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북정에서 백제대교를 건너고 바로 군청이 나옵니다. 로터리에 계백장군 동상이 서 있고 바로 궁남지(宮南池) 이정표가 나옵니다. 이차선길로 접어들자마자 궁남지의 넓은 주차장이 나옵니다. 얼마전에 끝난 연꽃축제의 흔적이 조금은 지저분하게 주차장에 남아 있네요. 이제 비는 거의 그쳤지만 하늘은 여전히 검은 수분을 머금고 마음만 먹으면 바로 비를 뿌릴 태세입니다. 강민이는 뭔가 삐쳐 있는 지 차에서 내리지도 않는다고 입을 삐죽 내밀고 있습니다.
간신히 설득을 해서(과자를 사준다고) 궁남지의 연꽃이 피어있는 곳으로 이동을 시작했습니다. 비가 온 날씨때문인지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군데군데 가족끼리 나온 사람들이 연꽃이 핀 곳에 모여서 사진을 찍고, 아름다운 연꽃들을 감상하고 있습니다. 커다란 연잎에 고인 물방울을 이리저리 뭉치며 장잔을 시작한 강민이는 이제 완전히 아까 피쳤던 사실을 잊은 듯 합니다. 연꽃이 거의 다 지긴 했지만 분홍빛, 흰빛, 노란빛의 여운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저 멀리 중간에 있는 원두막에는 아주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 한적합니다.
궁남지는 ...
"사적 제135호.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東南里) 소재. ‘마래방죽’이라고도 한다. 부여읍에서 남쪽으로 약 1km 지점에 있으며, 동쪽에는 초석(礎石)이 남아 있고, 주변에 옛 기와가 많이 산재하여 있다. 또 부근에는 대리석을 3단으로 쌓아올린 팔각형의 우물이 있는데, 지금도 음료수로 사용되고 있다. 이 궁남지는 백제 무왕(武王)의 출생설화와도 관계가 있다. 무왕의 부왕인 법왕(法王)의 시녀였던 여인이 못가에서 홀로 살다 용신(龍神)과 통하여 아들을 얻었는데, 그 아이가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셋째딸인 선화공주(善花公主)와 결혼한 서동(薯童)이며, 아들이 없던 법왕의 뒤를 이은 무왕이 바로 이 서동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설화는 이곳이 별궁터였고 궁남지가 백제 왕과 깊은 관계가 있는 별궁의 연못이었음을 추측하게 한다. 백제의 정원(庭園)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한편,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궁남지의 조경(造景) 기술이 일본에 건너가 일본 조경의 원류(源流)가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궁남지는 우리나라 연못중에서 현존하는 최초의 인공연못이라고 합니다. 10만평이 넘는 공간에 다양한 연이 심어져 있습니다. 사각으로 나누어진 일정한 구획안에 색깔별로, 종류별로 연꽃이 다양한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중간중간 나무로 만든 징검다리가 있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공간도 잘 만들어 놓았습니다. 제가 조금 늦었는지 이미 연꽃은 거의 다 져서, 그 황홀한 모습을 볼 수는 없었지만 비온 뒤의 고즈넉함이 있어 그래도 아름다움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궁남지를 만든 이유
궁남지는 유흥적인 원지(苑池)로서의 목적도 있지만 도성을 수비하는 역할도 유사시에는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도성방비의 목적으로 축성된 나성은 부소산성을 주축으로 하여 동서로 도성을 감싸고 각각 남으로 달리다가 서쪽의 나성은 군수리 성말리 부락에서 끝이 나고, 동쪽에 축성된 나성은 염창리 석성말 부락 강변에 이른 것으로 종래에는 알려져 왔으나 최근 조사에서 동쪽의 나성은 다시 한 줄기가 필서봉에서 서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은 필서봉의 한 지맥이 서쪽으로 발달한 낮은 구릉을 따라 하나의 성줄기가 동리, 당리, 중리, 왕포리까지 연결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인데 지형적으로도 타당성이인지되며 중리부락을 성말리라고 하는 지명에서도 그 근거가 제시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현재 분명한 성지의 확인이 없는 관계로 앞으로도 계속 유구의 규명을 위한 노력이 따라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추정의 가능성이 시사되므로 궁남지는 도성방어의 역할도 담당하였던 것으로 생각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조건위에 조원적인 성격도 궁남지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서남측에 인접해서 백제시대의 사지인 군수리 폐사지가 위치하고 있는데, 이 사지와 관련하여 볼 때 조원적인 성격도 포함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연꽃은 ...
"봄부터 몸을 부풀려 온 연꽃은 긴 대롱을 치켜올리며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해 8월 한 달 동안 절정을 이룰 것이다. 그 활짝 핀 ‘심청이 꽃’이 은은한 향기를 뿜어내면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다. 백련은 인도가 고향이다. 인도에는 저마다 믿는 신이 따로 있을 정도로 신이 많다. 힌두교가 떠받드는 시바, 시바의 아내 두르가, 가루다라는 새를 타고 다니는 비슈누, 창조신 브라흐마, 지혜의 여신 락슈미…. 많고 많은 신 중의 어머니는 라지브다. 바로 라지브를 상징한 꽃이 백련이요, 그래서 백련을 모성의 꽃으로 부른다. 인도에서 백련은 붓다나 성자에게 바쳐왔다.
미당 서정주는 연꽃을 일컬어 “만나고 가는 바람 같다”고 했고, 시인 오세영은 자작시 ‘연꽃’에서 “불이 물속에서도 타오를 수/ 있다는 것은/ 연꽃을 보면 안다”고 노래했다. 연꽃이 우리에게 살포시 미소지으며 말을 건다. 들리는가.
순백의 연꽃이 가져다 주는 최대의 기쁨은 순수다. 내력은 이렇다. 쌍떡잎식물 미나리아재비목 수련과의 여러해살이 수초인 연은 물을 정화시키는 일에 관한 한 최고의 마당쇠다. 더러운 진흙탕에 뿌리를 박고 살아도 흙탕물에 물들기는커녕 되레 깨끗한 물로 바꾸어 놓는다. 꽃 빛깔은 또 얼마나 맑고 아름다운가. 그 연꽃이 금수강산을 수놓는다면, 국토뿐만 아니라 보는 이들의 마음도 맑아질 것이다. 봄에 연 한 뿌리를 구해다 흙 3분의 1, 물 3분의 2로 채운 통에 심으면, 쑥쑥 자라 7∼8월이면 잎 지름 40㎝, 잎자루 높이 1∼2m, 꽃 지름 15∼20㎝, 꽃턱 지름 10㎝ 크기의 우아한 연꽃을 피운다. 연꽃은 자신이 좋아하는 여건만 만들어 주면 사방 5m까지 뻗어나가는 신묘술을 발휘한다.
진흙탕에서 자라지만 진흙에 물들지 않고, 한 방울의 오물도 머무르지 않고, 시궁창을 향기로 채우고, 어디에 있어도 푸르며 맑은 줄기와 잎을 유지하고, 둥글고 원만한 꽃 모양에 마음이 절로 온화해지고, 보는 이들에게 좋은 일을 안겨주고, 피면 반드시 열매를 맺고, 줄기는 부드러우며 유연하고, 만개했을 때의 색깔은 곱기로 유명하고, 날 때부터 다른 꽃과 구별된다고 합니다. 이 열 가지 특징을 닮은 사람을 우리는 ‘연꽃처럼 아름답게 사는 사람’이라고 존경하며, 이들에게서 용기와 희망을 얻는다. 모든 사람들이 연꽃처럼 맑게 산다면 절로 평화가 찾아 오리라." - 세계일보 기사 中
버드나무 사이에 위치한 포룡정(抱龍亭)
연꽃들 사이로 커다란 연못이 있고, 그 안에 섬이 하나 있는데 정자가 하나 서 있습니다. 부는 바람에 버드나무 가지들이 한들한들 춤을 추고 있습니다. 연못에서 시원하게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들이 정자에게 더욱 아른아른한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그 섬으로 이어진 기다란 목교가 있습니다. 하늘과 목교, 연못의 물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감상에 젖게 만듭니다.
할머니들 몇 분이 갑자기 흥이 나셨는지 포룡정에 앉아서 신나가 노래가락을 뽁기 시작합니다. 어찌나 신나게 노시는지 목교에 서서 감상을 했습니다. 풍류를 아시는 할머니들입니다. 하늘의 먹구름도 어느덧 파란 하늘로 변하고 있어 연못의 물과 비슷하게 닮아가고 있었습니다. 연못안에 물고기를 발견한 강민이는 이리뛰고 저리뛰고 좋아합니다.
연못 주위를 천천히 걸어서 한바퀴를 돌았습니다. 연못가에 세워진 나룻배에 올라 사진도 찍고, 돌다리도 건넜습니다.
다시 주차장으로 나오자 갑자기 허기가 밀려 옵니다. 아침도 못먹고 달려온 부여인지라 허기가 질 만도 했습니다. 관광안내 책자를 통해서 맛있는 쌈밥집의 위치를 확인하고, 두어 번 헤매면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푸짐한 쌈과 반찬들을 보니 정신이 없어집니다. 강민이는 밥한그릇을 모두 비우네요. 물론 과자로 유혹을 했지만 평소보다 많이 먹었습니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구드레조각공원으로 이동을 했습니다.
2007. 8.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