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일기
/ 강순 시인
구름이 엉덩이를 쏙 끌어당긴다 나는 이제 마녀답게 웃는다 왜 웃냐는 자문도 없이 구름 위에 앉아 구름을 뜯어 먹으며 마녀가 웃는다 구름에 섞인 풍문들이 맛있다고 웃는다
솜사탕 같이 가벼운 풍문들이 사방으로 날리는 계절, 차가운 바람은 나의 입으로 들어가 그대의 항문으로 나온다 그대도 나처럼 지상에 안착하지 못했구나 허공에 주소를 새로 내었구나 그대가 구름 속에 산다는 풍문은 나의 풍문이다
구름방석을 깔고 산 지 오래 되었다 풍덩풍덩 빠져서 절대 빠져 나오지 못하는, 질퍽이는 관계 그물망 위로 퍼지는 음산한 웃음소리, ㄱㄱㄱ ㅅㅅㅅ ㅇㅇㅇ...... 더 외로운 자의 웃음소리가 더 음산하다
새들도 숲에 안착하지 못하고 허공을 뜯어 먹으며 허공에 알을 낳은 지 오래, 슬픈 풍문들을 벌레처럼 잡아먹는다 날카로운 부리를 가졌던 새들은 거짓 풍문에 배가 불러 귀먹고 눈 멀어간다
허공에 오래 살다 보면 누구나 풍문으로 배가 불러 오지 바람은 계속 날리는 풍문을 낳고 그대와 나는 구름 과자가 맛있다고 웃는다 ㄱㄱㄱ ㅂㅂㅂ ㅅㅅㅅ...... 더 배고픈 자의 웃음소리가 더 음산하다
<시산맥 17년 봄호>
강순 시인
98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이십대에는 각시붕어가 산다>
첫댓글 저도 이 시 추천했는데 재밌네요
그러게요..좋은 시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