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초등학교(多斯初等學校) 역사
다사초등학교(多斯初等學校)는 다사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간직한 현대식 학교이다. 일제강점기인 1934년 8월 25일 설립인가를 받아, 같은 해 9월 17일에 다사공립보통학교(多斯公立普通學校)로 개교한 다사초등학교는 매곡리(梅谷里) 김해김씨(金海金氏) 재실(齋室)에서 1학년 30명, 2학년 30명으로 처음 학교를 열었다. 초대 교장은 권렴(權廉) 선생님이었다.
개교 후 2년이 지난 1936년 6월 30일 현재 다사초등학교 위치인 매곡리 457번지에 2개의 교실이 준공되면서 임시교사(臨時校舍)에서 본교사(本校舍)로 이전하였다. 다사초등학교는 1937년 3월 19일 4년제 졸업생 26명을 처음 배출하였다. 1회 졸업생의 대부분은 다사지역의 학생으로 하빈초등학교에서 2학년으로 편입학을 했던 학생들이었다.
다사초등학교는 1945년 3월 2일 해방 전 마지막으로 8회 졸업생 64명을 배출하게 된다. 필자는 당시 졸업하신 여러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졸업 자료를 찾던 중 대구 수성구 두산동에 거주하시는 최낙진 어르신께서 졸업기념 사진을 보관하시고 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최낙진 어르신은 필자를 반갑게 대해주시고 친절하시게 사진을 빌려주셨다. 그 소중한 자료는 사진관에서 재촬영하여 필자가 보관하고 있다.
다사초등학교는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이하여 1941년 5월 2일부터 4년 5개월 동안 2대 교장으로 근무하던 일본인 소림단작(小林丹作)이 일인퇴거(日人退去)로 9월 30일 자연퇴직을 하였다. 동년 9월 10일 당시 수석교사였던 백윤택(白潤澤) 선생은 인본인 교장으로 부터 학교를 인수하여 개방하였다. 동년 10월31일 한영직(韓永稷) 선생이 3대 교장으로 취임했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다사초등학교는 또 다시 변화을 격게 된다. 다사에 거주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구 등지로 피난을 가게 되고, 다사지역에는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기 위해 한국군과 유엔군이 들어왔다.
한편 1950년 10월 중공군이 한국전쟁에 개입하자 이승만 정부는 악화되어 가는 전쟁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국민방위군설치법"에 의하여 만 17세에서 만 40세 미만의 제2국민병인 국민방위군을 창설하였다. 1950년 12월 17일 "제2국민병소집령"을 발동, 약 50만 명의 장정들을 전국 각지의 51개 교육연대에 분산 수용하였다. 국회의 결의로 소집 약 5개월 만인 1951년 5월 12일 완전 해체 될 때 까지국민방위군 일부는 다사초등학교에 주둔하였다. 추위와 굶주림이 시달린 방위군들은 학교의 기물과 학적부 등을 훼손시켰다. 피난에서 돌아온 학생들은 국민방위군이 돌아 갈 때까지 학교를 대신해 매곡리 경주이씨(慶州李氏) 정자(亭子) 등에서 학업을 이어갔다.
다사초등학교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학교역사가 삐뚤어져 버렸다. 1946년 7월 20일 다사초등학교 제9회(해방 후 제1회)가 졸업을 하게 된다. 해방이 되자 당시 일제잔재 를 청산하자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일제강점기의 기수를 빼고 졸업 기수를 인정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 시류에 맞추어 제9회 졸업생이 1회 졸업생으로 바뀌게 되었다. 1975년이 되어서야 다사초등학교는 해방 전 기수를 부활시키는 작업이 있었다. 당시 학교 관계자는 학적부 소실에 따른 안일한 후속 조치로 제8회 졸업생을 누락시키는 그야말로 다사초등학교 역사에 뼈아픈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언젠가는 빠져버린 다사초등학교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한다.
1968년 3월 1일 다사국민학교 달천분교(達川分校)가 2개 학급으로 개설되어 개교가 되면서, 이천리(伊川里)·달천리(達川里)·박곡리(朴谷里) 학생들을 받았다. 달천분교는 점차적으로 규모를 키워 1971년 3월 1일 달천국민학교로 독립 승격되었다. 그 후 달천초등학교는 다시 쇠퇴하여 서재초등학교(鋤齋初等學校) 분교로 흡수되었다가 폐교를 맞았다.
현재 다사초등학교에는 교직원 74명에 37학급 833명의 학생이 있으며, 낙동강과 금호강을 사이에 두고 용산(龍山)을 등지고 마천산(馬川山)을 마주보며 다사 인재양성의 요람으로 거듭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시절 내무부장관을 지낸 취산 구자춘 선생과 달성군 지역구 이종진 국회의원·배기열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가 다사초등학교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