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주군 가지산 석남사 석남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로, 울산 울주군 상북면에 있는 비구니(여승)의 수련 도량으로 유명하다. 824년(헌덕왕 16) 도의국사(道義國師)가 호국 기도를 위해 창건한 절이다. 임진왜란을 겪은 뒤인 1674년(현종 13) 언양현감(彦陽縣監)의 시주로 중건하였고, 1803년(순조 3) 침허(枕虛)·수일(守一) 선사가 중수하였다. 6·25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다가 1959년에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이때부터 비구니들의 수련 도량으로 그 면모를 갖추었다. ‘영남 알프스’로 불리는 영남 9봉 중에서도 가장 높은 산이 가지산(1,240m)이 높기도 하지만, 나머지 여덟 봉우리의 중심에 서서 그들을 거느린 형국을 하고 있으므로 영남 9봉의 우두머리 격인 셈이다. 고헌산(1,033m), 가지산, 운문산이 동서 방향으로 한 줄기로 뻗으면서 경상도를 남과 북으로 나누는 경계가 되고, 가지산에서 남쪽으로 S자 모양을 그리며 세력을 펼친 것이 능동산(983m), 천황산, 재약산, 간월산, 신불산, 취서산이다.
가지산 석남사 일주문
주요 문화재로는 도의국사의 사리탑인 울주 성남사 승탑(보물)이 있으며, 821년에 도의국사가 세운 석남사 3층 석탑(울산유형문화재)이 있다. 도의 선사는 불립문자(不立文字 : 불도의 깨달음은 마음으로 전하는 것이므로 따로 말이나 문자로써 설명하지 않는다는 말) 교외별전(敎外別傳 : 선종에서는 부처의 가르침을 하지 않고 바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여 진리를 깨닫게 하는 법) 직지인심(直指人心 : 교리를 캐거나 戒行을 닦지 않고, 직접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진리를 깨닫게 하여 佛果를 얻게 하는 일)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기 자신의 본래 모습을 깨쳐서 알면 부처가 된다는 말)로 대표되는 중국의 선불교, 그중에서도 돌연적인 깨달음[頓悟]을 강조하는 남종선을 서당 지장(西堂 智藏, 735~814)에게 직접 배워 신라에 처음 소개한 고승이다.
석남사 3층 석탑(일명 대석탑)
서당 지장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이후로는 “강서(江西 : 서당 선사본인을 지칭함)의 선맥이 모두 동국승(東國僧)에 속하게 되었구나” 하는 칭송을 받기도 했다. 중국에서 37년 수행 정진한 끝에 821년 신라로 돌아오지만, 화엄종이 주류를 이루고 있던 신라에서는 선불교의 이념을 급진적이고 불온하다고 하여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았음을 느낀 도의는 설악산 진전사로 들어가 40년간 제자를 기르며 지내다 입적했다.
도의 국사
그의 제자가 염거화상(廉居和尙, ?~844) 역시 공식적인 선문(禪門)을 열지 못하고 보조선사 체징(普照禪師 體澄, 804~880)에 법을 전하는데, 이 보조선사에 이르러서야 최초의 선문인 가지산문이 열리게 된다. 전남 장흥 가지산 보림사가 그것이다. 전해지는 대로라면 석남사는 신라로 돌아온 도의가 진전사로 가기 직전에 창건한 셈이 된다. 이후 석남사에 대한 내력이 기록에 등장하는 것은 숙종 42년(1716)에 쓰인 「석남 사적」이다. 이 기록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불타 빈터만 남은 것을 현종 7년(1666)에 대웅전을 짓고 불상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석남사는 이후 순조 3년(1803), 1912년, 근래까지도 중수되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대웅전 앞의 대석탑은 1973년에 세워진 것인데, 그 연원은 도의 선사가 세웠다는 15층 석탑에까지 이른다. 이 15층 대석탑이 임진왜란 때 파괴되어 탑의 일부 부재만 남아있던 것을 1973년 스리랑카에서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셔와 봉안할 곳을 물색하면서 3층으로 축소 개축하였는데 그 높이가 11m에 이른다. 현재 석남사에서 부도와 더불어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유물이다. 극락전에는 석조아미타삼존불이 모셔져 있으며, 극락전 옆의 조사전에는 중앙에 도의 선사의 진영이 모셔지고, 좌우로 순조·철종 그간 활동하던 여덟 분의 선사 진영이 모셔진 것을 보면 이 시기에 석남사가 선풍을 크게 떨쳤던 듯싶다.
언양 석남사 모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