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죽음에 임하여
성삼문(成三問 : 1418~1456)
북소리는 사람의 목숨 재촉하는데
고개를 돌리니 해는 서산에 지는구나
황천길에는 주막 하나 없다는데
오늘 밤은 어느 집에서 머물거나
臨死賦絶命詩(임사부절명시)
擊鼓催人命(격고최인명) 回首日欲斜(회수일욕사)
黃泉無一店(황천무일점) 今夜宿誰家(금야숙수가)
[어휘풀이]
-臨死賦絶命詩(임사부절명시) : 죽음에 임박하여 지은 시
-擊鼓(격고) : 북을 두드림
-黃泉(황천) : 사자들이 산다는 암흑의 세계. 저승이라고도 함.
[역사 이야기]
성삼문(成三問 : 1418~1456)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호는 매죽헌(梅竹軒)이며 시호는 충문(忠文)이다. 조선 제일의 충의를 지킨 사육신(死六臣) 중의 한 사람이다. 1455년 수양대군이 단종을 내쫓고 왕위에 오르자 이듬해 단종 복위를 계획핟 발각되어 능지처참(凌遲處斬)을 당했다. 성상문은 충청도 홍주 노은동(현재 홍성군 홍북면 노은리) 외가에서 출생했다. 탄생설화에 그가 태어날 때 공중에서 “낳았느냐?” 하는 세 번의 소리가 있었다 하여 그 이름을 삼문(三問)으로 지었다고 전해진다. 집현전 시절 성삼문은 세종의 명을 받고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를 위한 준비 작업을 했다.
그 결과 1443년(세종 25년) 세종이 훈민정음 28자를 만들 때 정인지, 신숙주, 최항, 박팽년, 이개 등과 더불어 성삼문이 주도적 역할을 했다. 성삼문은 신숙조와 함께 요동을 13차례나 왕래하면서 그곳에 유배 와 있던 황찬(黃瓚)으로부터 음운학(音韻學)을 배웠다. 1447년 그의 나이 30세 때 한자 음운을 정리한 『동국정운(東國正韻)』을 편찬한다.
수양대군이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일으켜 단종을 위협하여 선위(禪位)를 강요할 때 성삼문은 국새(國璽)를 끌어안고 통곡하였다고 한다. 1456년 6월 1일 세조가 상왕인 단종과 창덕궁에서 명나라 사신을 위한 잔치를 열기로 하자, 그날을 거사일로 정하여 집현전에서 비밀결사를 했다. 그러나 거사가 미뤄지가 함께 모의한 김질(金礩)이 그의 장인 정창손(鄭昌孫)과 함께 세조에게 밀고하였다. 성삼문은 세조에게 국문을 당할 때 세조를 가리켜 ‘나리’로 호칭하고 세조의 불의를 나무라며 세조에게 받은 녹은 창고에 쌓아 놓았으니 모두 가져가라고 하였다.
계획을 주도한 성삼문, 이개, 하위지, 박중림 등은 팔과 다리를 각각 다른 수레에 묶고 수레를 끌어서 죄은을 죽이는 거열형(車裂刑)에 처해졌다. 그의 아들 갓난아이까지 모두 살육을 당해 집안의 혈손이 끊겼다. 사육신은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 6명을 가리킨다. 성삼문은 사후 200년이 지나 숙종 때 역모의 혐의가 풀렸으며 사육신의 묘소는 서울 노량진 사육신 묘역에 있다.
“이 몸이 죽어 가서 무엇이 될꼬 하니 /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 /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하리라”
출처 : 한기와 함께하는 우리나라 역사 『노을빛 치마에 쓴 시』
지은이 : 고승주. 펴낸 곳 : 도서출판 책과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