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5 장 ------ 初 夜......!
남궁소소.
본래 그녀는 총명한 여인이었다.
허나 그녀는 지금 금천풍호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은 금천풍호를 분명 독살하려 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금천풍
호는 오히려 그녀의 허물을 덮어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때였다.
뎅뎅뎅......
종소리. 자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밖에서 부터 전해져 들려왔다.
금천풍호는 그 소리를 듣더니 문득 히죽 웃었다.
"후후! 그러고 보니 벌써 시간이 한참 됐군...... 나는 바보다.
첫날밤 신부를 옆에 두고 이렇게 멍청하게 이야기만 하고 있다
니......"
이어 그는 성큼 일어서더니 남궁소소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금보학관을 머리에서 벗겨내고... 봉황잠과 보기만 해도 갑갑해
보이는 요란한 치장의 신부복을 벗겨냈다.
(아......!)
남궁소소는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었다.
그녀는 금천풍호의 두둑한 배짱에 그만 기가 질려 버린 것이다.
금천풍호의 손길은 어디까지나 거침이 없었으며 남궁소소는 순식
간에 얇은 나삼만을 걸친 차림이 되었다.
오오!
순간 금천풍호는 그만 정신이 황홀할 지경이었다.
콧속을 파고드는 성숙한 여인의 체향은 그대로 잘 익은 감귤향
같았고... 차라리 완전히 벗는 것보다 더욱 유혹적인 나삼차림 사
이로 아른아른 비치는 늘씬한 팔등신의 교구는 보는 이의 심혼을
몽땅 뽑아낼 것만 같았다.
특히 본홍빛 잠자리 날개처럼 얇은 나사 사이로 볼록 솟아오른
부푼 가슴의 융기는 그의 눈을 파멸시킬 것만 같은 폭발적인 관능
의 유혹을 자아내고 있었다.
아마도 난생처음 사내의 손길을 접했기 때문일 것이다.
금천풍호의 손길이 닿으며 옷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갈 때마다 남
궁소소가 비 맞은 참새처럼 몸을 떠는 이유는......
헌데 남궁소소의 몸에 나삼만을 남겨 놓은 금천풍호는 갑자기 거
기서 손놀림을 멈추더니 그대로 침상에 벌렁 눕는 것이 아닌가?
이어 그는 의아해 하는 남궁소소를 바라보며 말하는 것이었다.
"후후, 왜 그리 멍청하게 앉아 있는 것이오? 어서 자지 않고..."
"예에?"
자라니...... 세상에 첫날 밤을 지새는 신부의 옷을 반쯤 벗기다
말고 자라니......?
그때, 금천풍호는 그녀가 소태를 씹은 표정을 하고 있자 오히려
의아로운 표정을 하며 묻는 것이다.
"뭐가 잘못되었나? 음월이 알려준 것은 거기까지였는데...... 그
밖에 뭐 다른 절차가 남아 있는가?"
맙소사!
이게 무슨 소리인가?
첫날밤에 신랑이 치뤄야 하는 절차를 오직 옷 벗기는 것만으로
알고 있다니......
금천풍호는 재차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아아...... 아무튼 이제는 그만 자도록 합시다. 만일 남아있는
절차가 있다면 그것은 내일 음월에게 물어보고 할 테니......"
이어 그는 눈을 감더니 일각도 되지 않아 코까지 골며 잠을 자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얼떨떨해지는 것은 오히려 남궁소소였다.
그녀는 지금 정신이 혼란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알 수
가 없었다.
그렇게 얼마 동안이나 어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문득 한 순간 그녀의 눈이 조용히 자고 있는 금천풍호의 얼굴에
닿았다.
한쪽에서 활활 타오르는 촛불 때문인가?
금천풍호의 준수한 얼굴이 보석처럼 빛나고... 그 얼굴이 한없이
평화스러워 보이는 것은......
그 평화스러운 얼굴을 대하는 순간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가 초라해지고 부끄러워지는 마음이 들었다.
자신을 독살하려 했던 여인의 앞에서 저토록 태연하게 잠을 잘 수
있다는 사실도 그렇거니와 진실로 금천풍호의 얼굴에서는 눈꼽만큼
의 사기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나는......)
그녀는 조용히 방 한쪽 구석에 앉은 후 무릎을 세우고 얼굴을 그
속에 파묻은 채 한 손을 머리카락 속에 파묻었다.
저 사람 너무도 티없이 맑고 순수하다......
헌데... 나는... 나는......
한순간이었다.
그녀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금천풍호의 몸을 세차게 흔들었
다.
금천풍호는 잠에 취한 얼굴로 손으로 눈을 비비며 의아로운 눈으
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무엇 때문이지...... 첫날밤에 신랑이 잠을 자서는 안 되는 규
칙이라도 있는 것인가?"
남궁소소는 굳은 낯빛으로 꽃잎같은 입술을 열었다.
"나는 당신이 첫날밤을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를 모르는 사람이라
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대답해 주세요...... 내가 당신을 독살하려
했기 때문에... 당신은 제가 미워지신 건가요......?"
아무래도 여인의 몸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의 마지막 음성이 물결처럼 밀려나온 것은......
순간이었다.
금천풍호의 안색이 이제까지와는 달리 담담하게 변한 것은...
단지 그것뿐이었다.
오오, 어찌 사람이 달라 보여도 한순간에 이렇듯 바귈 수가 있다
는 말인가?
조금 전의 모습이 장난을 좋아하는 철부지 어린아이처럼 순진하
고 티없이 맑았다면... 지금 금천풍호의 모습은 너무도 눈부신 위
엄이 소기처럼 배어있는 것이 아닌가?
남궁소소는 한 사람의 몸에 이렇듯 이질덕인 기운이 한꺼번에 잠
재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금천풍호는 그녀의 해맑은 두 뺨을 문득 자신의 양 손으로 소중
히 감쌌다.
"소저를 처음 만났을 때... 소저의 가슴 속에 지울 수 없을 정도
로 깊이 사랑하고 있는 한 사내가 있음을 알았소."
아마도 옥천군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 게다.
처음 금천풍호를 만나던 그때, 남궁소소는 금천풍호가 옥천군인
지 잘못알고 실수를 하지 않았던가?
남궁소소는 금천풍호의 머리 정도라면 그것을 쉽게 알아차렸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제가 천해 보였나요?"
물결처럼 떨려 나오는 음성......
금천풍호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사랑이란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고귀한 것......
나는 소저가 사랑을 위해서 그토록 뜨거운 열정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오히려 높이 사고 싶소."
"저는 당신을 죽이려고 술잔에 독을 탔는 걸요......"
"후후! 그리고 당신도 따라서 죽으려고 했지...... 나를 죽이려
했던 것이 당신의 마음 속에 죄의식으로 남아있고 또 언젠가는 내
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라도 출가를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
을 알았기 때문에...... 정조를 지키기 위해서 죽음을 택하려고 했
을 것이오."
"......"
"허나, 후후! 당신은 마음이 약한 사람이오...... 그렇기 때문에
마음에 한 사내를 사랑하고 있으면서도 오빠의 말을 거역할 수 없
었으며 그 때문에 야망(野望)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오."
오오!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금천풍호는 그녀의 마음 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사람처럼 귀신같
이 알아 맞추는 것이 아닌가?
(대체 이 사람은......)
그러고 보니 금천풍호는 이미 방 안으로 들어서기 전 부터 어떤
방법으로든 그녀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이 틀림
없었다.
아니 어쩌면 술에 독을 탔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일부러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술부터 마셨는
지도 모른다.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왜 저 사람은 자신을 용서해 주려고 하는
것인가?
그때 금천풍호의 음성이 조용히 그녀의 귓속으로 파고 들었다.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할 것은 없소. 나는 당신의 그 숭고한 사
랑을 지켜주고 싶은 것뿐이니까......"
그녀가 의아한 듯 눈빛을 빛내며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순간 금천풍호는 웃음을 지으며,
"후후! 당신은 똑똑한 여인이오...... 헌데 지금은 왜 그렇게 바
보처럼 변했는지를 모르겠구료......"
이어 그는 정색을 하며 말을 이었다.
"나는 당신이 앞으로 옥천군을 떳떳이 만날 수 있도록 지켜주겠소.. 사랑은 고귀한 것이지만... 그것은 지키고 가꾸려는 사람에게만 빛을
발하는 것...... 당신은 그 사랑을 고귀하게 가꿀 수 있는 충분한 자격
이 있는 여인이기에......"
오오!
------ 나는 당신이 앞으로 옥천군을 떳떳이 만날 수 있도록 지켜
줄 것이오!
이 말.
바로 오늘 밤은 물론 앞으로도 남궁소소가 원한다면 금천풍호는
그녀를 순백한 처녀지신으로 지켜준다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상대의 사랑을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시킬 줄 아는 사
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남궁소소는 금천풍호의 빨아들일 듯
한 깊숙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런 그녀의 눈 속에 담긴 것은 무수한 갈등의 빛......
그녀는 문득 나직한 탄식을 하며 말했다.
"당신은 제가 미우신가요......?"
"밉다니... 후후! 당신은 아름다운 여인이오...... 이 세상의 여
인이 아니라고 느껴질 만큼......"
"당신에겐 욕망도 없나요...... 취하실 수가 있을 텐데......"
"그렇게 되면 나는 스스로가 후회하게 될 것이오...... 나는 후
회할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오......!"
남궁소소는 문득 조용히 시선을 들어 천정을 바라보았다.
잠깐동안이지만 그녀는 아주 깊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러던 순간, 그녀는 문득 조용히 일어서더니 섬섬옥수를 들어
자신의 옷을 벗기 시작했다.
스르르......
뱀의 껍질이 벗겨지듯이... 나삼자락이 그녀의 희고 둥근 어깨
를 흘러내며 발목 맡으로 내려갔다.
순간, 그녀의 눈부시도록 현란한 나신이 남김없이 밝디밝은 촛불
아래 드러났다.
보라!
섬연한 호선을 그리며 물결치듯 일렁이는 여체(女體)를......
손을 대면 분가루라도 묻어날 듯 뽀얀 목덜미 아래... 풍만히 부
풀어 오른 가슴. 한 줌에 쥐일 듯 미려한 허리 사이로 알맞게 살이
찐 아랫배엔 햇살보다도 더 맑디 맑은 윤기가 흘렀다.
희고 긴 손가락 사이로 보일듯 말듯 가리운 신비처의 유혹.
아아.......!
이 하늘 아래 그 어떤 이 있어 이순간 드러난 나체의 아름다움을
따르랴......
금천풍호.
그는 대경하여 외쳤다.
"소저... 이게 무슨 짓이오......?"
그는 갑작스러운 남궁소소의 변화에 의아함과 놀라움을 금치 못
했다.
그때, 남궁소소는 별빛을 담은 듯 맑디맑은 눈으로 금천풍호를
빨아들일 듯이 깊숙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꽃잎 같은 붉은 입술을 열
었다.
"조금 전에... 아주 잠깐 동안이기는 했으나... 태어나서 가장
많은 생각을 했어요...... 이것은 그 많은 생각 끝에 내려진 결정.."
"소저......"
"아무 말씀 마세요...... 이것은 제 스스로가 내린 결정......
어쩌면 저는 오늘 이후로 평생을 후회와 번민 속에 지내야 될지도
몰라요...... 허나, 그것은 당신의 책임이예요...... 저를 후회 속
에 살지 않게 하는 것은......"
이어 그녀는 소리 없이 미소를 피어 올렸다.
"그리고... 참으로 이상한 일이예요...... 조금 전에 저는 당신 앞
에서 이렇게 옷을 벗어야 하는 기이한 운명을 예감했거든요.....
그리고... 더더욱 이상한 것은 당신 앞에서 이렇게 옷을 벗고 있는
것이 하나도 부끄럽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예요......"
다음 순간, 남궁소소는 늘씬한 교구를 움직여 금천풍호의 품 안
으로 사르르 파고 들었다.
과일향같은 향기로운 체취와 함께 서늘하게 느껴지는 여체의 부
드러운 살결의 감촉!
"으음......"
순간적으로 금천풍호는 거역할수 없는 불같은 욕정(欲情)을 느꼈
다.
그 순간,
화르륵...... 확확......!
그들의 조금 있을 일을 예고라도 하듯이... 황촉불이 거세게 일
렁이기 시작했다.
뜨거운 열기(熱氣)를 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