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5일 오늘의 역사
2022년 조국 전 법무장관 및 민정수석 딸 허위경력 기재로 입학한 의전대 입학 취소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의 딸 조민씨(31)의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 입학이 취소되었다 이로써 조씨는 입학 7년 만에 입학취소와 학적말소 처분을 받게 됐다
조씨의 7가지 인턴·활동 확인서 즉, △단국대 의과학연구소 인턴 △공주대 생명과학연구소 인턴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인턴 △부산호텔 실습 및 인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인턴 △동양대 총장 표창장 △동양대 어학교육원 보조연구원에 대해 모두 허위라고 봤다. 정 전 교수는 조씨가 2014년 6월 부산대 의전원에 지원할 당시 자기소개서와 입학원서에 동양대 총장 표창장을 받은 사실을 기재하고 이 표창장을 증빙자료로 제출했다. 또 공주대 생명공학연구소 인턴, KIST 인턴, 동양대 어학교육원 보조연구원 활동 내용을 입학원서와 자기소개서에 기재했다.
법원은 허위 경력확인서를 입시에 활용해 부산대 의전원의 업무를 방해했다고 보고 위계공무집행방해, 위조사문서행사 혐의를 모두 유죄로 판단했다.
조씨는 2013년 3월 차의대 의전원, 그해 6월 서울대 의전원에 지원했다가 탈락했으나 2014년 지원한 부산대 의전원에는 합격했다.
2022년 러시아군 우크라이나 부차시 철수하며 민간인 무차별 학살 시신410여구 발견 추후 조사결과 더 많은 학살자 발견 될 수도
2019년 고성,속초, 강릉 대형산불 발생
2019년 4월 4일, 저녁 7시쯤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의 한 야산에서 발생한 불이 바람을 타고 속초 시내 방향으로 번진 대형 산불.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국가지원지방도 56호선 미시령터널 부근의 일성콘도 부근 변압기 폭발로 화재가 발생했다
개폐기 전주에서 외물 1차 접촉으로 스파크가 한번 튀었고, 그 스파크가 전주 아래로 떨어져서 불이 붙은 것으로 추측된다. 외물 제거가 안된 상태에서 리클로져가 동작해 2차로 스파크가 튄 것으로 보인다.
초기 신고자는 발화 즉시 신고하고 차량 소화기로 진화를 시도했으며,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던 소방서에서도 3분 만에 출동해 진화를 시작했다. 화재가 나면 소방차는 5분 이내로 현장에 도착해야 하며 5분이 지나면 사망자가 2배 이상 증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3분이면 충분히 빠르게 대처한 것이었다. 하지만 해당 지방에 건조 경보와 강풍 특보가 동시에 내려진 가운데 일어나 화재가 강풍을 타고 빠르게 확산되어버렸다. 엄청난 수압을 자랑하는 소방차의 물줄기가 역행할 정도의 강풍이 불고 있는 날씨에, 소방헬기를 쉽게 띄울 수 없는 밤 시간대, 나무가 둘러쌓인 환경까지 겹치면서 결국 조기진화에 실패한 것이다.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산불로 주택 401채가 불에 탄 것이 확인됐다 이외에 임야 1757㏊, 창고 77채, 관광세트장 158동, 축산시설 925개, 농업시설 34개, 건물 100동, 공공시설 68곳, 농업기계 241대, 차량 15대 등이 소실됐다. 인명피해는 사망과 부상 각 1명 이다.
2009년 북한, 장거리 로켓 대포동 2호 발사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2009년 4월5일 오후 3시28분 ‘은하2호가 11시20분에 함경북도 화대군에 있는 동해위성발사장에서 발사돼 9분 2초만인 11시29분 2초에 광명성 2호를 자기궤도에 정확히 진입시켰다고 발표했다
북한이 발사한 로켓의 2단 추진체의 낙하지점이 애초 예고된 무수단 발사장 기점 3천600㎞에는 못미친 것으로 알려졌지만 1998년의 대포동 1호보다 더 멀리 낙하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ICBM 능력을 갖췄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날 발사된 로켓의 2단 추진체는 일본 동쪽에서 1천270㎞ 지점에 떨어졌고 이는 무수단 발사장으로부터 2천300㎞가량 거리인 것으로 추정된다. 1998년 대포동 1호 로켓의 2단계 추진체는 1천646㎞ 지점에 떨어졌다.
지금까지 인공위성을 자력으로 쏘아 올린 국가는 러시아, 미국, 프랑스, 일본, 중국, 영국, 인도, 이스라엘, 이란 등 9개국으로, 이들 국가는 모두 막강한 화력의 ICBM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ICBM 기술 보유가 갖는 국제정치 및 군사적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군사적으로도 최대 사거리 8천㎞로 추정되는 대포동 2호가 미국까지 사정권에 둘 수 있기 때문에 국제 안보지형에도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무수단리를 기점으로 미국 본토 서부까지는 1만1천㎞이지만, 하와이 7천600㎞, 알래스카 7천400㎞로 사정권에 들어간다. 미국의 태평양 전진기지인 앤더슨 공군기지가 있는 괌까지는 불과 3천600㎞ 거리다. 탄두 무게에 따라 사거리를 충분히 연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 본토까지 위협할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물론 이날 발사한 대포동 2호에 탄두를 장착해 ICBM화 하더라도 그 사정권이 어디까지일지 현재로선 단언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2005년 강원지역 산불로 낙산사 소실
2005년 4월 5일 23시 53분 경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 화일리에서 화재가 일어났다. 4월 5일 아침 산림청과 대한민국 국군은 헬기 10여 대를 긴급 투입해 진화 작업에 나섰다. 산불은 아침 7시 경 바람을 타고 낙산해수욕장까지 번졌고 오전 11시 20분경 큰 불이 거의 잡힌 듯 보여 주민들은 속속 집으로 돌아와 가재 도구를 정리하기 시작했고 진화 작업을 위해 투입됐던 헬기는 고성 산불 진화를 위해 기수를 돌린다. 하지만 잦아지던 불길은 오후 1시경 강풍을 타고 되살아났으며 헬기도 양양으로 방향을 돌린다. 오후 2시 30분 양양군은 재난 경보를 발령했지만 15시 30분 낙산사에 산불이 확산되어 방화선이 무너졌고 산불이 일어난지 불과 1시간 만에 낙산사 대부분의 전각이 화재로 소실되었다. 4월 7일 양양군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다. 이 화재로 21채의 건물이 불타고 보물 479호로 지정되어 있던 낙산사 동종이 소실되면서 보물에서 지정 해제되었다. 산불 이후 동종은 복원되었지만 다시 보물로 지정되지는 않았다. 이 때문에 보물 제479호는 결번으로 남아 있다. 낙산사 동종은 2006년 9월 29일 새로 주조되어 10월 13일 충북 진천에서 시험 타종을 거친 후, 10월 16일 낙산사에 안치되었다.
2001년 ‘장구 인생’ 45년 김덕수 첫 독주회
장구 하나로 45년간 국악무대를 누벼온 김덕수. ‘사물놀이‘ 를 지구촌 보통명사로 만든 사람. 한해 365일, 분초를 쪼개 국내외 공연장을 누비는 김덕수가 ‘생애 첫’ 독주회를 했다. 2001년 4월 5일부터 7일까지 3일간 서울 문예회관 대극장이 무대였다.
키 1m59, 몸무게 71kg. 작은 거인 김덕수는 다섯 살 때 아버지를 따라 남사당 새미(무동)로 난장 인생을 시작했다. 국악고를 나와 풍물패서 활동하다 ‘김덕수와 그 일행’ 을 지칭하는 단체의 이름으로 1978년 2월 서울의 소극장 공간사랑에서 처음 선보인 사물놀이는 10년 채 안돼 세계를 휩쓸었다. ‘김덕수표 사물놀이’ 는 세계 50여국에서 3600회 이상 공연, ‘신을 부르는 소리’ 라는 찬사를 받았다.
2000년 모리 요시로 자민당 간사장, 일본 총리에 선임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가 격무로 쓰러져 뇌사상태에 빠지자 후임 총리에 모리 요시로 자민당 간사장이 2000년 4월 5일 선임됐다. 집권 자민당은 각 파벌이 거당적 협력을 선언, 결속을 다짐하며 모리정권 출범이라는 단일 해법을 만들어냈다.
모리 요시로 신임 총리는 건장한 체격에서 풍기는 강인한 이미지와 달리 전형적인 조정형 정치인이다.
그는 절충을 통해 세를 불리고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막후정치에 능하며 인맥관리가 강하고 보스 기질이 두둑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와세다대 시절 오부치 전 총리와 아오키 관방장관 등과 웅변부에서 활동한 적도 있다. 졸업 후 산케이신문 기자와 국회의원 비서를 거친 뒤 32세때 고향인 이시카와에서 출마, 국회에 진출했다.
1999년 한얼교 창시 신정일씨 별세
신씨는 종교-기업-정치-외교를 넘나드는 광범위한 활동 영역으로 세간의 주목을 끈 특이한 인물이었다.
경북대 법대 재학 시절부터 전국 사찰을 돌며 수도했다. 동대학원에서 불교철학을 공부하던 1965년 12월 `큰 깨달음`을 얻었으며 한얼교-한사상연구소를 창립, 종교 활동에 나섰다.
신씨는 또 기업 운영에도 재능을 발휘, 일찍부터 회사를 운영, 한때는 회사수가 13개에 이르기도 했다. 그는 1996년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이라크 명예영사를 맡아 교류를 트는 수완을 보이기도 했다. 신씨는 자신의 정치철학을 국민에게 전한다며 제13대~15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으며 이날 뇌출혈로 사망했다
1991년 중요무형문화재 제7호 고성오광대 예능보유자 조용배씨 별세
1991년 한국-마샬군도 국교 수립
1986년 전두환 대통령 유럽4개국 순방 등정
1983년 북한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
1982년 캐링턴 영국 외무장관 사임
1982년 영국 기동함대, 포클랜드 탈환위해 출동
1981년 국내외 과학기술자종합학술대회 참석차 북한 출신 재독일 과학자 5명 내한
1976년 제1차 천안문사태 발생
중국 혁명영웅을 기리는 청명절(4월 4일)을 맞아 천안문 광장에 故 주은래 수상을 추모하는 수천개의 화환들이 놓이고 군중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음.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20만명의 군중들은 1월 8일에 사망한 전 국무원 총리 주은래를 애도하고 그 정적 ‘4인방’을 규탄함. 이날 몇 명이 죽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베이징에서만 388명, 전국 각지에서 1,000명 이상이 체포된 것으로만 전해졌음.
1975년 한국-캄보디아, 단교
1975년 대만 총통 장제스 사망
대만 총통 장제스는 1975년 4월 5일 타이베이에서 88세로 사망했다. 장제스는 1887년 10월 31일 중국 절강성에서 태어나 1906년 보정군관학교, 1910년 일본 육사를 졸업하고 1911년 신해혁명에 참가했다. 1923년에는 소련을 시찰하고 돌아와 황포군관학교장이 되었다. 1926년 국민혁명군 총사령이 되어 2년 후인 1928년 북벌을 완성, 국민정부 주석에 취임했다. 1931년 주석을 사임하고 1932년부터 1946년까지 군사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직했으나 1936년 서안사변으로 감금된 일도 있다. 1938년 국민당 총재, 1943년 국민정부 주석에 재취임했다.
2차 대전이 끝난후 1948년 초대 총통에 취임했다가 이듬해 사임했으나 1954년 총통에 재선, 임종까지 5선을 기록했다.
장제스는 마오쩌둥과 함께 근대 중국의 창건자 쑨원의 후계자였다. 장제스가 국민당 창건자로서의 쑨원을 이었다면 마오쩌둥 소련과 연대해 반제국주의 민족해방운동을 펼친 만년의 쑨원을 이었다
1974년 나이로비 해양회담, 나이로비 선언 채택
1972년 북한, 일본기자 17명에게 입북 허가
1968년 전국 고교-대학생에 군사훈련 실시 결정
1968년 체코 자유화 행동강령 채택
1967년 미국의 유전학자 조셉 멀러 사망
1964년 더글라스 맥아더 원수 사망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어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맥아더 장군이 미국 워싱턴에서 8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맥아더 장군은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무공을 세운 아더 맥아더 장군의 아들로서 1880년 미국 아칸소주의 리틀록에서 태어났다. 집안의 전통에 따라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해 1903년 수석으로 졸업했으며 그후 미육군에서 근무 1930년에 대장으로 승진했다.
일명 ‘극동통’으로 알려진 그는 필리핀에서 군고문으로 있다가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대일작전에서 전공을 세워 일본점령군 최고사령관에 임명되기도 했다. 한국전쟁과 관련해 당시 미국 대통령 트루먼과의 대립으로 총사령관의 지위에서 해임된 후에는 기업의 총수, 보수파 공화당의 대통령후보로까지 지명되는 등 다양한 삶을 살았으며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1963년 라오스 내전 재발
1963년 네덜란드 건축가 오우트 사망
1961년 한국-그리스, 국교 수립
1955년 처칠 영국 수상 노령을 이유로 사임, 후임에 이든
1951년 로젠버그 부부 사형 선고
1949년 8월에 성공한 소련의 원자폭탄 실험은 미국을 당혹감에 빠뜨렸다. 당분간 원폭을 독점하려 한 미국의 계획이 차질을 빚었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미국의 원폭개발계획에 관계했던 영국의 핵물리학자 클라우스 훅스가 소련에 원폭기밀을 제공했다는 혐의로 1950년 2월 영국에서 체포됐다. 나치를 피해 영국으로 망명한 훅스는 8년간 소련의 스파이 노릇을 해왔다고 자백했다. 공범자 색출에 나선 미국도 첩보요원 해리 골드와 미국 로스알라모스 연구소에서 일하는 육군 중사 그린글래스를 용의자로 체포했다.
그린글래스가 자신의 매형인 줄리어스 로젠버그에게 핵기밀을 제공했다고 실토함으로써 로젠버그(7월)와 그의 부인 에셀 로젠버그(8월)도 연행됐다. 핵기밀이 이들 부부로부터 해리 골드를 거쳐 뉴욕주재 소련 부영사에게 전달됐다는 혐의였다. 로젠버그는 한때 공산주의자로 활동한 전력으로 미군 통신대에서 실직한 전기기사였다.
재판은 1951년 3월에 시작됐지만, 냉전 고조와 매카시즘 선풍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이상하리만큼 빠르게 진행됐다. 1951년 4월5일, 연방재판소는 범행을 계속 부인하는 로젠버그 부부에게 그린글래스의 증언만을 거의 유일한 근거로 삼아 사형선고를 내렸다. FBI 국장 에드거 후버는 이 사건을 ‘세기의 범죄’라고 했고, 담당 판사는 “이들의 배반으로 인류의 역사가 바뀌었다”고 주장했지만 세계여론은 들끓었다.
교황을 비롯 아인슈타인, 러셀, 사르트르 등 세계의 지성들도 항의서한을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에 보내며 구명탄원운동을 벌였지만 아이젠하워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1953년 6월 19일 처형 당일, 줄리어스와 에셀 두 사람에게 최후의 면회가 허용됐고 두 사람은 이승에서의 마지막 2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리고 오후 8시6분, 줄리어스가 먼저 뉴욕주 싱싱형무소 전기의자 위에 앉았고 에셀이 뒤를 따랐다.
이 사건은 드레퓌스 사건 이후 서방세계를 가장 들끓게 했던 사건이었지만 아직까지도 그 실체가 밝혀지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1951년 경남 계엄사령부 김종완, 공비가장 거창사건 국회조사단 기습
1949년 식목일 제정
1949년 정부는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건’을 제정해 4월5일 식목일을 공휴일로 정했다. 국민의 나무사랑 의식 함양과 산지의 자원화를 위해서 였다
우리나아에서 공식적으로 식목행사가 시작된 것은 1911년 조선총독부가 4월3일을 식목일로 지정하면서 부터다. 1946년 미 군정청이 4월5일을 식목일로 제정한 것이 오늘날 까지 이어지고 있다
2006년 공휴일에서 제외 되었다
1945년 소련, 일본-소련 중립조약 파기
1941년 조선만화가협회 발족
1939년 민족운동가 남궁억 사망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이며 황성신문을 창간한 한서 남궁 억 선생이 1939년 4월 5일 사망했다. 남궁 선생은 아무도 영어를 배우려 들지 않았던 시절 영어학교인 동문학을 수료하고 어전통역관이 됐다. 토목국장으로 재직중 종로거리와 정동거리를 똑바로 뚫고 탑동공원을 조성했다.
개화파였지만 정치보다 교육에 관심을 가졌고 독립협회 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황성신문`사장에 취임했다. 한일합방 이후 고향인 강원도 홍천으로 낙향해 학교를 지었으며 7만주에 이르는 무궁화 묘목을 보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독립정신을 고취했다는 혐의로 일제에 체포돼 모진 고문을 받고 숨을 거뒀다. 문화관광부는 선생을 2000년 `1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했다.
1937년 만포선철도 가설에 관한 각서 조인
1929년 `물방울 화가`로 유명한 한국의 서양화가 김창렬 출생
1926년 양기탁 길림서 고려혁명당 조직
1923년 남베트남의 대통령 구엔 반 티우 출생
1918년 영국-일본-미군 블라디보스톡에 상륙개시
1916년 미국의 영화배우 그레고리 펙 출생
1908년 오스트리아 태생의 관혁악단.오페라 지휘자 카라얀 출생
1903년 가야금 명인 한수동 출생
1902년 알렉신이라는 살균제를 발견한 독일의 세균학자 한스 부흐너 사망
1901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 출생
1871년 신미양요 발발
미국 아시아함대가 강화도에 쳐들어온 사건이다. 병인양요 이후 대원군은 쇄국정책을 고수하며 1866년 7월 통상을 요구하던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를 불태운 사건이 일어났다. 미국은 이 일을 빌미로 무력에 의한 강제통상을 계획하였고, 1871년 주청 특명전권공사 로와 아시아 함대 사령관 로저스에게 조선원정을 지시했다. 그들은 호위함 3척과 포함 2척, 대포 85문, 병력 1,230명을 거느리고 조선으로 향했다.
미군은 함상 함포사격으로 초지진을 완전 초토화시키고 점거하였다. 미군은 6월 11일에는 덕진진(德津鎭)을 무혈 점거하였다. 마지막으로 광성보(廣城堡) 작전을 수행하였다. 광성보에는 진무중군 어재연(魚在淵)이 이끄는 조선 수비병 600여 명이 배치되어 있었다.
미군은 수륙 양면포격을 한 시간 벌인 끝에 광성보를 함락하였다 이에 미국은 조선이 교섭에 응할 것이라고 기대했으나, 대원군은 전국에 척화비를 세우고 결사항전을 준비했다. 군사행동을 감행하려던 미국 측은 무모함을 깨닫고 5월 16일 함대를 이끌고 청으로 돌아갔다.
1864년 대원군 집정
1860년 수운 최제우 천도교 창설
수운 최제우, 한울님으로부터 인류 구제의 도인 '무극대도' 받음
최제우는 1824년 경북 월성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생각이 깊었던 그는 16세 때 아버지를 여의게 되자 인생의 덧없음을 깊이 느끼고 20세부터 진리를 깨치려고 전국의 유명한 산과 절을 찾아다니며 수도생활을 했다
1860년 드디어 도를 깨치고 인내천의 교리를 완성, 동학을 창시했다.
동학의 교세가 커지자 놀란 조선 조정에서는 최제우를 세상을 어지럽혔다는 죄목으로 잡아들여 1864년 3월 10일 대구에서 처형하였다.
1827년 근대 외과의학의 아버지 조지프 리스터 출생
1795년 프랑스-프러시아 바셀조약 조인
1588년 영국의 철학자, 정치 이론가 토마스 홉스 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