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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 론 Ⅱ. 전통적 현실주의의 성격과 세력균형 Ⅲ. 지속되는 현실주의 - 신현실주의의 성격 |
Ⅳ. 신현실주의의 유효성과 패권에 의한 세계질서의 전개 Ⅴ. 결 론 |
Ⅰ. 서 론
인간의 역사는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거대한 변화들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변화의 흔적들은 단절된 것이 아니라 변형을 거듭하면서 계속되어 현재에 이르며, 미래에도 크든 작든 흔적을 남길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사의 한 단면을 보면, 특히 정치적으로는 불행히도 갈등과 분쟁, 전쟁과 평화의 연속이며, 결국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와 같은 불행에 저항하기 위한 인간들의 노력은 끊임없이 전개되었으며, 이러한 노력들 가운데 국제정치현상의 설명과 예측을 주요 관심대상으로 하는 국제정치학도 그 하나이다. 그러나 국제정치학이 대상으로 삼고 있는 국제사회가 본질적이고 구조적인 변화가 심각하게 이루어지게 됨에 따라 학문의 성질과 방법론에 관한 논쟁이 발생되고 있다. 가령 제1차 세계대전이후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와의 논쟁으로부터 시작하여, 방법론에 있어서 법적․제도적인 전통적 접근방법과 행태주의적 접근방법의 대립, 현실주의에 대한 자유주의와 구조주의의 도전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 형태의 논쟁들은 학문과 현실사이의 차이를 좁히려는 부단한 노력의 결과로써 기존의 국제관계연구를 지배하고 있는 패러다임이나 이론이 현실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적실성의 문제를 드러낼 때 일어난다. 즉 적실성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대안적인 시각이 대두되면서 패러다임 혹은 이론간의 논쟁은 발생되는 것이다. 이러한 국제정치현상을 설명하는 주장들이 다양할 지라도 핵심적인 시각으로서는 현실주의, 자유주의, 마르크스주의 등으로 대별된다는 데에는 별 이견이 없다. 국제정치에 대한 이러한 시각은 허들리 불(Hedley Bull)이 지적하고 있듯이, 국가간의 갈등의 요소를 강조하는 홉스적인 현실주의적 관점과, 모든 인간은 조화를 이루는 인류공동체가 실현될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갈등보다는 보편성을 공유한 인간들간의 조화를 고집하는 칸트적인 보편주의적 시각, 그리고 홉스적인 관점와 칸트적인 관점을 절충하여 국가가 국제정치의 주요 실체이지만, 갈등과 투쟁의 장이 아니라 공동의 규율과 제도에 의해 제약을 받으며, 협조와 조화가 가능하다는 그로티우스적인 국제주의와 많은 연관성을 갖고 있다. 이러한 제시각들 간의 논쟁과 새로운 이론의 생성은 현실주의를 중심으로 한 비판과 대안추구와 관련이 되어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이후 이상주의적 자유주의가 국제기구에 의한 평화추구전략이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그 적실성을 잃어버림으로써 국가중심적이며 국제사회의 무정부성에 기초한 갈등적 요소를 기본적 성격으로 하는 현실주의가 국제정치학의 전면에 부상하게 되었다. 그후부터는 냉전과 데탕트, 그리고 신냉전과 사회주의권의 몰락 등으로 이어지는 국제정치현상에 따라 현실주의와 자유주의, 그리고 구조주의가 핵심적 패러다임으로써의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 여기서 유추할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현실주의는 냉전시기에 가장 유효적절한 것으로 평가되었으며, 데탕트시기에는 국제정치의 현실에 대한 설명에서 적실성을 의심받으며 혹독한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어떠한 시기에서도 현실주의에 대한 논의가 끊이지 않았고, 다소 비주도적 위치에 있었으나 결국 다시 현실주의가 이론의 주도적 위치에 차지하는 것을 부인하지 못하는 것은 아직까지 국제질서에서의 국가중심적 사고를 지향하는 현실주의가 국제정치현상을 설명하는 데 상대적 우월성을 갖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국제질서를 전망함에 있어서도 단지 편협될 수 있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지만 국제정치를 설명하는 가장 확고한 도구로 작용해온 현실주의의 관점이 상대적 적실성을 보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걸프전쟁이후 미국의 부시 전대통령이 1990년 9월 11일 의회연설에서 신세계질서(New World Order)라는 것을 제창하였다. 그것은 냉전이후의 세계질서는 어떤 국가도 자신의 주권을 조금이라도 포기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며, 평화와 안전, 자유와 법이 지배하는 것이고, 세계도처에 새로운 의미의 공동체가 창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새로운 질서는 침략자에게는 은신처가 없는 세계질서의 창출이다. 특히 이러한 세계질서는 법과 시장경제원칙, 민주주의 가치에 기초한 질서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질서의 본질과 형태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세계정세는 소련과 동유럽의 해체로 인한 동․서 냉전의 종식, 통일독일의 부상, 유럽연합의 정치적 통합작업의 진행, 중국의 경제적인 급성장과 최근 WTO가입의 결정, 걸프전이후 미국의 유일의 군사강대국으로의 부상 등 대전환기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정세로 인하여 향후의 세계질서에 대해 많은 예측과 전망이 난무하고 있다. 그러한 전망과 예측들 가운데 환경문제, 인권, 빈곤 등과 같은 국제적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고 국가간 상호의존과 협력의 강화를 예측하면서 이를 위한 국제기구와 같은 제도와 규범을 중시하는 자유주의적 사고에 의한 협력과 통합의 시대를 예견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그렇지만 새롭게 변화되고 있는 국제정세 혹은 세계질서는 이미 미국이 정치․군사․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재편성을 주도하고 있고, 시장개방을 주요 공론으로 하는 세계화를 설파하면서도 지역주의가 태동하여 블록단위의 보호무역이 고개를 들고 있다. 또한 냉전체제의 군사적 안보의 틀 속에 잠겨있던 민족적 갈등, 인도, 파키스탄, 북한, 이라크 등 제3세계 국가들의 핵무기개발을 비롯한 군사력의 강화, 남북지역간의 경제적 불평등 등과 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 세계질서는 이상주의적 자유주의의 사고와는 분명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다시 말해서 현재 전세계를 풍미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사고가 파급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전의 냉전시기 보다 더 폭넓은 분야에서 국가중심적 사고와 국가이익의 중요성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정세는 결국 신현실주의 패러다임이 세계질서를 설명하고 예측하는데 아직도 유효한 것임을 보여주는 상황인 것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체제유지적 이론, 강대국 중심의 이데올로기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신현실주의적 관점에서 전망하는 세계질서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Ⅱ. 전통적 현실주의의 성격과 세력균형
1. 현실주의의 지적전통
세계사에서 중세의 봉건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절대 군주국가로 변모되어, 영토 중심의 국가가 등장한 이래 국제정치를 설명하는 거의 독점적인 패러다임이 된 것이 현실주의이다. 이러한 현실주의를 일반적으로 소개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기원, 즉 지적 기원에 대한 소개가 이루어진다. 이는 결국 이 현실주의가 인간의 역사와 함께 장구하게 유지되어 왔음을 드러내면서 타 패러다임에 대한 우월성을 표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실주의의 지적 기원은 고대 그리이스의 투키디데스, 16세기의 마키아벨리, 17세기 영국의 홉스, 네덜란드의 그로티우스, 19세기의 클라우제비츠, 20세기의 카에서 찾고 있다.
먼저, 펠로폰네시아 전쟁을 분석한 고대 그리이스의 투기디데스(Thucydides)의 전통에서부터 시작한다. 기원전 5세기에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의 전쟁을 다룬 펠로폰네시아 전쟁(The Peloponnesian War)을 저술 하였는데, 여기서는 사건을 단순히 서술하는 차원인 전쟁의 즉각적인 원인보다 그 배후에 놓여 있는 역학의 문제에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전쟁의 내재적인 동인(underlying forces)에 더 관심을 갖고 있다. 따라서 투기디데스의 저작은 군사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치적 권력투쟁의 연구인 것이었다. 투기디데스는 전쟁의 원인은 세력균형의 변화에 따라 유발된 ‘공포’(fear)라고 한다. 스파르타는 그리이스 세계에 있어서의 지배적인 역할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두려워 군사력의 증대로 동맹국의 협력을 얻는다는 대책을 세웠다. 아테네도 이에 대항해서 비슷한 대책을 세웠다. 이에 대한 투키디데스의 서술은 당시의 상황이라든가 정책이 현대의 군비확장 경쟁, 세력균형, 동맹, 외교, 전략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좋은 비교가 된다. 펠로폰네시아 전쟁의 원인은 아테네의 정치적 힘이 스파르타의 정치적 힘에 비해서 급속히 증대된 데 대한 공포라는 것이 투키디데스의 주장이다. 세력균형이 불리한 방향으로 이행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정치가는 상황을 수정하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되는데, 이것은 다시 적에게 공포를 주게 되어 상호불신의 원인이 된다. 이처럼 공포는 전쟁을 일으키지만 그 결과를 좌우하는 것은 타국에 대한 상대적인 권력과 능력이다. 다시 말해서, 전쟁의 원인에 대해 직접적인 원인과는 별도로 궁극적인 원인에서도 찾고 있다. 즉 전쟁발발의 원인이 특정한 사건들 속에서 뿐만 아니라 주변의 세력균형과 그 변화라는 보다 보편적인 국제적인 환경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국가들간의 권력관계라 할 수 있는 국제정치구조에서 원인을 찾는 것이다.
두 번째의 지적기원으로써 마키아벨리(Machiavelli)를 들 수 있는데, 그는 16세기 이탈리아의 도시국가간의 관계를 연구하여 군주의 생존규칙을 규정한 군주론(The Prince)에 그의 국제정치관을 드러내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투키디데스와 마찬가지로 권력(power), 세력균형(balance of power), 동맹과 대항동맹의 형성(formation of alliance and counteralliances), 다른 도시국가간의 갈등의 원인(the causes of conflict between different city-states)에 대해서 연구했다. 마키아벨리는 국가(여기서는 군주와 동일시됨)의 존속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군주는 자신의 지배에 대한 내적 또는 외적 위협에 교묘히 대처해 나간다면 국가를 잃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마키아벨리는 국가안전보장문제에 대해 국가안전보장의 확보에 책임을 지지 않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행동이 군주에게는 정당화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는 국가의 안전보장이라는 것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어떤 수단이라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마키아벨리아니즘(혹은 마키아벨리즘)은 서로 다른 두 개의 윤리관이 공존하게 되는데, 그 하나는 개인의 구제에 대한 전통적인 종교적 도덕심이고, 또 하나는 이것과는 상치되는 국가의 안전보장을 지키기 위해 행동하는 지배자의 도덕적 의무인 것이다. 결국 마키아벨리가 생각하는 세계는 이상적인 세계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세계인 것이다. 도덕과 정치의 분리를 언급하는 마키아벨리는 추상적인 논리의 원칙에서 아니라 정치의 세계에서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이성적인 가치판단의 영역인 도덕이나 종교, 윤리적 사고로부터 현실의 정치는 분리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국가의 안전보장, 즉 생존을 위해서는 정치가에 의한 권력의 유지와 확장은 최고의 가치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17세기 영국의 정치철학자 홉스에서 현실주의의 지적기원을 찾고 있다. 홉스는 리바이어던(Leviathan)이라는 저서를 통해 정치적 현실주의의 지적 원천을 제공하고 있다. 홉스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비관적인 견해(pessimistic view of human nature)를 갖고 있다. 이러한 그의 견해는 결국 인간사회에 대한 관점을 시사한다. 인간의 사회가 구성되기 전인 자연상태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every one against every one)상태로서 무질서와 혼란과 폭력의 상태라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자연상태, 즉 무정부상태를 극복하고 평화와 질서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리바이어던이라는 절대권력(국가권위 혹은 최고통치자)에게 인간의 모든 권력이 장악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질서가 없다면, 경제적 발전, 예술, 지식과 그 밖의 가치있는 모든 것과 같은 문명과 문명의 이익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국가간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지고 있다. 그럼으로써 무정부적 상태의 개념은 현실주의 국제정치이론의 기본적인 가정으로 연결되고 있다. 특히 혼란과 무질서의 무정부상태의 자연상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리바이어던이라는 강력한 국가(정부)에 인간의 자연권을 양도하는 것은 국제정치에서 강력한 패권국가가 존재하는 것이 국제적 평화와 질서의 유지 및 확장을 도모한다는 신현실주의의 패권안정이론과 매우 흡사함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홉스는 정치적 현실주의의 지적기원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쳤음을 부인할 수 없다.
네 번째의 지적 기원으로서는 휴고 그로티우스(Hugo Grotius)를 들 수 있다. 그로티우스는 국제사회는 무정부적 상태로서 갈등의 문제를 강조하는 홉스적 관점과 잠재적으로 인간은 조화를 이루면서 인류공동체가 실현될 수 있다는 칸트의 보편주의적 시각의 절충의 성격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그로티우스는 국제관계의 본질적인 무정부상태를 극복하는 방안에 대해 구속성이 있는 요소와 국가들이 인정하는 법이나 규칙의 확립을 주창하고 있다. 즉, 국가들간의 관계는 오로지 폭력과 투쟁이 아니라 법과 제도에 의해서 제약을 받음으로써 협조와 조화를 이룩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점은 국제관계와 평화의 정착에 제도와 기구를 중요시 하는 자유주의의 기원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자유주의가 국가만을 국제정치의 기본단위 혹은 행위자로서 인정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과는 달리 그로티우스는 국가가 국제정치의 실체라고 파악함에 따라 국가중심적인 홉스의 견해를 수용하고 있는 것에서 현실주의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다섯번째는 전쟁론으로 현실주의에 영향을 끼친 칼 폰 클라우제비츠(Carl von Clausewitz)를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는 국가권력의 군사적 요소는 매우 중요하지만 정치적인 것보다는 하위에 있다고 하며,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활동의 연속이다”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국제정치에서 국가들의 활동 가운데 국가안보의 중요성을 절대화시켰으며, 특히 그러한 국가안보의 목표를 위해서는 전쟁도 정당한 수단임을 강조한 것이다. 즉 어떤 국가가 국제정치에서 자국의 생존을 확보하기 위한 권력의 확대와 유지를 위해서는 무력도 정당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함으로써 군사력이 국가권력의 가장 핵심적 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군사적 행동과 수단에 중점을 두는 현실주의와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현실주의 지적 기원이자 현실주의의 선구자로 불리는 에드워드 카(Edward H. Carr)가 있다. 카는 제1차 세계대전이후 서구에서 국제연맹의 창설과 국가간의 적지 않은 평화조약에도 불구하고 제2차 세계대전을 겪게 됨에 따라 국제정치에 대한 현실적인 분석에 들어가게 된다. 특히 그는 기존의 정치가나 학자들의 사고가 현실의 질적인 변화를 인정하지 않고 이상주의와 같은 낡은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현실의 제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한 것이 국제적 혼란과 전쟁을 초래하였다고 보았다. 그래서 카는 제2차 세계대전을 특정 지도자의 성격에 얽매이지 않고 재앙의 직접적, 개인적 원인보다는 근본적으로 중요한 원인을 분석하려고 했다. 그는 현실의 위기와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이상에서 현실로, 다시 새로운 이상(유토피아)으로 전개되는 순환론적인 사고를 드러낸다. 그리고 그의 정치적 사고에 있어 유토피아와 현실, 이론과 실천, 힘과 도덕, 좌익과 우익, 지식인과 관료, 진보와 보수간의 괴리 등을 지적하기도 하였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정치의 본질로서 힘과 도덕이라는 두 요인을 고려하고, 현실과 유토피아의 상호작용을 인정하고, 균형있는 조화를 모색했다는 점에서 사고의 독특함이 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카는 이상주의뿐만 아니라 현실주의의 장점과 단점도 비판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주의와 비현실주의의 여러 이론가들에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는 근본적으로 정치적 현실주의를 바탕으로 하여 국가들간의 자연스런 조화라는 유토피아적 사고를 비판하였으며, 정치에 있어서 권력의 요소를 재발견한 현실주의자였던 것이다.
이상에서 나타낸 바와 같이, 현실주의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고 인정되고 있는 지적기원의 공통점은 무력 혹은 전쟁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현실주의는 전쟁과 그 원인 그리고 극복방안들과 연결되기 때문에 보편적인 정치가는 이 현실주의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 기원에 의해 확립된 현실주의가 하나의 확고한 국제관계연구의 분석틀로서 확고한 패러다임으로 작동하며 각종 이론들에게 어떠한 기반을 제공하기 시작한 것은 모겐소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계속해서 왈츠에 의해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2. 전통적 현실주의의 기본적 가정과 세력균형
1930년대의 국제정치상황은 히틀러의 출현, 무력의 위협에 의한 국제질서의 변화 등으로 이상주의자들이 구축하려는 새로운 국제질서가 현실과 괴리되는 상황에 봉착하게 되었다. 국제정치의 현실은 당위성보다는 경험적 현실을 중시하는 단계로 접어들게 됨으로써 권력정치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에 대해 냉철하게 논하려는 추세가 뚜렷해졌다.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인하여 이상주의 패러다임에 대한 적실성의 문제가 강하게 대두되기 시작하면서 향후 국제관계의 연구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게 된 현실주의 패러다임이 등장하게 된다. 현실주의는 국제주의와 국제적인 협력의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현실 국제정치는 국가이익의 우선적 고려로부터 비롯되는 권력정치의 양상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주의는 앞서 언급한 지적기원에서 알 수 있듯이 장구한 역사 가운데 다양한 지적 영향 속에서 태동하여 20세기에 들어와서 카에 의하여 하나의 정연한 학문적 체계로서 정립되었고, 현실주의를 대표할 수 있는 모겐소에 의하여 국제관계의 연구에 있어서 하나의 패러다임으로서 확실하게 정립된 것이다. 특히 모겐소는 1948년에 Politics among Nations라는 저작을 발표함으로써 현실주의를 명료화시키는 특정 개념과 설명 및 연구과제를 제시하였다. 이로써 현실주의는 국제정치학에 있어서 1960년대까지 그의 영향력은 지대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후 비판을 받으면서도 국제정치학 분야를 지배해 온 것이다. 게다가 현실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냉전체제의 국제적 정치상황으로 인하여 정치학자들 뿐만 아니라 외교정책을 담당하는 실무자들에게도 중요한 지침이 되기도 했다. 모겐소는 정치적 현실주의의 이론적 성격을 명시한 여섯 가지의 원칙을 제시함으로써 현실주의의 기본적인 가정을 집약하였다.
첫째, 정치적 현실주의는 모든 정치현상이 일반사회현상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본성에 근거하는 객관적인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고 본다.(중략) 정치현상을 지배하는 객관적 법칙의 존재를 믿는 현실주의는 아무리 불완전하고 일방적인 법칙일지라도, 그것에 근거한 합리적 이론의 개발가능성을 아울러 믿고 있다. 또한 정치에 있어서 진실과 의견을 구별할 수 있기 때문에,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면서 이성으로 해명된 객관적이고 합리적 진실과 실제의 현실과는 거리가 멀고 편견과 바램에 의한 주관적 판단에 불과한 의견을 구별할 수 있다는 것이다.(중략)
둘째, 정치적 현실주의가 국제정치현상을 이해하는 길을 찾는 데 있어서 중심적인 지표로 삼는 것은 권력으로 정의되는 이해관계의 개념이다.(중략) 정치가는 권력으로 정의되는 이해관계를 기준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가정하며, 역사적 증거 또한 이러한 가정을 뒷받침하고 있다.(중략) 따라서 정치가가 행동하는 것처럼 생각도 하고, 사심없는 관찰자로서 그의 생각과 행동을 정치적 행위자로서의 그 자신보다 더 잘 이해하게 된다. 권력으로 정의되는 이익개념은 관찰자를 지적으로 훈련시켜 정치에 합리적 질서를 부여하고 따라서 정치를 이론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중략)
셋째, 현실주의는 권력으로 정의되는 이익이라는 중심개념이 보편적으로 타당한 객관적인 것이라고 가정하나, 그 개념의 의미가 고정불변적인 것으로 보지는 않고 있다. 이해관계가 정치의 진정한 본질이라는 생각은 시간과 장소적 상황변화에 관계없이 존속하고 있다.(중략) 그렇지만 어떤 특정한 시점에 정치적 행동을 결정하는 이익은 외교정책이 수립되는 당시의 정치적, 문화적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중략)
넷째, 정치적 현실주의는 정치적 행위의 도덕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또한 도덕적 명령과 성공적인 정치행위의 요구 사이에는 긴장이 불가피하다는 점도 인식하고 있다.(중략) 현실주의는 보편적 도덕원칙은 추상적이며 보편적인 형태 그대로 국가의 행위에 적용될 수는 없으며, 그것은 시간적, 공간적 상황에 따라 변형된 형태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한다.(중략) 따라서 현실주의는 여러 정치적 행위의 결과를 비교해 보는 신중성을 정치에 있어서의 최고선이라 생각하며, 추상적인 윤리는 도덕법칙과의 부합여부를 가지고 행위를 판단하나 정치적 윤리는 정치적 결과로써 행위를 평가한다.(중략)
다섯째, 정치적 현실주의는 특정 국가의 도덕적 열망과 세계를 지배하는 도덕법칙을 동일시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진리와 의견을 구별했던 것처럼 현실주의는 또 진리와 각자 나름의 맹신을 구별한다. 모든 나라는 자국의 열망과 행동을 도덕적 목적을 가진 것으로 표현하려고 하며, 예외적으로 솔직한 나라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각국이 국제관계에서, 도덕법칙에 따라 행동하여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과 선악을 구분하여 행동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즉 모든 나라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신(神)의 판단 하에 있다고 보는 믿음과 신은 항상 자기편에 서 있으며 그가 원하는 것은 신 역시 원한다는 불경스러운 확신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는 것이다.(중략)
여섯째, 따라서 정치적 현실주의와 기타 학파 사이의 차이는 실재적이고도 뚜렷하다. 현실주의가 오해받고, 그릇되게 해석되든 간에 정치적 문제에 대해서 현실주의는 독특한 지적, 도덕적 태도를 지녔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지적인 면에서 경제학자, 법률가, 도덕주의자들이 각기 그러하듯 정치적 현실주의는 정치적 영역의 독자성을 강조하고 있다. 정치적 현실주의자들은 권력으로 정의되는 이익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바, 이는 경제학자들이 부로서 정의되는 이익의 관점에서, 법률가들이 법률․규칙과 행위의 적합성이란 관점에서, 도덕주의자들이 행위와 도덕원칙과의 적합성이란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중략)
모겐소의 국제정치에 대한 기본적인 이론화는 세 가지의 근본적인 가정에서 도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첫째는, 국제관계를 이해함에 있어서 민족국가나 정책결정자가 가장 중요한 행위자(actor)이며, 둘째는 국내정치와 국제정치 간에는 엄격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는, 국제관계는 권력(power)과 평화를 위한 투쟁이며, 이러한 투쟁이 왜, 어떻게 일어나는가를 이해하고, 그것을 조절할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국제정치학의 목적이며, 이와 같은 목적에 간접적으로라도 연결되지 않는 것은 쓸모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현실주의 패러다임의 기본적인 행위자는 국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치생활의 토대는 갈등집단이며, 이러한 집단은 경제적, 기술적 요인에 의하여 변할 수 있는 역사적 산물임을 인정하지만, 근대 국가체계가 형성된 이래로 오늘날까지 가장 중요한 행위자는 국가라는 것이다. 그리고 정치생활은 국내적 영역과 국제적 영역으로 구분되며, 각각은 그 특징적인 속성과 행위의 법칙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국제정치는 주권을 가진 대등한 단위들 간의 상호작용이며, 국가의 행동은 외부에 대한 반응인 것이다. 그리고 국가이익이라는 것은 한 국가의 외교정책을 분석하고 평가하기 위한 개념이며, 국내정치와 마찬가지로, 국제정치도 권력투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국제정치에서의 모든 쟁점은 오로지 권력투쟁으로 정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정에 입각한 현실주의는 국가간의 권력관계에 연구의 핵심을 두고 국제관계에 드러나는 국가의 행동을 설명하려 한다. 그리고 위의 세 가지 가정은 이전의 이상주의자가 가졌던 기본적 가정들과는 현격히 다르다. 즉 국가간의 어떤 본질적인 이익의 조화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갈등적인 국가목표를 가진다고 상정하는 데에 이상주의와 많은 거리를 두고 있다.
이와 같은 근본적인 가정에서 유추되는 핵심적인 것은 힘(power)이라는 개념이다. 국제사회는 서로 상이한 이익을 가진 국가간의 갈등상태로 설명되기 때문에, 모든 국가는 자신이 최선이라고 판단하는 방식으로 각자의 이익을 추구한다. 그리고 무정부 상태 하에서 유사한 단위들 간에 불가피하게 발생되는 이익의 갈등을 조정해 주는 견실하고 신뢰할 만한 과정이 부재하기 때문에 무력(force)은 국가들이 대외적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으로 불가피하게 사용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각국은 자국의 생존과 안보 그리고 국가이익이라는 국가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힘 또는 권력을 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힘으로 정의되는 국가이익이 핵심개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국제정치는 서로 상이한 이익을 가진 국가간의 권력투쟁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힘 또는 권력은 각 국가가 추구하는 이익개념의 다른 표현인 것이다.
현실주의의 시각에서 평화에 대한 입장 또한 힘의 개념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즉 평화란 국가간의 갈등을 규제함으로써 성취될 수 있다. 그런데, 국가간의 권력투쟁은 필연적으로 세력균형을 초래하게 되며, 이러한 세력균형이야말로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중요한 메카니즘이라는 것이 현실주의의 입장이다. 모겐소는 현상을 유지하거나 타파하려고 노력하는 여러 나라들의 권력에 대한 열망은 필연적으로 세력균형이라는 상태를 낳게 하고 또한 그것의 유지를 목표로 하는 정책으로 이끌어 간다고 한다. 그리고 권력정치와 그 부산물로서의 세력균형은 여러 가능한 외교정책들 가운데 하나이며, 여러 독립적 단위들로 구성된 모든 사회가 그 구성원들의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일반적인 사회적 원칙의 특정한 표현형태라고 한다. 또한 세력균형과 그것의 유지를 위한 정책은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주권국가로 구성된 국제사회의 가장 본질적인 안정화 요인인 것이다. 그리고 국제적 세력균형의 불안정성은 그 원칙 자체의 결함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주권국가로 구성된 국제사회에서 그 원칙이 적용되는 그 특별한 상황조건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세력균형은 국제정치의 보편적 작동원리이나 항상 평화를 보장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이러한 세력균형의 양상은 어떠한가? 이에 대해 모겐소는 직접 대결하는 양상(the pattern of Direct Opposition)과 경쟁하는 양상(the pattern of competition)으로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전자는 두 국가가 서로간에 직접 대결하는 형태로서 이 경우에는 각 나라의 독립성의 보장은 두 국가의 세력의 균형상태에 따라 결정되며, 균형상태는 언제든지 깨어질 수 있다. 후자는 어떤 약소국에 대한 지배나 영향력을 두고 다른 두 국가가 서로 경쟁하는 구도이다. 이 구도 가운데에 있는 약소국은 경쟁하는 강대국간에 세력균형이 존재하거나, 약소국의 독립을 보장하는 정책과 보호를 자처하는 국가가 다른 국가에 비해 압도적인 힘을 갖고 있거나, 제국주의적 야망을 가진 강대국들에게 별로 매력이 없는 약소국일 경우에는 독립이 보장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모겐소의 주장은 약소국의 독립성의 보장을 포함한 국제적 평화의 가능성은 근본적으로 세력균형에 의존하지만, 그 내재적 불안정성 때문에 평화는 항상 불안정하고 일시적인 것을 의미하고 있다. 그래서 모겐소는 세력균형이 국제정치의 보편적 작동원리라고는 하지만 그 원칙이 내재적으로 안고 있는 불확실성(uncertainly), 비현실성(unreality), 불충분성(unadequacy)등의 세 가지 취약성으로 인해 국제질서의 안정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현실주의에 대한 성격을 규정한다면, 규범적이고, 정책지향적이며, 국제행위의 일반화에 있어서 역사연구에 의존하는 이론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모겐소는 모든 정치의 본질은 권력에 대한 투쟁이며, 국제정치는 주권을 가진 대등한 단위들 간의 상호작용이며, 국가의 행동은 외부에 대한 반응이라 한다. 즉 국제정치 또한 주권국가 간의 권력투쟁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국가간의 권력투쟁에 대한 분석과 실천에 공통되는 중심개념으로 국가이익을 설명하고 있으며, 세력균형이 안정과 평화를 보장하는 영속적인 조정원리로써 작용한다고 했다. 또한 국가의 힘은 다른 국가의 힘에 의하여 가장 효과적으로 제한되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성격을 가진 현실주의는 국제정치를 분석하고 연구하는 가장 영향력있는 이론으로 1960년대까지 국제정치학계 뿐만 아니라 실무정책을 지배하였다. 그리고 모겐소 등의 학자들에 의해 체계화 및 명료화를 위한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졌으며, 이는 곧 현실주의가 국제정치학에서 하나의 정상과학으로서 국제정치분야를 지배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냉전의 종식, 권력정치의 행태에 부합되지 않는 새로운 문제영역들의 존재, 초국가적 행위자의 등장, 핵무기의 발달 그리고 국가간 상호의존의 문제 등 급변하는 국제정세로 인하여 현실주의는 국제정치의 현실을 명확하게 서술하고 설명할 수 없게 됨으로서 그 타당성이 의심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그렇지만 그들 자체가 현실주의의 기본적인 가정을 어느 정도는 수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완전한 대체이론이 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현실주의는 국제정치의 전영역을 탐색하는데 신뢰할 수 있는 지도를 마련하며, 국제정치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관건을 마련하려는 시도의 소산이었다. 따라서 누구에게나 국제정치의 현상을 가장 쉽게 납득할 수 있도록 묘사‧설명하며, 또한 외교실무자의 행동에 지대한 영향력을 주고 있는 실용적인 실천이론으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이러한 현실주의가 국제정치이론분야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크다고 인정하는 반면에 이에 대한 비판 또한 적지 않다. 현실주의를 변모시키거나 다른 이론이나 패러다임을 대두시키고 새로운 논의를 촉발시키는 비판 즉, 현실주의의 한계에 대해 리차드 애쉴리는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첫째, 개념과 논쟁, 그리고 지적 주장은 일관된 계통을 밝혀서 조직화하기에는 너무 모호하고 파악하기 어려우며, 또 그런 조직화를 거부한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적인 면에서 그것들은 역사지향적이며 맥락을 중시하는 학자들의 능란한 민감성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 고전적 현실주의의 개념과 주장들이 가지는 타당성은 분석자나 정치가가 그 언술의 맥락에 충실하게 해석하는 경우에 한해서만 발견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둘째, 국제정치에서 주관적인 측면과 객관적인 측면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며, 따라서 이론을 정립함에 있어서 그 기반이 취약하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그들은 이론은 구성함에 있어서 객관적인 사회현실로 파악되어야 할 체제의 생명력을 사장시켜버린 것이다.
셋째, 사회이론의 기초를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이론적 탁월성에도 불구하고 경제학, 심리학, 사회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넷째, 고전적 현실주의의 가장 두드러진 오류는 ‘정치분야의 독점성의 원칙’이다. 세력균형이 중심개념으로 취급되는 정치․군사의 영역에만 스스로를 국한시켰으며, 그 결과 경제적 과정에 대해 무관심했고, 그것을 자유주의적 상호의존론자들의 탈권력적 시각과 종속이론 및 제국주의이론 등의 급진적 이론가들의 비판적 시각 앞에 방기하였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실주의는 1970년대의 세계정치․경제질서의 변화로 인해서 그 설명력에 대한 도전이 심화되는 데, 이는 세계경제의 변화에 따른 것과 냉전체제의 상대적 약화에 따른 것이다. 이로서 현실주의는 이론 자체가 변화 또는 자기 모순을 타개하기 위한 수정을 가하게 된다. 사실 제2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1960년대까지의 인식은 국제사회에서 주요 쟁점의 해결을 국가 또는 정부적 행위에 맡기는 것이었고, 개별 국가도 국가발전의 우선성을 안보, 국력의 신장, 군사력의 강화에 두었었다. 그리고 전후 20여년에 걸친 평화무드, 구체적으로는 냉전하의 조건적 평화분위기와 미국 주도의 자유무역주의의 우위 속에서 군사적 쟁점의 중요성은 재고되기 시작했고, 이와 관련하여 전쟁과정에서 군사무기의 생산력 발전에 뒤따른 기술발전, 이에 뒤따른 상품종류의 다양화 및 질의 제고 등은 기업들의 활동성을 국제사회에서 이들의 역할은 국가에 한정된 기존의 행위자에 대해 비정부적 행위자들의 활동성이 제고되어야 한다는 인식 또한 제고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현실주의 시각에서의 전통적인 국가개념은 정치, 군사적 맥락 중심의 개념에서 기업의 보조역할 또는 각 행위주체들의 활동성을 보장하는 필요충분적 개념으로 재정립되게 되었으며, 이는 신현실주의 또는 구조적 현실주의라는 이름으로 다시 대두된 것이다.
Ⅲ. 지속되는 현실주의 - 신현실주의의 성격
신현실주의 패러다임은 전술한 전통적 현실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자기 수정을 통해 대두되었다. 따라서 전통적 현실주의의 기본적인 가정을 수용하면서, 또한 그 한계를 극복하여 국제정치를 설명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신현실주의의 이론적 성격은 행태주의의 영향으로 인한 현실주의의 과학화와 국제체제를 설명함에 있어서 구조의 역할을 강조하는 구조주의적 시각, 그리고 전통적 현실주의의 정치‧군사적 쟁점에만 중점을 두어 경제적 영역을 방기하였다는데 대하여 중상주의적 성격을 끌어들여 경제적 문제를 국제정치현상을 설명함에 있어서의 한 요인으로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이론적 성격은 신현실주의 학자들 간에 의견의 충돌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들의 공통적인 시각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왈츠의 저작 Theory of International Politics의 발표로 인하여 신현실주의 패러다임이 체계화를 갖추는 계기가 되었다. 왈츠는 자신의 신현실주의에 대한 논리 전개의 목적을 먼저 초기의 현실주의자보다 엄밀하게 국제정치이론을 발전시키는 것이며, 둘째, 구조적 요인으로부터 단위의 수준을 어떻게 구별하는 것과 구조적 요인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가를 제시하기 위한 것이고, 셋째는 국제정치의 연구를 지배하는 널리 보급된 사고의 모든 형태의 부적절성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며, 넷째, 국가의 행동이 어떻게 다르고, 기대된 결과가 어떻게 변함에 따라서 체계가 변화는 것을 보이기 위한 것이며, 마지막으로 이론이 경제적, 군사적인 문제에 실제로 적용되는 몇 가지의 예를 보여주고, 이론을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기 위한 것으로 밝히고 있다.
이처럼 신현실주의는 전통적 현실주의가 높은 설명력을 갖춘 이론틀을 지향하였지만 지나치게 일반화되고 포괄적인 개념의 사용과 과도한 실천적 관심으로 인해 과학적 연구를 위한 이론틀의 구성보다는 일정한 지적 통찰력만을 제공한데 대한 새로운 이론구성을 위한 시도라고도 볼 수 있다. 특히 왈츠는 국제정치현실에서의 권력 중심성의 기원을 국제체계의 무정부적 구조의 특성에서 발견하고 국가의 행동을 이들의 속성이 아닌 체계의 수준에서 설명하려 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왈츠로 대표되는 신현실주의와 모겐소의 전통적 현실주의와의 차이를 찾아볼 수 있다.
1. 구조적 속성에 의해 지배되는 국제정치
신현실주의가 구조적 현실주의(structural realism)라고도 불리어지는 것처럼 국제정치를 구조주의적 시각에서 파악하려는 점은 신현실주의의 이론적 성격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구조주의적 관점은 환원주의적 설명방식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하여 사회학 등의 분야에서 거시적인 문제를 다루는 도구로써 활용되어왔다. 이는 개체를 특정한 사회관계의 틀에 종속되는 것으로 보며, 사회관계는 개체의 선택범위를 제한하는 효과를 지닌다고 한다. 즉 구조주의는 집단 또는 사회적 수준의 요소들이 개체의 행위를 결정한다고 가정하며 개체의 행위는 관련된 구조적 변수로부터 유추되어 설명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주의적 관점으로부터 신현실주의는 국제정치현상과 같은 거시적 현상을 구조와 행위주체인 국가간의 관계를 밝혀냄으로써 국제정치의 일관된 행태를 모색할 수 있으며, 그리고 미래를 예측함에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국제정치는 그 구조적 속성에 의해 지배된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국제관계의 구조적 속성에 대한 강조는 신현실주의를 전통적 현실주의와 구별짓는 특징적인 성격이다.
왈츠는 구조의 개념을 도입하여 현실주의를 국제정치에 관한 체계이론으로 재구성하려 한다. 그리고 국제정치구조를 국가의 행위나 성격이 아니라 그것이 일정하게 배열된 조직으로 인식한다. 따라서 국제정치구조는 국가들의 배열체계이며, 동시에 국가의 활동과는 구별되는 국가간의 정치적 관계인 것이다. 또한 구조적 관계란 이러한 체계를 구성하는 모든 단위간의 관계를 뜻한다. 결국 구조는 단위들 간의 조직된 결합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국제정치구조를 다른 국제적 구조와 구분하거나 체계수준과 단위수준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정치구조가 어떻게 생성되고, 그것들이 어떻게 체계의 단위들에게 영향을 주고받는가를 인식해야 한다고 한다. 그는 기존의 체계이론에 대하여, 국제정치는 명료한 질서나 위계적인 배열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구체화된 기능을 수행하는 분화된 부분들로 잘 조직된 체계를 다루는 일반체계이론이 적용될 수 없다고 한다. 이와 같이 왈츠의 구조개념은 체계 내의 유형화된 상호작용을 단순히 추상화시킨 기술적인 구조가 아니라 상호작용의 유형화를 지배하는 원리를 밝혀내는 발생적인 구조를 의미한다. 즉 체계(system)는 구조와 상호작용하는 단위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구조는 체계를 전체로서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체계수준의 구성요소라는 것이다.
왈츠는 이전의 체계이론가들이 해결하지 못한 과제는 단위의 속성과 그리고 상호작용과는 거리를 두는 구조의 정의를 만들어내는 것인데, 구조에 대한 정의는 단위수준의 변수들과 체계수준의 변수들을 구분할 수 있기 위하여 단위들의 특성과 행위, 상호작용 또는 관계들을 생략해야만 가능한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단위의 속성을 제거한다는 것은 국가가 가지게 되는 정치지도자, 경제‧사회적 제도, 이데올로기적 요소들과 같은 문제들을 생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관계(relations)의 제거란 국가들의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상호작용의 생략을 의미한다. 구조를 정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단위들이 서로 관계를 가지는가를 고려하지 않고 서로 간의 관계에서 그들이 어떻게 자리잡고 있는가에 관심을 기울일 것을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왈츠는 상호작용은 단위수준에서 발생하지만 단위들이 서로 간의 관계에서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는가와 그들이 배열되어 있는 방식은 단위의 속성에 속하지 않는다고 한다. 즉 단위들의 배열은 체계의 속성으로 인식되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으로부터 세 가지의 명제가 나타난다.
첫째, 인물, 행위, 상호작용들이 광범위하게 변할지라도 구조들은 상당 기간 지속되어지며, 이러한 점에서 구조는 행위나 상호작용과는 명백히 구분된다.
둘째, 여타의 영역들에서 부분들의 배열이 유사하다면 구조에 대한 정의는 매우 상이한 실체들의 영역에도 적용되어진다.
셋째, 이러한 이유로 한 영역에서 발전된 이론들은 약간의 수정을 거쳐서 역시 다른 영역에도 적용되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구조는 그것을 구성하는 부분들의 배열에 의해서 규정되며 배열의 변화만이 구조적 변화의 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체계는 구조와 상호작용하는 부분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러한 구조와 부분들은 실제로는 현실과 일치하지 않지만 그것과 관계를 맺으면서 형성된 개념들인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객관적인 전체 혹은 존재론적으로 구분되는 총체로서의 체계를 가정하고 구조를 통하여 체계를 분석하려는 것이다. 기술의 진보나 무기체계의 혁신 또는 동맹의 형성 및 와해 등으로 인하여 국가는 그 형태 및 의도가 변화함에도 불구하고, 국가 및 그들의 행위의 다양성이 반드시 결과의 다양성과 결부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체계수준의 원인이 작용함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왈츠의 체계이론은 체계의 측면과 단위 또는 행위자 행동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구조의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그리고 존재론적 실체로서 체계를 가정하고 체계를 구조와 함께 구성단위로써 파악하면서 특히 구조를 강조하고 있다. 즉 체계는 구조와 서로 상호작용하는 단위들로 구성되며, 구조야말로 체계를 전체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해주는 범체계적인 구성요소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론적인 틀에서 왈츠는 국내정치체계와 국제정치체계를 구분하면서 국제정치구조의 특성을 규명하고 있는데, 국내정치구조를 구성하는 요소를 ①체계가 조직되고 질서지워지는 조직원리(ordering principle), ②단위의 분화(differentiation of units)와 기능의 특화, 그리고 ③능력(capability)의 배분상태 등의 세 가지로 구분한다.
⑴ 조직의 원리(Ordering Principles)
구조의 문제는 체계 부분들의 배열에 관한 문제이다. 국내정치체계의 부분들은 지배와 종속의 관계로서 명령과 복종의 관계로 유지된다. 그리고 국내정치체계는 집중되어져 있고 위계적(hierarchic)이다. 반면에 국제정치체계의 부분들은 등위(coordination)의 관계에 놓여 있다. 형식적으로 각각은 다른 부분들과 동등하며, 지배하거나 복종하도록 요구되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국제정치체계는 비집중적(decentralized)이고 무정부적(anarchic)이다.
실제로 두 구조의 조직원리는 명백히 상이하고 상호대칭적이다. 국내정치구조는 구체적인 상대물인 통치제도와 기관을 가지고 있다. 이와 반대로 국제정치구조는 무정부하에서의 정치라 할 수 있다. 국제기구는 그 수가 증가하는 추세로 존재하지만, 효과적으로 행위할 수 있는 초국가적 기관은 국가의 능력이나 속성의 일부분만을 가지고 있거나, 현안문제에 관련된 주요 국가들의 지지나 승인 없이는 결정적인 방식으로 행위할 수 없는 무능력성을 보여준다. 국제적으로 출현한 어떠한 권위요소도 이러한 요소들의 외양에 기초를 제공한 능력으로부터 거의 벗어날 수 없다. 권위는 곧 능력의 특정 표현으로 환원되어진다. 체계수준의 권위를 가진 행위자가 부재한 상태에서는 형식적 지배와 종속관계가 발전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제정치체계는 시장(market)과 마찬가지로 이기적인 단위들의 공동행위에 의해서 형성되어진다. 즉 도시국가, 제국, 민족과 같은 정치적 단위들의 공존에서 출현한다. 어떠한 국가들도 자신이나 다른 국가들의 제약받는 구조를 만들려는 데에 동의하지 않는다. 국제정치체계도 경제에서의 시장과 같이 애초에는 이기주의적이고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것이지, 의도된 결과물은 아닌 것이다. 시장과 국제정치체계에서 구조는 그 단위들의 공동행위에서 형성되어지고, 이러한 단위들이 체계 내에서 존재하고 번영하고 소멸되는 것은 그들 자신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으며, 단위들에게 적용되는 자구(self-help)의 원칙에 의해서 형성되어지고 유지되어진다. 그러나 시장과 국제정치체계의 구조적 유사성을 말하는 것이 그들의 동일성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인 자구의 원칙은 정치적으로 마련된 한계 속에서 적용되어진다. 반면에 국제정치는 이러한 제한이 없이 어떠한 행위도 통용되는 영역인 것이다. 그렇지만 자구원칙이 적용된다는 점에서 경제체제는 국제정치체계와 구조적으로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⑵ 단위들의 성격(The Character of the Units)
국내정치구조는 분화된 단위들에 의해서 행해지는 기능으로 설명된다. 국내의 정치체(polity)에 있어서 각 부서의 위계질서는 체계단위 간의 지배‧종속관계를 구체적으로 나타내며, 정치행위자들은 그들의 권위의 정도에 따라서 형식적으로 분화되고, 그들의 특정한 기능은 특화된다. 여기에서 특화라는 것은 국가의 法이 상이한 기관들이 수행하는 의무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각 부처가 담당하는 임무와 정당성을 가지고 사용되는 권력의 범위에 대한 광범위한 합의를 뜻한다. 즉 의회는 군사력을 제공하고 대통령은 그들을 지휘한다. 그리고 의회는 법을 만들고 행정부는 그것들을 시행하며, 정부의 각 기관들은 법을 관리하고 법원은 그것들을 해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할의 특화와 기능의 분화는 어떠한 국가에서도 찾아지며, 더욱 발전된 국가일수록 이러한 양상은 매우 강해진다.
그러나 국제정치체계는 국내정치체계와 달리 체계의 단위인 국가들은 경쟁체제 속에서 자국의 안보와 이익에 주요 관심을 두고 행위하기 때문에 기능상 유사하고, 또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국내상황에서 보여주는 이질적 기능들의 통합현상과 같은 것은 나타날 수 없다. 즉 국제정치체계의 단위인 국가들은 그들이 행하는 기능들에 의해서 형식적으로 분화되지 않으며, 체계의 무정부적인 상태는 체계단위 간의 유사성을 의미하는 동등한 관계를 말한다. 이는 곧 단위들이 추구하는 행위가 기능적으로 동일함을 뜻하게 된다. 따라서 국가는 능력의 차이는 있으나 그들이 행하는 직무의 성격은 유사하기 때문에 국가의 분화는 기능상의 차이에 의해서가 아니라 상대적 능력에 의해서 일어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국제체계가 무정부적 상태로 지속되는 한, 체계단위인 국가의 기능적 분화는 일어날 수 없다. 즉 국가들의 기능은 유사하지만 그들 간의 구분은 능력의 차이에서 나타나며, 국내정치는 특화된 기능을 수행하는 분화된 단위들로 구성되어 있으나 국제정치는 서로 간의 행위를 모방하는 유사한 단위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국제정치체계에서는 국내정치체계의 구성요소의 두 번째인 단위의 분화 및 기능의 특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⑶ 능력의 배분(The Distribution of Capabilities)
위계적 체계에서 부분들은 그들의 기능적 분화와 능력범위에 의해서 서로 관계되지만, 무정부적 체계의 단위들은 기능적으로 분화되어 있지 않고 주로 유사한 행위를 수행하기 위한 능력의 소유 정도로 구분되어진다.
국내통치구조는 형태상으로 상이한 의회체계나 대통령체계로 구분되고, 국제정치체계는 유사한 기능을 가진 국가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주요 국가의 수에 따라 구분하게 된다. 이러한 국제정치체계는 체계단위 간의 능력배분의 변화에 의해서 변경되어지며 구조에서의 변화는 체계단위들이 행위하는 방식과 이 단위들의 상호작용이 산출할 결과를 변화시키게 된다.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 구조의 정의는 집단이나 각 부처들 내에서 발생하는 조정이나 갈등에서가 아니라 이러한 것들이 존재하는 영역들에 대한 조직이라는 각도에서 행위자들의 관계를 다루는 것이다. 정부의 각 부분들은 어느 정도 서로를 포함하거나 배제하고 또는 협력하거나 대항한다. 이러한 것들은 체계간의 변화를 구분하는 구조의 변화라기보다는 체계 속에서 형성되고 해소되는 과정 속의 관계들이다. 구조의 정의에 대한 “능력배분”의 부분은 비록 특화된 기능들이 변화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 단위들은 상대적 능력의 변화를 통하여 서로 간에 상이한 관계에 위치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당제는 8개의 정당이 선거를 위하여 두 개의 진영으로 모였을 때가 아니라 8개의 정당이 두 개의 정당으로 줄어들었을 경우에만 변화되어진다는 것이다. 또한 3개국 이상의 강대국이 두 개의 동맹을 형성하였을 경우에도 국제정치체계는 다극체계로 존재하는 것이고 이러한 다극체계는 강력한 두 개의 국가에 도전할 수 있는 제3의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양극체계와는 구조적으로 구분되는 것이다. 이는 힘의 집중상태에 따라서 다극체계와 양극체계의 구분이 가능하고, 이러한 체계 내에서 각국의 행위양식이 규정된다는 점을 볼 때 국가간의 상대적 능력의 배분상태가 국가의 행위를 규정한다는 점을 인정하게 된다.
이와 같은 왈츠의 논의는 국제정치체계에 있어서 무정부 상태의 조직원리와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는 단위들 간의 상대적 능력배분이 체계의 변화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무정부적 국제체계에서는 단위들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들의 목표를 성취하고 안전을 유지하기 위하여 자구(self-help)의 상황에 직면하게 되며, 자구체계 내에서는 능력의 상대적 배분의 변동을 통해서 세력균형이 반복적으로 형성된다. 그리고 무정부적 상태는 신뢰가 결여된 상태이기 때문에 각 단위들의 안전은 그들에게 달려있으며 자구적 체계에서는 아무런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자구적 체계(self-help system)에 있어서, 국가는 자신의 권력에 의해서 다른 위치에 놓이게 되며, 자기규제적인 단위이다. 따라서 국가행동은 이데올로기, 내적 구조, 정부형태의 차이보다는 권력의 차이에 의해서 변화된다. 다시 말해서 국가간의 능력의 차이에 의해서 국가의 행동은 다르게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에만 의존할 수 있도록 완전한 자율과 독립을 추구하는 국가들이 강조되며, 그 국가들의 목표는 자구가 된다. 그들은 유사한 목적을 추구하는 유사한 수단을 사용하며, 이로 인하여 유사 단위체를 형성하게 된다.
이와 같은 국제체계에서 세력의 변화는 체계의 안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어떤 한 국가가 공업화와 산업화를 통하여 국제사회에서 자국의 지위를 변형시키면 이전에 형성된 세력관계가 변화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체계 내의 정치적 이권과 수혜에 관한 기존의 균형이 더 이상 현실의 세력형태를 반영하지 못하게 되며 새로이 출현한 도전국은 전리품의 재분배를 전쟁이라는 수단을 통하여 실현하려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세력관계가 완전히 평형상태에 있으면 군사적 분쟁을 일으킬 원인이 거의 없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즉 국가들이 현존 세력분포에 동의하고 현재의 이권분배가 지속된다면 무력을 사용할 이유가 거의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 가능하다.
결국 왈츠는 체계의 수준에서 결과의 주된 결정요소는 구조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구조는 어떤 행위는 고무시키고 또 다른 행위는 저지시킨다. 또한 어떤 목표를 달성하려는 한 국가의 능력이 다른 국가의 힘에 의해 억제될 때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즉 무정부적 상태에서 유사한 단위들 간의 갈등의 결과는 필연적으로 단위들의 상대적인 능력의 배분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왈츠의 이러한 이론구성은 체계 내의 결과를 초래하는 원인이 단위들 간의 능력의 상대적인 분배에 있다고만 할 뿐 능력의 차이의 기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밝히지 않고 있는데, 이에 대하여 터커(Robert W. Tucker)는 능력의 차이는 불균등한 부존자원과 성장에 있다고 한다. 단위들은 서로 상이한 천연자원을 부여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발전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단위들 간의 능력의 상대적인 차이는 국제사회가 효율적인 집단적 절차와 공통선에 대한 언약(commitment)을 결여한 경쟁사회라는 사실에 의해 영속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불평등한 단위들 간의 상대적 능력의 배분은 자구체계라는 국제사회의 제도적 형태에 의해 심화될 뿐이라는 것이다. 단위들 간의 불균등한 힘의 분배와 불균등한 성장을 영속화시키는 메카니즘을 무정부라는 국제체계의 구조적 속성에서 구하고 있는 것이다.
2. 신중상주의와 함께하는 신현실주의
국제관계의 구조적 속성에 분석의 초점을 두고 행태주의적 방법론을 추구하는 신현실주의는 전통적 현실주의에 비하여 경제적 문제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이는 국제정치에 있어서 경제영역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부각된 결과이기도 하지만 경제적 상호의존을 주장하는 자유주의를 반박하면서 현실주의를 보다 세련화 시키려는 시도로 평가될 수 있다.
이와 같이 신현실주의가 경제적 요소에 접근하는 것은 국제정치에 있어서 냉전의 완화, 무역이나 통화문제와 같은 경제영역이 높게 부각되는 결과이다. 또한 세계적 위기를 맞이하여 현실주의로서는 설명할 수 없는 정치적 발전이 대두하게 되어 현실주의가 한계를 노출시키게 됨에 따라 타당성의 위기를 타파하기 위하여 경제적 문제를 도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와 경제의 밀접한 상호관계를 다루는 것은 현실주의의 전통적 본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겐소(Morgenthau), 허쓰(John Herz), 키신저(Henry Kissinger) 등의 현실주의자들은 냉전이 심화되면서,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강대국들의 권력투쟁에 중점을 둠으로써 경제적 문제를 간과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신현실주의의 경제영역에 대한 것은 정치와 경제의 상호관계에 대한 일반적인 시각이 국제정치현상을 설명하는데 매우 유용하다는 것에 기초하고 있다.이것의 토대와 기반을 형성하게 된 것은 20세기 초반에 자유방임적 개방정책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대두하게 된 신중상주의이다.
신중상주의는 국가의 목표가 국가방위라는 안보의 가치에서 경제복지로 확산된 것을 반영함으로써 경제의 정치화가 나타난 현상이다. 이는 다른 나라와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자국의 이익만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대외경제관계를 국가가 조정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서 보호주의적 대외경제정책을 의미한다. 그리고 국가이익이란 완전고용이나 물가안정과 같은 국내적 관심사도 있고, 또한 국가안보와 독립의 유지 등 외교정책과 관련되는 사항도 있는 것이어서 무역을 통한 국제수지균형의 흑자에만 역점을 두었던 고전적 중상주의보다는 더욱 포괄적인 개념인 것이다.
이러한 신중상주의는 세계경제의 효율성보다는 국가의 경제적 또는 정치적 목표에 중점을 두는 것이다. 신중상주의의 정책은 국제수지균형의 흑자는 물론 실업과 인플레이션의 발생원인을 다른 나라에 전가시키며 수출입을 통제하고 국제시장 점유율을 높이며, 선진기술을 더 많이 확보하는 등 여러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국의 경제적 필요성과 정치적인 대외정책을 반영하는 경제정책을 추구하는 것이 신중상주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다시 말해서 신중상주의는 국가를 행위주체로 보고 무엇보다도 국가이익의 상호작용이 세계경제의 역할을 결정하는 것이며, 경제가 국가와 국가이익에 봉사한다고 믿고 있다. 따라서 다국적 기업이나 국제기구 등이 활동하기 좋았던 상호의존적 자유주의경제체제는 붕괴될 수밖에 없고, 국가가 주도하는 폐쇄적 경제체제가 형성될 것이라고 본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나타낼 수 있다.
첫째, 자유주의경제체제는 자체 내에 자유주의적 성격을 파괴하는 고유한 속성을 내포하고 있다. 개방적 자유주의경제체제는 단기적으로는 경쟁에 약한 경제를 더욱 약화시키는 경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자본과 자원 등의 유출로 인하여 강대국의 튼튼하던 경제도 차츰 약화시키게 되므로 이에 해를 입게 되는 기업과 노동자들은 국가로 하여금 보호주의 정책을 추구하도록 압력을 가하게 된다. 그 결과로 국가는 폐쇄적 경제정책을 택하게 된다.
둘째, 국제경제체제는 궁극적으로 국가 자체의 행위에 의해 결정된다. 이는 아담 스미스(Adam Smith)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경제의 조화와 흐름에 대한 하나의 반론으로서, 국가정책이 국제경제의 성격을 결정하는 것이며, 대외경제정책에 관한 한 국가목표는 국가내부의 여하한 사회집단의 목표와도 다르고 궁극적으로는 이들 목표에 우선하여 이들을 지배하게 된다.
셋째, 국가는 결국 보호주의적 폐쇄정책을 추구하게 되고 또한 국가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이러한 정책은 불가피하게 된다.
이러한 자유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신중상주의의 주장은 경제성장이 오히려 국제경제의 상호의존성을 심화시켜 국가경제의 자율능력과 안정성을 약화시켰다고 하면서, 전후 세계경제의 급속한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던 저렴하고 풍부한 에너지와 기타 주요 자원이 차츰 고갈 또는 고가화되고 생산혁명에 선도적 역할을 담당했던 미국의 기술독점이 무너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곧 상호의존적 세계경제를 이끌고 온 미국의 정치‧경제‧군사적 지도력이 약화되어 상호의존적 자유주의경제체제는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다는 것이다.
중상주의가 15세기 유럽에서 등장하여 오늘날의 신중상주의까지 500여년간 거쳐오면서 각 시대에 따라 중심적인 의의는 차이가 나타나지만, 중상주의의 공통된 의도는 경제가 국가와 국가이익에 봉사한다는 것이다. 즉 국제경제관계에서 중요한 행위자는 국가이며, 각 국가는 서로 상충하는 이익 속에서 자신의 국가이익의 최대화를 목표로 활동한다는 것이다. 중상주의는 정치의 우선성을 강조하고 정치가 경제적 질서를 결정하며 국제경제관계에서 국가간의 상호작용은 힘의 재분배를 초래한다고 한다.
이러한 견지에서, 신현실주의는 경제적 상호작용에 관한 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경제학은 정치적 질서를 전제로 하며 정치로부터 고립되어 연구될 수 없다는 카(Carr)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래서 신현실주의는 정치적 가치와 안보이익이 국제경제관계의 가장 중요한 결정인자이며, 정치가 경제적 활동의 틀을 결정하며, 경제로 하여금 지배적인 정치집단이나 조직의 목적에 봉사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든다는 것이다. 또한 다국적 기업이나 다른 비국가적 행위자에 의한 초국가적 관계는 국가중심의 국제체계의 구조 속에서 행해지는 정치적 과정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현실주의는 상호의존론에서 나타나는 경제‧기술적 요인이 정치를 변혁시킬 수 있다는데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이러한 것은 경제적 상호의존이라는 현상 자체의 신빙성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즉 이러한 의문은 오늘날 초국가적인 행위자로서 다국적 기업이 존재하는 것은 그것이 세계의 지배세력인 미국의 정치적 이익과 일치되기 때문이며, 또 다국적 기업이 현대의 경제적, 기술적 발달의 성과물이라는 것은 인정할지라도 다국적 기업이 이런 경제적, 기술적 요인으로 인한 심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미국이 그 필연적인 정치적 토대를 구성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현실의 국제체계를 볼 때, 상호작용을 하는 국가라는 단위들은 명백히 자구(self-help)의 원칙에 충실하기 때문에 상호의존은 취약성을 들어낼 수밖에 없으며, 그리고 각 국가의 능력이 유사하지 않고 현격한 차이를 나타냄으로 인하여 상호의존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국제관계에 있어서 상호의존이란 항상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미국이 세계의 패권국으로 등장하기 이전인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 비해 오늘날 상호의존이 감소하고 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국제정치경제에 대하여 상호의존을 주장하는 자유주의 또는 다원주의의 이론적 주장에도 불구하고, 국제체계에서는 이익의 조화가 아니라 갈등과 국가간의 불평등이 지속되고 있으며, 경제적, 기술적 발달은 이러한 갈등과 불평등을 더욱 심화‧확대시키는 추세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을 반증해주기에 명백하다 할 수 있다.
위와 같은 사실에서 신현실주의가 국제정치경제에 대한 입장에서는 중상주의적 성격을 견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덧붙여서, 신현실주의가 자유주의가 아닌 중상주의적 요소를 가미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있다. 국가의 능력이라는 가정적 측면에서 자유주의나 다원주의가 주장하는 상호의존론과 비교하여 볼 때 현격한 차이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현실주의는 중상주의의 견해를 수용함으로써 국가간의 능력은 평등하지 않음을 밝혀서 매우 현실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 이에 반하여, 자유주의는 국가간의 능력에 대하여 명확히 설명하지 않음으로써 능력의 차이를 은폐하거나 또는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신현실주의는 정치적 힘을 국제경제활동의 토대로서 인정하고 중상주의와 마찬가지로 패권국의 정치적, 경제적 또는 안보적 이익의 관점에서 국제경제관계를 조망하는 것이다. 이는 곧 국가이익과 그의 실현을 위한 수단으로써 힘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국가와 국가이익의 우선성에 근거하여, 신현실주의는 자유주의가 경제적 영역의 힘을 높이 평가하는데 대하여 사회 내의 경제 및 정치조직 간의 모순이 항상 경제적 합리성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해결되지는 않으며 체계 내의 결과를 초래하는데 있어서 지배적인 세력들의 외교적, 전략적 이익이 여전히 결정적인 고려사항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그리고 증가하는 상호의존이 국제체계의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는 자유주의의 논리를 반박하면서, 상호의존이 중앙통제의 발달을 능가하는 속도로 증가하면 전쟁가능성을 높일 뿐이며, 이는 곧 강대국이 체계의 안전을 위해 행동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Ⅳ. 신현실주의의 유효성과 패권에 의한 세계질서의 전개
1. 신현실주의의 유효성
신현실주의는 전통적 현실주의와 마찬가지로 관점을 달리하는 이론가들로부터 신랄하게 비판받고 견제되어지고 있다. 특히, 코헨(Keohane)은 신현실주의가 강조하는 체계이론의 중요성에 대해 동감하지만 세력균형이론은 국가의 권력의 극대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신현실주의의 기본가정과 모순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한 신현실주의의 권력개념은 여전히 모호하고 변화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며 국가들의 국내적 속성과 국제체계의 연관성에 대한 논의가 추가 되어야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또한 국제정치과정에서의 경제적 상호관계의 측면이 완전히 사장되고 있는 측면도 지적되고 있다.
또한 애쉴리는 그의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신현실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 신현실주의는 정치적 실천을 경제적 법칙에 환원시킴으로써 정치적 자율성에 대한 전자의 임무를 배반하고 있으며, 과학을 순전히 기술적 시도라고 간주하는 방법론적 법칙들을 섭취함으로써 후자의 비판적인 능력을 거세시켰다.... 이러한 선택적인 차용을 통하여 신현실주의는 권력의 한계를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합리적 권력의 존재 가능성을 보여주는 독특한 이론틀을 창출하였다. 그 결과로 등장한 실증적 구조주의는 기존 질서를 당연한 질서로 파악함으로써 정치적 담화를 확대하기보다는 제한하고, 시간과 공간을 망라하여 변화하는 다양성의 의미를 부정하고, 모든 실천의 문제를 통제와 관련시켜 이해하려고 하며, 인간의 책임성을 초월해 존재하는 사회권력의 이념형을 옹호함으로써 사회적 학습과 창조적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실천으로서의 정치적 상호작용을 박탈해 버린다. 또한 그 결과 나타난 이데올로기는 세계적 차원에서 전체주의적인 계획을 예정하고 정당화를 지향함으로써 세계정치를 합리화한다.
위에서 보여지듯이 애쉴리의 비판은 신현실주의의 실증적 논의가 이데올로기적으로 국제체계에서 강대국 중심의 관리체제를 정당화 해주는 역할을 할 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신현실주의가 기술적 합리성에 치중함으로써 기존의 질서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며, 강대국의 시각에서 문제를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신현실주의는 197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현실 국제정치상황의 변화와 더불어 확고한 위치를 구축하게 된다. 즉 1970년대 후반의 핵무기의 발달, 두 차례의 석유파동에서 기인한 국가간(특히 핵심국간) 상호갈등의 표면화, 중소분쟁 및 대리전쟁, 그 후의 포클랜드 전쟁, 걸프전 등의 상황은 국가의 역할을 재고려하게 했고, 현실주의 가정들의 유용성을 입증하기에 충분했다. 따라서 1990년대부터 전세계적인 공감을 갖고 각 개별국가의 대외정책에서 핵심적인 과제로 추구되어온 “세계화”와 관련하여 신현실주의를 투영해 본다면 이 패러다임의 의미성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첫째, 국가중심성에 대한 입장은 견지하면서, 변화된 조건하에서 국가들의 행동을 예측, 설명할 수 있는 엄밀한 이론틀로서의 신현실주의는 세계화 추세 속에서 보여지는 제국가의 동등한 지위강조 및 국가의 협상능력 우선성(본질적으로는 동등하지 않다) 강조에서 그 이데올로기적 속성이 나타난다.
둘째, 세계화의 규칙을 개별 국가가 위반했을 때, 그 위반을 예측하고, 위반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그 국가에 지울 수 있다는 세계화의 내용은 신현실주의의 국가중심성 개념과 일치한다.
셋째, 현 국제체계의 무정부적 구조와 자신의 보존 내지는 범세계적 지배의 충동이라는 국가행동에 관한 기본가정을 바탕으로 연역된 세력균형론으로 구성된 신현실주의는 체제유지적인 이데올로기적 속성을 나타내며, 지배구조의 연속인 세계화 추세와 일치한다.
넷째, 기본적으로 중상주의의 견해를 수용하면서 국가간의 능력은 평등하지 않다는 신현실주의의 현실적인 인식은 세계화 추세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여러가지 협상(UR, TR, GR, BR)에서 보여지는 ‘개별 국가의 특수성 무시’와 일치한다.
다섯째, 패권국의 정치적, 경제적 또는 안보적 이익의 관점에서 국제경제관계를 조망하는 신현실주의의 시각은 세계평화, 위험지역의 제거(북한, 쿠바, 아이티, 보스니아-세르비아 내전 등) 등 세계화 시대로의 진입을 위한 전제조건의 확보노력과 일치한다.
요컨대, 신현실주의는 전통적 현실주의가 가지고 있는 한계에서 출발하여 현실주의의 기본적 가정을 수용하면서 다른 시각의 비판(특히 상호의존론)을 극복하기 위해 외향적인 자기수정과정을 거쳤고, 기본적인 내용은 여전히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국제정치에서 현상유지를 옹호하는 보수주의적 성격을 나타내고 있으며, 전통적 현실주의와 마찬가지로 주변부의 빈곤 문제는 지배적 국가들의 이익증대 과정에서 나타나는 당연한 부산물로 간주하고 있다. 결국 지배적 세력의 전략적 안보이익을 위한 투쟁은 체체 내의 불평등과 같은 규범적인 문제를 소외시키고 있는 것이다.
2. 패권에 의한 세계질서의 전개
현실주의 이론은 제1, 2차 세계대전을 통하여 지배적인 국제정치이론의 위치를 굳혀 왔으나 1960, 70년대를 전후로 한 세계경제의 변화, 즉 국제적 행위자의 다양화, 국제경제의 다극화 및 상호의존성의 심화 등으로 대항논리를 자처한 자유주의 이론(상호의존론)에 의해 비판되어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여 신현실주의라는 이론으로 변모하게 된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신현실주의는 전통적 현실주의와는 다소 차이를 나타내는 부분이 존재하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 그러나 국제정치에 대한 전체적인 현실주의의 공통적 입장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로 압축하고 있다. 첫째는 홉스적인 무정부상태와 둘째, 무정부상태는 국가들간의 권력의 배분, 즉 세력균형으로 유지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두 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즉, 세력균형이 자동적으로 생기는 것인가 아니면 정치가들이 창출하는 것인가?, 둘째, 양극(bipolar)과 다극(multipolar)화 중 어느 쪽이 세력균형의 측면에서 국제적인 안정을 보다 효율적으로 유지시키는 것인가?하는 것이다. 첫 번째의 세력균형의 문제는 신현실주의와 전통적 현실주의가 차이를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세력균형의 창출에 대해, 헨리 키신저, 모겐소와 같은 전통적 현실주의자들은 인간의 인위적인 의지와 노력이 나름대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의지주의(voluntarism)를 강조한다. 즉 세력균형은 정치가에 의한 외교정책의 창출이며, 자동적으로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외교정책의 결정자는 자동기계처럼 행동하지 않으며 죄수처럼 세력균형에 사로잡혀 엄격하게 속박되지도 않는다. 도리어 세력균형을 만들어내고 이를 유지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외교정책의 결정자는 결과적으로 그 무엇인가 영향을 줄 것을 기대하면서 국가의 대리인으로서 자기의 판단이나 의지를 자유롭게 활용하면서 외교정책을 실천하여 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왈츠나 길핀과 같은 신현실주의에 속하는 학자들은 세력균형은 의지주의와는 달리 국가간 체계의 속성으로 보는 것처럼 다소 구조결정론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즉, 국가는 자기 목표달성을 위한 능력을 행사하는 단일적이며 합리적인 행위체라 가정한다면 국제정치에 있어서 경쟁에서는 필연적으로 국가간의 상호작용이나 대립이 야기된다. 국가의 행동 및 상호작용의 결과는 균형을 유지하려는 경향인 세력균형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세력균형은 국가의 균형확립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야기되는 체계 내적인 경향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두 번째 문제로서 무정부상태의 국제사회의 안정에 대한 논쟁을 살펴보자. 즉, 어떤 세력균형체제가 무정부적 국제사회를 안정시키는 데에 유용한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양극체제와 다극체제 중 어느 체제가 더 전쟁이 없고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안정적인 체제인가 하는 문제다. 이에 대해서 왈츠를 비롯한 현실주의자들은 주요한 행위자들의 숫자가 많아지는 다극체제는 그 만큼 불확실성이 증가하기 때문에 정책결정자는 잠재적인 적의 의도나 행동을 오판할 가능성이 높아져서 안정을 헤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따라서 양극체제가 안정적인 국제질서를 유지하는 데에 더 유용하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반면에 싱거나 도이치는 불확실성은 정책결정자에게 경계심을 갖게 하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심화되는 다극체제가 더 안정적이라고 보고 있다. 이처럼 현실주의는 국제체계는 주요 핵심국가에 의해 유지되는 양극체제가 국제질서를 평화와 안정을 보장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논리를 뒷받침하고 있는 현실주의적 이론이 바로 길핀의 패권안정이론이다.
길핀은 왈츠와 마찬가지로 국제체계의 구조와 그 구조에 있어서의 변화가 국가행위의 가장 중요한 결정인자라고 한다. 그는 구조를 국제체계를 구성하는 국가들 간의 상호관계의 형태로 의미하면서,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이러한 상호관계의 형태는 각 시대에 형성된 힘의 위계질서에 의해 지배되어 왔다는 것이다. 즉 전근대시대에는 제국의 순환이 있었으며, 근대 이후에는 패권국의 순환이 이루어져 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힘의 위계가 국제체계의 구조를 결정한다고 가정하고, 구조의 변화가 일어나는 이유를 밝히려 한다.
현실주의의 이론에 따라, 국제체계변화의 근본원인은 국가간의 힘의 불균등한 성장이다. 그런데 패권국의 지배로 특징지워지는 구조 속에서 힘의 불균등한 성장에 따른 구조의 개편은 패권국의 몰락과 그에 대응하는 국가들의 등장에 의해 설명되어져야 한다. 길핀은 패권국이 몰락하는 이유에 대하여 내‧외적 요인이 있다고 한다. 내적 요인으로, 우선 패권국 내의 수확체감의 현상이다. 제국이 성장함에 따라 경제적인 잉여는 전쟁의 비용보다 빠르게 증대되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수확체감이 우선하여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가장 효과적인 군사기술의 비용이 역시 증대한다. 그리고 패권국은 점차 소비가 증가하고 투자는 감소하는 경향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한편 외적 요인으로서는 첫째, 제국의 이익에 봉사하도록 현상유지를 지속시키는데 드는 비용이 점차로 증가하며, 둘째로 기술의 확대로 인하여 제국은 자신이 유지하던 정치‧경제‧군사적 우위를 상실하고, 결과적으로 다른 국가들이 자신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을 키우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결국 길핀은 국제체계의 구조를 힘의 위계질서로 파악하고 그러한 구조에 있어서의 변화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세계질서에서의 평화에 대한 논의로 볼 수 있으며, 특정한 국제체계의 안정과 변화를 설명하는 논리이다. 그의 패권안정이론은 1970년대 초반에 소개된 이후 광범위한 논의를 야기하였고 국제체계의 동태적 변화에 관하여 지배적인 시각을 제공하였다.
패권이란 “어느 한 국가가 국가간의 관계를 지배하는 기본적인 규칙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고 또 그러한 의사가 있는 상황”으로 정의된다. 패권안정이론은 권력의 복잡성을 인정하면서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힘을 강조한다. 다른 나라의 행동을 자유주의적 관행에 따르도록 할 수 있는 군사력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패권안정이론은 앞서 언급된 바 있는 현실주의나 신현실주의의 가정이나 성격에서와 같이
첫째, 국제체계는 무정부 상태이며, 자력구제의 원칙에 근거한다.
둘째, 국제체계의 지배적 행위자는 국가이며, 국가는 자국의 힘과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한다. 다국적 기업과 같은 행위자도 국가의 힘과 이익이라는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셋째, 국제시장은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상대편 국가에게 부담을 전가키려는 위험이 항상 존재하는 불안정한 것이다.
넷째, 패권국이 없으면 집단행동은 불가능하다는 가정에서 출발하고 있다.
위와 같은 패권개념에 의한 이론으로써 패권안정이론은 인류의 역사가 때때로 여러 강대국이 병존하는 다원적 체계를 유지하기도 하였지만, 대부분은 하나의 패권국가에 의해서 지배되었다는 것이다. 즉 세계의 역사는 패권적인 제국들의 흥망성쇠의 역사라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의 국가가 세계에서 패권적 지배를 행사하는 헤게모니체제는 개방적이고 안정된 세계경제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최적의 상황을 제공한다. 즉 세계경제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오직 단 하나의 안정적 행위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패권안정이론은 패권국가의 교체는 격렬한 폭력적 전쟁을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길핀은 국제정치질서에서 체계적 변화가 일어나는 주요한 수단은 전쟁이라고 하며, 국제질서의 재편은 기본적으로 패권국가가 새로운 패권국가에 의하여 교체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패권국가의 교체를 수반하는 패권적 전쟁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질서의 변동원인을 길핀은 국가들 간에 진행되는 불균등발전에서 찾고 있다. 각 국가는 경제력, 군사력, 과학기술력에서 서로 다른 비율로 발전하기 때문에 국가들 간의 권력배분에 변화가 온다는 것이다. 그러한 불균등발전의 결과로 가장 급속하게 권력이 확장된 국가는 기존의 국제질서에 만족하지 않게 되며 현상타파를 모색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를 길핀은 국제체계의 불균형 상태라고 한다. 이러한 불균형 상태에서 잠재적인 패권국가가 변화를 시도함으로써 얻어질 이득이 시도를 위해 감당해야 할 비용보다도 많다는 합리적 계산이 산출되면 그 국가는 변화를 시도하는 행동을 취하게 되며, 그 결과 전쟁이 발생하고, 이로 인하여 새로운 질서가 창출되면서 국제체계는 다시 균형상태를 회복한다는 것이다.
전후 세계경제는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신보호주의 경향이 강화되고 국제통화질서에서는 브레튼우드체제가 붕괴되는 등 급격한 변화의 시기에 돌입하게 된다. 우선 1971년 미국의 무역수지적자 돌입이 상징적으로 보여 주듯이 독일을 비롯한 유럽 경제 및 일본 경제의 급속한 성장의 결과로 미국경제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약화되었고, 국제정치적인 면에서도 월남전의 수행과정이나, 1차 석유파동당시 미국이 보여준 무력감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미국이 상대적인 권력 혹은 영향력이 약화되었다는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시점에서 현실주의는 미국의 상대적인 권력 약화와 국제경제상의 변화간에 어떠한 상관관계가 존재하지 않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였다.
이러한 상황의 변화는 현실주의의 타당성을 의심받는 계기를 만들었다. 즉 기존의 현실주의는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국제사회를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는 논리를 상실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세계경제의 재편과정 속에서 현실주의는 미국의 상대적인 지위의 약화를 목격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 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즉, 국제체계에는 패권국가가 존재하여야만 국제경제질서는 안정적⋅개방적이며, 자유무역이 왕성하게 된다는 견해를 표명했다. 따라서 패권국의 쇠퇴는 국제경제질서를 불안정하고 폐쇄적이며 보호무역적으로 만든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패권안정이론은 현실주의 국제정치이론의 한 갈래로서 단일 국민국가가 헤게모니를 장악한 국제적 레짐이 정치․군사적 측면에서 안정적이며 경제교역의 측면에서도 번영을 가져다 준다는 인식을 요체로 한다. 즉 단일 헤게모니 국가가 패권적 지위를 누리는 국제적 힘의 편제를 헤게모니체제라 하고, 이 헤게모니체제가 개방적이고 안정된 세계경제의 운용을 가능케 한다고 본다.
이러한 입장에 서는 학자로는 찰스 킨들버거(C. Kindleberger), 로버트 길핀(R. Gilpin), 스티븐 크래스너(S. Krasner)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에 의하면 헤게모니 국가의 교체는 격렬한 폭력적 전쟁을 통해 이루어지며, 헤게모니 국가의 교체가 이루어져 새로운 헤게모니 체제가 형성되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전쟁을 ‘패권적 전쟁(hegemonic war)’이라 부른다. 또한 이들은 현실주의적 국제정치이론의 입장에 서기 때문에 국제체제에서 헤게모니 국가의 등장은 국제질서의 안정을 위해 필수적이지만, 현재 미국이 가지는 헤게모니 국가로서의 위상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즉 미국의 헤게모니가 퇴조했다고 보는 안정론자들은 일정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후 누렸던 전일적 패권지배가 종식되었다는 의미에서 미국의 헤게모니가 쇠퇴하였다는 견해는 이제 광범한 합의를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헤게모니 쇠퇴에 관한 또 다른 입장은 세계체제론자들에게서도 보여지는데, 패권안정이론에 해당되지 않는 이들은 지난 4,5백년에 걸친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역사의 전개과정에서 정치․군사적 측면들이 개입되는 헤게모니주기가 있었으며, 그 과정은 다음의 경로를 거친다고 주장했다. 우선 특정 핵심국가가 여타의 핵심부 국가들보다 확연한 우위를 견지하는 헤게모니 체제의 대두, 그리고 그 체제가 붕괴되고 확연한 헤게모니 국가가 없는 다중심적 경쟁체제의 대두, 마지막으로 다중심적 경쟁체제가 지속되다가 세계대전 등의 정치적, 군사적 재편을 통해 새로운 핵심국가가 헤게모니국가로 격상하는 경로를 주기적으로 겪어 왔다는 것이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은 쇠퇴하는 영국의 헤게모니 체제에 도전하는 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패권적 도전의 구도를 띠는 다중심체제의 전형적인 갈등관계였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은 유럽만의 전쟁에 국한되었으며 전전에 누적된 세계경제의 문제를 해결하지도, 전후에 새로운 헤게모니 국가를 탄생시키지도 못한 미완의 패권전쟁이었다. 따라서 다중심체제에서 새로운 패권경쟁은 불가피하였으며 제2차세계대전은 세계적 규모의 전쟁으로 발전하여 다중심체제의 종말을 고하는 전쟁이었으며, 이를 통해 미국이 새로운 헤게모니국가로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2차대전후에 시작된 미국의 헤게모니체제는 미국의 베트남전쟁의 개입으로 인한 후유증을 심각히 인식하던 60년대말과 70년대초에 걸쳐 쇠퇴일로를 걷게 된다. 미국이 70년대 중반부터 인플레, 대량실업, 저성장을 구조적으로 경험하면서 경제력의 급속한 저하를 보이면서, 세계경제는 급성장한 일본, 독일, 서유럽 국가등을 중심으로 하는 다중심체제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세계체제론자들은 현재의 국면을 미국의 헤게모니가 쇠퇴하고 있고, 이것에 대한 대응으로 현재의 구조개편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지적되어야 할 점은 미국의 헤게모니가 쇠퇴하였다는 것은 과거의 미국력에 비해 오늘날 미국이 세계정치경제질서에 행사하는 힘이 상대적으로 약화되었으며, 이는 헤게모니 국가로서 유지해야 할 필요충분조건의 상대적 결여를 의미한다.
이에 반해 미국의 헤게모니가 지속되고 있다는 주장은 미국이 아직도 국제관계의 지배적인 규칙들을 관리하고 있으며, 세계체제내의 다양한 ‘선(특히 안보선)’을 쟁취하는 데 있어서 미국의 영향력은 아직도 유효하다는 견해가 워싱톤 정가나 보수적 학자들을 중심으로 지지를 얻고 있다. 이들은 미국의 경제력을 놓고 볼 때 국력이 쇠퇴한 것은 사실이지만, ‘결과에 대한 통제’라는 측면에서는 미국의 국력이 퇴조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헤게모니가 쇠퇴했건 그렇지 않았건 현실주의 맥락의 패권안정이론은 대체로 패권국가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것은 현실주의 맥락에서 개별 국가 중심의 권력지향이 패권의 존재, 이에 따른 개별 국가행위의 초점 변화 또는 질서를 해치는 개별 국가행위에 대한 제재에로 변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기존 현실주의적 국가개념은 국가와 기업의 연계 또는 국가의 보완적 역할의 강화 개념으로 대체된다. 국가는 여전히 국제질서의 핵심개념으로 간주되지만, 국가의 행위영역 및 역할은 패권질서 하에서의 비정부적 행위자들을 위한 조건마련으로 변화된다. 이를 대부분의 학자들은 현실주의가 자유주의에 우위를 빼앗긴 것으로 분석하거나 현실주의 자체가 그 적실성을 잃은 것으로 보나, 사실은 자유주의와의 논쟁을 통하여 자유주의의 가설을 수용하는 자유주의와의 타협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Ⅴ. 결 론
신현실주의는 현실주의를 비판하면서 등장한 대안적인 패러다임들의 장점들을 수용함으로써 현실주의를 재구성하여 정상과학으로서의 재등장을 시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재등장의 과정에서 중요한 점은 첫째, 방법론의 영역에서 과학적인 방법을 수긍하여 행태주의의 과학적 기법을 수용하였다는 것과, 둘째, 국제관계의 설명에 있어서 국제체계의 구조적 속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실주의와는 달리 국제관계에서 경제적 문제의 중요성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방법론적인 측면은 국제정치연구의 본질적인 내용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이론구성의 독자적인 요소라 보기에 어렵다. 또한 과학적 연구방법은 신현실주의에만 드러나는 특별한 성격이 아니라 학문의 과학화 추세에 부응하는 일부분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신현실주의의 이론적 성격은 구조주의적 관점에서 국제관계를 분석하면서 더불어 과학적 방법론과 국제경제관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정치현상을 이해함에 있어 전통적으로는 국가간의 관계에 주관심을 가져왔다. 즉 국가는 자체의 목적과 힘을 지닌 유기체와 같은 행위자로 취급되어 국제정치연구의 기본적인 분석단위로 받아들여졌던 것인데, 신현실주의는 국가와 같은 개별적인 단위수준에서의 분석은 단위들에 나타나는 속성이나 상호작용의 커다란 변화에도 불구하고 국제적 현상은 유사성과 지속성을 계속 보여줌으로써 단위수준에서의 국제정치현상의 설명은 불충분하다고 주장한다. 즉 행위자와 행위의 다양성은 결과의 다양성과 일치하지 않으므로 체계적 원인이 존재하는 것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제정치현상의 설명은 체계적 원인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밝혀야 하는데, 이는 국제적 체계의 구조를 인식해야지 만이 가능한 것이라 한다. 즉 체계수준의 분석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국제정치현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는데 있어서, 체계수준의 분석은 체계의 내부와 체계의 환경에서 발생하는 상호작용의 총체성을 포괄하고 이용할 수 있으며, 상호작용의 유형, 동맹의 생성과 해체와 같은 현상의 일반화, 특정한 권력의 변화와 영속성 및 빈도, 체계의 안정과 조절, 공식적인 정치제도의 변동에 대한 반응, 사회제도에서 나타나는 규범이나 민족적 특성을 알 수 있다. 또한 단위수준의 분석에서 무시될 수 있는 전체로서의 국제정치를 연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기술의 진보가 이루어지고 무기가 급속히 발전함에 따라서 민족의 목표와 형태가 변화되고 동맹이 맺어졌다가 붕괴되지만, 결과의 유사성은 그들이 산출하는 행위자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즉 체계수준의 힘이 작용함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신현실주의는 국제정치현상과 같은 거시적 현상을 구조와 행위주체인 국가간의 관계를 밝혀냄으로써 국제정치의 일관된 행태를 모색할 수 있으며, 그리고 미래를 예측함에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국제정치는 그 구조적 속성에 의해 지배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국제관계의 구조적 속성에 대한 강조는 신현실주의를 전통적 현실주의와 구별짓는 특징적인 성격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적인 관점은 국제체계에서 구조적 측면을 강조한 나머지 개별적인 행위자의 상호작용을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함으로써 단순한 하나의 사건을 보편적인 수준에서 이해하고 예측하는 데는 한계를 나타낸다. 그러나 모든 구체적인 국제정치현상을 반영하지는 못하지만 지속적이고 일반적인 경향은 설명할 수 있다. 즉 국제관계를 구성하는 구조적 속성을 파악함으로써 국제체계가 어떻게 나아가고, 무엇이 일어날 것인가라는 일반적인 예측을 할 수 있으며, 국가의 행위를 맥락적인 차원에서 이해를 확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의 체계적인 예측도 가능하다. 다시 말해서, 신현실주의의 국제관계에 대한 구조주의적 관점은 구체적인 국제정치현상을 설명하고 예측하는 데는 어려움을 가지고 있지만 포괄적인 예측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국제체계에 대한 일반적인 예측과 국가행위의 예측은 미래에 대응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현실주의의 의의는 유용한 것이다.
결국 신현실주의의 핵심적 내용은 현 국제체계의 무정부적 구조와 자신의 보존 내지는 범세계적 지배의 충동이라는 국가행동에 관한 기본가정을 바탕으로 연역된 세력균형론을 강조하고 있으며, 또한 중상주의의 견해를 수용하면서 국가간의 능력은 평등하지 않다는 현실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 이 같은 시도들은 전통적 현실주의의 이론적 전제사항, 즉 국가중심성에 대한 입장에는 기본적으로 동의하면서 현실주의가 그것에 그치지 않고 어떤 주어진 조건하에서 국가들의 행동을 예측, 설명할 수 있는 엄밀한 이론으로서 만들려는 노력이었고, 따라서 행태주의, 상호의존론, 구조주의 패러다임 등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출발한 것이었다. 그리고 패권국의 정치적, 경제적 또는 안보적 이익의 관점에서 국제경제관계를 조망한다. 즉, 정치적 힘을 국제경제활동의 토대로서 인정하고, 중상주의와 마찬가지로 패권국의 정치적, 경제적 또는 안보적 이익의 관점에서 국제경제관계를 조망하는 것이다. 이는 곧 국가이익과 그의 실현을 위한 수단으로써 힘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국가와 국가이익의 우선성에 근거하여 신현실주의는 자유주의가 경제적 영역의 힘을 높이 평가하는데 대하여 사회 내의 경제 및 정치조직 간의 모순이 항상 경제적 합리성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해결되지는 않으며 체계 내의 결과를 초래하는데 있어서 지배적인 세력들의 외교적, 전략적 이익이 여전히 결정적인 고려사항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그리고 증가하는 상호의존이 국제체계의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는 자유주의의 논리를 반박하면서, 상호의존이 중앙통제의 발달을 능가하는 속도로 증가하면 전쟁가능성을 높일 뿐이며, 이는 곧 강대국이 체계의 안전을 위해 행동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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