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집단장에 빠지다>
주영혜
길을 걷는데 흰색 큰 레이스천이 홀리듯 내눈에 가득 들어왔다. 그것은 요즘 잠잠했던 나의 인테리어 관심세포를 깨어나게 했다. 거실 벽에 갖은 모양을 내서 걸어 놓아보았다. 혹시 전체적인 분위기를 깨뜨리는 건 아닐까 해서 가족들 의견수렴을 거친 후에야 그자리의 주인공으로 인정해주었다.
집 꾸미는 걸 좋아하는 내가 처음 집단장에 빠지게 된 건 내부통화장치 모서리가 깨져 있어 굵은 레이스 실로 떠서 가리면서부터 이다. 내가 좋아하는 취향은 중세 유럽풍이다. 레이스 ,이슬람 전통문양천, 엔틱소품등을 이용해서 공간을 장식하는 것은 나의 소소한 행복 과 활력소가 되어주었다. 또 자고 일어나자마자 설레는 맘으로 불을 켜고 보고 끄고도 보며 나만의 즐거움에 심취해있었다.
몇년 후 페인트를 이용한 칠하기에까지 입문하게되면서 집 꾸미기에 좀더 깊게 다가가게 되었다. 닦아도 깔끔해지지않는 현관문을 시트지를 붙여볼까 고민하던 중 페인트가게 사장님의 설명을 마중물삼아 용기를 냈다 . 페인트를 이용한 집꾸미기는 낡아서 버릴 수 밖에없는 가구를 깔끔하고 멋스러운 새 작품으로 재탄생시킨다. 거기에 화려한 꽃문양 나무장식까지 더해주면 시커멓고 낡은 가구가 아름다운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의 모습처럼 변신한다. 그 모습을 보고 사랑스러워하는 신랑의 미소가, 내 입가에도 머문다.
재작년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오면서는 우아하면서도 젊은 감각의 분위기로 꾸미기로 마음먹었다. 전체적으로 흰색으로 통일해서 깔끔함을 더하고 싶었다. 더 나이들기 전에 집꾸미기에 도전해서 나만의 특별한 보금자리를 만들어보고도 싶었다. 남편이 조력자가 되어 주니 든든했다. 티브이 벽면을 중세 서양 양식이 연상될만큼 우아하게 꾸미고 싶었다. 하지만 이 집을 팔때 수요층이 한정될 게 염려돼서 그 마음을 꾹꾹 눌러담았다. 직접 그린 설계도와 함께 원하는 크기와 모양의 목재와 재료들을 인터넷으로 신청한다. 그러면 절단해서 화물택배로 보내준다. 그러니 특별히 배우지않고도 누구나 관심만 있으면 해볼만하다.
흰색의 밋밋함을 보완하기위해 안방 쪽 붙박이장식장과 중문 테두리는 꽃문양 나무장식을 붙인 후 진남색으로 색을 입혀주었다 . 소파쪽 벽면은 단지 크고 화려한 곡선의 입체나무조각으로 장식했을뿐인데 친구들이 베르사유 궁전 같은 느낌이 난다는 감탄도 해주었다. 소파 도 페인트 작업과 큐션을 활용해 화려한 벽과 어우러지게 했다. 티브이 쪽은 설계도에 맞춰 긴 나무조각을 직사각형으로 맞추어 모서리를 붙인 후 그걸 벽에 붙였다. 그런 후 두번의 페인트칠로 마무리하고, 벽부등을 달아주었다. 모든 방문도 같은 방법으로 어루만져주었다. 이렇게 손이 가니 새로 갓 구워낸 크림케익같다.
전실은 아이들 돌사진액자틀과 쓰던 촛대 ,콘솔 레이스커텐, 세무 천 ,양털재질의 천등을 재활용하고 흰색 페인트로 마무리해주었더니 작은 카페에 들어온 듯 아늑하다.
이사오면서 벽난로를 구매한것과 조명을 바꾼것 말고는 따로 거의 지출을 안했다. 당근마켓을 이용해 낡은 갈색 톤의 엔틱 피아노콘솔과 협탁 등을 구입한 후 꽃문양 나무장식을 붙인 후 두번의 옷을 입혔다. 누렇게 시들었던 수선화가 단비를 맞고 활짝 피어나는 모습같다. 오래된 가구들도 이렇게 시간과 정성으로 반죽하고 빚어내어 새생명을 불어넣어 주었다. 조명전문점 사장님께서 우리집 거실 사진을 찍어서 유럽호텔에 온것같다는 과찬과 함께 블로그에 여러장 올려주셨다.
친한 동생이 이사 선물로 낡은 장식장을 리폼(가구보정)해달라 부탁해서 해주었다. 만족해하니 기쁨이 배가된다. 낡고 지저분한 식당이나 집을 보면 뭔가 손봐주고 싶은 오지랖이 고개를 내민다. 하지만 시기상조다. 내 몸이 강건해진 후 전문성과 경험을 더 쌓아야 감히 나설 수 있을 듯하다. 이런 나의 보잘것없는 작은 취미가 고인물 되지않고, 소소하게 베풀 수 있는 도구가 되어주길 꿈꿔본다.
집을 가꾸고 꾸미는것은 나만의 작은 취미에 불과하다. 내가 좋아서 스스로 터득한 것이니 깊이가 조그만 연못같다. 나의 터치는 미숙하여 작은 몸짓에 불과하다 . 하지만 구상하고 상상하며 변화를 주고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내게 무한의 기쁨을 안겨준다. 또한 완성해놓고 바라보는 것은 아름다운 꽃을 가꾸며 누리는 행복감과 무엇이 다르랴 . 살면서 알게되고 찾게 된 자신만의 독특한 취향을 향유할 수 있는 건 신께 감사 드려야 할 일이다. 우리네 삶도 집을 꾸미듯 정성 담아 예쁘게 가꾸어 나갔으면 좋겠다.
이른 새벽이다. 나의 열정과 정성으로 낳은 자식같은 거실을 지긋이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