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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 병무기자 스크랩 독립운동가의 피 묻은 두루마기에 서린 한 맺힌 절규!!
호박조우옥 추천 0 조회 31 15.09.16 08:5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군산 3·1 운동 기념관 & 3·1 운동 기념비>

          

붉은 피를 조국에 바치겠소!!~~독립운동가의 한 맺힌 절규가 들리는가? 

 

군산 지역은 고려말 왜구와 치열하게 전투를 치러냈던 진포대첩 전투현장이었던 내항 일대를 비롯해 일본의 수탈 현장이 아직도 곳곳에 잔재해 있고 일제강점기 침탈 적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은행이 현존해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땅에서 부를 누리고 살았던 일본인 지주들의 일본식 가옥, 일본식 사찰과 독립군의 피 묻은 두루마기가 전시된 3·1 운동 기념관이 아이러니하게도 군산 시내에 함께 공존하고 있습니다.

 

이는, 일제강점기 침탈을 잊지 않고 상기하면서 역사의 아픔을 딛고 국가 안보의식 결의를 다지는, 후손을 위한 산교육의 장이 될 것입니다. 

 

<군산 3월 5일 만세 운동의 의의>

 

산에서 일어난 3·5만세 운동은 한강 이남 최초의 만세운동으로 호남지역 민족봉기의 시발점이 되었으며 애국정신을 기념·전승하기 위해 옛 구암 교회를 기념관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외세 제국주의 침입과 몰락하는 조선 왕조>

  

제국주의 물결에 쇄국정책으로 맞서던 봉건 왕조 조선은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이 실패하고 1876년 한·일수호조약부터 1907년 고종황제가 양위하기 32년간 외세의 반식민지 상태를 극복하지 못하고 조선왕조는 몰락의 비운을 맞습니다.  

 

 

 <일제의 착취>  

  

<전시 중인 독립군 배지 & 3·8식 보병소총 & 모젤 권총> 

<구암 교회 3·5만세 운동 기증유물> 

 

 <3·1 운동 시위자를 처형 후 사진을 공개하여 시민궐기에 제동을 걸려는 일제>

 

일제강점기 일본의 잔악무도한 행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진은 할 말을 잃게 합니다.

3·1 운동 시위자를 처형 후 사진을 공개하여 시민궐기에 제동을 걸려는 일본의 잔악무도한 행위 앞에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도저히 눈을 뜨고 쳐다볼 수 없는 극악무도한 잔인함에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군산 3월 5일 만세운동>

 

<영원한 치욕의 역사 한일합방>

 

 

군산에서 일어난 3·5만세 운동은 한강 이남 최초의 만세운동으로 호남지역 민족봉기의 시발점이 되었는데 당시 군산 구암 교회 교인으로 군산 영명 학교 졸업생 김봉수 학생에 의해 시작이 되었습니다.

 

1903년 2월 미국 예수교 남장로회 선교회에서 기독교 선교를 목적으로 설립한 영명 학교와 멜본딘 여학교 교사, 학생, 궁멀 예수병원 사무원과 구암 교회 성도 등 기독교인이 주축이 되어 시작해, 천주교, 불교 등 범종교와 시민 등이 함께하여 전개하였다고 합니다.

 

민족의 자주독립을 외쳤던 3·1 만세운동은 구난의 구암동산에서 3월 5일 발원되어 끈질기게 이어져 총 28회에 걸쳐 연인원 30,700명이 참가하였고 사망 53명, 실종 72명, 피해 인원 195명이 발생하였다고 합니다. 군산의 3·5만세 운동은 호남 최초는 물론이고 한강 이남 최초의 만세운동입니다.

 

<독립운동가 문용기의 피 묻은 두루마기>

 

군산 3·1 운동 기념관에는 독립운동가 문용기 님의 피 묻은 두루마기가 전시되어 있는데, 피 묻은 두루마기에 서린 문용기 독립운동가의 한 맺힌 절규, "여러분, 나는 이 붉은 피를 조국 독립에 바치겠소.!!"? 가슴 아프도록 귓가를 맴돌았습니다.

 

광복 70주년을 맞이하는 2015년, 대한민국 온 국민이 누리는 자유와 평화는 소중한 목숨을 바쳐 투쟁한 독립운동가와 순국선열이 계셨기에 누릴 수 있는 자유와 평화이겠지요.

 

 

<아직도 생생하게 남은 칼자국과 혈흔이 낭자한 독립운동가의 두루마기>

 

독립운동가 문용기 님의 피 묻은 두루마기는 며느리가 기증한 것인데, 문용기 님의 부인이 피 묻은 저고리와 두루마기를 솜으로 싼 후 항아리에 넣어 땅속에 보관했다가 해방이 되던 날, 외아들 문창원 님께 전해졌고, 지병으로 숨지면서 미망인 정부인이 보관하고 있다가 3.1운동 기념관에 기증하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독립운동가의 한 맺힌 절규가 들리십니까? 피 묻은 두루마기는 일본의 만행을 알리고자 처절하게 울부짖고 있는데 애끓는 절규가 들리십니까? 

 

<3·1 독립선언서 & 2·8 독립선언서>

 

1919년 4월 4일 이리역 앞 광장에서 1만여 명의 군민들을 모아 놓고 독립만세 시위를 벌이던 독립운동가 문용기 님은 일본 헌병의 칼에 양손이 잘려나가고 목뼈가 부러져 순국하셨다고 합니다.

 

시위군중 맨 앞에 서서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 운동을 벌이던 문 독립운동가의 오른손을 일본 헌병이 칼로 베어 버리자 왼손으로 다시 태극기를 들고 만세 운동을 벌였고, 왼손마저 일본 헌병이 베어 버렸다고 합니다. 양팔이 잘려나간 채 맨몸으로 대한 독립만세를 외치는 문용기 독립운동가의 옆구리와 가슴을 일본 헌병은 사정없이 찔러서 죽였다고 합니다.

 

숨을 거두면서도 왜병의 만행에 굴하지 않고 "여러분, 나는 이 붉은 피를 조국독립에 바치겠소.!!" 한 맺힌 절규를 부르짖으며 장렬히 순국하였습니다. 

 

<한국광복군이 서명한 태극기>

 

<3·1 운동 당시 사용되었던 태극기와 목판(복사본)>

 

일본 헌병의 칼에 무참히 숨져간 문용기 독립운동가에게 정부는 1968년 대통령 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습니다.

 

3·1 만세운동 기념관은, 만세운동이 벌어졌던 궁멀(현 구암동) 마을의 당시 사진, 재판기록, 기록물, 전국적으로 진행되었던 3·1 독립 만세운동의 전개과정, 역사적 사진, 일제의 만행, 3·1 운동 후 독립운동 사진과 유물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지난날 자신들의 과오를 시인하지 않고 반성과 사죄는커녕 역사를 왜곡하려 하고, 거짓을 일삼고 있습니다. 역사의 진실은 왜곡한다고 가려지지 않는다는 걸 모르고 있을까요?

독립운동가의 한 맺힌 절규는 광복 70주년을 맞이하는 현재까지도, 한 맺힌 절규를 멈추지 않고 군산 3.1운동 기념관 한쪽에서 일본의 만행을 온 천하에 알리고자 분노 속에 잠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후손들은 3·1 운동의 한 맺힌 역사를 되새기고 상기해, 순국선열의 희생정신과 독립정신이 헛되지 않도록 일본의 왜곡된 우리 역사를 바로잡도록 노력합시다!! 

 

 

 




 
<취재: 청춘예찬 어머니기자 구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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