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거대하고 아름다운 운동|작성자 너굴희(https://blog.naver.com/hehe26/222524429878)
선생님, 저에게 오늘 다정한 말이 필요했다는 걸 어떻게 알았나요?
“다정함이 세상을 구한다”라는 말은 대책없이 달아서 믿고 싶지 않았다. 세상의 불의와 악은 아주 난폭하고 비정한데, 폭신하고 말랑한 다정함만 믿고 있다가 상처받을까 겁났다.
하지만 이날 이후 나는 다정 신봉자가 되었다. 다정함은 세상을 정말로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잔뜩 냉담해진 마음을 편지 한 장과 드립백 커피 세트로 폭닥하게 만들어버리는 힘이라면 뭔들 못하겠어.
세계가 굴러가는 원리는 마치 이어달리기 같다.
먼저 달리던 이가 건넨 바톤을 후발자가 받아 달리고, 반환점을 돌고 돌아온 사람의 바톤은 다시 다음 선수에게 전해진다. 내 순서를 마치면 숨이 턱까지 차고 심장이 터질 것 같지만, 힘들지 않다. 내 몫을 했다는 후련함, 다음 주자가 넘어지지 않고 달리길 바라는 기원과 응원이 머리와 가슴을 꽉 채우기 때문. 마치 내 몸이 열광과 기대, 벅참과 흥분만으로 구성된 유기체가 된 듯하다.
김민혁이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과정은 한편의 드라마다. 주인공은 그와 친구들, 그리고 국어교사다. 민혁은 이란에서 태어나 일곱살에 사업을 하는 아버지와 같이 한국에 왔다. 친구를 따라 교회에 갔다가 개종했고, 종교적 박해를 이유로 난민 신청을 했으나 끝내 불인정 결정이 나왔다. 2주 내로 이란에 돌아가라는 명령이 중학교 2학년 때 내려졌다. 그 사연을 담임의 옆자리에 있던 국어교사가 우연히 듣고 알게 됐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한 국어교사는 수업에 들어가서 아이들한테 말했다. 민혁이가 지금 이런 상태에 있다, 도와주고 싶은 친구는 교무실로 오라고.
피켓 시위, 국민청원 등 당차고 치밀한 전략으로 난민 인정 가능성 0.1퍼센트에 도전한 민혁과 친구들의 이야기는 언론의 큰 관심을 불러모았다. 민혁이 한 친구에게 “왜 이렇게까지 나를 도와주냐?”라고 물었더니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너를 돕지 않고 그래서 네가 이란에 돌아갔는데 혹시라도 무슨 일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면 평생 지우지 못할 죄책감이 들 것 같아. 그 이야기를 전하며 민혁은 “애들이 좀 멋있죠?”라며 환하게 웃었다.
민혁은 특성화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거기서도 새로운 친구들과 두루두루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 원만한 교우관계의 비결을 묻자 한국에 왔을 때 친구들이 저를 배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가 누군가를 믿어줄 때 그 사람이 또다른 누군가를 또 믿고 반기면 사회에서 누가 누구를 배척할 일이 없지 않을까요.” 그는 일찍이 스스로 최초의 원인이 되어 ‘믿음의 벨트’를 형성했다.
은유, 《있지만 없는 아이들》 16-17쪽
영화는 보희가 물에 잠기자 녹양, 어머니, 성욱 등 그를 아끼고 돌보는 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아버지가 보희를 안아주는 판타지 장면이 이어진다. 컷이 바뀌면 한강에서 헤엄을 치는 보희가 보인다. 첫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과 달리 그는 미소를 머금고 찰랑거리는 한강의 물결을 즐기며 둥둥 떠간다. 그는 달라졌다. 한 단계 나아간 것이다.
안주영은 이 장면에 대해 한 인터뷰에서 “보희에게 수영은 ‘자생 능력’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이 위기에 닥치면 발휘하게 되는 자기도 몰랐던 자신의 힘”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보희가 그런 힘을 키울 수 있었던 건 물론 그의 옆에서 서로 돌봄을 주고받았던 이들 덕분이다. 생활력이 강한 어머니, 보희를 위해 기꺼이 ‘주먹 쥐고 일어서는’ 녹양, 제 한 몸 챙기기도 힘들지만 든든한 친구가 되어주려는 성욱. 보희는 상실 그 자체가 아니라, 상실 이후에도 늘 함께했던 이들 곁에서 삶을 배운다. 그리고 아버지가 자신을 떠났던 이유를 비로소 이해한다.
보희는 보고 따라 할 할아버지를 만났기 때문에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타인의 사정 앞에서 잠깐 멈춰 서서 질문하고 스스로의 답을 찾아 공감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어른이 되어간다. ‘내’가 아니라 ‘세계’를 보게 되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형편과 이야기들이 얽혀 있는 바로 그 세계를.
손희정, 《당신이 그리는 우주를 보았다》 94-95쪽
다정한 마음을 지닌 학생들에게 이 거대하고 아름다운 이어 달리기의 순환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싶어서 나는 교실에서 책을 읽는다.
속도가 늦어도, 달리다 넘어져도 궤도만 벗어나지 않는다면 시공간을 초월한 수많은 존재들이 보내는 응원과 사랑의 마음이 너에게 가닿을 거라고. 혐오와 배제와 차별이 세상을 집어삼킬 것 같아 두려워져도 우리편을 떠올리며 힘내라 말하고 싶다. 최초의 우리편은 무조건 내가 될테니, 외로운 마음을 갖지 말라고.
이것은 동시에 나 자신에게 보내는 문장이기도 하다.
내가 공부하는 이유는 배턴을 잘 전달하기 위해서다. 기왕 주자가 되었으니 다음 순서의 사람이 조금 더 안정된 뜀박질을 할 수 있도록 (감당할 수 있는 한에서) 빨리 달리고 싶다. 지면을 박차는 내 모습이 안정감 있고 품위있어 보이길 바란다.
그러려면 내가 제대로 된 말을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목소리를 낼 창구가 많은 스피커인 만큼, 마이크를 쥐고 있단 점에 도취돼 흰소리를 하는 것이 경계된다. 전혀 새롭지 않은 이야기를 하면서 ‘다들 감탄할 거야, 나밖에 모르겠지?’라고 착각하는 것 또한 그렇다.
내 생각을 더 오랫동안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으니, 공부를 많이 하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다.
내가 한심해지지 않으면 오랫동안 빠른 속도로 잘 달리는 주자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 공부는 나의 의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