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 1때인 1974년에 친구들에 이끌려 동방교에 들어가게 되었고 50살이 넘은 2000년 중반까지 근 30여년을 충심으로 섬긴 사람이다. 학업과 직장을 따라서 익산, 안양, 서울 성린, 인천, 부산 한빛교회까지 다니며 주일학교 교사부터 교사부장, 청년부장, 전도부장, 봉사단장, 총무까지 중직을 맡으면서 나름대로 충성을 바쳤었다. 이 교회가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국가와 민족을 위한 단체임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칭 '좁은길'을 위하여 한 목숨도 바칠 각오로 충성을 다했다. 그러나 동방교 노광공이 직접 임명한 장로, 권사, 영수들의 인격은 참으로 한심할 정도였다. 지방에서 교회를 다닐 때,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집사나 권사들은 나름대로 품위와 인격이 있었는데 부산에 와서 보니 그들 대부분은 무학이거나 국졸의 학력이 대부분이고 경제력도 대부분 바닥권이었던 것이었다. 그들의 품위없는 행동들은 나를 동방교에 대해서 회의하게 만들었다. 왜냐면 그토록 애국애족을 강조하면서 국가의 지도자를 양성하겠다던 동방교였는데 1950년도에 창립되어 60~70년의 세월이 지난 2000년도가 되었어도 제대로 된 인재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정신적인 공허를 술이나 담배, 쓸데없는 잡담으로 채워가는 단체로 전락하고 있었다. 그래서 교회의 공식모임이 끝나면 의례 술을 마시곤 했다. 나이가 많거나 직분이 높거나 경제력이 좋거나 말빨이 좋은 사람이 대장이고 인정받았으니 이건 친목단체나 건달세계와 비슷한 수준으로 추락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에 음주와 흡연의 심각성에 대해서 목사에게 상의를 한 적이 있었다.그런데 그 목사가 말하길 당신도 같이 술도 마시면서 잘 어울리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가당찮은 말이다. 그게 목사로서 할 말인가? 내 이름을 아는 사람들은 전국적으로 많이 있다. 나는 진심으로 동방교를 참길로 믿었고 충성을 바쳤기 때문이다. 동방교에 내 두 아들과 아내도 같이 다녔는데, 아내는 나를 뒤에서 흉보는 목회자에게 실망했다며 교회에 발을 끊었다. 아내가 보기엔 나만큼 진실하게 몸바치고 돈바쳐서 충성하는 사람이 드믄데, 뒷전에서 내 흉을 보는 목사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던 것이었다.
아무튼 지금 우리 가족은 동방교에서 모두 빠져 나왔다. 난 처음엔 너무 힘들어서 수 년을 방황했었다. 내 머리 속에 박힌 동방교의 교리가 머릿속에서 뱅뱅 맴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나를 나가라고 말한 목사가 너무 고맙고 늦게 나온 것이 아쉬울 뿐이다. 동방교에 빠지지 않았다면 나는 더 큰 사업가로 발전했을 것이다. 하지만 항상 내 정체를 숨기고 살아야 했기에 나는 나도 모르게 이중적인 삶을 살았으리라고 생각된다.
내 나이도 어언 60대. 주위에 동방교에 다녔거나 지금도 동방교에 다니는 친구와 선,후배들이 있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삶에 열정이 없다는 것이다. 또 그들 중 일부는 현실감각을 잃은 바보 비슷한 사람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동방교에 대해 내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동방교는 희망이 없는 단체라고..... 아니, 멀쩡한 사람의 영혼을 파괴하는 사이비 종교단체라고.
언젠가 동방교 다니는 선배가 다시 돌아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내가 한 말이 있다. 당신이 신봉하는 동방교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사회의 저명한 인사가 나온다면 내가 들어 가겠노라고..... 내 말은 결코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내가 겪은 동방교는 신도들의 고혈을 빨아먹기만 하는 흡혈귀와 같은 사이비 단체이기 때문이다.
첫댓글 지난 시절의 진솔한 경험을 숨김없는 기록으로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30여년동안이나 이단 사이비에 충성을 다 바쳤네요.
동방교 입교가 1974년 고1때라면 세칭 동방교가 한창 시끄럽던 때인데, 서울 중앙에서는 그렇게 시끄러운 시기였는데도 지방에서는 까마득히 모르고 독버섯은 계속해서 퍼져 나가고 있었네요.
[이단의 추억 #59, 한창 시끄럽던 그때]를 보면 이런 기록이 있는데 바로 그때로군요. 그때 저는 이미 세칭 동방교를 탈출하여 군복무중에 있었던 시절이기도 하구요... ㅎ ㅎ
. . . 前略
서울에서 세칭 동방교를 뛰쳐나간 사람들이 모여 피해집단을 결성하고 진명, 숙명여고 출신의 세칭 동방교 신자들과 헤레나장로(오인숙, 사주(四柱)장로의 한사람)의 큰언니등이 세칭 동방교는 엉터리이고 신도의 재산을 갈취한다는 등의 폭로가 이어졌고, 메스콤을 타게 되면서 2대교주 노영구는 고발되어 지명수배를 당하게 되고. . . (계속~)
(이어서~)
---인터넷검색자료---
6천만원 손배소송, 동방교신도 65명, 법률구조협통해
경향신문 1974.12.07 기사(뉴스)
대한법률구조협회는 6일하오 세칭 동방교 신도였던 이정옥씨(27,서울 관악구 흑석동 200의 45)등 65명을 대리해 세칭 동방교를 상대로 6천8백54만9천1백65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서울민사지법에 냈다.
법률구조협회는 이씨등이 지난22일 세칭 동방교 간부에게 지성금등의 명목으로 6천여만원의 재산을 빼앗겼다고 주장, 진정서와 함께 법률구조신청을 내어 법률구조에 나서 것이다. 장준택변호사를 통해 제출한 이 소장에서 원고들은 “세칭 동방교의 대표이사인 양학식씨등 4명이 지난 4월30일 상습사기및 상습공갈혐의로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었으므로 지성금이란 명목으로 빼앗긴 신도들의 재산을 마땅히 돌려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를 나가라고 한 후에 얼마 있다가 한빛교회에 단 한 명 남아있던 장로에게 전화가 왔더군요. 장로를 시켜줄테니 다시 돌아오라고... 하지만 그는 근 10년 넘게 여러 사람들과 함께 나를 음해하였던 사람중의 한 사람이었다는 모 집사의 언질이 있었기에 가증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이후론 동방교엔 발을 끊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