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영의 쉘 위 댄스(28) 스텝만 신경쓰면 초보, 진짜 춤실력은…
중앙일보 2020.05.08
남녀가 서로 가까이 서서 붙잡고 춤을 추는 것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교감이다. 부부도 서로 다른 사람이라 그렇지만, 부부도 아닌데 그런 자세로 춤까지 춘다는 것은 일단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춤으로는 당연히 그런 자세를 취하지만, 그렇지 않은 자리에서라면 이성과 그런 자세를 취할 수는 없다. 춤을 추기 위해서 일단 마주 보고 서기는 했는데 그것으로 교감이 이뤄졌다고 볼 수는 없다. 교감은 훨씬 더 깊은 감정의 교류다. 그러려면 그다음 진도가 필요하다.
“스텝 좀 가르쳐 주세요” 초보자들은 스텝이 곧 춤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스텝은 중요하다. 그래서 초급반에 가보면 스텝을 익히느라고 정신이 없다. 그러자니 시선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다. 내가 하는 스텝을 보느라고 고개는 아래로 숙여져 있고 남들과 맞게 하는지 또는 남들 스텝을 보고 따라 하기 위해서 고개가 아래로 숙여지는 것이다. 양손은 파트너와 잡고 있는데 발만 보자니 양손은 따로 노는 것이다.
사람들이 보기에 춤 잘 추는 모습은 둘이 동작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음악에 맞춰 둘의 동작이 대칭으로 같으니 보기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같이 춤추는 사람과의 교감도 만족스러운가의 문제와는 다르다. 서로 외운 연기를 하는 것에 그치는 경우도 많다.
춤 실력은 발에서 바디를 거쳐 얼굴로 올라온다. 초급 때는 스텝을 하는 발이 중요하지만, 발은 베이식 스텝이 몸에 익으면 저절로 된다. 4/4박자의 춤이라면 춤 잘 추는 사람은 파트너와의 교감도 물론 잘하지만, 표정으로 관객과도 교감한다. 댄스 경기대회에 가보면 선수 중에도 너무 긴장하여 표정이 굳은 사람들이 많다. 그간 연습했던 루틴을 까먹지 않고 연기하기 바쁜 것이다. 경기대회에 나와서 루틴을 까먹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승부는 표정에서 나는 것이다.
남녀가 서로 가까이 서서 붙잡고 춤을 추는 것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교감이다. 부부도 아닌데 그런 자세로 춤까지 춘다는 것은 일단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사진 Pixabay]
춤을 오래 배웠는데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사람도 많다. 스텝을 위주로 배웠기 때문이다. 아무리 세계 챔피언의 동영상을 보면서 스텝을 흉내 낸다 하여 잘 추는 것이 아니다. 스텝은 기본이고 바디가 보여주는 바디 무브먼트도 중요하다. 바디 무브먼트는 단시간에 되는 것이 아니다. 스텝과 바디 무브먼트가 몸에 익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면 비로소 머리가 바로 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보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같은 동성끼리도 너무 고개를 빳빳이 들고 상대방을 쳐다보면 부담스러워 한다. 상하 관계가 있어 약간 눈을 내리까는 것이 예의이기도 하다. 이성이라면 더 하다. 서로 마주 보라고 훈련을 시키지만, 몇 초 안 되어서 금방 눈을 돌린다. 쑥스럽다는 것이다. 그러나 춤에서는 그러면 안 된다. 아이 콘택트(Eye Contact)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영화 ‘북클럽’에 한 부부 커플이 춤을 배우는 장면이 나온다. 둘 다 초급이라 스텝에 매달리고 있는데 강사가 “춤은 스텝이 아니라 교감입니다”라며 스텝보다 교감을 중시하라고 가르친다. 교감이 스텝만 잘 구사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온몸으로 교감이 보여야 한다. 발뿐 아니라 바디 무브먼트 그리고 최종적으로 표정에 나타나야 한다.
다른 외국 영화에도 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춤이 우리나라에서도 즐겨 추는 블루스 춤이다. 둘이 붙잡고 체중 이동을 한쪽으로 맞추며 좌우로 흔들흔들하는 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러면 싱겁다며 다른 스텝을 요구한다. 보다 다양하고 다채로운 스텝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춤이 교감하기에는 가장 쉬운 춤이다. 발보다는 상대방과의 감정을 교차시키는 것에 더 중점을 두는 춤이다. 다른 춤도 별것 아니다.
거기다 회전만 더 주든지, 스텝만 달리하면 다른 춤이 된다. 플로어의 벽을 따라 조금씩 더 움직이면 슬로 리듬 댄스(Slow Rhythm Dance)가 된다. 비슷한 자세에서 3박자로 하면 왈츠가 되는 것이다. 플로어를 넓게 쓰기 때문에 다른 춤처럼 보이는 것이다. 몸이 떨어졌다 붙었다 하지만, 룸바, 차차차도 거기서 조금 더 복잡하게 보일 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보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서로 마주 보라고 훈련을 시키지만, 몇 초 안 되어서 금방 눈을 돌린다. 그러나 춤에서는 그러면 안 된다. 아이 콘택트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진 Pixabay]
한번은 단체로 해외여행을 갔을 때 파티가 벌어졌다. 내가 시범을 보이기로 했었다. 저녁 식사를 겸한 자리였는데 내가 차차차를 지도한 여성이 완전 초보라서 스텝이 몸에 익지 않는다며 자신 없어 했다. 그러면 발을 알아서 대충 하고 얼굴만 서로 쳐다보면 음악을 맞추자고 했다. 저녁 식사 자리라서 테이블 높이 때문에 사실 발은 보이지도 않았다. 스텝에 자신이 없으니 서로 얼굴을 보며 즐거운 표정으로 춘 춤이 성공적이었다. 춤추는 모습을 본 사람들이 그녀에게 도대체 얼마나 배웠기에 그렇게 춤을 잘 추느냐는 질문을 쏟았다.
그런데, 스탠더드 댄스는 아이 콘택트를 할 수 없다. 왈츠, 탱고, 폭스트롯 같은 춤을 말한다. 서로 고개를 어긋나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파트너와 교감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아이 콘택트 대신 허리가 가까이 붙어 파트너의 움직임을 미세하게 리드 하고 리드 받는 것이다. 이때도 각자의 시선은 춤의 세계에 빠져들며 관객과도 교감하면 여유 있어 보인다. 이쯤 되면 스텝은 아무것도 아니다. 표정이 중요하고 표정만 봐도 춤 실력이 보인다.
파트너에 대한 믿음도 교감의 연장이다. 지금은 위험한 동작이라 하여 두 발이 동시에 바닥에서 떨어지는 동작은 못 하게 하지만, 파트너와 호흡이 맞지 않으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동작은 여전히 많다. ‘쓰로어웨이 오버 스웨이(Throwaway Over Sway)’ 같은 동작은 남성이 여성을 던지듯 뿌리면 여성이 활처럼 허리를 뒤로 굽혀 아름다운 실루엣을 만드는 동작이다. 안전장치로 남성의 왼손은 여성의 오른손을 잡고, 오른손은 여성의 허리를 받쳐준다. 무릎으로도 받쳐 준다.
그러나 시차의 동작을 서로 맞추지 못하면 버팀목 역할을 못 하고 여성을 잡아주지 못해 나동그라지게 만들 수 있다. 파소도블레에서도 여성을 뿌리듯 하는 동작에서 남성의 역할은 비슷하다. 여성이 자신의 몸을 맡길 때 남성은 여성이 안전하게 동작을 구현하도록 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 남성 파트너가 믿음직스럽지 않다면 그런 과감한 동작을 하면서도 불안할 것이다. 파트너를 믿지 못해 몸을 사리게 되면 동작 자체도 움츠러든다.
춤추는 커플을 보면 싸우는 커플이 많다. 초급자는 누가 틀렸는지로 싸운다. 둘 다 틀렸을 수도 있다. 상급자들은 더 좋은 춤을 추고 싶어서 파트너의 춤사위가 마음에 안 든다며 싸운다. 이렇게 싸우고 나온 커플들의 춤은 보면 금방 안다. 교감은 안 보이고 연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사 기준에서는 ‘하모니(Harmony)’라고 한다.
춤이 끝나면 “덕분에 잘 췄다”라며 서로 격려해야 한다. 말뿐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해야 한다. 그래야 교감이 생긴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너 때문에 망쳤다”라는 아쉬움은 설사 그랬다 하더라도 그런 마음을 가지면 안 된다. 상대방은 금방 눈치채기 때문이다.
물론 같이 춤추고 싶은 사람이 있다. 춤은 핑계일지도 모른다. 춤으로 교감을 나누면 그것이 대화이고 스킨십이니 그것으로 만족한 것이다. 춤이 아니면 따로 대화하자니 쑥스럽고 응해줄지도 확신이 없다. 춤은 교감의 수단이다. 그래서 좋은 춤을 추고 나면 만족감이 높다.
반면에 같이 춤추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다. 상대방에게 되지 못하게 코치를 하거나 상대방 꼬투리를 잡으려고 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과는 교감은커녕 빨리 끝나고 다른 사람과 추고 싶은 마음밖에 없다.
강신영 댄스 칼럼니스트 theore_creato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