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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기행-지례예술촌을 가다
안동은 의(義)와 예(禮)를 중시하며 대쪽같이 꼿꼿한 절개로 학문과 풍류를 즐겼던
옛 선비들의 생활과 정신이 그대로 배어있는 곳이다.
동방의 주자로 불리울 정도의 대학자였던 퇴계 이황(李滉)을 비롯하여 서애 유성룡 등 명현이 많이 배출되었으며, 이들의 학문의 전당이었던 향교와 서원이 발달하였다. 특히 전국에서 가장 많은 서원이 건립되어 학문의 전당으로 이름 높았으며, 그 중 26개소가 아직도 현존하며, 봄, 가을 두차례에 걸쳐 향사(享祀)를 봉행한다. 선비정신에 기초한 학문적 전통을 바탕으로 안동은 한국에서도 이름 높은 교육의 도시이자 현대 한국 정신문화의 토대를 마련한 뿌리가 되었다.
안동을 대표하는 유교문화의 중심은 하회마을이지만 안동에는 하회마을 이외에도 도산서원, 병산서원, 태사묘, 시사단, 이육사문학관 등 문화유적들이 있으며, 퇴계종택, 지례예술촌 등 고택도 즐비하다.
안동시에서 발행하는 ‘안동고택’이라는 팜플렛을 보면, 시내권에 고성이씨 탑동종택 등 8개, 도산면에 퇴계종택 등 5개, 일직면에 대산종택 등 3개, 풍산읍에 예안이씨 충효당 등 4개, 길안면에 두릉구택 등 3개, 남후면에 고산서원, 녹전면에 영천이씨 간재종택, 서후면에 원주변씨 간재종택 등 5개, 와룡면에 두루종택 등 4개, 임동면에 지례예술촌 등 4개, 임하면에 추파고택 등 4개, 풍천면에 가일 수곡고택 등 10개, 총 52개소가 소개되어 있다.
이 중 안동시 임동면 박곡리 산 769에 위치한 ‘지례예술촌’은 조선 숙종 때 대사성을 지낸 지촌(芝村) 김방걸(金邦杰 1623-1695)과 그의 중형 방형(邦衡)의 자손이 340여년 간 동족마을을 이루어 주경야독하며 살아온 전형적 사림(士林)마을이다. 임하댐 건설로 인하여 1985년 지촌 문중 소유의 종택과 서당 등을 마을 뒷산 중턱으로 옮겨 한국 최초의 예술창작마을 ‘지례예술촌’을 열었다. 이곳에서는 종가의 제사를 공개하여 제례의식을 볼 수 있으며, 전통문화생활도 체험할 수 있다.
지례예술촌 촌장인 김원길씨(13대 종손, 시인)에 의하면 안동에는 고택 중 전통생활 체험장으로 개방되어 있는 소위 ‘명품고택’으로 지정되어 있는 곳이 지례예술촌을 포함, 여섯 집이있다고 한다.
필자는 한국시인협회 ‘2011년 가을 정기세미나’의 일환으로 지난 해 말, 하루 밤을 지례예술촌에서 묵게 됐다.
한국시인협회에서는 가을세미나의 주제를 ‘선비정신과 한국 현대시’로 정하고 전통문화와 선비정신의 본향인 안동에서 세미나를 개최하게 된 것이다. 안동은 이육사 시인을 비롯, 김종길 시인, 유안진 시인, 김용직 평론가 등 유명문인을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지례예술촌은 안동 동쪽 37km, 자동차로 약 40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안동역에서 영덕방향(34번 국도)으로 20분 가량 달리면 우측에 수곡교가 나오고, 수곡교를 건너서 우측으로 20분을 달리면 지례마을이 나온다. 마을이 있을 것 같지않은 깊은 산중 호숫가에 지례예술촌이 자리잡고 있다. 시외버스로 갈 경우에는 서울에서 안동까지 동서울터미널에서 첫차 07:00, 막차 18:45, 배차 간격은 30분, 1일 29회 운행한다.
대구에서 안동가는 시외버스는 7분∼20분 간격으로 있으며 대구 북부정류장으로 가는 무정차와 동대구고속 버스터미널로 가는 우등고속버스가 있다. 또 부산-안동 행 첫차는 08:52, 막차는 16:25로, 1일 8회 운행한다.
서울에서 기차로 갈 경우에는 청량리역에서 안동까지 매 2시간마다 운행하며, 약 3시간 반-4시간 정도 걸린다.
지촌 종택은 1663년 조선 현종 4년에 건립되었으며, 종택, 제청, 서당 등 10동 125칸의 전통복합주택이다.
지촌은 의성 김씨 내앞파의 대조(大祖) 청계 김진(金璡)의 현손(玄孫)이며 학봉 김성일의 백씨인 약봉 김극일의 증손자이며 표은(瓢隱) 김시온(金是)의 넷째 아들이었다. 38세에 문과 급제하여 40세에 제원(堤原)찰방(察訪)이었을 무렵 지례(芝澧)로 분가(分家)하여 호를 지촌이라 하였으니 지례의 입향조가 된다.
지촌이 지례마을에 자리 잡게 된 것은 병자호란 때 도연에 은거한 아버지 표은 김시온의 정신적 영향이었다고 한다. 김시온은 나라가 망하자 청에 항거하여 과거를 포기하고 도연명(陶淵明)의 이름을 딴 도연(지명, 낙동강 지류인 반변천에 하나 뿐인 도연폭포가 있는 곳으로 산수가 빼어남)에 은거하여 스스로를 숭정처사(崇禎處士)라 자호(自號)하고 평생 독서하고 제자를 길렀던 것이다. 그러한 아버지의 아들 지촌은 조선 현종조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갔지만 은둔(隱遁)생활을 좋아하여 그의 집을 도연에서 10리나 더 상류인 지례에 지었다.
그는 청렴하여 한때 영암군수를 지내고 돌아올 땐 수레에 국화꽃 화분 하나 뿐이었다고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는 전한다. 그가 58세 되던 해 남인세력이 물러나던 경신출척(庚申黜陟)을 당해 벼슬을 그만두고 지례에 돌아와 9년을 지냈는데 그때 지은 유명한 시 ‘무언(無言)’에는 은둔하여 한적(閑寂)을 즐기는 자의 심경이 잘 나타나 있다.
一臥滄江歲月深 고향에 돌아온 지 참 오래 되었구나.
幽居不受點塵侵 숨어사니 한점 티끌 묻어오지 않네.
已知漁釣還多事 고기잡이 낙시질도 귀찮은 것 알겠고
更覺琴朞亦攪心 거문고니 바둑도 심란하구나.
石榻任他風過掃 공들여 쌓은 돌탑 바람이 쓸게 하고
梅壇輸與鳥來吟 가꾸던 매화단도 새가 와서 울게 두자.
如今全省經營力 이제껏 하던 일 모두 접고서
終日無言對碧岑 종일토록 말없이 푸른 산 보네.
당시는 우암(尤庵) 송시열이 주도하던 노론세력에 의해 왕권이 위협받고 영남인이 핍박 받던 때라 그가 기사년(己巳年)에 올린 우암타도의 상소는 임금으로 하여금 우암을 사사케하는 데에 영향을 끼쳤고 기사환국(己巳換局)이 되어 다시 조정에 나갔다. 벼슬살이의 무상함을 잘 알고 있던 그는 벼슬을 사양한 것만 열 일곱 번이나 되었지만 당시로선 영남인을 대표하고 있었기에 임금의 부름을 받았을 때는 70노구를 이끌고 왕명을 받들어야만 했다. 임금의 변덕으로 남인들이 다시 실권(失權)하여 갑술옥사가 일어나자 전라도 동복(同福)에 유배되어 73세를 일기로 영면하였다.
그후 지례마을에서는 아무도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지만 정와 김대진, 난곡 김강한, 장암 김시락, 수산 김병종 같은 학자를 비롯 문집을 낸 이가 10여명에 이르고 지촌의 출계손(出系孫) 중에는 조선의 마지막 유학자라 일컫는 중재(重齋) 김황(金榥)과 독립운동가 백하(白下) 김대락(金大洛)같은 이가 있다.
지촌이 지례에 터를 잡음으로서 그 의 후손들은 340여년간 교통불편과 가난을 겪으면서도 선조가 남긴 땅에서 가난하면서도 면학하는 전통을 이어 갔다. 이들은 지촌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서당과 제청을 지어 학문과 숭조정신을 강조했고 근대에 와서도 마을안에 초등학교를 짓고 문맹퇴치를 비롯 후세교육에 힘써서 이 마을 출신으로 세상에 알려진 이가 수십명에 이른다.
지례마을은 1975년에야 처음 전기가 들어오고 버스가 다녔다니 얼마나 외진 곳인지 알 만 하다. 정부의 임하댐 계획이 발표되자 1985년 지촌문중 소유의 종택과 제청, 서당 등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받아 1986~1989동안 마을 뒷산 중턱에 옮겨 지어 한국최초의 예술창작마을 ‘지례예술촌’을 열었다.
다른 집들이 모두 도회지나 교통이 편리한 곳으로 이주했지만 지촌가의 사람들은 고향을 내려다보며 현대의 은둔지를 만들어 내외국인들로 하여금 가장 한국적 리조트를 체험하게하고 있다.
지례예술촌은 현재 17개의 온돌방이 있다. 지촌종택에는 큰방 4개와 작은방 2개 및 대청, 툇마루가 있고, 지산서당에는 큰방 2개, 육간대청, 툇마루가 있다. 지당서당은 국내 서당건물 중 가장 규모가 크고 금강송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또, 정곡강당 역시 방2개, 육간대청,수돗간이 있다. 이곳은 예술촌 좌측상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망 좋은 곳이기도 하다.
문간채는 호수가 가장 잘 보이는 방들로 작은방 3개, 마굿간, 솟을대문이 있으며, 별묘에는 방 2개(구둘방), 마루가 있다. 이곳 별묘는 예술촌 전체에서 가장 전망이 아름다운 방이다. 이 이외에도 조상의 위패를 보관하여 설과 추석에 차례를 지내는 사당건물과 방 3개의 주사가 있으며, 1,000평 규모의 주차장과 야외공연장, 예술촌 우측 계곡에 약 500평 크기의 인공호수도 조성되어 있다.
영지산 중턱에 자리잡은 지례예술촌에는 산책로도 잘 정비되어 있다. 한옥 담길을 따라 약 20분 정도 산길을 걷다보면 눈 아래 임하호의 그림같은 전경이 내려다 보이고, 호수 뒤로 산 능선이 파도처럼 굽이친다. 이곳 지례예술촌은 조용한 곳에서 마음껏 글 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겠다며 만든 예술촌이지만 글 쓰지 않는 일반인도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다.
필자가 하룻밤 머문 방은 지산서당. 툇마루와 넓은 육간대청이 있는 별채이다. 우선 짐을 풀기 위해 방에 들어서니 어릴 적 시골정취가 물씬 풍기는 온돌방이다. 벽과 천정은 한지로 도배되어 있고 문은 우리 나라 전통가옥 형태인 창호지문이다. 방문을 열자마자 따뜻한 훈기가 온몸을 덮쳐온다.
온돌방에 누워 잠시 등을 덥히고 있으니 대청에 두 개의 상이 차려지고 간단한 다과와 동동주가 나온다. 외국인 남녀 여러명이 우리 일행과 함께 하고, 예술촌 촌장인 김원길 시인이 직접 나와 일일이 술잔을 건넨다. 이어 김원길 촌장의 종택에 얽힌 이야기와 참가자들의 시낭송 등으로 예술촌의 밤은 깊어간다.
다음날 새벽, 어둠이 아직 가시기 전에 아침산책 겸 홀로 호숫가를 내려가 본다. 랜턴을 준비해온 터라 길 찾는 데는 문제가 없다. 호숫가의 새벽. 그곳에 홀로 서서 340년 전의 선조들의 삶과 풍류를 그려본다. 오랜만에 도시를 벗어나 숲속 고택에 머무르니 필자도 옛 선비처럼 세상풍파 잊고 이런 곳에 남은 여생 조용히 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지례예술촌 김원길 촌장은 말한다 “나는 예술촌이 조용하길 원합니다. 그랬기에 처음부터 이 궁벽한 곳에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절간보다 수도원보다 더 조용해서 가끔은 스님이나 수녀들이 쉬러 오기도 합니다. 너무 조용하면 적적하지 않느냐고요? 떠들썩한 백 명의 행랑객이 오는 것보다 한 분의 명사가 와 계시는 것이 더 그득합니다. 조용해야 명사가 찾아오실 것입니다. 350년 전 지촌은 친구 고산에게 준 시에서 ‘강 깊은 데 쏘가리 살 쪄 있으니/이 가운데 생애가 자족하도다/명성은 내 기대하는 바 아니고/적막이 진실로 소원이라네’라고 읊으셨지요. 지촌은 벼슬살이보다 향촌에서 안빈낙도의 생활을 즐겼는데 하물며 오늘날과 같이 시끄러운 도회지 생활에 지친 현대인들이라면 이런 평화롭고 조용한 곳을 찾지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지촌이 꾸몄던 이상향을 13대를 지나 나의 이상향으로 다시 만든 것입니다. 선조의 말씀대로 쏘가리가 살찌도록 호수를 맑게 하고 지구가 자전하는 소리가 들릴 만큼 조용한 별천지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환경운동이기도 할 것입니다.”
안동은 생각보다 면적이 엄청 넓다. 면적으로 따졌을 때 전국 단일 시 ․ 군 중 세 번째로 큰 도시라고 한다. 쉽게 비교해서 서울의 2.5배 되는 면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서쪽에 있는 하회마을에서 북쪽 도산서원까지 1시간 30분정도나 걸린다. 지례예술촌에서 도산서원까지도 1시간 가까이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안동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하회마을을 비롯, 도산서원 등 수많은 전통고택, 700년된 용계 은행나무, 이육사문학관 등이 있으며, 봉정사를 비롯한 불교유적도 많다. 또 월영교와 안동민속촌, 원이엄마편지비 등도 가볼만한 곳들이다. 인근 경북 영양군 일월면 주실마을에 소재한 ‘조지훈문학관’까지 다녀온다면 더욱 금상첨화다.
안동 관광안내 팜플렛을 보면, 주요 탐방코스로 네코스를 추천한다. 제1코스는 ‘도덕성이 살아있는 성현의 길’로 안동군자마을-한국국학진흥원, 예안향교-경북산림생태과학원-도산서원-퇴계태실-퇴계종택-퇴계묘소-이육사문학관-왕모산성-퇴계오솔길-농암종택-고산정-가송참살이마을, 제2코스는 ‘양반의 멋을 찾아가는 충효의 길’로 이천동석불상-봉정사-학봉종택-학가산온천-소산마을-가일마을-병산서원-하회마을-부용대-하회세계탈박물관, 제3코는는 ‘동방의 빛을 보는 선비의 길’로 영호루-원이엄마상-태사묘-전통문화콘텐츠박물관-임청각-신세동7층전탑-월영교-안동댐민속촌-안동민속박물관, 제4코스는 ‘자연과 함께 하는 감탄의 길’로 역동서원-안동대학교 박물관, 안동독립기념관-내앞마을과 백운정-무실종택-지례예술촌-용계 은행나무-만휴정과 묵게서원-길안천 계곡-계명산 자연휴양림 등이다.
따라서 기왕 안동여행을 떠난다면 아무리 짧아도 최소 2박3일, 가능하면 3박4일 이상 잡아야 안동을 제대로 돌아볼 수 있을 것 같다.(글,사진/임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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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글과 사진 감사합니다
언젠가 꼭 가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