이 필요할까 하는 의견이 압도적이었기에 이들은 유벤투스라는 이름을 쓰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컴퓨터계에서 혁명을 가져온 '애플'이 주차장을 첫 사무실로 쓴 것과 비슷하게 세계적인 축구팀 유벤투스는 자전거포에서 시작되었다. 이들의 초기 유니폼은 분홍색이었다.
'축구팀 유니폼이 웬 분홍색?'이라 할지 모르겠으나 유벤투스의 창립자들에게 그러한 고정관념은 없었다. '여성스러우면서도 다른 팀들과 확실히 구분'되었기 때문에 이들은 분홍색 유니폼을 고집했다. 그러나 지금의 유니폼으로 바뀐 것은 실수에서 비롯된 것이다.
팀 창단이후 6년 뒤인 1903년. 유니폼을 교체해야 할 시기가 왔다. 당시 모든 축구장비는 자가제작 하던가 영국에서 사와야 했기에 이들은 영국에 유니폼을 주문했다.
그러나 그것을 발송해 준 영국인 구들리는 분홍색이 아닌 검정색과 흰색 줄무니의 노팅엄 클럽의 유니폼을 보내줬다.
세계 최초의 클럽팀인 Notts County팀의 유니폼과 같은 디자인으로 이미 영국에서는 일상화된 무늬였다. 유벤투스 선수들은 당연히 화를 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바꾸려고 해도 이미 늦었던 것이다.
결국 유벤투스 선수들은 이 유니폼을 입고 경기해야 했다. 처음엔 많은 불만을 터뜨렸지만 시간이 지나 유니폼에 익숙해졌고, 유니폼을 바꾼지 2년뒤인 1905년. 유벤투스는 이탈리아 리그 우승컵을 차지했다.
그리고 이들은 다시 분홍색 유니폼으로 돌아가지 않고 현재까지 '얼룩말 무늬' 유니폼을 쓰고 있다.
3.유벤투스의 든든한 후원자 FIAT, Kapa의 후원자 유벤투스
유벤투스를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자동차회사인 피아트사다.
FIAT의 원래 이름은 '토리노 이탈리안 자동차회사(Fabbrica Italiana Automobili Torino)'다. 이 머릿글자만 딴 것이 'FIAT'다. 피아트는 자동차 매니아들이 세계의 명차 브랜드중 하나로 손꼽는다. 피아트 회사가 유벤투스의 스폰서로 등장한 것은 1920년대부터다.
피아트의 설립자 자오바니 아그넬리(Giovani Agnelli)가 구단주로 취임하면서 구단 운영을 시작하기 전까지 유벤투스가 내세울만한 전적이라고는 1905년의 이탈리아 리그 우승과 '한번도 2부리그로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 뿐이었다.
Silver Star를 달고 있는 AC밀란과 인터 밀란도 2부리그로 떨어진 적이 있지만 유벤투스는 지금까지 2부리그로 떨어진 적이 없다.
든든한 지지자 피아트 회사가 구단을 운영하면서 유벤투스의 이탈리아 프로축구 점령을 위한 돌진이 시작되었고 1930년대의 '전성기'는 곧바로 찾아왔다. 1930-31시즌부터 1934-35시즌의 5시즌동안 리그 우승을 모조리 휩쓰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이후 지오바니 아그넬리 이후 그의 아들과 형제들이 계속해서 구단주를 역임하며 FIAT사는 유벤투스의 든든한 후원자로 자리잡았다.
유벤투스가 세계적인 강자로 자리잡을 수 있는 것에는 FIAT의 후원에 힘입은 선수 스카우트도 그 한몫을 차지한다. 이러한 FIAT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유벤투스는 언제나 세리에A의 상위권에 있을 수 있었다.
유벤투스와 함께 성장한 곳은 'KAPPA'라는 스포츠 용품 회사이다.
현재 한국에도 이 회사가 들어와 있지만 이전까지는 한국에서는 축구매니아에게나 알려진 이 회사는 유벤투스와 함께 성장했다.
앞서 이야기한 '영국에서만 축구용품이 제작된' 시기는 20세기에 들어서자마자 사라졌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세계 여러나라에서 스포츠 용품을 만드는 전문회사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당연히 이탈리아에서도 생겼다.
이중 대표적인 것이 디아도라와 카파인데 카페는 토리노에 본사를 두고 유벤투스의 유니폼을 만들기 시작했고 이 유니폼을 입은 유벤투스가 좋은 성적을 내자 카파의 매상도 덩달아 올랐다. FIAT, 유벤투스, 카파. 이 세 곳은 축구라는 공통점으로 뭉쳐 모두가 성공한 '마케팅의 성공작' 모델로 꼽힌다.
4. Juventus 유벤투스의 영광의 시대
유벤투스가 연고지를 삼은 토리노는 프랑스의 영향을 많이 받은 도시다.
이탈리아 북부의 밀라노와 토리노는 일찍부터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쪽과 교류가 많았으며 이들의 침략도 많이 받았다. 때문에 유벤투스팀에는 수많은 프랑스 선수들이 거쳐갔다. 때문에 유벤투스의 영광의 역사는 프랑스 선수들과 함께 하기도 했다.
유벤투스는 계속해서 세리에의 강자로 있었다. 그러나 유벤투스 팬들이나 축구 전문가들이 '유벤투스 최고의 시절'로 꼽는 것은 1970년대부터 1980년대의 10여년간이다. 이때의 유벤투스를 지켰던 스타들은 19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이탈리아의 골을 지켜왔던 디노 조프와(지난 Euro2000때의 이탈리아 대표팀 감독) 프랑스의 미셸 플라티니를 손꼽을 수 있다.
우디네세에서 데뷔해 만토바, 나폴리를 거쳐 1972년에 유벤투스에 자리잡은 디노 조프는 이탈리아 대표팀에서 12경기 연속 무실점 방어로 1143분간 무실점 기록을 세운 것과 1982년 이탈리아 대표팀의 주장으로 팬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가 유벤투스에서 세운 기록은 상상을 초월한다.
1972년부터 1983년까지 12차례의 시즌 동안 유벤투스가 치룬 이탈리아 리그의 모든 경기에 출전을 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그의 기량과 자기 관리 능력은 뛰어났고, 그 12년 동안 유벤투스는 6차례의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유벤투스 팬들과 축구 전문가들이 '유벤투스 최고의 스타'로 꼽는 것은 프랑스의 슈퍼스타 미셸 플라티니다. 디노 조프가 12년동안 뛴 것과는 달리 플라티는 1982년부터 1987년까지만 유벤투스에서 뛰었다. 그러나 그의 화려함은 유벤투스 팬들에게 있어서 "유벤투스 최고의 시대"라고 말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플레이를 선보였다.
5년동안 그가 뛰면서 기록한 성적은 아래와 같다. 특히 1985년은 주목할 만 하다.
1983-84, 1985-86 이탈리아 리그 우승,
1984-1985 UEFA챔피언스 리그 우승,
1985년 UEFA컵 위너스컵 우승,
1985년 유러피언 슈퍼컵 우승
1985년 토요타 컵 우승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보다 먼저 UEFA의 3대 컵을 한번씩 다 우승해본 최초의 팀이 유벤투스였고, 그 지휘관은 플라티니였다. 세계 최고의 득점력을 가진 미드필더였던 플라티니는 이 기간동안 3차례 리그 득점왕과 세 번의 최우수 선수상을 받은 선수였고 유럽 선수권대회에선 두 번의 해트트릭과 전 경기 득점이라는 지금까지 아무도 감히 근접하지 못한 기록을 가졌다.
후배인 지네딘 지단과는 달리 플라티니는 1978년부터 1986년까지 세차례 참가한 월드컵에서 운이 없어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던 것이 플라티니 본인도 무척이나 아쉬워 하고 있을 뿐이지 프로선수로서는 현재 최고 선수라 할 수 있는 지네딘 지단의 성적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탁월한 성적을 기록한 유벤투스와 프랑스의 보물이었다.
1996년 유벤투스 팬들이 뽑은 '유벤투스 최고의 팀과 선수는?' 바로 1982년부터 1985년 까지의 팀과 미셸 플라티니였다.(아마 지금 조사를 한다면 지네딘 지단이 얼마나 플라티니와 경쟁이 될지 재미있는 볼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5.1990년대와 지금의 유벤투스
1990년대를 지나 2000년인 현재까지도 유벤투스를 거처간 스타들은 헤아릴 수 없다.
1982년 월드컵 득점왕 파올로 로시, 비알리, 라바넬리, 로베르토 바조 같은 이탈리아의 스타들도 자신의 이력서 한 구석엔 '유벤투스의 선수'였던 것이 장식되어 있고, 프랑스의 지네딘 지단, 디디에 데샹, 티에리 앙리, 트레제게 등의 선수들, 네델란드의 에드하르 다비즈, 에드빈 반 데 사르, 크로아티아의 알랜 보크시치, 로베르토 야르니 등의 유수한 스타들의 이력에도 '유벤투스'라는 팀 이름은 들어간다.
현재 유벤투스를 이끄는 것은 프랑스의 스타 지네딘 지단과 이탈리아의 알렉산드로 델 피에로다.
지네딘 지단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현재 최고스타중 한명이며, 알렉산드로 델 피에로는 리그에선 맹활약하지만 월드컵이나 유럽 선수권대회에선 좋은 성적을 보여주지 못해 아쉬움이 있지만 그래도 그를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중 한명으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는 뛰어난 선수인 것은 사실이다.
현재 유벤투스를 아끼는 팬들은 '공격진을 보강하라'는 불만을 여기저기서 터뜨린다.
유벤투스의 수비야 나무랄 곳이 없지만 델 피에로와 지단, 다비즈가 만들어내는 수많은 찬스를 골로 결정짓는 공격수가 인자기로는 불안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실지로 지난 시즌에도 리그 최소실점을 했지만 공격력의 불안으로 이길 수 있는 경기를 몇경기 놓쳐 SS라치오에게 우승을 내준 원인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유벤투스 구단은 프랑스의 트레제게를 영입하여 공격력의 보강을 꾀했지만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현재로서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20세기에 있어서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팀'이라면 단연 유벤투스라는 것이고, 20세기 초 젊음과 정열을 가진 학생들에 의해 시작한 클럽 운영이 지역연고와 맞물려 성공한 대표적인 결과로 남을 위대한 축구단 중 하나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