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은(高銀) 詩 한 아름*****
◆ 가사메댁
새터 두희봉이 마누라 가사메댁은
울음소리 청승맞기로 으뜸이어요
남원 운봉 지리산 물소리 받아왔다지요
그 울음소리 옆에서는
절구통도 절구공이도 따라 울게 되어요
한규 할아버지의 꼬부랑 자당께서
그 좁쌀여우 뒷호강하더니
여든여섯에 세상 떠났는데
고씨네 사촌 육촌 팔촌 아낙 가운데
울음소리 하나 변변한 것 없어서
한규 할아버지 끌끌 혀를 찼지요
할 수 살 수 없이
가사메댁 보리 한 말 주고 사다가 울었어요
그 울음소리
그 사설 풀어나가는 울음소리 판소리
꼬부랑 자당 한평생을
산등성이 기어 오르다가 내려 오다가
갖은 양념 청승고개 다 떨어 엮어내려가는데
그 울음소리 판소리
큰 초상 난 집 마당 한번 오젓 짭짤하구나
◆ 대보름날
정월 대보름날 단단히 추운 날
식전부터 바쁜 아낙네
밥손님 올 줄 알고
미리 오곡밥
질경이나물 한 가지
사립짝 언저리 확 위에 내다 놓는다
이윽고 환갑 거지 회오리처럼 나타나
한바탕 타령 늘어놓으려 하다가
오곡밥 넣어가지고 그냥 간다
삼백예순 날 오늘만 하여라 동냥자루 불룩하구나
한바퀴 썩 돌고 동구 밖 나가는 판에
다른 거지 만나니
그네들끼리 무던히도 반갑구나
이 동네 갈 것 없네 다 돌았네
자 우리도 개보름 쇠세 하더니
마른 삭정이 꺾어다 불 놓고
그 불에 몸 녹이며
이 집 저 집 밥덩어리 꺼내 먹으며
두 거지 밥 한 입 가득히 웃다가 목메인다
어느새 까치 동무들 알고 와서 그 부근 얼쩡댄다
◆ 동고티 무덤
입춘 무렵 보리밭 하나는 신명나 푸르지만
중뜸 아이들 쇠정지 아이들 대여섯이
어디 갈 데 있나
걸핏하면 동고티 큰 무덤
매련퉁이 무덤에 가서
자치기도 하고 개씨름도 하다가
한두 놈은 끝내 울기 십상이지 십상이구말구
그런지라 그 무덤 배겨나지 못해서
이제는 잔디밥 다 벗겨져 벌거숭이 되고 말았지
갈뫼 조송덕이 영감네
할아버지라나 증조할아버지라나
그 할아버지 금슬 좋게 합장한 무덤인데
송덕이 영감 간도로 떠나버리자
누구 하나 돌보지 않는
길가에 나앉은 상팔자 되었네
아이들이야 뭘 아나
그저 하루하루 닳아빠지는 무덤에서 까불어댈밖에
그러던 어느 날 밤 꿈에
그 무덤 속에서 하얀 수염 할아버지 할머니 일어나서
이놈들아
우리가 고단하다 다른 데 가 놀아라
산 사람하고 죽은 사람하고 너무 가까워도 안 좋느니라
이 꿈 꾼 봉식이가 글쎄 그 뒤로 시름시름 앓다가
그냥 약탕관 두고 숨 꼴칵 거두고 말았지 산 무덤이었나?
◆ 거름 내는 날
내 앞에서 자란 자식
벌써 코밑에 잔털 난 자식
쇳내 나는 이놈 데리고
경운기 함께 탄다
아랫뜸 지나
꽤나 먼 길 거름을 낸다
갓난이때 잘도 보채던 놈이
이제는 입이 굼떠
별반 성난 듯이 말도 없다
이놈하고 가다가
상묵이네 논 둔치에서
까딱 엎어질 뻔했다가도
용케 경운기 손잡이 잘 휘어 잡았다
추운 날도 느린 새는 느리게 난다
사뭇 점잖다
우리 짚뭇은 다 들여가고
다른 집 짚벼눌이 더러 논에 있다
올해는 객토 못하는 대신
여름내 만든 퇴비거름
맛있는 거름
논에 내니
논 좀 보아라
논이 헤헤 입 벌리고 좋아한다
남의 논들이야
너무 일직 방정떤다 할지 모르나
우리 논이 좋아하니
나도 내 자식도 함께 좋구나
하늘이야 높아서 소 닭 보듯 하고
다섯 번 거름 실어내면
한나절이 넘어서
거름냄새 퀴퀴 쩐 몸으로
비로소 내 자식 입을 연다
아버지
내년 절충못자리는 내가 할께요
어느덧 덧없구나 내 자식이 자식 아니다
나와 내 자식 이 들판에서 비로소 나란히 형제다
어서 가자 가서 술 한잔 주고받자
◆ 딸그마니네
갈뫼 딸그마니네집
딸 셋 낳고
덕순이
복순이
길순이 셋 낳고
이번에도 숯덩이만 달린 딸이라
이놈 이름은 딸그마니가 되었구나
딸그마니 아버지 홧술 먹고 와서
딸만 낳는 년 내쫓아야 한다고
산후 조리도 못한 마누라 머리 끄덩이 휘어잡고 나가다가
삭은 울바자 따 쓰러뜨리고 나서야
엉엉엉 우는구나 장관이구나
그러나 딸그마니네 집 고추장맛 하나
어찌 그리 기막히게 단지
남원 순창에서도 고추장 담는 법 배우러 온다지
그 집 알뜰살뜰 장독대
고추장독 뚜껑에
늦가을 하늘 채우던 고추잠자리
그 중의 두서너 마리 따로 와서 앉아 있네
그 집 고추장은 고추잠자리하고
딸그마니 어머니하고 함께 담는다고
동네 아낙들 물 길러 와서 입맛 다시며 주고받네
그러던 어느 날 뒤안 대밭으로 순철이 어머니 몰래 들어가
그 집 고추장 한 대접 떠가다가
목물하는 그 집 딸 덕순이 육덕에 탄복하여
아이고 순철아 너 동네장가로 덕순이 데려다 살아라
세상에는 그런 년 흐벅진 년 처음 보았구나
◆ 땀
땀 흘리지 않은 자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하물며 방금 벤 풀냄새의 진리이랴
사랑하는 그대가 말했지
땀을 흘리고 나면
실컷 울고 난 것보다 더 새롭다고
이 세상이 새롭다고
◆ 할아버지
아무리 인사불성으로 취해서도
입 안의 혓바닥하고
베등거리 등때기에 꽂은 곰방대는
용케 떨어뜨리지 않는 사람
어쩌다가 막걸리 한 말이면 큰 권세이므로
논두렁에 뻗어 곯아떨어지거든
아들 셋이 쪼르르 효자로 달려가
영차 영차 떠메어 와야 하는 사람
집에 와 또 마셔야지 삭은 울바자 쓰러뜨리며
동네방네 대고 헛군데 대고
엊그제 벼락 떨어진 건넛마을
시뻘건 황토밭에 대고
이년아 이년아 이년아 외치다 잠드는 사람
그러나 술 깨이면 숫제 맹물하고 형제 아닌 적 없이
처마 끝 썩은 낙수물 떨어지는데
오래 야단받이로 팔짱끼고 서 있는 사람 고한길
그러다가도 크게 깨달았는지
아가 일본은 우리나라가 아니란다
옛날 충무공이 일본놈들 혼내줬단다 기 죽지 말어라
집안 식구 서너 끼니 어질어질 굶주리면
부엌짝 군불 때어 굴뚝에 연기 낸다
남이 보기에 죽사발이라도 끓여먹는구나 속여야 하므로
맹물 끓이자면 솔가지 때니 연기 한번 죽어라고 자욱하다
삼 년 원수도 술 주면 좋고 그런 술로 하늘과 논 삼아
8월 땡볕에 기운찬 들 바라본다
거기에는 남의 논으로 가득하다 작년 도깨비불도 떠오른다
이 세상 와서 생긴 이름 있으나마나
죽어서도 이름 석 자 새길 돌 하나 없이
오로지 제사 때 지방에는 학생부군이면 된다
실컷 배웠으므로
실컷 배웠으므로
◆ 걸레
바람 부는 날
바람에 빨래 펄럭이는 날
나는 걸레가 되고 싶다
비굴하지 않게 걸레가 되고 싶구나
우리나라 오욕과 오염
그 얼마냐고 묻지 않겠다
오로지 걸레가 되어
단 한 군데라도 겸허하게 닦고 싶구나
걸레가 되어 내 감방 닦던 시절
그 시절 잊어버리지 말자
나는 걸레가 되고 싶구나
걸레가 되어
내 더러운 한평생 닦고 싶구나
닦은 뒤 더러운 걸레
몇 번이라도
몇 번이라도
못견디도록 헹구어지고 싶구나
새로운 나라 새로운 걸레로 태어나고 싶구나
◆ 곡비(哭婢)
조선시대 양반 녀석들 딱한 것들
폼잡기로는 따를 자 없었다
그것들 우는 일조차 천한 일로 여겼것다
슬픔조차도 뒤에 감추고 에헴에헴 했것다
그래서 제 애비 죽은 마당에도
아이 아이 곡이나 한두 번 하는둥마는둥
하루내내 슬피 우는 건 그 대신 우는 노비였것다
오늘의 지배층 소위 오적 육적 칠적 역시
슬픔도 뭣도 모르고 살면서 분부를 내리것다
울음 따위는 개에게도 주지 말아라
그런 건 이른바 민중에게나 던져주어라
그 민중이나 울고불고 아이고 대고 할 일이다
그런 천박한 일 귀찮은 일은 내 알 바 아니야
하기야 슬픔이 본질적인 것이 되지 않을 때
울음이 말단이나 노동자에게만 머물 때
그런 것들이 다만 천박한 것으로만 보일 때
시인아 너야말로 그 민중과 함께
민중의 울음을 우는 천한 곡비이거라 곡비이거라
감옥의 무기수가 나에게 말했다
선생님 내 인생을 노래해 주시오
그 말씀 잊어버릴 때
나는 시인이 아니다 시인이 아니다
◆ 곽낙원
물론 낫 놓고 기역자 알 리 없는
황해도 텃골 군역전 부쳐먹는 쌍놈의 집 아낙입니다.
그런 아낙이 제 자식 창수가
대동강 치아포 나루에서 왜놈 한 놈 때려죽이고
물 건너 인천 감리영 옥에 갇히니
초가삼간 다 못질해버리고
옥바라지 객주집 식모살이 침모살이 해가며
차꼬 물린 살인죄 자식 면회 가서
나는 네가 경기감사 한 것보다 더 기쁘다
이렇게 힘찬 말 했습니다.
몇십 년 뒤 여든 살 바라보는 백발노모
중국에 건너와
낙양군관학교 사람들이 생신날 축하하려고
돈 몇 푼씩 걷은 걸 알고
그 돈 미리 받아내어
생신날 단총 두 자루 내놓으며
자네들 걷은 돈으로 샀으니
내 생일 축하의 뜻으로 이 총 쏴
부디 부디 독립운동 이루어주시게
그 뒤 그녀는 여든 두 살로 중경땅에서 눈감았습니다.
나라 독립 못 보고 죽는 것 원통하다
이 말이 그녀가 남긴 말 한마디 아니고 무엇입니까.
◆ 만순이
얼굴에 참깨 들깨 쏟아져
주근깨 자욱했는데
그래도 눈썹 좋고 눈동자 좋아
산들바람 일었는데
물에 떨어진 그림자 하구선
천하절색이었는데
일제 말기 아주까리 열매 따다 바치다가
머리에 히노마루 띠 매고
정신대 되어 떠났다
비행기 꼬랑지 만드는 공장에 돈벌러 간다고
미제부락 애국부인단 여편네가 데려갔다
일장기 날리며 갔다
만순이네 집에는
허허 면장이 보낸 청주 한 병과
쌀 배급표 한 장이 왔다
허허 이 무슨 팔자 고치는 판인가
그러나 해방되어 다 돌아와도
만순이 하나 소식 없다
백도라지꽃 피는데
쓰르라미 우는데
◆ 귀성(歸省)
고향길이야 순하디 순하게 굽어서
누가 그냥 끌러둔 말없는 광목띠와도 같지요
산천초목을 마구 뚫고 난 사차선 저쪽으로
요샛사람 지방도로 느린 버스로 가며 철들고
고속도로 달리며 저마다 급한 사람 되지요
고향길이야 이곳저곳 지나는 데마다 정들어
또 더러는 빈 논 한 배미에 밀리기도 하고
또 더러는 파릇파릇 겨울 배추 밭두렁을 비껴서
서로 오손도손 나눠 먹고 사양하기도 하며 굽이치지요
삼천리 강산 고생보다는 너무 작은 땅에서
오래도록 씨 뿌리고 거두는 대대의 겸허함이여
자투리 땅 한 조각이라도 크나큰 나라로 삼아
겨우 내 몸 하나 경운기길로 털털 감돌아 날 저물지요
어느새 땅거미는 어둑어둑 널리는데
이 나라에서 왜 내 고향만이 고향인가요
재 넘어가는 길에는 실바람 어느 설움에도
불현듯 어버이 계셔야 해요 그리운 내 동생들 달려오지요
◆ 그 할머니
몇해 전 겨울이었지요 앞산 골짜기에서
울음소리 훌쩍훌쩍 들렸습니다
다가가서 우는 할머니 달래었습니다
남의 집 식모살이라 울 데도 없어
여기 나와서 혼자 우는 것이었지요
바로 어제가 세상 떠난 그 양반 제삿날이라
메 한 사발 올리지 못하고 밤을 새워서
오늘 아침 울음으로나 잠깐 제사 지내는 것이지요
나야 별소리로 더 달랠 수 있다지만
우는 할머니 따라 내 설움으로 함께 울었습니다
◆ 깽매기 소리
가을걷이 끝나고도
삼동네 풍장 칠 일 없어요
반장 고갑룡이는
제 집 뒷방에 둔
깽매기 징 장고 들이 궁금해서
그것들 꺼내다 늘어놓고
먼지도 털어주고
잿물 찍어 쇠 닦아주기도 하다가
어디 한 번 소리 내봐라 하고
오래오래 소리 못낸 깽매기 냅다 쳐보니
그 소리 동네에 다 들려
아닌 밤중에 이 무슨 깽매기 소린가
도깨비 양반 장난인가
죽은 칠성이 혼백 돌아와 신명나는가
그렇지 젊어서 죽은 칠성이
깽매기 자진모리 한 번 눈 지그시 감고 신들렸지
얼쑤 어깨죽지 뛰놀았지
무논갈이 소 모가지 고단하듯 고단한 세월 신들렸지
◆ 꽃
봄이 왔다 해도
봄이 와서 갔다 해도
욧골이나 황골 산시골에는
꽃 하나 없네
그 흔해빠진 목련도 벚꽃도 없네
다행이야 남새밭에 노란 장다리꽃 있네
이 얼마나 넘치는 기쁨이냐
산모퉁이 돌자
아 거기에 산싸리꽃 무더기 피어 있네
그러고 보니 밭 묵은 데
눈꼽 같은 냉이꽃 자욱하게 피어 있네
암 피어 있네 피어 있네
우리 산시골 꽃 구경이야 이로써 족하구말구
꽃도 쓸 만한 건 다 뽑혀 갔네
서울로 서울로
이 나라 산천에서 뽑혀 갔네
어디 꽃뿐인가
여자뿐인가
면사무소 마당 큰 나무 몇 그루
그놈들도
88올림픽에 어디에 뽑혀 가려고
밑둥 돌려 놓았다네
봄이 와서 갔다 해도
허허 꽃 하나 없네
텔레비젼만 있네
텔레비젼만 있네
◆ 나무의 앞
보아라 사람의 뒷모습
신이 있다면
이 세상에서
저것이 신의 모습인가
나무 한 그루에도
저렇게 앞과 뒤 있다
반드시 햇빛 때문이 아니라
반드시 남쪽과 북쪽 때문이 아니라
그 앞모습으로 나무를 만나고
그 뒷모습으로 헤어져
나무 한 그루 그리워하노라면
말 한마디 못하는 나무일지라도
사랑한다는 말 들으면
바람에 잎새 더 흔들어대고
내년의 잎새
더욱 눈부시게 푸르러라
그리하여 이 세상의 여름 다하여
아무도 당해낼 수 없는 단풍
사람과 사람 사이
어떤 절교로도
아무도 끊어버릴 수 없는 단풍
거기 있어라
◆ 다시 오늘
어제를 반성하기보다
오늘을 반성해야 할 때가 있다
어제는 죽음일 따름
아 짐승들은 자유롭구나
반성 없는 그들의 하루하루와 함께
우리는
오늘을 반성해야 할 때가 있다
오늘 나는 무엇인가
나는 짐승보다도 못하구나
반성이 없는 것과
반성이 있는 것 사이
그 질곡의 배회에 맴도는
나는 무엇인가
벌써 아침해의 찬란한 빛은 낡아
얼어붙은 것을 다 녹이지 못하고
다시 얼기 시작하는 저녁이
저쪽에서 다가온다
그러나 나는 이런 오늘을 때려 죽이리라
나는 무엇인가
내가 몽둥이이기 전에
내가 벼락이기 전에
내일을 잉태한 몸으로
꽝 꽝 언 땅을 걸어간다
찬 별빛이 나로 하여금 반짝반짝 빛난다
아 그동안 오늘이 너무 컸다
◆ 대보름 뒤
고향에는 밤이 있다
한없이 환한 대보름 뒤의 달밤이 있다
잠 깨어 뒷간에 간다
벌써 요강 넘쳐서
바깥으로 나가 뒷간에 간다
자지러지게 환한 밤
건너마을 수동이네 헛간 위
지붕 못 걷히게 얹어둔 헌 쟁기까지 보이는 밤
참수리가 공중에서 먼 데까지 보듯이
병아리 보듯이
멀리 멀리 바위배기 상여집까지 보이는 밤
보름 쇠고 치던 징소리
아직도 귀에 쟁쟁
가슴 설레어 천리길 나서고 싶다
과부 자식 아니랄까
소문난 건달 창섭이 오줌 싸고 진저리치며
그 길로 휘영청 나서고 싶다
곰아 곰아 너 숨었거든
발바닥만 핥지 말고 너도 나와 성큼 나서 보아라
환한 달밤 아쉬워 어찌 잠자누 잠만 처자누
◆ 문의(文義)마을에 가서
겨울 문의(文義)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닿은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길이 적막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닫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쪽으로 벋는구나.
그러나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문득 팔짱 끼어서
먼 산이 너무 가깝구나.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겨울 문의(文義)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받는 것을.
끝까지 사절하다가
죽음은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 본다.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문의(文義)여 눈이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 북악호랑이 타령
백 년 전까지는요
북악 인왕에 호랑이가 불쑥 나타났지요
대궐의 가여운 상궁아씨들도
호랑이 울음소리 들었다지요
아이구 무서워라 호랑이었지요
보아요 북악 바위바위 얼마나 뛰어나요
거기에 와 앞발 내디디면
멋지고 멋진 호랑이었지요
우리나라 통 큰 시악시 쩍 반했지요
예부터 허튼 수작 관상에는 호식상이 있었지요
호랑이한테 잡아먹히는 상이 그것이지요
한양 4대문 밖 변방에서
걸핏하면 어린아이 물어가는
그런 고얀 놈 없지 않았지요
쯔쯔 더러는 인수봉 스님도 하나 물어갔지요
◆ 사랑방
사랑방에는 전설이 있다
전설이 살아 있다
죽은 사람도 살아나 오늘이다
사랑방에는 옛과 오늘이 한 또래이다
택시에는 유언비어가 있다
그러므로 택시에는 진실이 있다
사랑방에는 역사가 있다
고려사절요 따위
이조실록 따위보다
훨씬 자유로운 역사가 있다
사랑방에는 영웅이 있다
택시에는 장영자 무슨자 있다
사랑방에는 지배자가 아니라
백성의 꿈이 있다
사랑방에는 내일이 있다
전하고 전해져서
이윽고 일제히 일어나는
울창한 숲이 있다
선방에는 노승이 있다
노승과 노승의 부재가 하나이다
룸살롱에는 요지경이 돈다
영동에는 과연 육체가 있다
영동에는 강북의 수표가 있다
사랑방에는 호롱불이 있다
발고랑내 땀내 찌들고
돼지기름 먹은 목침이 있고
빈대자국 요란하지만
거기에는 기나긴 인내가 있다
우리가 고려 조선
역대로 견디어 온 된장이 있다
사랑방에는 백성의
이런저런 하잘나위 얘기가 있다
별난 뻥이 아니라
이웃마을 물쌈 얘기가 있다
내일 고된 일 앞두고
밤새는 줄 모르는 얘기가 있다
감방에는 도둑놈 있다
독방에는 내가 있다
소장도 얼씬 않고 내가 있다
사랑방에는 이른바 대화가 있다
명상이란 사상을 죽이는 악이다
사랑방에는 모여서
그 방에서
부리부리한 사상의 새끼가 태어난다
어둑한 방 가득히
우리네 기쁨이 가슴에도 가득히
사랑방에는 진리가 있다
불이 꺼지면 더듬어서
서로 손잡는 진리가 있다
◆ 삼만이 할머니
중뜸 간지랑나무 목백일홍 나무에
느지감치 분홍꽃 덩어리 피어난 여름
첫물 모기에 어린 살 물리며 듣던 이야기
옛날옛적 이야기
옛날옛적 한 마을에 늙은 홀어머니 모시고
단둘이 사는 노총각이 있었는데
철종 때인지 고종 때인지 어느 때일 까닭도 없이
어느 이야기나 다 옛날옛적으로 시작하는 이야기
두리넓적 얼금뱅이 삼만이 할머니
눈 펑펑 내리는 날
한없는 날
화롯불 삭아서 방안이 썰렁해도
옛날옛적 노총각 이야기
그 이야기에 이어서 이번에는 명주실꾸리 이야기
옛날옛적 한 마을에 한 아이가 살고 있는데
그만 강도들에게 제 누나가 업혀갔는데
그 겨를에도 명주실꾸리에 실 매고 간 누나 찾아
명주실 따라 산 넘고 물 건너 갔더니
이윽고 어느 우물 열 길 드리워져서
그 우물 밑으로 내려가 바윗장 들추었더니
아 그곳은 별천지라
이 세상은 엄동설한인데 그곳에는 복사꽃 핀 별천지라
내일이면 청사초롱 초례청 차려
강도 우두머리의 마누라 될 누나 찾아서
에그머니나 어서 돌아가야지
누나 업고 산 넘고 물 건너 돌아와
누나는 이웃마을 총각한테 시집 가고
아우는 건넛마을 달덩이 같은 큰애기한테 장가 들어
잘 먹고 잘 살아서 백여든다섯 살까지 갔다는 이야기
어찌도 그리 쩍쩍 늘어붙는 입담인지
우리들 어린아이들
산머루 눈동자에 온갖 세상 다 보여주고는 걷어갔지
그 할머니 죽을 때도 이야기하려고 그랬는지
입을 크게 벌리고 죽었다지
아무리 입 닫아드려도 도로 벌어졌다지
◆ 상구두쇠
조선 철종 때
한양성 밖 장단 지경에
김구두쇠가 있었것다
그가 장 구두쇠네 집에
아들 시켜 장도리 빌리러 보냈것다
빈손으로 돌아왔것다
안 빌려준대요 못질하면 장도리 닳는다고
그러자 김구두쇠
에이 그놈의 영감 구두쇠로군
하는 수 없다 우리집 장도리 꺼내어 오너라
안방 벽장 왼쪽 안구석에 있다
고조할아버지때부터 내려온 장도리다
장단에서 더 가면
개성 구두쇠
거기서 더 가면 해주 구두쇠
개성 구두쇠는
오줌 팔 때 오줌에 물 타는데
해주 구두쇠는
그 오줌 살 때
손라락으로 오줌 찍어 맛보고
물 탔나 안 탔나 보고 사간다는 것이렷다
이런 구두쇠 여러분에 의해
조선 상업이 이루어져 왔나니
그 구두쇠 온데간데 없다니 나라 기우는 것이렷다
암 그렇고 말고
구두쇠도 정기여 민족정기여
◆ 서문 밖 한약방
고개 둘 넘어서
살모사 나오는 숲길 오싹 넘어서
대숲에 싸인 집
푸근한 집
그 집 사랑채 약방 천장에는
온통 한약 봉다리 매달려 있다
약장에는 백출 당귀 지황 감초 갖가지 들어 있다
아랫목 찬 방바닥에
망건 비스름한 영감
제갈공명 같은 영감 앉아 있다
사관 잘 놓아
침 끝에 신내렸다고 자자하여
가근방 어디에도 안 다닌 데 없다
내 머리
쇠스랑으로 찍힌 데도 고약 붙여
근 빼어내고
썩 나아주었다
언제나 갓 쓰고 두루마기 떨쳐입고
마른 미투리 가벼이 신고
급한 병 났을 때는
식전바람 이슬 차며 넘어오던 영감
그 영감 세상 떠났을 때는
아홉 동네 사람들 다 만장 들고 앞섰다
그 영감 대상 때는
아홉 동네 열 동네 사람들 다 와서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곡하였다
서문 밖 의원영감 전봉중이 영감
죽기 1년 전부터
똥그란 안경 쓴 영감
◆ <만인보(萬人譜)> 서시
너와 나 사이 태어나는
순간이여 거기에 가장 먼 별이 뜬다
부여땅 몇천 리
마한 쉰네 나라 마을마다
만남이여
그 이래 하나의 조국인 만남이여
이 오랜 땅에서
서로 헤어진다는 것은 확대이다
어느 누구도 저 혼자일 수 없는
끝없는 삶의 행렬이여 내일이여
오 사람은 사람 속에서만 사람이다 세계이다
◆ 소와 함께
며칠 동안 건너마을 객토 품 파느라고 너를 돌보지 못했다
바람도 불던 바람이 내 피붙이 같아서 덜 춥고
여물도 주던 사람이 주어야 네가 편하지
내가 말린 꼴 수북히 주고 더운 뜨물 퍼주니
너는 더없이 흡족해서 꼬리깨나 휘두르는구나
이랴 띨띨 밥 먹은 뒤 바깥 말뚝에 매어 두니
소가 웃는다더니 바로 네가 좋아하는 것 알겠다
외양간 쳐내어 쇠똥무더기 검불에 섞었다
네 집 뒤쪽은 샛바람 막게 두툼두툼 떼적 치고
남쪽으로는 비닐창 달아내어 볕조각 들게 했다
따뜻한 날이라 송아지 두 놈 까불대며 다니며
무우말랭이 널어 둔 멍석 밟고 마구 논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잠자리 깨끗하면 얼마나 좋은가
그동안 네 엉덩이 누룽지깨나 덕지덕지로구나
마른 똥 긁어 떼어내니 이놈 봐라 곧게 서 있다
송아지 두 놈 논 쪽으로 먼저 나간 김에
에따 너도 나도 개천 둔덕으로 놀러 나가자
외양간에만 죽치고 서서 새김질 거듭하다가
이렇게 마음 탁 터놓고 나오니 너 좋고 나도 좋다
바람에 한 번 멋지게 감긴다 무슨 회오리바람이냐
나와 너 단짝 동무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뜬다
얼씨구 양지쪽으로 조금씩 돋은 풀도 반갑다
이런 풀은 뜯지 말아라 네 새끼 송아지들 장난질한다
나도 너도 흐뭇한 것 하나도 하나가 아니다
햇볕 실컷 쪼여라 바람 쏘여라 바깥도 집안 아니냐
내 너를 두고 말한다 소만한 덕 어디 있느냐
견디기로는 사람 중에 백범이다 못 견디기로는 임꺽정이다
가자 오랫만에 나온 바깥 기쁨 몽땅 가지고 돌아가자
◆ 아리랑 영감
박판술 영감이 지나가면
우리는 육자배기가 지나간다고 했지
그가 논두렁에 잠들어 있을 때
우리는 육자배기가 뻗어 있다고 했지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에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그 동지섣달이 뻗어 있다고 했지
육자배기하고
동지섣달하고 그렇게도 잘 부르더니
그 늙은 홀아비 판술 영감은
죽기 이틀 전에도
병든 몸 끌고 토방에 나와
한바탕 진도아리랑 불러댔지
죽 한 사발 끓여줄 사람도 없어서
혼자 기어나와 죽 끓여먹고 간장 먹고 앓은 영감
그러던 그 영감 토방에 나왔으니
눈이 펑펑 내리는 날
저 영감 살아날라나보다 힘차다 했는데
다음 다음날로
그만 힘차게 이 세상 후딱 떠나버렸지
동네사람들 새로 짠 가마니 두어 장 내다가
둘둘 말아
남생이언덕 바람 속에
홀아비 송장 묻으며
이구동성으로 날 좀 보소 불러주었지
그 뒤 괜히 바람 치는 밤이면
남생이언덕 평토장한 무덤에서
그 영감 육자배기도 진도아리랑도 들린다 했지
생전보다 더 기막히게 부르는 진도아리랑 들린다 했지
◆ 연장 무덤
만경강 염전에 해일 나서
그 천지개벽에
염전 일 하러 갔던
수길이 아저씨
설장고 잘 치던 아저씨
그만 해일에 떠내려가
몸뚱이는 커녕
신발 한 짝 찾지 못했다
수길이 아저씨네 형제들
시집간 자매들
의논키를
빈 무덤이라도 써
거기에
수길이 아저씨 쓰던 연장
괭이 뿔괭이 삽 쇠스랑
나무자루 빼고 넣어서
수길이 아저씨네 종중산에 묻었다
연장 무덤이었다
마을 아이들 어쩐지 그 무덤에는 가지 않았다
어쩐지 그 헛무덤이 무서웠다
그런데 3년 뒤
이게 웬일인가 수길이 아저씨 살아 돌아왔다
형제들 처음에는 등골이 오싹하여 물러났다
수길이 귀신이었기 때문이다
나 귀신 아니다 아니다 하고
살아 온 수길이 아저씨 한참 외치고 나서야
서로 얼싸안고
이게 꿈이여 생시여 하고 울고불었다
해일에 떠내려가다가
한정없이 떠내려가다가
웬 나무토막 만나
그놈에 목숨 부지
칠산바다로 떠내려가다가
거기서 배 만나
뱃놈이 말하기를
목숨 구해준 값으로 일 좀 해주고 가라 해서
3년이나 배 안에서 밥 짓는 일 해주다가
법성포에서 도망쳐 왔다 살아 돌아왔다
수길이 아저씨 무덤 파서
연장 꺼내어
거기에 새 자루 맞춰 끼워
흙 한 번 찍어보더니
너도 살고 나도 살아 일복 또 터졌구나
◆ 자작나무숲으로 가서
광혜원 이월마을에서 칠현산 기슭에 이르기 전에
그만 나는 영문 모를 드넓은 자작나무 분지로 접어들었다
누군가가 가라고 내 등을 떠밀었는지 나는 뒤돌아보았다
아무도 없다 다만 눈발에 익숙한 먼 산에 대해서
아무런 상관도 없게 자작나무숲의 벗은 몸들이
이 세상을 정직하게 한다 그렇구나 겨울 나무들만이 타락을 모른다
슬픔에는 거짓이 없다 어찌 삶으로 울지 않은 사람이 있겠느냐
오래오래 우리나라 여자야말로 울음이었다 스스로 달래어온 울음이었다
자작나무는 저희들끼리건만 찾아든 나까지 하나가 된다
누구나 다 여기 오지 못해도 여기에 온 것이나 다름없이
자작나무는 오지 못한 사람 하나하나와도 함께인 양 아름답다
나는 나무와 나뭇가지와 깊은 하늘 속의 우듬지의 떨림을 보며
나 자신에게도 세상에도 우쭐해서 나뭇짐 지게 무겁게 지고 싶었다
아니 이런 추운 곳의 적막으로 태어나는 눈엽이나
삼거리 술집의 삶은 고기처럼 순하고 싶었다
너무나 교조적인 삶이었으므로 미풍에 대해서도 사나웠으므로
얼마만이냐 이런 곳이야말로 우리에게 십여년 만에 강렬한 곳이다
강렬한 이 경건성! 이것은 나 한 사람에게가 아니라
온 세상을 향해 말하는 것을 내 벅찬 가슴은 벌써 알고 있다
사람들도 자기가 모든 낱낱 중의 하나임을 깨달을 때가 온다
나는 어린 시절에 이미 늙어버렸다 여기 와서 나는 또 태어나야 한다
그래서 이제 나는 자작나무의 천부적인 겨울과 함께
깨물어먹고 싶은 어여쁨에 들떠 남의 어린 외동으로 자라난다
나는 광혜원으로 내려가는 길을 등지고 삭풍의 칠현산 험한 길로 서슴없이 지향했다
********************************************
반세기 돌아 이제 막 시인이 됐소
등단 50돌 기념시집 ‘허공’ 출간한 고은
“시의 신도로 광기의 여생 살고파”
중등때 손 놓은 그림전도 4일부터
★...원로 시인 고은(75)씨가 올해로 등단 50돌을 맞았다. 그는 1958년 < 현대시> 1집에 시 ‘폐결핵’이 발표된 데 이어 같은 해 < 현대문학> 11월호에 서정주의 단회 추천을 받아 등단했다. 어언 반세기에 이른 문단 경력을 기념하고자 시인은 신작 시집 < 허공>(창비)을 출간하고, 자신이 그린 그림과 글씨를 선보이는 전시회 ‘동사를 그리다’를 마련했다.
“언제나 그렇지만 시집을 낼 때마다 이제 방금 시인이 된 듯한 느낌이 듭니다. 나의 미래가 앞으로 얼마나 남아 있을지 예측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후기의 삶이라는 것이 전반기에 대한 결산이나 해답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세월을 충분히 산 나머지 원만해진 인간의 금도나 유지하면서 내 삶이 잠들 수는 없습니다. 다시 한번 광기와 화염을 아우르는 나머지 생을 살아갈 생각입니다.”
1일 낮 프레스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난 고은 시인은 세월이 지나도 늙거나 시들지 않는 호기심과 도전의식을 과시했다. 그는 “나에게 근대시 100년은 역사가 아니라 자유였다”며 “언어는 나의 집이 아니라 전혀 낯선 세계이며, 모국어는 모국어가 아니라 새로운 외국어”라고 선언했다.
“오늘도 가갸거겨의 무기수 감방에서/ 하루를 중얼중얼 보냈구나/ 취침나팔/ 잠들어라/ 가갸거겨도 잠들어라”(‘어느 시론(詩論)’ 부분)
“젊은이는 늙은젊은이이지/ 가까운은 먼가까운이지/ 안은 밖안이지 안팎이지//(…)// 죽어야 하지/ 아니 살아죽어야 하지/ 죽어살지// 그래서 고왕조 소년 파라오가 미라 사천세나 처먹었지/ 어휴 이 늙은젊은이”(‘테베에서’ 부분)
신작시 107편을 한데 묶은 새 시집에서도 고은 시 특유의 비약과 전복, 생략과 직관의 힘은 여전하다. 시인 자신은 시집 제목에 별 뜻을 담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가령 ‘허공에 쓴다’와 같은 작품은 부단한 갱신과 신생에의 의지를 강렬하게 표현한다. “이로부터 내 어이없는 백지들 훨훨 날려보낸다/ 맨몸/ 맨넋으로 쓴다/ 허공에 쓴다// 이로부터 내 문자들 버리고/ 허공에 소리친다/ 허공에 대고/ 설미쳐 날궂이한다”(‘허공에 쓴다’ 부분)
한편 시인은 오는 4~12일 한국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에서 열 그림전에 아크릴화 37점과 글씨 19점을 선보인다.
“교내전에서 1등을 할 정도로 그림을 좋아했는데, 중학교 4학년 때 한국전쟁이 나면서 제 수채화는 끝이 났습니다. 한때는 책상 위에 ‘고흐 아니면 무(無)다’라는 쪽지를 붙여 놓기도 했지만, 전쟁 뒤에 제가 살아남은 장소는 폐허였습니다. 요컨대 그림의 세계에서는 너무 멀리 떠내려가 있었죠.” 그래도 <이중섭 평전>을 쓰고 변종하·박고석·천경자 등 화가들에 대한 논문을 쓸 정도로 “미술에 문외한은 아니었다”고 시인은 덧붙였다.
폭염이 내리쬐던 지난여름, 평택에 사는 조각가 구성호씨의 작업실을 빌려서 17일 동안 집중적으로 그렸다는 그림들은 작지 않은 화면을 빈틈없이 꽉 채운 강렬한 색채가 눈길을 끈다.
“제가 살아온 환경은 매우 동양화의 여백과도 같았습니다. 그런데 지난여름 새삼스럽게 그 여백의 깊이 같은 것에 기울어지는 게 아니라 그것을 거부하는 내면의 경험을 했습니다. 가령 추사의 <세한도>와 같은 문인화적 여기(餘技), 노련한 결말의 세계는 감히 사양하고 싶어요.”
시인은 “경제를 좇으면 마음은 무너지는 것”이라며 문단 일각에 스며든 경제주의와 상업주의를 비판했다. 그는 “시가 멀어졌느니 죽었느니 하는 말도 있는데, 시의 죽음은 새로운 시의 부활에 닿아 있는 것”이라며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여전한 시의 신도로서 새로운 시의 생활을 살 결심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사진 신소영 기자, 한겨레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