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창밖엔 봄비 분주히 내리고 있다.
어제의 따뜻했던 햇살일랑 비의 협주에 씻기고,
잠을 깨던 땅의 포슬함은 풀려나는 노예처럼 사슬을 끊을 것이다.
그나마 미적거리던 응달진 곳마저 개화기의 문명을 거부하지 못하고
자폐증 쇄국의 빗장을 열게 되리라.
봉기하는 민란처럼 봄은 번질 것이고
기습적으로 산발적으로 개화기 민심들 가슴을 휘저을 것이다.
이미 사람들 사이에선 흉흉한 봄타령에 민심이 술렁이고
재스민이 들불처럼 대륙을 이동하여 피의 진혼곡을 봄에 던져 놓을 때였다.
이월이 다 지나기 전에 삼월을 맞은 사람들처럼 마음의 혁명도 미리 앓았다.
고립된 겨울동안 참았던 밀랍의 피부보다, 들과 산 덕에 그을렸던 피부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이 시기란 여간 참혹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붙잡아 두려는 집안의 일감들을 뒤로하고
저 혼자 나서는 사람들은 일명 철부지 어른으로 취급당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그 기폭제는 언제나 자연이 부추긴 것이었다고 항변하면 그만인 것이라고,
꼭 그런 것부터 준비된 언어로 나폴댈 알량한 감성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이 시적 자아.
나도 그러면서 나처럼 그런 병을 타고난 사람들을 이끌고 '철없는 시인단'을 꾸린 것은 2월 26일 토요일.
배낭 속에 5인분의 김밥찬합과 깁밥을 집어먹을 젓가락, 허전하지 않게 반찬 세가지,
일반 믹스커피가 아닌 '원두커피!' 보온병과 그 '원두커피'를 부어 마실 종이컵,
배신처럼 맑았지만 우비, 그걸로도 부족해 꽁지의 <지리산 행복학교> 책 한권, 카메라를 챙겨 넣었다.
남은 원두커피를 약속장소로 가늘 길 위에서 마시며 가고 있을 때,
첫번째 철없는 시인이 소리도 없이 차를 세웠다.
간혹 재치가 만점인 나는 타라 하건 말건 차를 탔다. 커피는 주지 않았다.
9시 킹스앞이 10시 킹스앞으로 변경되고 약속장소에 모인 사람은 자칭 벗거지 달마대사 토연님, 아직은 들꽃님, 그리고 나.
그러고보니 여자는 또 나 혼자다. 진주에서 합류할 무늬만 현철 남강님이랑 합쳐지면 더욱 외로운 혼자가 될 것이다.
슬비언니에게 따지듯 전화했지만 받지 않는다. 나중 통화에선 혼자여서 좋아 죽겠다고 말하였다.
그 철없는 시인단은 나의 지시에 순순히 따르기로 했다.
물을 사야 되는데...하면 물을 샀다. 아니 물만 샀다. 그리고 그 물은 이 날의 유일한 배낭인 내 배낭으로 들어왔다.
세 사람 중 어느 누구도 배낭을 가져 오지 않았다. 살다살다 이런 남자들 처음 보겠다고 들끓는 분노를 표현했지만
귀딱지에 앉지도 못할 말이었다. 연약한 여자인 나 혼자 이들을 먹일 밥과 반찬, 커피와
시켜서 얻어먹을 물까지 든 배낭을 메고, 새로운 노예제도를 받아들이듯 짐꾼역할을 맡았다.
아무도 배낭을 짊어지지 않았다. 나는 이미 돌담도 쌓는 여자라고 어지간히 소문내고 다닌 죄로 인해,
배낭정도는 우스운 무게가 되었다고 믿고싶어 하는 그들의 간사한 계산에
서서히 세상에 믿을 분(!) 하나 없다는, 처절한 인식에 이르는 중이었다.
편리하게 건망증을 써먹는 들꽃님의 운전으로 섬진강을 향해 '가는 것 같은' 길이 촥 펼쳐졌다.
남도땅 매화나무가 언덕을 누비는 둥그런 동산들이 참 어여쁘구나, 느끼면서 차창 바라보는 것이 좋아졌다.
네 사람이 앉은 차는 그러니 곧 조용해졌다.
여간한 입씨름에 지치지 않는 달마대사도 허망한 이빨통증을 호소하며 입을 닫았다.
앞좌석의 두 분은 웃지도 않는다. 기본적인 예의를 아는 나는 그래도 미안해서라도 웃었는데 말이다.
고요도 자세를 잡아 가는 걸까? 간간히 달마대사의 "우리 오늘 뭐하러 가는데?"가 엇박자의 호흡처럼 새나왔지만,
아무도 스스로의 침묵을 먼저 깨겠다는 애는 쓰지 않았다.
섬진강 다리를 건너니 광양이란다. 강 하나 잘 둔 덕에 아름다움을 날마다 먹고사는 이 동네가 부러웠다.
따스한 남도의 들녘과 강의 푸른 자맥질이 매화와 같이 깨어나는 건 타고난 아름다움에 시적 풍요로움까지 얹힌 것이라 생각한다.
나의 마음은 저 아주머니의 봄나물 캐는 손이기도 하고, 돋아난 쑥이기도 하고, 살색 흙길의 평화로운 먼지도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아주머니 분홍색 스웨터는 감상의 몫으로 남기고 싶었다.
걸어서 매화마을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내가 싼 김밥을 먹을 꿍심을 감추지 않는 치사한 말들에 웃으며
기분좋게 서서히 말문도 열어간다. 차 안의 침묵이 밀폐의 수준이었으니, 아, 심하게 잘 살 것 같았다.
섬진강과 매화의 고장 다압면 안내도를 보며 환상적인 매화의 군무에 당장 또 한편의 시나리오를 썼다.
온 산에 매화가 흐드러진 젖빛 넘치는 이 고장으로 다시 하루 날을 골라 걷고 걷는 봄동산 길마중을 나서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남편이랑 나란히 저마다의 배낭을 메거나 나또한 빈손으로 홀가분하게 꽃길 걸을 것이라는 아주 순박한 꿈이었다.
실수도 귀엽게 무마하는 앙증맞은 아가씨처럼 붉었으되 어여쁜 홍매화 꽃송이가 몇 피어 있었다.
하얗게 매화꽃 피는 날이면 홍매화는 아마도 볼우물처럼 깊어져 있겠지.
강은 멈추었던 걸음 재촉하는 잰걸음으로 사람들의 나들이를 부추기고 있었다.
봄이 오는 나무는 안간힘으로 멈추어 섰으나 마음은 이미 물결에 빼앗긴듯 이지러져 보였다.
남과 여로 만났으나 사람과 사람으로 살아가는 결국의 과정처럼 나에게는 이 소풍길이
어떤 의미에선 불필요한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다독거림처럼 편안해졌다.
여자 혼자 파묻혀 걷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으로, 문학과 풍경으로 거듭 달라지는 세상의 온갖 소풍의 의미가 되새김 되었다.
아저씨들이었고 나는 아줌마였다. 그들은 시인이었고 나는 시적 마음이 다급했다.
남편은 집에서 이 풍경을 상상하며 하루를 저물 것이지만, 내버려둔 세상이 오히려 잘 굴러가는 믿음 같은 것을 서로 감지하고 있었다.
늦깎이 글의 입문이라는 이해를 바라는 것도 사치인 마당에, 이렇게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배려해주는 남편의 아량이란 보기드문 것이었다.
예상을 훨씬 웃도는 뒤늦은 시간에 남편이랑 함께 퇴근하는 위장을 위해 가게로 올라섰을 때,
이 남자에게 쫓겨나는 것보다 비참한 눈총을 예상했었다. 그러나 남편은 태연히 웃어 주었다.
난 그렇게 연예인 맞듯이 바라보는 선한 눈은 처음 보았다.
누가 말을 시키는 것처럼 귀를 쫑긋 세운 매화의 눈이
강물에 마음을 앗기는 걸 말리지 않았다.
걸으면서 감상하는 자의 시선은 강과 매화 모두에게 반하면서도
이 따스한 봄햇살에 먼저 취했다.
검은 독수리 일가가 씩씩한 파수병처럼 강 이쪽의 모래밭을 지키고 서 있었다.
고요히 흐르는 강이란 너에게도 나에게도 사색하기 쉬운 풍경이겠지만,
머물러 감상하는 독수리의 외로운 등일지언정 속으로 깊으면 그만인 정물처럼 꿋꿋한 데가 있었다.
그 무심한 뒷태의 독수리들 무리 위에서 파란 하늘을 유유히 날으는 한 마리의 독수리가 착지를 하고 있다.
나는 여덟번 침묵하고 두 번은 웃길 줄 아는 효과만점의 한 마디를 위해서 "일자진으로 내려앉는다"고 해 보았다.
물론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이 중급유머에 웃어 넘어가지 않으리란 건 알지만,
그래도 꼭 내가 한차원 높아서 그렇다는 망상도 못하게끔 하는 저 침묵은 무엇일까?
그래도 그건 분명 일자진으로 내려앉았는데 말이다.
홍쌍리 매화마을 입구를 멀찌감치 앞서가는 홀가분한 차림의 두사람은 얼마나 태연한가.
잊지 말 것이 나는 체중에 버거운(반은 물론 거짓말) 배낭을 메었고 트래킹화를 집에 두고 불편한 신발로 걷기를 하는 상태였고
그쯤에서는 내가 배낭을 멘 것조차도 잊어갈 수준급의 건망증을 보유한 무렵이었다.
아무도 나를 챙겨주지 않는 것이었대도 잊을 것이 따로 있지 싶어 반사작용으로 기억해내는 상황이었다.
그럴 때 '나는 왜 책까지 넣고 우비까지 넣었을까, 아니 왜 저들은 나보다 나를 더 쉽게 잊어버릴까...'등을 겨우 따져내는 수준이었다.
그나저나 무늬만 현철 남강님은 이 봄날의 걷기에 완연한 자신감을 얻었다고 좋아라 하셨다.
왕복 8km와 매화마을 동산 걷기등으로 그동안 헤쓱해진 체력과 누구와 걷는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통감하는 말 속에서, 나는 왜 뻐기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천지에 매화에 관련한 시비와 매실이 익는 단지가 즐비한 홍쌍리 길목마다
시는 몸살을 이미 앓았던 시인들의 글줄로 봄을 데려오고 있었다.
상춘객으로 붐비는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봄소풍에 지칠 수도 있겠지만, '예견된 아름다움을 먼저 보고가는' 사람이 되어보니,
붐빌 것 없는 느린 걸음마다 시의 매화찬은 오히려 달콤할 것 같았다.
토연님은 소리내어 시를 읊조렸고 그것은 곧 언어의 세계에 뒤늦게 뛰어든 사람들이 짚어가고 피해가야 할
뒤늦은 글의 발견을 안겨 주는 듯했다.
아직 쓰여지지 않는 언어를 찾는 사람들에게 '매혹'의 순간으로 들어가는 빠듯한 시간을 사랑하라는 어느 책의 글귀가 떠올랐다.
나도 고람 전기의 그림을 사랑하였다.
그가 그린 <매화초옥도> 속의 한 풍경처럼 이 그림의 풍습이 비슷하게 겹쳐졌다.
전기의 그림을 보면 백석 시가 떠올랐고 백석 시를 보면 전기의 그림이 떠올랐었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는 문장에서
고람 전기의 매화가 가지는 외롭고 높고 쓸쓸하게 살다간 이가 매화속에 비치는 것이었다.
지척에 봄이 터질 듯 팽팽한 기운이 감도는 이 아름다운 고향집.
남강님은 이런 곳에서 딱 한 달만 살다 가고 싶다고 했다. 한 달 동안 시를 쓸지 그냥 놀지 아무것도 가늠하지 않은채
우리에게 딱 한 달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어떤 소원을 자신에게 던지게 될까.
무슨 우연을 가장한 필연의 법칙인지, 들꽃님의 핸드폰으로 포항의 모니카님이 연락을 해왔다.
일행이 하동 최참판댁을 구경하고 화개장터에 온다는 소식이 보일락말락한 봄의 신기루처럼 들려왔다.
아울러 다음 목적지는 화개장터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일단 '고향집'의 툇마루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먼지가 비록 있었지만 툴툴 털고 앉으면 그만이었다.
아마도 세밀한 여자들이었다면, 이런 마루는 저 멀리 섬진강이나 바라보고 넘어갔을 성 싶은 그늘진 마루에 도시락을 펼치며,
일하다 돌아온 내 옷만 털고 풀석 주저앉아 막걸리 한 사발 들이켜듯 밥자리가 그렇게 펼쳐졌다.
알맞은 밥상마저 있다고 좋아했지만, 이내 몸이 심하게 떨려왔다.
처음부터 아귀가 맞는 여행이란 없었다. 결국 남은 김밥 10개를 따뜻하게 삼키기 위해 각자 몫의 도시락과 반찬, 종이컵을 들고
신발을 신고, 잘못하여 엎어졌다간 박살이 날 수도 있는 흙길을 더 내려가 햇살이 환한 무대로 옮겨가야 했다.
아무도 이런 구차한 두 번의 점심식사에 감정을 혹사시키지 않았다. 따뜻했으니 그만이었고 털퍼덕 퍼질러 앉기까지 했으니
온돌방이라고 우겨도 좋을 포근함이었다. 나는 비로소 세 남자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자아도취에 한없이 젖을 수 있었다.
편안했고 심드렁했고 나를 너무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이 느긋함이 무심함일까, 내가 너무 편한 성격일까,
그도저도 아니면 아무 생각이 없다는 것일까를 생각하게 하였다.
술로 일주일을 열흘로 늘릴 수 있는 분들이 김밥에 물을 삼키며 잘도 드신다.
하나도 남김없이 도시락을 비우는 것이 배낭을 메지 않은 죄책감을 더는 것이란듯
깊고깊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남김없이 김밥을 드신다. 아무도 잘 먹었다 얘기하지 않았고 맛있다 애써 칭찬하지 않는다는 것에서
나를 거의 '집사람' 수준으로 생각하는 자세였지만, 집을 나선 마당에 각자 흩어진 생활의 거처를 잊고 혼자처럼 이 모든 걸 한다는 것은 마음이 맞는다는 것이란 걸 깨달았다. 그거면 되는 순간이 필요했으리라.
어딜 걸으나 섬진강이 눈길마다 펼쳐졌다.
어딜 가나 매화는 강보다 지척에서 발룽대었다.
놀라운 초록의 대나무숲이 펼쳐졌다. 언제부터 이렇게 초록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을까.
겨울은 어떠했을까. 여름이면 더 짙어질까. 바람의 소리가 이렇게 소슬한 멋을 주었던가.
가까이 다가가도 어여뻤고 멀리서 공명하는 빛깔도 청명했다. 아직 이렇게 청신한 초록을 만나지 못한 밋밋한 시야에
유리온실에서 자란듯한 연초록의 대나무 숲은 아름다운 산책길의 호젓함을 느끼게 이끌었다.
나는 파란 강이나 바다에 하얗게 낙화하는 꽃사태의 풍경을 사랑하였다.
아직 완연하지만은 않은 호젓한 섬진강을 끼고 한나절의 시간을 걸으면서, 봄이 오는 봄비처럼 먼저 가 맞고 싶었나보다.
하늘의 성은을 입은 하루가 지나는 시간에 맞춤한 것처럼 봄비가 대지를 깨우고 있었다.
이 비로 인해 매화는 더욱 빛깔 곱게 등장할 것이고 길은 강을 바라보며 사람들을 맞을 분주함을 되찾을 것이다.
아무래도 맑았던 하루는 무지개 위에 간신히 걸친 하루였던 것처럼 소풍을 위해 참았던 것인가 생각되었다.
세 남자는 처음의 장소로 돌아와 저 소리없이 고요한 섬진강변에 저렇게 앉으면서도 오로지 나를 위해 배려하지 않아 주었다.
지금에서야 없는 존재처럼 있고 싶은 나를 너무 잘 아는 것이 아닐까 감탄한다.
나에게 사진을 찍어주는 불편함, 나에게 수고했다는 인사말을 전하는 상투성,
내 배낭을 짊어지려는 부질없는 몸놀림, 시원한 음료라도 건네는 쿨한 모습은 아예 없었다.
즐거웠을까의 문제가 아니라, 희안한 조합일지언정 길을 나서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세상의 잠언들만 가득했다.
말하기 싫으면 말하지 않아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소풍이었다.
봄은 어차피 저마다의 가슴에 저마다의 이야기로 잉태될 것이었다.
첫댓글 이순신의 배가 섬진강으로 올라오지는 않았지? 그래서 의미없는 일자진이 아니었나? 내 생각임! 그리고 다음 놀러갈 때는 제목을 "묵언여행"으로 정해라. 그때는 말하지 말고 모두 수첩과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으면서 불쑥 튀어나오는 말들을 수첩에 보관하는 것으로 해야되겠군. 그리고 차를 타고 이동할 때는 차창밖의 풍경을 감상하는 시간을 갖고! 좋지 않겠나?^^ 떠들고 다니다 보니 다녀와서 글을 써 보려 했더니 아무생각이 나지 않는다!
'묵언여행' 그런 여행은 혼자일때 하시죠. 아무 생각이 없는 줄로 압니다만...
그리고 제발 이순신에서 좀 헤어나시지요? 일자진을 가지고 농을 칠 수 있는 사람을 두고 말예요.
따지듯 말하지만 맨몸으로 취했으라/ 어디 한 잔 술에 혀라도 꼬부리고/ 섬진강 봄자락을 그윽히 안고팠네/ 아우의 그 수고로움 그게 바로 향기여서/ 넋두리 같은 그 무게도 가볍지 않았었나/ 강물은 스며 모래톱에 잠들었고/ 남강이 건넨 술잔에 제 모습 담았으니/아서라! 무게를 넘어 그 자탠 매화로세
제가 보기엔 키스님을,세 남성분이 말치레가 필요없는 아주 편한 지기로 자리매김해 놓으신 것 같았어요. 만나서 반가웠어요.
잘 보셨습니다. 한 눈에 척 알아보신 모니카님의 혜안입니다.
힝, 제 입으로 하고싶던 말을 이렇게 잘 찍어주셔서 감사합니다.(아이 부끄러버라~~~)
모니카님의 화사한 미소가 생각나는군요. 반갑습니다.
남강님 만나서 저두 반가웠어요.솔바람 실린 저녁노을같은 첫인상이셨어요.
키스야. 우짜꼬. 이제부터 소풍가면 김밥이든 유부초밥이든 도맡아서 베낭메고 가야 되겠다.
의령문협 남정네에게 맡기지 말고...
회장님께 의령문협 남정네들의 군기를 좀 잡아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햇살을 한 움큼 쥐었다/홍매화 하나가 푸드덕 날아/ 가지끝에 매달렸다 /차가운 둥지 심장에서/붉은 스프레이를 뿌리자/주렁주렁 꽃몽오리들이 얼굴을 내밀었다/한여름의 매미소리마냥 윙윙윙거리는 매화마을을 떠나오며/세 나뭇가지에 걸린 홀로된 홍매화는 까페의 꽃병에 꽂혔다.
캬~ 제가 뭐.. 거의..꽃 아니면 비길 데가 없죠.
아따 말 많이 달아놨네. 묵언여행을 하면서 텔레파시로 주고 받으면 안될까? 그렇다면 간혹 감전되어 놀라는 사람도 있겠지? 으흐흐흐~~. 토연 골아 떨어지자 침묵이 찾아왔네/나머지 세 명은 침을 꼴깍거리네/김밥 빚 때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네/
니미럴! 또 날 갖고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