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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고도 없는 인천에 갔다. 청라국제도시역. 우와. 여긴 처음 내려보네. 한시까지 만나기로 했는데 한시에 지하철 문이 열렸다. 우다다다 달려서 지하철 입구에 도착하니 멀리서 무릎이 손을 흔들고 있다. 지하철 역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며 차를 타고 데리러 온 3인 가족. 무릎의 남편 데이비드와 민들레는 예약한 식당에 무릎과 나를 내려주고 홀연히 떠났다.
첫 수업부터 책을 읽으며 울던 사람. 나같은 사람이 또 있네, 생각하며 그를 보았던 기억이 난다.
무릎은 첫날 울더라. 원래 그렇게 눈물이 많은가?
눈물이 진짜 많다.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잘 우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감수성이 풍부해서 좋다가도 난 왜이렇게 약한 모습을 잘 보이는 걸까. 내 모습이 좋기도 싫기도 하다.
4년 전에 한 친구가 별거 아닌 일에도 많이 우는 내 모습을 보고 병원에 가보라고 하더라. 병원에 갔더니 우울증이라도 하더라. 그것도 되게 심각한.
그 전에 편입 시험에도 많이 떨어지면서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수의사가 되고 싶어서 편입을 꽤 오랫동안 준비했다. 그래서 우울증이 생긴건가 생각했다. 의사가 우울증을 진단하면서 2년간 약을 먹으라고 했는데, 2주동안 약을 먹으면서 너무 졸렸다. 약빨이 받는게 아니라 그냥 졸려서 우울할 틈이 없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당시에 우울증 약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우울증 약이 맞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 우울증이 있어도 자살충동이 없는 사람이 우울증 약을 잘못 먹으면 오히려 자살충동, 살인충동을 느낀다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무서워서 약을 안먹겠다고 했다. 약을 먹지 않으면 자기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없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냥 상담비 환불 받고 치료를 받지 않았다. 치료가 아니라 약을 팔려고 했던 것 같다.
그 뒤로 다른 병원은 안갔나?
다른 병원은 안가고 상담하는 곳을 찾았다. 나는 심리학과를 졸업했는데 요즘은 상담 자격증을 따기가 쉬워서 아무한테나 가면 안될 것 같았다. 다른 상담가 분을 소개받았다. 상담을 바로 받지는 않았다. 그 시기에 임신을 했다. 엄청 행복했다. 되게 오랫동안 아이를 갖고 싶었기 때문에 임신 기간이 꿈을 이루기 직전의 상태였다. 그래서 아이를 낳고 더 심하게 우울했던 것 같다. 남편이 많이 도와줬지만 내 책임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편입공부를 했다고 했다.
수의사가 되고싶었다. 의미없이 돈 버는 일은 하고싶지 않았다. 수의사가 되는 일이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일이 많았다. 영화감독도 하고싶고 배우고 하고싶고. 꿈이 많았다. 잘 안 될 것 같으면 빨리 접으려고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쉽게 포기를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편입준비를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공부하고 대학교 가서 생각하라고 하니까 그냥 그렇게 했다. 그러다가 대학 가서 시도해보려고 하니까 늦은 것 같기도 하고 대학교에 집중도 못하고 그랬던 것 같다. 정신없이 살았다.
나는 왜 이렇게 꿈이 많을까. 가 내 삶의 고민이었다. 꿈이 많아서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하면서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지금 와서 보니 그게 내 발목을 잡은 것 같고, 어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게 한 것 같다.
남편을 11년 7월에 우쿨렐레 수업으로 처음 만났다. 영어 공부에 관심이 있던 차에 영어로 수업해준다길래 신청했다. 9월에 남편이 고백하더라. 이메일로.
(그래서?)
친구로 지내자고 했다. 그 뒤로도 같이 놀았다. 남편이 내가 졸업한 학교에 교환학생으로 와서 연결고리가 좀 있었다.
남편이 학생인가?
그렇다. 대학원생이다. 결혼하자마자 대학원에 박사과정에 입학해서 5년차다.
어떻게 먹고 사나?
부모님이 보내주시는 생활비로 먹고 산다. 조금 힘든 일인데, 부모님이 좀 도와주신다고 등골이 휘고 그런 게 아니니까. 괜찮다고 자기합리화를 하곤 한다.
서로 벌이가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결혼할 생각을 했나?
그냥 빨리 결혼하고 싶었다. 나이 때문에 급하다고 생각했다. 둘 다 현실감각이 없다. 어떻게 하다보니 결혼하게 됐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무슨 생각으로 결혼했는지 모르겠다. 둘다 결혼을 했을 때 돈 들어갈 생각보다는 결혼해서 얼른 엄마가 되고 싶었다.
계속 친구로 만나다보니 이 사람은 나를 두고 미국으로 떠날 사람은 아니다 싶어서 물어봤다. 나는 수의대 편입해야되고 한국에서 살 생각인데 괜찮냐고 하니까 괜찮다고 하더라. 남편이 나를 처음 봤을 때 나를 만나면 한국에서 계속 살아야겠다 생각했다고 한다.
사귄지 2주정도 됐을 때 남편이 건물 하나를 주더라. 펜으로 건물 하나를 그려서 앞으로 우리가 함께할 미래에 대한 내용을 써줬다. 그 때 남편이 나랑 결혼할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자연스레 결혼을 하게 됐다.
유급노동 없는 삶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나?
무릎 : 엄청 많았다. 내가 하고싶은게 대체 무엇이길래 이렇게 부모님 돈을 쓰면서 일하지 않고 사는 걸까. 다른 사람 같으면 지금 이 상황에서 꿈을 접고 뭐라도 하지 않았을까. 나는 왜 그게 안될까. 그런 생각을 했다.
편입 공부를 하다가 결혼 결심이 섰을 때 아빠 가게에서 일을 했었다. 일년 정도. 결혼 준비까지 부모님 돈을 쓰기는 싫었다. 아빠가 하시는 휴대폰 가게에서 일을 했었다.
아빠는 본인의 휴대폰 가게를 맡아서 운영하시기를 바랐다. 그래서 잠시 일을 했었는데 너무 힘들었다. 서비스직이다 보니 하루 종일 서있고 사람 대응하는 일도 어려웠다. 상담하고 요금 받고 민원 들어주는 일을 했다. 어떤 사람이 카드를 던지면서 요금을 내는데 그 손님이랑 싸운 적도 있다. 1년이 넘어가니 몸이 아프고 피부병이 생겼다. 신혼 초에 7-8시까지 일을 하는데 너무 피곤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하면 못났던 생각인데, 휴대폰 파는 일이 의미 없게 느껴졌다. 그까짓 거. 라고 생각했다. 왜 이것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야 하지? 생각을 많이 했다.
첫 아이를 가졌을 때, 엄청 힘든 날이 있었다. 늦게까지 일하다 하혈을 해서 병원에 갔더니 아무래도 유산될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엄청 울고 되게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결국 유산이 됐다. 그 일을 계기로 일을 그만두는 것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고, 6개월 뒤에 일을 그만두게 됐다. 일을 그만두니까 피부병이 없어졌다.
첫 아이 유산 후에 마음이 어땠나?
그렇게 오랫동안 힘들어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 생각한 계기가 되었다.
무릎의 마음이 더 힘들지 않았어서 다행이다.
일하지 않고 남의 돈으로 먹고 사는 건 마음이 힘들다. 지금도 종종 힘든 마음이 찾아올 때가 있다. 그렇다고 내가 당장 어디가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아이도 키워야하고.
상담할 때도 종종 말한다. 내가 너무 못난 인생을 사는 것 같다. 너무 욕심만 부리는 것 같은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돈만 벌기 위해 일을 하고싶지는 않다. 못하겠다. 했더니 선생님이 딱 10년 정도만 눈 딱 감고 참으라고 하더라. 십년 후에 부모님께 어떤 형태로든 갚을 수 있을 거란 생각으로 버티면 십년 뒤에는 괜찮아질거라고 하더라. 뭐라도 하면서 벌고 있겠지. 하시더라. 계속 고민하다보면 정말 내가 추구하는 의미와 맞닿아있는 일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냥 그렇게 산다. 이런 생각도 해본다. 나를 도와주는게 부모님의 낙이다. 합리화를 많이 한다. 나는 외동딸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버틸만 하다.
버틸만큼 버티시라. 버티는 무릎을 응원한다.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수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꼭 수의사가 아니라 다른 형태로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생각해본적은 없나?
아, 수의사의 꿈은 접었다. 처음에는 아이 낳고도 미련이 남아서 진짜 내가 하고싶구나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시간이 없는데, 없는 시간을 쪼개서도 다른 일을 하려고 하니까 좋아하는 일의 우선순위가 자연스레 정리되더라. 내가 진짜 원하는게 뭔지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내가 뭣하러 이렇게 목메고 있을까. 그냥 지금 하고 싶은 걸 하자는 생각에 좋아하는 일의 목록을 만들어서 그걸 했다. 글 쓰고 책 읽고 노래하고 악기 연습하고. 당장 하고싶은 것만 하기로 마음먹고 나니 조금 편해졌다. 그게 2년 전이다. 아직도 많이 해놓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지내고 있다. 아직도 내가 뭐가 되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다.
남편이랑 영국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무대에 서보기로 했다. 지켜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무대에 못 서더라도 가자고 했다. 진짜 이루어질 것 처럼 상상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않을까. 남편과 그런 이야기를 나눈다. 그렇게 산다.
엄마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엄마로 사는 삶은 어떤가? 좋은가?
좋기는 좋다. 좋은데. 좋은데.. 생각보다 되게 책임이 많다. 작은 아이의 인생이 나에게 달려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아서 지금은 아니지만. 처음에는 아이의 미래가 나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하니 불안함이 있었다.
엄마가 된다는게 보통일이 아니구나 깨달았는데 무를 수가 없었다. 그게 되게 고통스러웠다. 되돌릴 수 없는 길을 와버렸다. 큰일났다. 조금 더 여행하고 조금 더 고민하고 엄마가 됐었어야 했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됨으로 인해 개인이 사라지는 경험은 없었나?
있었다. 아이 낳고 힘들었던 감정 중에 하나가 ‘내 인생이 끝났다. 이 아이를 낳기 위해 지금까지 살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그런가?
아니다. 지금은 내 인생이 제일 중요하다. 아이가 너무 나쁜 방향으로만 가지 않도록 해주는 게 내 역할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해졌었다.
변화의 계기는?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아이가 6개월쯤 됐을 때 살려면 책을 읽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그랬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아니지만 책을 좋아해왔다. 그래서 책을 찾아서 읽는데 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의 [부모는 아이와 함께 자라다] 였던 것 같다. 거기에서 아이를 키우다보면, 엄마가되면 자기의 어린시절을 마주하게 되고 거기에서 해결되지 않았던 감정들이 올라오기도 한다고 하더라. 그때 내가 해결해야할 것이 남아있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힘든게 이유가 있다는 걸 알고나니까 현실에 바뀐 게 없어도 견딜만 했다.
그렇게 지내다가 아이가 돌에 가까워졌을 때 다시 힘들어졌다. 고양이도 아프고 아이도 돌 때 쯤 돌치레를 할 때였다. 힘들어서 울면서 검색을 했던 기억이 난다. 산후 우울증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를 검색했다. 이유없이 힘들었던 시간들이었다.
죽고싶지는 않으니까 계속 인터넷을 찾아봤다.
죽고싶었나?
아니다. 그저 남은 삶이 편하지는 않겠다. 남은 인생 힘들게 살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죽고싶지는 않았지만 이러다 어느날 죽고싶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엄마들의 우울증을 상담해주는 카페 들어가서 글들을 읽다가, 거기서 글쓰기를 처음하게 됐다. 엄마들을 위한 글쓰기 모임을 모집해서 처음 글을 쓰게 됐다. 글쓰기를 좋아했던 옛날 기억이 살아나면서 내가 글쓰기를 좋아했었구나, 깨달았다. 그 때 계속 써야겠구나 생각하게 됐다.
그때 은유쌤의 [글쓰기의 최전선]을 읽게 됐다. 그걸 읽고 너무 감동적이어서 “이분 누구야. 이 분 찾아서 가야겠다” 그랬어다. 그래서 엄마들 글쓰기 끝나고 은유 선생님 수업을 듣게 됐다.
그때 처음 수업 책이 [나의 두사람] 이었는데, (우느라) 말을 못했다. 사람들 이야기 들으면서 눈물 나고 책 생각하니까 눈물 나고 그랬다. 그 때 이 수업이 나에게 큰 힘이 될 것 같다 생각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내가 그렇게 울고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어? 여기서는 맘껏 울어도 되는거야!"라고 말하며 글쓰기 수업이 힘이 될 것 같다는 무릎의 얼굴에서 내가 보였다.
글쓰기 수업으로 바뀐 점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 단편적인 상황을 놓고 그 사람에게도 어떤 사정이 있었겠구나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더 솔직해질 수 있었다.
글쓰기의 영향
내 삶이 망가지지 않도록 할 수 있는 건, 나를 도울 수 있는 건 나. 나라는 걸, 내가 제일 큰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글을 쓰면 나를 도울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경험을 글로 쓰다보면, 감정에만 취해서 아프고 슬프고 힘들었던 것들을 세상에 뿌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뿌리고 나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고, 은유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내가 가지고 있던 새로운 생각을 발견하기도 했다. 과거의 기억에 대해 쓰면서 나에게 남아있던 것들을 발견하게 됐고 또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커졌고, 알고싶은 것들이 더 많아졌다.
하고싶은 일이 있나?
요즘은 글쓰고 책읽는 일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란다. 생활비와 남편이 받는 장학금을 쪼개서 모은 돈으로 방음부스를 설치했다. 여름이라 더워서 못쓰고 가을되면 그 안에서 음악을 만들어보고 싶다.
그렇게 하고 싶은 일들을 서두르지 않고 하면서 천천히 걸어가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산다.
사회에서 서른에 가까우면 스스로 돈을 벌 수 있어야되고 뭘 해야되고 이런 기준이 있는데 그것 때문에 더 힘들었다는 생각이 들더라. 근데 어떤 사람은 갈 길을 늦게 찾아서 더 오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내 나이 때문에 어릴때부터 음악을 했던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뭘 하겠다고 덤벼. 생각할 무렵이었다. 감응의 글쓰기에서 다른 학인께서 책을 추천해주셨다. [모든 시도는 따뜻할 수 밖에] 라는 책이었다. 그 이야기를 읽고 내 나이를 조금은 벗어버리는 일을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용기가 났다. 좋은 책이었다.
되게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있느냐에 따라서 삶이 달라진다. 글쓰기 수업에 가면 다른 온도의 다른 이야기들이 들린다. 내 신념을 지키는 삶을 살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는 통로가 수업이다. 이런 사람들만 계속 만나고 싶어서 수업을 계속 듣고싶다 생각한다. 주변에 그런 사람들을 많이 보면서 살고싶다.
무릎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랑은 전혀 다른 모양의 사람이구나. 생각하다가도 무릎의 얼굴에서 내 얼굴을 본다. 작은 키, 동그란 얼굴, 만삭에 가까운 동그란 배를 가진, 그래서 귀여움이 극대화된 몸을 가진 무릎이 저 멀리서 손을 흔든다. 잘 울고, 글쓰고 책읽는 무릎, 솔직한 무릎, 음악하는 무릎, 좋아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이 많은 무릎이 언젠가 글래스톤베리 무대에 오르는 상상을 하며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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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귀여운 찌늬가 귀여운 무릎을 만났네. 무릎의 눈물 가득한 음악은 어떨까. 기대가 됩니다👏👏👏👏👏
무릎님 남편 이름 마이클 아닌 것 같아서 지웠는데 다시보니 삭제가 안되어있어여 ㅠㅠ ㅋㅋ 폰으로는 수정이 안돼서 집에가서 다시 수정예정!
예쁜 사람을 담은 예쁜 글이네요🥰 읽고 마음 흐뭇:)
무릎! 우리 노래 만들어요! (남편이 곁에 있지만)
오랬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어디서 봤던 문장이 생각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