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ㆍ 1775~1851) / ‘전함 테메레르(The Fighting Temeraire)’(1839), 영국 국립미술관, 90.7㎝×121.6㎝
조커를 부르는 세상
호아킨 피닉스(Joaquin Phoenix)가 주연을 한 영화 ‘조커(Joker)’의 누적 관객수가 500만이 넘었습니다. 영화를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극 중 아서 플랙(조커)을 연기한 호아킨 피닉스의 명연기에 압도당했다고 이야기합니다. 배우의 명연기뿐만 아니라 소재 역시 특이했습니다. 영화 배트맨에서 악당으로 등장하는 조커가 주인공이자 영화 제목이니 그 자체로 주목을 끌 만했습니다. 악당이 주인공이며 그의 서사시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는 면에서 이 영화는 기존의 할리우드 공식과는 꽤 거리가 멉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필자는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악당이 잘 먹고 잘사는 결말의 영화야 그동안 종종 있었지만 악당의 스토리를 보여주고 관객들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만들어 그가 저지른 범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장치가 있는 영화는 처음이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 영화는 한술 더 떠서, 마지막 장면에 조커가 죗값을 치르기는커녕 폭도들의 우상으로 등극하면서 끝이 납니다.
할리우드 영화는 상업 영화입니다. 이 말은 철저하게 시장에 순응한다는 뜻이며, 관객들의 취향에 맞게 영화를 제작한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할리우드 영화는 미국 내에서만 팔려고 제작하지 않습니다. 대다수의 할리우드 영화는 대사를 보지 않고도 이해가 가능한데, 이는 세계시장을 고려해서 표정과 연기 그리고 제스처 등등을 통해 영화의 줄거리를 뒷받침해주는 그들만의 노하우가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이러한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는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어서입니다. 그러한 할리우드가 ‘조커’를 주인공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건, 이 이야기가 팔릴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물론, ‘배트맨 다크나이트’에서 히스 레저(Heath Ledger)가 조커 연기의 신기원을 열었기 때문에 조커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 것도 영향을 주었을 겁니다만,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제는 조커에 열광할 만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들의 대립이 임계치를 넘고 있다는 것을 영화 제작자가 간파하고 있었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는 할리우드 영화로서는 매우 드물게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면서 평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게 됩니다.
만약에 이 영화가 20년 전쯤 세상에 나왔다면 지금처럼 관심을 끌었을까요? 그렇지 않았을 겁니다. 그때도 세상은 불공정했고 빈부격차가 존재했습니다만, 사람들의 마음에는 적어도 ‘정의가 항상 이긴다’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믿음이 이제는 없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배트맨이 열 번 등장해서 허구에 불과한 악당 백 명을 쓰러뜨리는 것보다 조커 한 명이 실체적 악인을 처형하는 장면에 열광하게 됐습니다. 실제로 영화에서 광대 분장을 하고 지하철을 타고 가던 주인공 아서 플랙이 연약한 여성을 희롱하던 웨인 엔터테인먼트에 다니는 엘리트 회사원들과 시비가 붙고 이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하다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총으로 이들을 살해하게 되는데, 부유한 웨인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에 대한 반감이 있던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광대분장을 하며 사회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합니다. 조커의 살인에 묘한 정당성이 부여되는 순간입니다.
빈부의 격차는 늘 있어왔습니다만, 지금처럼 고착화되고 비윤리적으로 돈을 버는 시대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E. Stiglitz)는 자신의 저서 <불평등의 대가(The Price of Inequality)>에서 불평등이 확대, 재생산되는 이유를 자본주의 자체의 메커니즘에서 찾고, 브레이크 없는 자유경쟁이 불러오는 부작용들을 풀어가기 위해 국가가 어떻게 개입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계 어느 정부도 그의 얘기를 귀담아 듣는 것 같지 않습니다.
8년여 전에 "We are the 99 percent”라고 외치며 뉴욕의 월가를 뒤엎었던 시위 이후, 세계는 더 나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불평등은 더 깊어지고 확산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산층은 붕괴되었고 계층의 추락을 당하지 않으려고 사람들은 더 그악스러워졌습니다. 가진 자들은 더 가지려고 하고 계층의 재생산을 위해 자녀 교육에 아낌없이 투자합니다. 돈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해줄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합니다. 정경심 교수의 경우가 만연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까닭입니다. 다음은 교수 자녀의 논문 공저 사례를 보도한 MBC 뉴스의 내용입니다. 여기서 자녀와 공동으로 논문을 썼다는 교수들의 이야기가 참으로 가관입니다.
"부모가 자기가 주어진 조건 하에서 아이가 어떻게 하면 좀 더 성장할지를 고민하는 거고, 저도 그런 수준의 것이지, 이게 불법적인 거라든지 비윤리적인 그런 건 아무것도 없는데…" - 조OO 연세대 교수(아들과 공동저자)
"엄마 찬스, 아빠 찬스겠죠. 어쨌든 간에 기회 불평등이란 건 사실이지만, 이들이 도덕적으로 잘못한 거냐? 그건 아닌 거죠. 기회가 있고 기회를 이용할 수 있어서 이용한 거고. 누구라도 할 수 있었으면 했겠죠." - 황OO 경희대 교수(동료교수 딸과 공동저자)
이처럼 젊은이들의 운동장은 부모의 소득과 지위에 따라 엄청나게 기울어져 있고 어떤 곳엔 높은 담이 쳐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불평등과 불법, 탈법을 감시하고 계도해야 할 권력기관의 모습은 더 가관입니다. 현 정부 장관 18명 중 12명이 자녀를 자사고나 외고에 보냈고 일부는 유학을 보냈다고 합니다. 앞선 정부 역시 이 비율은 비슷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자사고, 외고, 국제고를 없애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까요? 수시제도를 없애지 않는 한 기울어진 운동장이 바로잡히지 않을 겁니다. 지난 9월 23일 자 칼럼에서 필자가 수시(隨時)를 없애자는 주장을 했습니다. 그 글에 다음과 같은 댓글이 달렸습니다.
“정말 대찬성입니다. 난 고등학교에서 아이들 지도했던 사람입니다. 학력고사 때처럼 공정했던 때는 없었습니다. 수시입학제도는 권력과 금력을 가진 자들을 위한 별개의 등용문입니다.”
며칠 전 대통령이 수시를 줄이고 정시의 비중을 높이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다행스러운 일이긴 하나, 조금 더 용기를 내서 수시를 아예 없앨 수는 없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수시를 넘어가면 편입이 있고, 학부를 졸업하면 의전원, 로스쿨이 있습니다. 산 넘어 산인데 흙수저들에겐 이 산이 에베레스트만큼 높게 느껴질 것이고 금수저들에겐 동네 뒷동산 정도로밖에 안 여겨질 겁니다. 왜 우리 사회는 공정했던 학력고사와 사법시험을 다 내팽개치고 편법이 난무한 복잡한 제도를 힘들게 가져왔을까요? 지금까지의 과정을 보면, 이 제도들의 도입 의도가 순수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니면 귤이 회수(淮水)를 건너면 탱자가 되듯이 변질이 됐었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 제도의 원조 격인 미국도 그다지 정의롭게 운영되지 않고 있다는 문제 제기가 끊이지 않는 걸로 보면, 필자는 제도의 한계가 명확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10월 22일 연합뉴스에 열흘을 굶다 마트에서 빵을 훔친 30대 젊은이의 이야기가 보도되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혈혈단신인 이 젊은이는 일을 하다 넘어져 허리를 다쳐 장애 6급 판정을 받은 후로 더는 일을 할 수 없었답니다. 회사를 나와 카드 대출로 생활을 하다 더는 대출을 받지 못하자 그가 생활하던 고시텔에 누워서 열흘을 굶으며 버티다, 배고픔에 양심과 죄책감을 잃어버리고 마트 앞에서 소화기로 출입문을 깨고 빵 20여 개, 냉동 피자 2판, 짜장 컵라면 5개 등을 주워 담아 고시텔로 돌아가서 허겁지겁 먹었다고 합니다. 경찰서에 끌려온 그는 상담을 통해 자살 고위험군으로 분류되어 병원에 입원했다고 합니다.
오늘도, 여야 모두 아전인수 격으로 국민의 뜻을 따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들이 얘기하는 국민의 실체가 정확히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필자의 눈에는 조커로 변해가는 국민이 보이는데, 왜 그들은 그걸 보지 못하는 걸까요? 영화 조커를 보는 내내 마음이 무겁고 우울했는데 현실이 영화보다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며, ‘우리 사회가 혹시 지금 조커를 부르고 있는 것 아닌가?’하는 불안감이 엄습합니다.
[퍼온 글] / 출처; 2019.10.28 06:55에 받은 자유칼럼그룹의 e메일 / 필자소개; 박상도(SBS 선임 아나운서. 보성고ㆍ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현재 SBS 12뉴스 진행)
여성 교수 공동채용
마리 퀴리는 노벨상을 두 차례(1903년 물리학, 1911년 화학)나 받았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프랑스 과학아카데미 회원이 되지 못했다. 1935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딸 이렌 졸리오 퀴리도 과학아카데미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만큼 남성 중심 사고가 팽배한 사회였다.
미국에서도 194 5년까지는 여성이 하버드대 의과대학에 입학할 수 없었다. 케임브리지대가 여성에게 남성과 동등한 학위를 수여하기 시작한 것은 1947년이었다. 지금은 미국 주요 대학의 여성 교수 비율이 30%를 훌쩍 넘을 정도로 사정이 크게 달라졌다.
우리나라 4년제 대학 전체의 여성 교수 비율은 지난해 26%로 집계됐다. 국공립대는 이보다 낮은 16%로 나타났다. 대학생의 여성 비율이 절반이고 박사학위 취득 여성 비율이 38%인 점을 감안하면 아주 낮은 수치다. 공과대학의 여성 교수 비율은 5%도 안 된다. 서울대의 경우 공대 교수 326명 가운데 여성이 4%(13명)뿐이다.
차국헌 서울대 공대학장은 “글로벌 유수 대학과 협력하고 경쟁하는 데 여성 교수 비율은 매우 중요한 지표”라며 “4%에 불과한 우리는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노정혜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은 “공대 여성 교수 비중이 높아져야 공대 여학생도 늘어난다”고 강조했다. 서울대 공대 여학생 비율은 13%에 불과하다.
서울대는 지난 24~27일 관악캠퍼스에서 중국 칭화대, 홍콩과학기술대, 싱가포르국립대, 일본 도쿄대,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 등 아시아 주요 7개 대학 공대학장과 함께 신인 여성 공학자 공동 채용 행사를 열었다. 여기에 여성 공학자 56명이 참가해 면접을 봤다. 학계에서는 “이렇게 해서 뛰어난 여성 공학자를 많이 확보하면 과학기술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반기고 있다.
한편에서는 “이 같은 행사를 우리 사회 전반의 여성 경제활동인구 확대와 연계하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한국의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은 지난해 59.4%로 독일(74.3%), 일본(71.3%)에 한참 못 미친다.
개방・융합・연결성이 중요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여성 인재가 더 많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이 “산업・기술 현장에 여성 인력이 늘어나는 ‘위트(WIT: Women In Tech) 사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퍼온 글] / 출처; 한경닷컴 / 고두현(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 2019.10.28 00:23
포체리카
‘붉은 셔츠’로 세운 왕국, ‘검은 셔츠’로 끝나
[금주의 역사 - 10월28일~11월3일]
1922년 10월31일 베니토 무솔리니가 39세로 이탈리아 역사상 최연소 총리에 오른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검은 셔츠단’이라는 폭력집단으로 정권을 잡은 그는 21년 만에 몰락하고, 이탈리아 왕국도 3년 뒤 사라진다.
그러고 보면 1860년대에 독립전쟁의 영웅 주세페 가리발디가 거느린 의용군인 ‘붉은 셔츠단’이 이룩한 이탈리아 왕국은 가리발디를 흉내낸 검은 셔츠단으로 망한 셈이다.
무솔리니는 ‘대단한’ 인물이었다. 물론 그것은 ‘위대한’ 인물이라는 말과는 다르다. 무솔리니가 대단하다는 것은 누구도 그의 정체를 규정할 수 없도록 변모를 거듭해서다. 그는 철학도 일관성도 없는 대신 임기응변식의 언변이 천재적이었다.
‘베니토 무솔리니’라는 이름부터 그랬다. 그 ‘베니토’는 멕시코의 사회주의적 혁명가 베니토 후아레스에서 따온 것이다. 대장장이였던 그의 아버지(알렉산드로)가 사회주의에 심취해 그런 이름을 지어준 것이다. 이 훗날의 파시스트는 이름만이 아니라 실제로 사회주의자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무솔리니는 1911년 이탈리아가 리비아 침략전쟁을 벌이자 반전운동으로 투옥됨으로써 명성을 얻었고, 그 여세를 몰아 이듬해는 사회당 기관지 ‘아반티’의 편집장을 맡아 2년 만에 부수를 10배나 확장하는 등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탈리아가 연합국 편에 서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자 논조를 180도 바꿔 찬성했고, 사회당은 그를 내쫓았다. 그의 이런 표변은 사회주의를 무서워한 서구 자본가들의 돈줄이 극우파에 흘러들어 가서라는 것이 정평이다.
사실은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가 검은 셔츠단을 진압할 수 있었으나 사회주의자들에 넌더리가 나 그의 집권을 허용했다는 것도 정설로 통한다. 그는 사회주의 덕을 보았으니 ‘베니토’라는 이름은 역설적으로 제값을 한 셈이었다.
[퍼온 글] / 출처; 세계일보 / 양평(언론인) / 2019-10-27 23:30:22
울금
유통업계 골리앗의 변신
백화점 매장 배치에는 다양한 마케팅 기법이 녹아들어 있다. 백화점을 찾은 고객이 쇼핑에 몰입할 수 있도록 창문이나 시계를 두지 않는 건 상식처럼 간주된다. 여성 매장은 낮은 층, 남성 매장은 높은 층에 각각 배치하는 것도 남녀의 소비 성향 차이를 반영한 것이다. 체류 시간을 늘리고 판매 효율을 높이기 위해 1층에는 화장실을 좀처럼 두지 않는다. 휴게시설 역시 최소화하고, 이를 마련하더라도 불편하게 디자인하는 데는 고객들을 더 많이 돌아다니게 하려는 의도가 숨겨 있다.
하지만 국내 백화점 업계 1위인 롯데백화점이 고정관념처럼 굳어져 있던 ‘입점 공식’ 깨기에 나섰다. 서울 소공동 본점 여성의류 매장에 베이커리를, 강남점 리빙매장, 광명점 패션매장에는 카페를 각각 입점시켰다. 롯데백화점 측은 고객과 매출이 동반 상승했다고 하니, 소비 패턴의 변화가 마케팅 기법까지 바꿔 놓고 있다.
국내 대형마트 업계 1위인 이마트도 창사 26년 만에 처음으로 외부에서 대표이사를 수혈했다. 이른바 ‘순혈주의’를 깬 배경에는 지난 2분기에 사상 첫 영업적자라는 충격적인 성적표가 있다. 미국의 월마트와 프랑스의 까르푸 등 글로벌 유통 공룡들로부터 국내 시장을 지켜 냈음에도 소비 패턴이 바뀌면서 내실은 사라지고 허명만 남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 유통업계의 오프라인 강자들이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유통업체에서 소비자들의 구매 액수를 놓고 보면 누가 다윗이고 누가 골리앗인지 모호해졌다. 지난해 온라인쇼핑 등 무점포 소매업종 판매액은 1년 전보다 15% 늘어난 70조 4261억 원으로 백화점・대형마트 판매액을 앞질렀다.
유통업계는 온・오프라인의 경계가 빠르게 무너지는 데다 아직 절대강자가 없는 탓에 ‘승자독식’을 노린 시장점유율 확보 경쟁이 심화한다. 통계청의 8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소매 판매는 전년 같은 달 대비 4.1% 증가한 반면 소비자물가지수는 2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소비가 느는 데 물가가 떨어지는 기현상을 낳는 배경에는 온・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의 출혈경쟁이 한몫한다는 평가다. 이 때문에 수익성에 빨간불이 켜지기는 오프라인 업체는 물론 온라인 업체도 마찬가지다.
소비자는 비용은 낮아지고 혜택은 늘어나니 달가운 경쟁이다. 유통업체 간 경쟁이 승자독식이 아닌 소비자 편익 증대로 이어지려면 선수(유통업체) 못지않게 심판(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유통시장은 혁명적으로 바뀌고 있는데, 정부 정책이 오프라인 중심의 영업・판매 규제에만 쏠려 있는 건 아닌지부터 따져 봐야 할 일이다.
[퍼온 글] / 출처: 서울신문 / 장세훈(서울신문 논설위원) / 2019-10-28 01:44
데이터 리터러시
데이터의 중요성을 얘기할 때 자주 쓰이는 속담이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다. 지금의 시대는 사람도 사물도 스스로 데이터를 생산하고 저장한다. 내가 어디에 갔고 무엇을 먹었는지 의도하지 않아도 일기처럼 기록되고, 기계들은 짜인 알고리즘대로 지치지도 않고 데이터를 쏟아낸다. 그래서 목적 없이 수집된 데이터는 오히려 번잡함을 초래하고, 잘못된 데이터 해석은 잘못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어 공공 영역부터 사기업에 이르기까지 데이터의 활용 방법에 대한 고민이 크다.
누구나 이 많은 구슬을 꿰어 보배로 만들 수는 없을까?
그래서 요즘 미래사회에 필요한 핵심 역량으로 요구되는 것 중에 하나가 `데이터 리터러시(data literacy)`다. 원래 리터러시는 글을 읽고 해독하는 능력을 뜻하는데 `데이터 리터러시`는 데이터를 읽고 이해하고 분석해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방대한 데이터 속에서 규칙과 의미를 찾아 인사이트(insight)를 제시할 수 있는 역량은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기도 하는 특별한 힘이다.
이러한 힘은 영화의 슈퍼히어로처럼 번개를 맞아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뚜렷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관련된 데이터를 일목요연하게 수집해 선별・융합하고, 유의미하게 가공・분석해 답을 찾는 꾸준한 경험만이 답이다.
이처럼 훈련된 데이터 전문가가 각 분야에서 만들어내는 솔루션은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다.
우리 모두가 데이터 전문가 또는 기술자가 돼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데이터를 바라보는 열린 자세를 가지려고 노력해보길 바란다. 사건과 현상을 접할 때 제시되는 결과만 보는 것이 아니라 원인을 말해주는 데이터는 무엇이었는지 함께 보려는 노력, 어떤 선택을 할 때 조금 더 데이터를 활용한 의사 결정을 하려고 하는 노력, 그리고 내가 갖고 있는 데이터를 더 많이 공개하고 공유하려는 노력 등. 이런 경험들이 쌓여간다면 각자의 인생은 지금보다 조금 더 통찰력을 가질 수 있어 실수와 시행착오를 줄여가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퍼온 글] / 출처; 매일경제신문 / 민기영(한국데이터산업진흥원 원장) / 2019.10.28 00:05:02
워싱턴 컨센서스의 진화
정치경제학자 존 윌리엄슨이 `워싱턴 컨센서스`라는 말을 처음 쓴 것이 딱 30년 전인 1989년이다.
워싱턴 컨센서스는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 등 워싱턴DC에 본부를 둔 국제기구와 미국 재무부가 개발도상국에 제시한 미국식 신자유주의 또는 세계화로 확장된 신자유주의를 지칭한다. 워싱턴 컨센서스는 선진국들이 자기네들은 지키지 않고 개도국에만 강요하는 `내로남불`로 비판을 많이 받았다. 그럼에도 주요국 경기에 활기를 불어넣은 측면이 있고, 한국도 그 우산 아래서 상당한 이익을 얻었다.
워싱턴 컨센서스가 득세하던 시절, 한국 기업은 정부의 개입주의 정책을 뒷배 삼아 세계를 누볐다. 정부가 산업, 기술, 무역정책으로 밀어주면 기업은 열심히 시장을 개척했다. 돈 벌 기회와 일자리가 쏟아졌다. 워싱턴 컨센서스를 추종했다기보다 그 틈새를 활용한 전략이 먹혀들어 갔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필자는 1989년 대학생이 됐다. 부끄럽지만 그때는 워싱턴 컨센서스라는 게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이게 동시대인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먼 훗날의 일이다. 워싱턴 컨센서스로 상징되던 신자유주의, 세계화에는 명암이 있다. 세대별로도 저주와 축복이 엇갈리는 경향이 있는데 필자 또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워싱턴 컨센서스가 세계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던 시기와 맞아떨어지면서 비교적 수월하게 직장을 얻어 가정을 이루고 평탄한 사회생활을 했다. 지난 30년 탄탄대로를 걸어온 한국 경제의 닮은꼴이었다.
워싱턴 컨센서스는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기세가 확 꺾인 게 사실이다. 지금은 사실상 소멸됐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 `베이징 컨센서스`로의 대체를 예견하는 이들도 있다.
정말 그럴까. 30년 묵은 워싱턴 컨센서스가 말짱 엉터리였다면 요즘 주요국들이 벌이는 탈규제, 감세 경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워싱턴이 세계의 정치・경제 어젠다를 결정하는 것은 지금도 여전하다. 미・중 갈등, 보호무역주의, 통화정책, 최근 쿠르드 사태에 이르기까지 국제사회의 격동은 대부분 워싱턴에서 비롯된다. 명칭이 뭐가 됐든 워싱턴 컨센서스는 계속 진화해왔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한국에서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은 두말할 것 없이 기업이다. 최근 국내 대기업들의 법정다툼이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런 갈등에서 한국 정부의 중재는 통하지 않는다. 다툼의 목적이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시장에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드 사태, 한일 갈등을 겪으면서 우리 기업들은 큰 깨달음을 얻었다. 한국 정부는 자국 기업을 보호하지 못한다.
한국 기업의 미국향 탈출도 예사롭지 않다. 통계를 보면 깜짝 놀랄 급증세다. 올 들어 한국 대기업의 주요 투자건 대부분이 미국에서 이뤄졌다. 배터리, 화학, 가전, 자동차, 라면공장이 미국에서 신・증설되고 있다. 처음에는 미국의 통상압력 때문인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게 아니다`라는 데 무게가 실리고 있다. 한국 기업의 미국 내 연구개발 비중과 미국 스타트업, 합작법인에 대한 투자도 가파르게 늘고 있다.
정치・외교・안보에서는 미국과 멀어지고 있다는데 왜 우리 기업들은 `다시 워싱턴`인 것일까.
얼핏 뜬금없는 질문 같지만 심각한 진실을 묻고 있는 것이다.
사실 답은 모두가 알고 있다. 임금, 세금, 규제, 노조뿐만 아니라 인구구조, 정치, 사법, 교육까지 한국의 환경이 `기업 못 해먹을 나라`로 추락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미국 워싱턴이 제시하는 방향은 정반대의 장점을 두루 갖추고 있다. 지금 한국 기업들은 돈과 행동으로 그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퍼온 글] / 출처; 매일경제 / 이진우(매일경제신문 산업부장) / 2019.10.28 00:08:01
"바보는 아닌 것 같은데"… "노벨상 수상자야"
피로연서도 배웠던 포겔… 겸손의 서약 하이에크
시인처럼 상상하고 과학자처럼 검증해야
정치적 논란이 일상이 된 대한민국에서 어쩌면 한가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하지만 정치는 결국 시민을 평범한 일상으로 돌려보내는 능력. 추문과 소음이 아니라 아름다운 정신으로 하루하루를 살 권리가 우리에게 있다고 믿는다. 공교롭게도 노벨 경제학상과 관련한 세 가지 에피소드다.
10월의 마지막 별인 경제학상 발표를 끝으로 2019년 노벨상 수상자가 모두 호명됐을 때 단톡방 하나가 울었다. '이번 경제학상 수상자 크레이머 교수는 오링(O-ring) 이론으로 유명하잖아요, 형님.' 기계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기업에서 일하는 후배였다. 오링은 1986년 미 우주 왕복선 챌린저호가 공중 폭발했을 때 원인으로 지목된 고무링. 금속과 금속 사이를 밀폐시키는 간단한 부품인데, 온도가 낮아지면 효과가 줄어든다는 사실을 소위 최첨단 기술의 집적체라는 나사(NASA) 연구원들이 간과했다. 마이클 크레이머는 이에 착안했다. 요약하면 높은 수준의 기술 집약적 노동이라 할지라도 단 하나의 낮은 수준 노동이 결합되면 전체가 다 망한다, 그러므로 같은 수준의 '인재 풀' 형성이 중요하다는 경제학적 주장이었다.
오링 이론에 대한 사전적 설명이 이 글의 목적은 물론 아니다. 방점은 한 분야의 전문성에 그치지 않고 다른 분야에도 호기심을 갖고 끊임없이 공부하는 '어떤 태도'에 있다.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 공부도 놓지 않는 후배는 이 이론을 뒤집으면 기업의 두뇌 유출(brain drain)도 설명할 수 있다고 했다. 좀 더 발랄하게 확장하면 류현진과 손흥민의 사례도 마찬가지라는데, 나는 이 공학도의 타 분야에 대한 열정이 더 아름다웠다.
두 번째 사례. 자신이 똑똑하다고 믿는 한 영국 작가가 어느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했다. 피로연에서 옆 좌석 하객과 대화하다 화제가 미국의 보건 의료로 이어졌다고 한다. 한참 얘기 나누고 헤어진 뒤 신부 동생이 작가에게 물었다. "그 사람 얘기해보니 어때?" "바보는 아닌 것 같던데?" 신부 동생은 경악했다. "뭔 소리야, 그분 노벨상 수상자야." 멍해진 작가가 물었다. "전공은 뭐야?" "미국의 의료 서비스." 작가는 다른 자리에서 이렇게 썼다. '고백하건대, 정말 그 사람은 내 말도 안 되는 수다를 훨씬 더 열심히 들으며 배우는 것 같았다.' 그의 이름은 로버트 포겔(1926~2013). 1993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다.
마지막으로 1974년 수상자인 프리드리히 하이에크(1899~1992). 그해 시상식 수락 연설에서 이 오스트리아 출신 영국 경제학자는 '겸손의 서약'을 했다. 자연과학과 달리 경제학은 정치인 공무원 언론인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더욱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오해하지만 우리는 지극히 좁은 분야의 전문가에 불과하며, 만물박사처럼 떠드는 것은 금물이라는 겸손이자 맹세였다.
앞에서 '아름다운 정신'(Beautiful Mind)이라고 했다. 지난 주말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에서 이 정신의 공통점을 읽었다. 소문이나 가짜 뉴스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시인 같은 상상력을 지니되 과학자처럼 데이터로 검증하며, 이미 한 분야 전문가라도 끊임없이 다른 분야를 배우려 노력하고, 다른 사람을 편견 없이 대하며, 겸손하고 또 겸손하라는 것.
기자 생활 25년 동안 반복해서 깨닫는 게 있다. 세상에는 나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는 것. 또 하나 있다. 하지만 그들도 계속 노력하지 않으면 그 자리에 멈춰 있더라는 것. 새로 알게 된 사실과 겸손이 비록 한 뼘에 불과하더라도 나는 최소한 그만큼은 달라져 있다. '아름다운 정신'으로 시작하는 월요일 되시기를.
[퍼온 글] / 출처; 조선일보 / 어수웅(조선일보 주말뉴스부장) / 2019.10.28 03:15
내몽고의 초가을풍경
에르도안의 꿈… 옛 오토만제국을 넘어 중앙아시아까지
[新중동천일야화]
터키 '건국의 아버지' 케말 파샤, 세속화・근대화로 '유럽 되기' 추진
에르도안, '아랍의 봄' 때 중동의 롤 모델… 이젠 노골적 패권 야심
미・EU・러시아 등과도 갈등… 新오토만주의, 범터키주의에 공들여
터키의 광폭 행보가 심상치 않다. 국제사회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국경 넘어 시리아 쿠르드족을 가차 없이 공격하는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강대국을 상대로 대립과 갈등도 마다하지 않는다. 러시아 전투기를 격추하는가 하면 오랜 동맹 미국과는 첨예하게 각을 세우고 있다. 나토 회원국들과도 티격태격한다. 상궤를 벗어난 행태다. 왜 이럴까? 에르도안 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터키 현대사를 살피면 어렴풋이 답이 보인다. 1차 대전 패배 후 광대한 영토 아라비아와 레반트(지금의 이라크・시리아・요르단 및 이스라엘・팔레스타인)를 열강에 넘겨줬다. 굴욕이었다. 터키 민족주의자들이 일어났다. 젊은 지도자 케말 파샤의 영도 아래 술탄을 폐위하고 공화국을 세웠다.
케말은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새로운 터키로 거듭나 유럽에 당한 수모를 극복할 수 있을지 성찰했다. 결론은 둘로 수렴했다. 하나는 이슬람을 극복하는 것, 다른 하나는 서구 근대화의 발전 경로를 수용하는 것이었다. 세속화와 근대화를 통해 중세 이슬람 제국을 현대 공화국으로 바꾸는 혁명적 프로젝트였다. 중동을 떠나 서방을 지향하는 터키 노선은 냉전과 함께 절정에 이르렀다. 목표는 선명했다. '유럽 되기'였다.
냉전이 끝난 후 터키의 전략적 가치는 하락했다. 유럽은 터키보다 소련에서 떨어져 나온 동유럽에 더 관심을 가졌다. 터키의 유럽 가입은 지지부진했고, 국민의 자존심은 상처를 입었다. 이런 가운데 9・11 테러가 터졌다. 세계 각처에서 이슬람 경계 심리는 최고조에 달했다. 터키의 유럽 프로젝트에 짙은 구름이 끼었다.
이때 치고 나온 인물이 에르도안이다. 그는 정의개발당(AKP)을 만들어 중앙 정치에 나섰다. 대중이 원하는 정곡을 찔렀다. 이슬람 복원, 그리고 옛 터키 자존심 회복이었다. 노력했지만 여전히 터키를 경원하는 서방에 실망한 대중은 에르도안을 지지했다. 운도 따랐다. 유례없는 경제성장 여건이 수반되었다. 국민의 삶은 나아졌고, 유럽 가입 없이도 잘살 수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터키의 국가 이미지는 크게 바뀌었다. 더 이상 서구 지향 국가가 아닌 독자적 지역 강국으로 거듭난다.
2011년 아랍의 봄이 중동을 강타했을 때 아랍의 대중은 에르도안을 연호했다. 독재자를 축출한 아랍 공화국이 모델로 삼을 만한 나라는 터키밖에 없었다. 중세 같은 사우디 왕정이나 음습한 이란의 신정주의 공화정은 답이 아니었다. 경제가 탄탄하고, 선거도 정착되어 있는 데다 이슬람과 세속이 공존하는 터키가 답이었다. 평화 선도 국가를 자임하며 내세운 다우토을루 외교장관의 새로운 터키 대외 전략도 주효했다. 민주주의, 이슬람, 경제 발전을 하나로 묶어낸 터키 소프트 파워는 최고조에 달했다. 미국의 미래 전망 기관 '스트랫포'의 조지 프리드먼은 2050년경에는 터키가 세계의 주역으로 올라설 것이라 예언하기도 했다.
찬사가 과했을까? 점차 터키는 변해갔다. 패권의 야심을 드러냈다. 중동에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때론 매우 공격적인 모습을 나타냈다. 이슬람 과격 정치 단체인 무슬림형제단 네트워크 지원설도 들려온다. 이는 백 년 전 터키 제국의 서사와 맞물린다. 이슬람을 배경으로 하는 신오토만주의(Neo-Ottomanism)라 할 만한 지정학적 코드다. 아직 초보 단계이지만 범터키주의(Pan Turkism)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 등을 아우르며 터키 언어권 공동체의 리더 역할을 하려 한다. 이제 터키 확장 정책의 주력 방향은 서쪽(유럽)이 아니라 남쪽(중동)과 동쪽(중앙아시아)이다.
2023년은 오토만제국 해체를 확정했던 로잔조약 100주년이다. 터키의 목표는 뚜렷해 보인다. 옛 영화(榮華) 회복이다. 에르도안은 제국 해체 100년을 맞아 새로운 터키를 선언하며 제국 회복에 나설지 모른다. 옛 영토를 되찾자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슬람의 주도국, 터키 민족의 주도국이라는 중첩 리더십을 구체적으로 내세우며 나설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정치 리더십이 빠르게 권위주의화했다는 점이다. 에르도안이 권력욕을 드러내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점차 공포정치 징후가 드러나고 있다. 의원내각제를 폐지하고 무리하게 대통령제로 바꾸는 과정에서 술탄이라는 비아냥도 듣기 시작했다. 전통적 터키 외교의 강점이 점차 사라지고, 폭력적이고 배타적인 대외 정책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에르도안이 오해하는 것이 하나 있다. 터키의 힘은 세력 과시나 강경한 태도에 있지 않았다. 진정한 힘의 근원은 이슬람권에서 가장 앞섰다고 칭송받아 온 정치 제도와 세속주의였다. 군부의 전횡과 혼란 같은 부침이 있었지만 방향만큼은 중동 어떤 나라보다 전향적이었다. 그 힘으로 터키는 부상했던 것이다. 중동 정치의 바람직한 미래상이라 칭송받았던 에르도안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이번 쿠르드 공 격 역시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최근 이스탄불을 비롯, 4대 도시 지방선거에서 에르도안 측이 패배하자 쿠르드 공격을 통해 대중의 지지를 결집했다는 설도 퍼지고 있다. 사실이라면 대외 정책을 국내 정치에 이용한 셈이다. 과거 지중해 문명의 중심이었던 광대한 오토만제국이 절정에 올랐을 때의 힘은 개방성과 포용성에 있었다. 강압과 독단의 정치는 오래가지 못한다.
[퍼온 글] / 출처; 조선일보 / 인남식(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 2019.10.28 03:10
기계에게 목적을 부여하는 인간
[유혁의 데이터이야기]
.2016년 구글의 알파고가 이세돌 기사에게 승리한 것을 계기로 일반인들의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머신 러닝 등의 기술적 단어가 일상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곧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이 올 것이라는 예측도 쏟아졌다. 그런데 그 대국이 정말로 세상을 뒤집을 만한 결정적인 사건이었던가?
바둑이 체스보다 훨씬 복잡하다지만 그것은 바둑판 안에서만 정해진 룰에 따라 진행되는 게임이다. 지치지도 않는 스스로 배우는 기계가 엄청난 속도로 바둑만 연구하면 그걸 당해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건 마치 육상선수가 자동차와 달리기 경주를 하는 격이다.
인공지능이 세계최고의 기사를 이겼다는 것은 뉴스거리지만, 일반인들은 이미 컴퓨터를 따라갈 수 없게 된 지 오래다. 생각하는 기계는 발명된 이후로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계속 빨라지고 더 강력해졌으며, 그 역사는 그것이 여러 분야에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사례들로 가득 차 있다. 사람보다 똑똑한 기계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은 인간이 그들에게 대체될 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신기술에 대한 몰이해가 겹쳐져 증폭된다. 그래서 그 “똑똑하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누군가가 머리가 좋다고 불리는 첫번째 요소는 뛰어난 암기력이다. 많은 정보를 잘 기억하고 적재적소에서 끄집어낼 줄 알면 일단 시험을 잘 보게 된다. 두번째 요소는 훌륭한 산술능력이다. 계산에 능하고 어려운 수학적 개념도 잘 이해하면 학업성적이 좋아진다. 그런데 문제는 머리가 좋은 사람도 이 두 분야에서 컴퓨터를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컴퓨터는 한번 입력된 것은 절대 잊지 않으며, 산술능력에 관한한 자릿수와 난이도에 상관없이 실수가 없다. 그러니 뭐든 검색해보면 즉각 답이 나오는 세상에서 아직도 그런 “시험 잘 보는” 기준으로 사람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평가해서는 곤란하다.
인간의 능력 중 아직도 기계보다 나은 것은 통찰력, 판단력, 그리고 창의력이다. 일견 상관없이 보이는 현상들을 꿰뚫어 볼 줄 알고, 가진 모든 정보를 논리적으로 수렴해 적절한 판단을 내리는 사람들은 늘 도움이 된다. 없던 것을 새로 만들어 내는 창의적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런 능력들은 결코 입시위주의 교육으로 개발되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머신 러닝의 급속한 발전으로 컴퓨터가 인간의 통찰력과 판단력의 범주에까지 진입하고 있는 상황이다.
인공지능에 의한 자동화가 계속되면 전 분야에서 인간들이 할 일은 줄어든 다. 대체불가능한 사람으로 남는 길은 기계에게 목적을 부여하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컨트롤 할 능력을 가지는 것이다. 기계가 지름길까지 다 찾아주는 시대지만 “왜” 어느 장소에 몇 시까지 가야하는 지는 사람이 정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기술의 도약과 함께 인문학이 더욱 중요해지고, 데이터나 분석 작업도 인본화가 되어야 가치가 생긴다.
일반화된 전인교육은 효용가치를 잃고 있다. 청년 실업률이 높다는데 정작 기업들은 AI나 머신 러닝, 빅데이터 전문가가 절대적으로 부족해 자체적으로 교육을 하고 있다. 교육과 산업현장의 괴리는 이미 그렇게 큰데 인간끼리 시험의 변별력이나 따질 계제가 아니다. 이제는 교육의 목적이 인문학적 소양과 더불어 기계를 지배할 수 있는 실질적 능력을 갖추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사람들끼리 할 일을 나누는 좋은 시절은 다 지나가고 있다.
[퍼온 글] / 출처: 중앙일보 / 유혁(윌로우 데이터 스트래티지 대표) / 2019.10.28 00:18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887~1985 france) / Bride with a Fan, 1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