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살고 싶은 길 / 조정권
1
일년 중 한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혼자 단풍 드는 길
더디더디 들지만 찬비 떨어지면 붉은빛 지워지는 길
아니 지워버리는 길
그런 길 하나 저녁나절 데리고 살고 싶다
늦가을 청평쯤에서 가평으로 차 몰고 가다 바람 세워놓고
물어본 길
목적지 없이 들어가본 외길
땅에 흘러다니는 단풍잎들만 길 쓸고 있는 길
일년 내내 숨어 있다가 한 열흘쯤 사람들한테 들키는 길
그런 길 하나 늘그막에 데리고 같이 살아주고 싶다
2
이 겨울 흰 붓을 쥐고 청평으로 가서 마을도 지우고 길들도 지우고
북한강의 나무들도 지우고
김나는 연통 서너 개만 남겨놓고
온종일
마을과
언 강과
낙엽 쌓인 숲을 지운다.
그러나 내내 지우지 못하는 길이 있다.
약간은 구형인 승용차 바큇자국과
이제 어느 정도 마음이 늙어버린
남자와 여자가 걷다가 걷다가 더 가지 않고 온 길이다
조정권(趙鼎權) 시인은
1949년 서울에서 출생. 중앙대 영어교육과를 졸업. 19690년 《현대시학》 창간호(3월호)에 박목월의 추천으로 등단. 시집으로 『비를 바라보는 일곱 가지 마음의 형태』, 『시편』, 『허심송(虛心頌)』, 『하늘이불』, 『산정묘지』, 『신성한 숲』 등이 있음. 녹원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김수영문학상, 소월시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 경희사이버대학 미디어문창과 석좌대우교수 역임. 2017년 11월 8일, 68세를 일기로 생을 마침.
첫댓글 흐르는 곡은 Chopin - Spring Walt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