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하십니까?
저에게 [행복 바이러스]를 옮겨 주시는
이웃이 계시다는 것은 지난 번에 이곳에서 공개해 드렸죠?
얼마 전에는, 공功을 아주 많이 들이신 큼지막한 선물보따리를 또 저에게 내려보내주셨어요.
글 제목을 [우리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이라고 달아 주셨지만,
어찌보면 [우리 아이들...]이 아니고 [우리 모두가 읽어 보아야 할 글]인 것 같습니다.
남강 김종이 모니카 님(예쁜이름 ; 들국화)께 우연한 기회에 사전 승락을 받아 두었던 터라
원문 그대로 올려 놓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글
아래 글은 日本語를 모르는 우리 아이들에게 꼭 읽히고 싶어 짧은 일본어 실력으로 번역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日本의 現役医師 (90살이 넘은)日野原重明 선생님의 멧세지中 일부분을 발췌해 번역한 글입니다.
1. 중년부터 시작되는 제2의 인생 여러분은 대체로 몇 살 쯤부터 중년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여러 가지로 조사해 봤지만 중년을 명확히 증명한 문헌은 좀처럼 발견할 수 없습니다. 레빈손 이라는 심리학자는 40세부터 45세에 걸쳐서 중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45세 이후를 그렇게 정의해도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안.린드바-구-그녀는 대서양 형단 무착육 비행을 해낸 린드바-구-대좌의 부인으로 한편으로는 더욱이 다섯 자녀를 둔 어머니로서 그리고 사회학자, 작가, 여성 비행사로도 활약한 슈퍼우먼 입니다만 그녀의 저서「바다에서의 선물」을 읽어보니「55세부터 나의 중년, 인생의 오후가 시작된다.」로 되어있습니다. 중년이라 말하는 것은 인간에 있어서 제2의 청춘, 제2의 개화기, 그리고 또 제2의 성장기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요.
★ 자신이 자신의 시간을 디자인 한다.
일본인의 수명은 WHO 에서 세계제일 이라고 보증한 것처럼 남성은 77세 여성은 84세입니다. 55세를 제2의 청춘이라고 하면 나중 30년 가까이는 자신의 인생을 살아야할 시간을 갖게 됩니다. 55세 무렵까지는 아이도 낳아 기르고 남편의 시중을 들다가 날이 저물고 좀처럼 자유로운 시간을 낼 수가 없습니다만 이 이후는 남편과 두 사람만의 혹은 남편과 사별한 후에 혼자 미망인으로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시간을 자신답게, 자신의 생각대로 사용한다. 자신의 시간을 자신이 디자인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의 함정이 있습니다. 자신답게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자신답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확실하게 보고 정한 틀이(型紙) 있다는 것입니다.
배도 나침반이 없으면 대해에 배를 띄우고 목표로 한 목적지에 도착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자신은 무엇 때문에 자신의 시간과 능력을 소모하는지에 대한 나침반을 여러분은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당신들의 여생이 이제부터 30년이 남아있다고 하면 지금부터 그것을 위해 필요한 기술을 익힌다든지 학습을 시작해도 충분한 시간이 있습니다. 자신이 그림이 골치 거리라고 생각했던 것은 실은 학창시절에 그림선생님이 싫어서인지도 모릅니다.
세 번의 암 수술을 견뎌내었지만 다음은 어디에 전이 할 것인가 하고 전전긍긍하며 매일 매일을 보내고 있던 60세의 어느 남성 환자에게 그림 그리기를 권해 봤습니다. 처음에는 「손재주도 없고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그림을 그리다니...」하며 거절했지만 차츰 마음이 바뀌어 화필을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원래 회사에서도 민첩하게 일을 처리하는 능력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 동안 암에만 붙들려있던 마음이 점점 그림으로 향하게 되어 10년 후에는「개인전을 열면하고 내가 권할 정도로 되었습니다. 자신도 붙고 그는 최근에는 여성의 아름다운 나체화도 그리고 있답니다.
이따금 고등학교에서 理數科系의 성적이 좋았기 때문에 대학의 의학부의 진학을 권유해서 의사가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의사와 작가의 두 커레의 집신을 신고 있는 사람은 森鷗外를 비롯해서 北杜夫, なだいなだ, 加賀乙彦과 그야말로 일일이 열거할 수가 없습니다. ソニ-의 大賀典雄님은 藝大에서 성악을 공부해서 뷘에 유학하고 당당한 바리톤가수로 데뷔한 분입니다. 그런데 盛田昭夫님에게 경영의 재능이 발견되어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의 경영자가 되었습니다.
西武의 堤淸二님도 井喬이란 사람도 筆名의 작가였고 시인이었습니다. 그분들처럼 훌륭하게 또 하나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것 역시 충분히 꽃 피우고 있는 예도 있습니다만, 아직 재능이 조용히 잠자고 있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60세를 지나서라도 자신의 가능성을 깨달아 숨은 재능을 발굴해 내는 일도 충분히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제2의 인생으로는 이제까지 겨를이 없어 할 수 없었던 일, 골치 거리라고 생각했던 일, 지금까지는 관심도 없었던 일 등에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면 어떨까요. 인생이 살아가면서 제일 중요한 일은 살기 위해 사는 보람을 자신이 찾아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主婦の友』를 창간하고 전국에 널리 「友の會」조직을 만들어 여성을 위한 合理的인 생활혁신을 추진한 羽仁元子님은 사람이 사는 방향 세 가지 타잎을 지적하였습니다. 「思想하면서, 생활하면서, 그리고 기도하면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思想하면서라는 것은 생각하면서라는 말이고 다시 말하면 지혜를 갖는 다란 것입니다. 생활하면서란 것은 실천하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술을 배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기도하면서라는 것은 마음가운데 목표를 갖는다는 것입니다. 빈다고 하는 것은 먼저 무엇 때문에 비느냐, 라고 하는 목표가 있고 말하자면 앞에서 말한 羅針盤- 자신은 이와 같이 감사하다, 이렇게 되고 싶다, 라고 하는 인생의 방향을 찾는 일이기도 합니다.
★ 사는 보람을 갖는 일
나는 25년쯤 전에 사단법인 라이프 플랜닝 센타를 창설했습니다. 그 이름과 같이 라이프 플랜닝하는 일을 목표로하는 단체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건강하게 성장해서 충실한 삶을 살다가 늙어 유종의 인생을 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인생을 플랜닝 하면 좋을까, 라는 것을 추구하는 재단입니다. 이 재단이 연구하고 있는 프로그램은 그 수가 많아 한 마디로 간단히 소개할 수는 없습니다만, 호스피스,「피스하우스」의 일로써 호스피스와 대면하는 환자 한 사람 한사람의 특이한 유종의 날을 맞이하는 법을 내가보고 느낀 것을 조금 말해 볼까합니다.
나는 의사로서 60년이나 되는 오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젊어서는 늑막염을 앓아서 죽을 뻔한 적도있었습니다만, 다른 급우들처럼 戰場에 보내지는 일도 없이 戰前戰後를 통해서 활발하게 진료를 계속할 수가 있었습니다. 의사는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보람 있는 일이라고 긴장해서 매일 바뿐 나날을 보냈습니다만, 어느 날 문득 심혈을 기울여 奔命하고있는 자신의 임상의로서의 일도 모두 최후는 죽음으로 가고 만다는 것에 깜짝 놀랐던 것입니다. 자신이 혼신을 다한 일도 모조리 죽음이란 패배 앞에서는 無로 돌아가고 마는 것입니다.
결국 의학이 아무리 진보했다고는 하지만 최후에는 100% 어쩔 수없이 떠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일분일초라도 환자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일이 의사로서의 능력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살아 날 理도 없는데 최후의 최후까지 点滴注射로 영양을 종말에 가까운 환자에게 보내주고 코에 관을 氣管內에 넣고 호흡을 확보하고 마지막에는 환자에게 말타기를 해서까지 심장 맛사지를 한다 . 이것이 과학의 혜택을 누리는 인간의 최후 모습으로서 좋은 일인가 의문입니다.
사람은 나이를 먹음으로 해서 누구든지 몸에 결함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런 상태가 되어도 사는 보람을 가지고 사는 것이 意義있는 인생이 아닐까요. 그런 뜻에서 만일 다음 달에 죽음을 맞이할 것 같은 病狀일지라도 오늘 살아있음에 감사할 수 있는 자신은 행복하다, 라고 생각하며 살자면 어떻게 해야 될까, 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나는 15년간의 준비 끝에 神奈川縣 平塚市 郊外에 호스피스「피스하우스」를 개설했습니다. 골프장 안에 있기때문에 주위는 綠色一色으로 멀리 富士山도 보입니다. 7천여 명의 사람들로부터 모아진 7억원의 기부금을 기초로 십사억원의 모금으로 日本에서 최초의 독립형 호스피스가 되었습니다. 이곳에는 22병상이 있습니다. 나는 二週에 한번 씩 당직하고, 80명의 자원 봉사자가 일을 도와 주고있습니다. 의사나 간호부가 아닌 이른바 보통 사람들이 휠체어로 환자를 뜰에 데리고 나가던지, 맛사지를 해 주던지 쇼핑을 하도록 도와줍니다.
聖路加國際病院에 입원한 40세의 여성인데 암이 재발해서 발이 아파 움직일 수 없어 몰핀을 쓰고 있었지만 좀처럼 통증이 가시지 않아 늘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녀에게 호스피스에 들어가기를 권했습니다. 일주일 후에 호스피스에서 만났더니 휠체어를 타고 쇼핑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전연 얼굴빛이 달랐습니다. 밝고 생생하게 보였습니다. 먹고 있는 약을 차-드로 봤습니다만 병원에 있을 때와 같이 동량으로 먹고 있었으며 약을 늘리고 있지 않았습니다.
결국 인간의 기분이 리프레쉬(refuresshu)되면 통증도 가볍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호스피스에서 여러 가지로 원조해 주시는 자원봉사자의 참가한 동기는 다양하지만 上智大學의 데-겐 교수가 늘 말하듯이 「함께 기뻐하면 그 기쁨은 두 배가되고 함께 하는 슬픔은 반으로 줄어든다.」말하자면 좋은 환경에 자신을 두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 좋은 환경- 그것은 좋은 친구를 포함한 것이기도 합니다만, 좋은 환경에 있으면 자신의 내재하고 있던 에너지가 밖으로 방출하게 됩니다.
(ライフ.プランニング.センタ) 라이프. 플랜닝. 센타 에서 혈압지도를 하고 있는 봉사자는 내가 학장이었던 聖路看護大學의 학생에게 혈압 측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남편으로부터 「언제나 집을 비우고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거야」하고 말을 듣게 될 때에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말하면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는 듯한 얼굴로 듣고 있었는데 다음날 회사의 동료에게 자기 부인이 하고 있는 일을 자랑스럽게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일본남성은 몇 년을 함께 살아온 부인얼굴을 보고 칭찬하는 것은 어쩐지 겸연쩍어 못하지만 내심으로는 부인이 하고 있는 일이 자랑스러웠던 것입니다. 점점 서로가 나이 들어가면서 중년 또는 노년이 되어서 존경하며 화합하는 情理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라이프 플래닝 센타에서는 퍼스널.컴퓨터. 자원봉사자도 육성하고 있습니다. 2년째가 되면 그 사람은 일년 째의 사람을 지도합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습득한 능력으로 교회의 회계를 맡아보기도 하고 자신의 능력으로 단체 도는 다른 사람을 위해 도움이 되는 일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삶의 보람이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사람들의 얼굴은 빛나고 있습니다. 회사에서는 하루만 일해도 지칩니다만, 남을 위해 봉사하는 자원봉사자의 얼굴에는 充實感이 넘치고 있습니다. 자신이 타인을 위해 산다고 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대단한 특권이라 수 있습니다. 아메리카는 1억4천만, 일본의 배가되는 인구가 있습니다만 그 중 8천만 명은 무엇이라도 자원 봉사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년후의 사람들만이 아니라 회사 일이 끝나면서, 또는 토요일이나 일요일 같은 휴일에, 학생들은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에 적극적으로 자원봉사활동을 합니다. 고교생은 聖路加國際病院에도 와서 자원봉사를 하고있습니다. 노인에게는 손자 같은 고교생이 몸을 닦아드리기도 하고 보행을 도와드린다든지 할 때는 자신도 이와 같은 청춘이 있었다고 회상하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젊은이와 접촉할 기회가 없으면 청춘은 가버린 것으로 과거에 불가합니다. 젊은 시절을 생각하는 것은 생애를 두 배로 사는 것 이기도합니다. 자원봉사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시간과 능력과 돈을 자신이 하고싶은 좋은 일을 위해 제공하는 일입니다. 그에 따라서 자신의 존재의미를 확인하게 되고 자신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는 것이 마음으로부터 기쁜 생각을 하게 합니다. 그 생각이야말로 그 사람에게 보답인 것입니다.
뉴지랜드에서 호스피스를 견학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 나라에도 자원봉사자의 활동은 대단하였습니다. 호스피스에 입소하는 것은 무료입니다. 정부에서도 자금을 조달하고 있지만 주민들의 기부금이 호스피스를 재정적인 지원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의 호스피스 주위에는 세 군데 네 군데의 선물가게가 열립니다. 거기에서 수제품을 팔고 매상을 호스피스에 기부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확실히 부자라고 말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호텔도 훌륭하고 데파트에는 물건이 넘치고 아무렇지도 않게 음식을 남기고 버립니다. 그러나 그것도 이것도 건강한사람, 그리고 가능한 한 중년까지를 대상으로한 넉넉함이 아닐는지요. 「인간은 앓으면서 사는 것이다」라고 바로 니-체가 말 한바와 같이 우리들의 몸은 깨지기 쉬운 질그릇입니다, 언젠가는 썩어 헛되이 죽을 것입니다. 앓아도 늙어도 풍족함을 실감할 수 없으면 정말 문화국가를 실현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요컨대 그 "질그릇에 무엇을 담을 것이냐" 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생각할 때에 인간에 있어서 마음가짐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석가 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이 우리에게는 누구든지 生老病死의 四苦가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나는 그 四苦에 어떤 경우든지"잘"이라는 말을 붙여서 생각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합니다.
"잘 산다" "잘 늙는다" "잘 아프다" "잘 죽는다"라고 하는 거와 같이 말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에 이 四苦를 누구든지 체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잘 나고, 잘 늙고 잘 앓고 잘 죽는 일이야말로 문화가 있는 것입니다.
★ 죽음에의 준비 (死への準備)
이해를 돕기 위해 원문을 삽입 하였습니다. 61세의 여성인데 유방암의 골 전이로 호스피스에 입소한 분이 있었습니다. 입원하고 있을 때는 잠만 자고 화장실에도 가지 못했으나 통증을 컨트롤하고부터는 휠췌어로 식당에도 갈 수 있었습니다. 나는 11日間의 호주 뉴지랜드 여행에서 돌아오면 한번 그녀를 안아 세워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내가 돌아올 때까지 참고 버티라고 말하고 떠났지만 내가 귀국하기 이틀 전에 내 앞으로 편지만 남겨놓고 돌아가셨습니다. 간추려서 소개한다면 「여러분이 위해주어 나의 인생은 행복했습니다. 여러분의 따뜻한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분은 화가의 부인으로 요리선생을 하고 있었습니다만 남편의 半年間의 사생여행에 함께 가려고 자기 일을 정리하고 떠나기로 되어 있었는데 유방암이 발견되어 더구나 게다가 이미 골 전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靑天霹靂이었습니다「.....그때 나의 놀라움과 슬픔은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모로 치료도 했습니다만
최후에는 나는 지금껏 自然으로써 살아왔기 때문에 쓸데없는 醫療를 받고 싶지 않아서 호스피스에 들어왔습니다. 이 편지가 선생님 손에 들어 갈 무렵에는 나는 이 세상에 있지 않을 것입니다.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면서 한가지만 나의 방자함을 용서해 주십시오. 나의 장사는 조용히 가족장으로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남편이 하루속히 그림 그리기에 전염할 수 있게 조용히 살짝 해 주시고 여러 사람으로부터 조문을 받거나 부의는 진심으로 건방진 말입니다만 사양하고 싶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생전에 접촉했던 즐거운 한 때를 생각하면서 이 편지를 읽으신 후에는 태워주십시오. 이것은 죽는 날의 싸인입니다」라고. 호스피스에는 上智大學의 헤르만. 호이벨스 先生의 詩「最上の 業」이 걸려 있습니다. 돌아가신 그 분은 이 詩를 좋아했습니다. 「내가 존경하고 있는 호이벨스 선생과도 몇 년 동안 친교를 나누기도 했는데 그 詩를 여기에 장식한, 日野原先生을 만나게 되어 나의 생애는 이것으로 모두 감사합니다.」라고. 끝을 맺고 있었습니다.
61세라 하면 일본여성의 평균수명에서 보면 빠르다고 말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녀는 자신의 질그릇에 이와 같이 깨끗한 물을 가득 채우고 떠났습니다.그분의 남편의 편지에는「제 아내는 어쩌면 여기 호이벨스 선생의 詩와 같은 심경으로 떠났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돌연히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위한 준비는 언제부터 어떻게 할까를 반드시 생각해두기 바랍니다. 나는 좋은 사람과의 사귐에 있어서 모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을 더욱 개발하고 그것을 어떻게 살려서 매일 다른 사람이나 남을 위해 사용할 수 있을까 를 염두에 두고 넉넉한 마음으로 할 수 있기를 빌 차례입니다.
★ 最上의 業(最上のわざ)
이 세상에서 최상의 업은 무엇? 즐거운 마음으로 나이를 먹고, 일하고 싶어도 쉬고, 수다떨고 싶어도 침묵하고 실망할 것 같을 때에 희망을 갖고 순리에 따라 평안하고 고요하게 자기자신의 십자가를 져라. 젊은이가 원기 왕성하여 씩씩하게 신의 길을 가더라도 시기하지 말고 사람들을 위해 일하기보다는 겸허하게 낮아지고 허약해 저서 이미 남을 위해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친절하고 온화하게 대하고 늙은이의 무거운 짐은 신이 내려주신 선물, 더러워진 마음을 이것으로 갈고 닦아라. 진짜 본 고향으로 가기 위해----. 자기 자신을 이 세상의 연결 고리에서 조금씩 차차 풀어 가는 것은 참으로 훌륭한 일, 그러다가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더라도 그것을 겸손하게 받아드리는 것이다. 신은 최후에 제일 좋은 것을 남겨주신다. 그것은 기도다. 손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최후까지 합장은 할 수 있다.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 위에 신의은총을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이 끝나면 임종의 자리에서 신의 음성을 듣게 되겠지. 「오라, 나의 벗이여! 나 그대를 ( 見拾てじ) 버리지 않겠노라」라고......
★ 인생의 오후를 어떻게 디자인 할 것인가
오늘 낮에는 저 아름다운 別府公園에서 산보를 하였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여러 곳에서 강연을 해오고 호화로운 연회에 참석할 때도 있었지만, 아름다운 자연의 잔디밭에서 도시락을 먹는다는 것, 그 근사함은 어쩌면 나의 생애에 있어서 잊을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먹는 것도 어떤 사람과, 어떤 환경에서 먹느냐에 따라서 맛이 다르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막상 20세의 사람에게도 이제부터의 生涯가 있고, 80세의 사람에게도 이제부터의 생애가 있습니다. 일본여성의 평균수명은 84세입니다만 여기에 사는 분으로 80세가 되신 분은 84세의 평균수명까지 4년밖에 남지 않았다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마세요. 평균수명과 당신의 수명은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가령 90세의 여성이 있다고 하면 일본인의 평균수명보다 이미 여섯 살이나 연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원래 몸이 건강한 사람이 90세가 된 것이기 때문에 거기까지 생존한 사람만 모아 평균하면 또 5 년쯤 생을 연장한다. 결국 여러분의 연령을 생각한 수명이라는 것은 지금부터 평균해서 몇 년을 사는가 그「余命」이라는 것입니다.
★ 인생은 선택의 연속
여러분에게는 그 긴 동안의 생애에 자신의 행동을 선택할 기회가 어느 정도 있었을까요. 明治, 大正時代의 사람은 결혼할 상대를 자신이 결정할 수 없었던 일이 많았습니다. 나는 좀 만혼이었습니다. 결핵으로 일년을 쉬었기 때문에 되도록 결혼을 늦추어 31세에 결혼했습니다. 같은 교회의 그리스찬 여성을 목사님의 소개로 결혼한 셈이지요.
昭和 17년, 전쟁이 시작된 다음해에 東京은 밤이 되면 등화관제로 캄캄하게되고 결혼파티에는 먹을 것도 충분하지 못했던 時代였습니다. 사람은 결혼할 때에 선택을 합니다. 정말이지 전혀, 자유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직장에서 혹은 아는 사람의 소개로 그런 연줄로 선택을 한다, 어떤 주어진 조건에서 설정하게 된다.
그때에 그 사람 혹은 그녀와 결혼하라고 강제적으로 권유 당하느냐, 다행이 결혼하면 어떻겠니, 하고 부드러운 방법으로 권하던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권합니다만 삶 가운데 중요한 선택이라면 이외에 진학에 따른 선택이 있습니다. 여기에 부모가 개입하는 일도 많겠지만 요즘의 진학은 대체로 선생님이 선택을 합니다.
수학을 잘 하니까 의학부를 응시해라 등등, 그러나 의학과 수학이나 물리는 실제로는 별로 관계가 없습니다.
요즘은 자신이 계산하지 않아도 보통 일은 합니다. 그러므로 理數係를 잘 하니까 의학부에 가거라 는 등은 대단히 잘못된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나는 환자를 도울 수 있을까, 하는 感性이 없으면 臨床家는 될 수 는 없는데, 입학 시험에서 감성 테스트는 전혀 없고 기억력이 좋은 理數係에 자신만만한 사람이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아메리카의 理學校의 選者는 면접을 대단히 중요시합니다. 면접을 몇 시간에 걸쳐서 교수 외에도 의학부의 상급생이 함께 면접하고 얘기를 주고받고 합니다. 나중에 교수가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된다고 생각했더라도 의학부의 학생이 볼 때에 이기심이 강한 사람이 아닌가 이런 점을 통찰한다. 그런 모양으로 여러 사람이 다방면으로 면접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때에 아메리카에서는 자원봉사를 재학 중에 한 경험이 없는 사람은 대단히 불리하게 됩니다. 자원봉사로 병원의 일을 도우면서 열심히 일하고 돈보다도 보람 있는 경험을 쌓고 「장래에 나는 어떻게 하든 의사로 일을 하고 싶다」고 절실히 느낀 사람이 의학부에 응시를 합니다. 병원에서 무슨 일이 있는 줄도 모르는 사람이 수학성적이 좋다고 해서 의학부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의학이란 무엇이냐, 병이란 것이 무엇인가, 장애아의 생활은 어떤 것인가를 몸소 체험하고 「나는 꼭 .그 방향으로 가야겠다.」고 결심한 사람이 응시하게 됩니다. 점수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동기와 체험이 면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됩니다.
한편 일본에서는 왜 의사를 지망하느냐 하면 의사는 신분이 안정되어있다.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다, 그리고 연구도 할 수 있고 여러 가지로 조건이 좋기 때문에 의사가 되고 싶다. 라고 하는 의학생이 많습니다. 경제적인 안정이 의사가 되는 첫째 동기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오늘의 일본에 있어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젊은이들은 선생님의 권유에 곧 바로 응하고 만다. 그리고 학교를 졸업하면 이번에는 유명한 商社에 들어가고 싶다, 보오나스가 많은 회사에서 일하고싶다. 어쨌든 요즘시대에 제일 좋은 곳으로 쇄도한다. 어느 학교에 들어갈까, 누구랑 결혼을 할까, 어디에 취직을 하느냐, 하는 것은 정말이지 자기자신이 결정해야 할 일입니다만 그 결정을 타인에게 맡겨버리는 일이 상당히 많습니다.
하-바-드 대학의 의학부 학생은 비교적 나이가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일반대학을 나와 學校先生이 된다든지 혹은 商社에 근무한다든지 연구소로 간다든지 그 외 다른 일이나 농업을 二, 三年 한 것으로 역시 이일보다는 의학의 길로 가고 싶다는 사람이 상당히 많이 應試하기 때문에 졸업할 때 연령은 일본보다도 네 다섯 살은 많고 어떤 의미에서는 어른이 된 사람도 많다. 세상 괴로움을 아는 사람이 의사가 되고 간호사가 된다. 는 것이 아메리카에서는 흔히 있는 일입니다.
여기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인생은 언제든지 우리들 앞에 岐路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둘도 되고 셋도 될 수 있다. 어느 것이 좋은가를 결정 할 때 급료가 좋다든지, 또는 번드레하다든지, 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때에 자신이 어떠한 신념으로 직업이라든지 인물이 라든지를 선택했는가를 곰곰이 성찰하면 인간은 기로에 섰을 때마다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등산가가 산에 올라 날이 저물어 하산을 하는데 두 가지 길이 있다. 어느 쪽으로 갈까 망설일 때 핏켙(등산용 지팡이)이 넘어진 방향으로 간다든지 넓은 쪽의 길을 선택한다든지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요. 신중한 등산가는 그 때에 침낭을 꺼내어 거기서 하루 밤을 묵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침 일찍 행동을 개시해서 잘 못 되면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가 판단을 한다.
결코, 진짜 등산가는 시간을 두고 산의 길을―자신의 인생을 결정하게 됩니다. 우리가 인생의 기로에 섰을 때에 무엇을 기준으로 해서 결정하느냐를 자신에게 묻고 잘 생각하면 선택의 기준이 필요한 것을 알게 됩니다. 말하자면 자신의 가치관입니다. 어느 것이 가치가 있느냐는 것 혹은 어느 쪽 생활이 자신의 인생에 의미 있는 생활이 되겠는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인생의 의미라든지 가치는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물을 돈으로 평가하느냐 사회적인 명성으로 평가하느냐 애정이나 心情的인 것으로 평가하느냐라고 하는 것처럼 평가의 기준이 여러 가지 있습니다. 岐路에 섰을 때에 고민하고 헤매고 그리고 곰곰이 생각하고 행동을 결정했을 때 우리들은 한층 더 성장하게 됩니다.
오로지 한 길로 곧장 간 사람은 성장할 기회가 없음으로 인생의 어디인가에서 무엇인가에 부딪혔을 때에 어떻게 해야할 찌를 모르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우리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드디어 인생의 종말이 가까웠을 때는 우리들은 어떻게 인생의 최후를 맞이할까 하는 최후의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병원에 입원하든지 하고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죽고 싶다고 말해도 의사가 그렇게 해주지 않습니다. 퇴원 시켜 주지도 않습니다. 「이런 상태로 퇴원해서 출혈이라도 하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럴 경우 재 입원 하려고 해도 병실은 없습니다.」그런 말을 들으면 어떻게 할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본의 아니게 그런 중에 점점 의식은 없어지고 원하지 않는 곳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さとう はちろう」사또우 하찌로우 라는 詩人이 있었습니다. 그 분의 손자가 NHK에 있으면서 내가 인터뷰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나는 당신의 할아버지께서는 시인이었는데 어떤 인상을 가지고 있습니까, 당신 심중에 하고 싶은 말은 없습니까」하고 물었더니 한 가지 있습니다.“라고 말 했습니다.「사람은 태어날 자리를 선택할 수는 없지만 죽을 자리를 선택 할 수는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어디에서 죽고 싶은가, 병원이든, 호스피스든 자택에서든 그것은 자신이 선택할 일입니다. 그런데 일단 입원하게 되면 의사는 그렇게 간단히 퇴원을 허가해주지는 않고 본의 아니게 그 병원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용기를 가지고 어쨌든 나의 인생의 최후는 가족과 함께 자택에서 맞이하고 싶다고 말하면 병원이나 의사에게는 그것을 말릴 권리는 전혀 없습니다. 다만 여러분이 선택해서 그것을 주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
막상 내 자신의 생활을 돌아보고 생각해보니 역시 몇 번인가 선택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부모님의 선택에 영향을 받은 일도 있고, 때로는 온전히 자신의 선택이었습니다. 또 어떤 때는 선생님의 선택에 따른 일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부터 앞으로 보다 더 자신이 정하지 않으면 안될 선택이 점점 많아지겠지요. 자신의 인생의 오후를 살기 위한 선택은 여러분 자신이 생각해서 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정한다는 것은 결국 여러분에게 主體性(自主性)이 있다는 것으로서 완전히 나라고 하는 사람이 거기에 나오기 때문에 이것은 대단한 행동인 것입니다. 말뿐만 아니라 行動의 岐路에 서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들이 결혼해 집을 떠나고 빈 둥지만 남게되었다, 남편은 퇴직을 한다, 혹은 몸이 약해 조기사망 할 수도 있겠지요. 미망인이 되었을 때에 그렇다면 지금부터의 생애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日本人의 인생은 불가 50년이라고 했으니까 25세가 한 中間이 됩니다. 그러나 또 40세쯤은 가정에서도 바쁘고 남편은 회사에서도 바쁘다. 바쁠 때는 회사와 맡은바 일, 연구하는 일, 또는 가정 일에 걸쳐서 정말 자신의 일을 생각할 여유도 없이 매일매일 개미 체 바퀴 돌 듯 지나가 버리겠지요. 하지만 아이가 결혼한다든지 정년이 다가온다든지 인생의 後半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누구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요즘은 축구가 대단히 유행하고 있습니다만 축구에서는 전반이 끝나면 十分쯤 휴식하고 후반전으로 들어갑니다. 그때에 감독을 중심으로 전반의 시합을 분석하고 후반은 어떻게 게임을 진행할까 작전을 세웁니다. 선수를 교체하고 새로이 편성해서 후반전에 돌입할 수도 있습니다. 야구는 九回까지 있으니까 매회 작전을 짤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인생은 그와 같이 작전을 언제 어디서 세우고 있는가」하면 좀처럼 확실하게 말할 수 없습니다.
日常에 묻혀서 움직여 왔을 뿐이니까요. 우리들이 오늘 이후로 생각해야 할 일은 인생의 전반과 후반을 어디서부터 나누느냐는 것입니다. 내가 말하는 「人生의午後」는 後半을 말합니다만 오후는 오전보다도 깁니다.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하고 八時頃부터 일을 시작한다. 열두 時까지면 네 時間이 된다. 그러나 점심을 먹고부터 저녁 취침할 때까지는 대체로 그 두 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이 인생의 오후는 오전보다 깁니다. 무엇이 긴가 하면은 자신이 자신의 일을 생각하는 시간이 깁니다. 인생에 있어서 전반의 대부분은 부모님을 의지하고 선생님을 의지하고 회사에 의지해서 생활을 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인생의 후반은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봉사할 일은 없을까하고 생각하는 여유가 있게 됩니다. 55세부터 중년이 시작된다고 말하기에 앞서 린도파-구 夫人의 말에 의하면 55세가 된 여러분에게는 이제부터 인생의 오후가 시작이다, 라고 생각하기 바랍니다. 이제부터 발생하는 여러 가지 일에 대해 무엇을 기준으로 결정해 가느냐를 여러분 자신이 잘 생각하기 바랍니다.
이것을 어려운 말로 하면 철학을 한다는 것입니다. 린도 파-구 夫人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우리들은 적어도 중년이 되면 정말로 내일이 허용될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말할 수 없이 큰 자유를 우리들에게 약속하는 것이 되겠지요」라고.
★ 자기자신의 羅針盤을 가져라
여러분은 여러분의 남편이 정년이 가까운 사람이 여기에 적지 아니 계시겠지요. 지금까지는 일터에서 회사 같은 여러 가지 큰 직장에서 일하고(배에 타고}있었지만 55세가 되고 60세가 되면 누구든 그 배에서 내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二人用 보-트라든지 혹은 未亡人이라면 一人用 보-트에 내려지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배가 큰 시스템으로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만 이제부터는 개개인이 노를 저어 나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 때에 나는 도대체 어디를 向해 노를 저어야 좋을까 하는 선택이 필요해진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런 것을 생각해 본 일이 없었던 것을 알게 되면서 고독을 의식하게됩니다. 나는 무엇인가라는 것을 발견하고 접근하게 됩니다.
그 때 무슨 일이 있어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일만을 생각하는 것 뿐만 아니라 남도 생각한다. 일본만이 아니라 南半球 일도 생각한다. 건강한 자신과 자신의 가족뿐만 아니라 고칠 수 없는 에이즈 환자도 생각한다. 아프리카에는 태어나면서부터 에이즈에 걸린 아기가 몇 백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몇 년 만에 죽어버립니다.
그렇기 대문에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야할 방향을 정하고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스스로 자신이 훈련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때에는 좋은 벗이 필요합니다. 저 사람처럼 살고 싶다는 인생선배 또는 젊은 친구를 가졌다면 인생의 오후가 되어 뜻있는 생활을 선택할 수 있게 됩니다. 몸은 어쩔 수 없이 늙어 가는 것이고 그런 중에도 누구든 정신이나 혼이 건강한 것이 인간으로서는 "첫째 바람" 인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한 것은 이상적이지만 그렇게 바랄 수만도 없는 것입니다. 몸이 약하더라도 나이를 먹었어도 마음이 건강한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타인을 배려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을 지향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체코공화국과 슬로바키아공화국이라는 두 나라가 되었습니다만 나는 20년 쯤 전에 체코슬로바키아의 학회에 갔었습니다. 당시의 체코슬로바키아는 가난해서 아이스크림을 사는데도 100m쯤 줄을 서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에 지하철을 탔더니 만원이었습니다. 나는 처와 함께였습니다만 전차 안에 떠밀려 들어갔더니 눈앞에 앉아있던 5,6세정도의 두 남자아이가 반사적으로 일어서며 "여기 앉으세요."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일을 나는 日本에서는 한 번도 경험한 일이 없습니다. 지금껏 이 나이가 되도록 東京의 전차를 타고 "여기 앉으세요." 하고 말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경로석이 있긴 하지만 젊은 사람이 앉아 누구나 할 것 없이 신문을 본다든지 앉아서 졸고 있습니다. 경로석이 있는 것은 日本이나 있습니다. 전차에 노인이 타면 젊은 사람이 일어서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일본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는 자기가 서는 한이 있어도 손자를 앉히는 과잉 보호를 합니다. 나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일어서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는 것입니다. 즉 반사적 행동입니다. 반복되는 행동이 그 사람, 또는 그 사회의 성격이 되어 "습성 이 된다" 는 동양의 思想과도一致합니다. 관습이 그 사람의 습관이 된다. 사람을 보면 미소로 대하고 타인의 일을 배려한다는 것이 平素의 일이 되어버린 습관은 역시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한다는 것은 생각 끝에 하는 것이 아니고 자연히 손이 나간다. 그런 인간이 되도록 우리는 스스로 자기자신을 만들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中年을 지나서부터라도 개조가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젊지 않으면 변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더욱더 순진한 마음으로 인생의 오후를 맞이하였을 때 아름다운 자신을 만들도록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나는 젊은이들에게 자주 하-바-드大學의 엘리옷트 총장의 말을 인용합니다. 이 분은 하-바-드 대학의 학장으로 40년간을 봉직한 분입니다. 수학과 화학의 선생님이셨던 것으로 35세에 학장이 되셨습니다. 비상한 행정력을 갖춘 사람으로 학장으로 추대되어 75세까지 일한 분입니다.
이 분이 학장을 사임할 때 하-바-드의 학생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미국의 젊은이여! 너 자신의 일을 너무 지나치게 생각하지 말라」 영어로 "don't think too much about your selves" 「언제나 타인을 생각하는 습관을 들여라. 그러면 너에게 應報를 가져다 줄 것이다」라고. 타인의 일을 배려하는 것이 습관이 되면 저절로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 된다. 남에게 좋은 일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저절로 손을 내밀게 된다. 남에게 대한 태도가 저절로 부드럽게 된다, 그런 인간이 되라. 고 젊은이에게 요구했다. 이 말에 나는 대단히 감동을 받았기 때문입
니다.
★ 언제나 배우는 자세로
정작 시간이 있든지, 일의 양이 적어졌든지 가정의 부담이 적어졌을 때도 자기반성의 기회를 갖게 됩니다. 거기서 노력하면 또 새로운 자아형성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大腦는 60세가 되어도 아직 四分의一밖에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55세를 지나서라도 무엇인가 새로운 일을---지금까지 하고 있지 않았던 일이 라도---시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日本人의 수명은 확실히 세계제일로 길어졌습니다만 불행한 장수 고생스런 장수가 아니고 감사하며 그리고 보람된 장수의 마음가짐이 아니면 안됩니다. 그러나 인생의 후반에 여러 가지 불행한일이 신변에 일어나게 되고 점점 원기가 없어지는 사람이 많습니다.
애써 키운 아이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든지 백혈병으로 아이를 잃는 일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이를 잃으면 부모는 인생의 희망을 빼앗기고 맙니다. 혹은 배우자가 죽으면 함께 살아가는 현재를 잃게 됩니다. 지금까지 夫婦였던 것이 오늘부터는 홀로 살아가게 된다. 지금 꼭 텅 빈 공간에 홀로 있는 것 같은 쓸쓸함, 혹은 親友가 죽으면 사람은 자신의 一部를 상실한 것 같은 기분이 된다. 父母가 죽으면 사람은 그 과거를 모두 상실하게 된다. 부모로부터 여러 가지로 사랑을 받던 그 부모가 지금 눈앞에 없어지면 즐거웠던 과거가 사라진 것 같은 상태가 된다,
人間은 오래 살아오는 동안 무엇인가 喪失의 體驗을 몇 번씩 하게 됩니다. 다만 그 상실체험 중에 있을 때는 서포-트(support) 하는 제 삼자가 있어야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의 인생의 후반은 누군가를 서포-트(support) 할 수 있는 자신 이 되고 싶다. 그것 역시 우리들의 사는 보람과 관계가 됩니다. 저 사람을 위해 자신이 서포-트 해 주고 싶다, 누군가를 위해 여러 가지로 노력하는 것은 장래에 그 사람으로 부터 무언가를 받기 위함이 아니라 자기를 바쳐서 봉사하는 기쁨이 되기 때문입니다.
자원봉사자(volunteer) 라는 것은 되돌려 받으려고 하는 행위는 아닙니다. 헌혈을 하는 동기가 자신이 필요로 할 때에 혈액을 거저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면 그것은 진정한 자원봉사자가 아닙니다. 진정한 자원봉사자라 하는 것은 자신이 한 행위나 행동, 또는 사용한 금전에 대해서 후회나 돌려받기를 바라지 않고 몸을 바치는 행위입니다. 시간을 바치고 재산을 바치는 행위를 자원봉사라고 합니다.
나는 돈도 없다, 지식도 없다. 이렇다할 인품도 못된다. 그런 사람도 어떤 사람을 위해 시간을 바칠 수는 있습니다. 이런 예가 있습니다. 어떤 집회가 있다, 많은 사람을 불러 모으고 싶어도 사람이 모여 들지 않을 때 정각에 언제나 제일 앞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의 존재는 그 모임을 존속시키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그 모임을 위 해 시간을 바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을 바치는 자원봉사는 삶의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일을 함으로서 우리들의 후반의 인생에 삶의 기쁨을 발견하게 되어 자신에게 주어진 수명을 감사할 수 있는 생활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이제 나는 언제 죽어도 좋아, 라고 생각하는 境地에 도달하고 죽음이란 것이 그렇게 두렵지 않게 될 것입니다.
나이를 먹고 몸이 약해져 타인에게 폐를 끼칠 정도라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났다고 생각 하는 불행한 사람도 있습니다만 몸이 약한 사람, 정신적으로 약한 사람에 대해서는 물론 복지 차원에서 뒷받침해 주어야 하지만 동시에 누군가가 개인적으로 뒷받침할 선의의 지원이 있어야 합니다.
★ 젊은이들과의 접촉을
사람은 나이가 들면 대단히 외로움을 탑니다. 그것은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젠 사회에서는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그런 쓸모없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정년퇴직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입니다. 사회에서 스크랩(scrap)처럼 내다 버려진 감이 들기 때문입니다. 郊外로 나가면 자동차의 스크랩이 쌓여있지요. 자신이 어떤 자동차 같다고 느끼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혹시라도 文明이라는 것이 日本에 있고 그 도시에 있다 해도 거기 살고 있는 노인이 나는 물질문명의 마지막의 스크랩이 되어있다고 느낀다면 이것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文明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건강이 나빠도 나이를 먹어도 그 사람의 존재가 스크랩(scrap) 이라는 인상을 당사자에게는 주지 않도록, 예전에 많은 일을 한 소중한 노인으로서 우리들은 그들의 노고에 대해서 감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므로 아이나 젊은이가 노인을 그렇게 생각하도록 교육을 평소부터 시켜야합니다.
젊은이와 노인이 어디에서든 가까이 지낼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노인 뿐인 노인정에서의 생활은 殺風景이 될 것입니다. 언제든지 젊은이가 자원봉사자로서 노인정에 가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젊은이가 노인과 접촉함으로 젊은이는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經驗學習을 할 수 있고 언젠가 닥쳐올 자신의 인생의 오후를 어떻게 자신이 데자인 하면 좋을까 하는 것을 더욱 열심히 생각하게 되겠지요.
노인이 젊음을 지키는 데는 "S.울만의「靑春」이란 名詩"』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은 신념과 함께 젊어지고 疑惑과 함께 늙는다.」 라는 것입니다.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으면 나이를 먹어 인생의 가을이 되어도 그 사람은 그렇게 늙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自信과 함께 젊어지고 恐怖와 함께 늙는다.」라고도 말합니다. 스스로 自信을 가지고 人間 답게 살아가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생활한다는 것이 그 사람을 젊게 합니다.
그리고 최후에 「희망이 있는 한 젊고 실망과 함께 늙어 쓸모 없이 된다.」라고. 나이를 먹어도 언제나 희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젊음을 지키는 秘訣입니다. 癌말기환자에게 무엇이 희망이냐고 묻는다면 다음과 같이 말하겠지요. 우리들 인생은 모두 유한합니다. 이 세상을 떠난다는 쓸쓸한 일이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오늘을 살 힘만 있어도 좋은 것입니다. 오늘은 이것으로 좋았구나, 혹시 내일이 허락된다면 내일을 즐겁게 충실히 살고 싶다, 그런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역시 오늘을 감사하는 마음이라야 합니다. 그리고 만일 허락한다면 또 한 번의 여름, 또 한 번의 한 해를 살고 싶다는 바람으로 혹시 허락된다면 손자의 결혼식까지는 살고 싶어질 것입니다
★ 만족한 生과死
聖路加國際病院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을 소개합니다, 남편은 75세로 癌에 걸리고 아내는 72세인데 癌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함께 聖路加國際病院에 입원하고 승려인 그 남편은 자기가 癌이라면 癌이라고 말해 줄 것을 主治 에게 강력히 말했습니다. 그래서 주치의는 당신은 폐암으로 얼마 남지 않았다. 라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한편 아내는 腸癌으로 간장에 轉移되어 있었습니다만 확실히 말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의 병실을 어떻게 할까, 하고 여러 가지로 議論이 있었습니다. 聖路加病院은 전부 個室(독방)로 되어있기 때문에 夫婦同室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아내 쪽이 餘命이 짧기 때문에 두 사람은 가까운 병실로 하는 쪽이 좋지 않겠는가, 그러나 餘命이 짧기 때문에 남편 가까이에 옮긴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아내에게는 나을 것이라고 말하고 때때로 층이 다른 남편을 문병하는 쪽이 좋지 않을까. 등등 여러 가지 의견이 있었던 것입니다. 막상 그 따님이 결혼을 하게 되어 있었습니다만, 그 때까지 어머니가 살아 있을까 하는 것 이었습니다.
그리하여 6月의 결혼식을 無理를 해서라도 5月로 하고 양친이 살아있을 때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게 하자. 라고 얘기가 있어 결국, 어머니가 휠체어로 움직일 수 있을 때에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습니다. 남편은 자신이 승려였습니다만, 아내의 參席이 가능하게 聖路加病院의 禮拜堂(chapel) 에서 의 결혼식을 쾌히 承諾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런 때에「어머니가 건강 할 때 결혼식을」라고 한 것이 병명을 말하기 전에 첫 단계가 된 셈이지요.
日本의 통계에서는 진행한 癌의 경우 대체로 一割정도 알립니다. 그러나 四割의 癌患者는 醫師가 말하지 않아도 자신은 필시 癌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英國이나 美國에서도 三十年前에는 열 사람가운데 한사람에게 암을 선고하고 아홉 사람에게는 선고하지 않았다. 지금의 日本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98%의 환자에게 癌 이라고 말하고 그리고 통증에 대해서는 충분히 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삶을 여러 가지 의미로 도와 줍니다. 醫學面에서 뿐만 아니라 다방면으로 援助를 하는 것으로 시행되고 있습니다.
★ 支え合う友と (버팀목이 되는 친구와)
人生의 後半은 최후에는 병이 들지 모르지만 그때에 자신의 주변에 써포-트(support)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고, 같은 병을 앓는 환자가 곁에 있어도 좋다. 同病相隣이라고 잘 통합니다. 자기에게 병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다른 환자를 위문하는 동안에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살다가 보면 여러 가지 역경을 만난다. 아이를 잃는다든지 여러 가지 어떤 일이 장래에 일어날지 모르지만 그 쓴잔을 여러분이 받을 때, 그 슬픔을 버틸 수 있게 하는 친구가 있으면 그 슬픔은 二分의一이 됩니다. 그 반대로 기쁨을 친구와 나누면 그 기쁨은 두 배가됩니다. 우리가 받은 괴로움이나 병이라는 것은 모두가 마이너스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感性을 높이고 문제 있는 친구를 버티게 하는 힘도 되는 것입니다. 모든 藝術이나 宗敎는 人間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을 갖는 것으로 인생의 생활 그 自體가 풍요하게 되고 그 사람의 사는 보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나이를 먹어도 學習을 始作해야 합니다. 젊어서는 한 시간에 외었던 것이 나이를 먹어서는 4시간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根氣있게 꾸준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젊은 사람도 나이를 먹어서 새로운 것을 배우기 시작한 노인을 보고 그런 일은 안 하는 편이 좋겠다고 말하지 말고 나이든 사람이 學習意慾을 가졌을 때는 그런 마음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인간에게 長壽가 주어진 것은 대단히 좋은 것입니다만 긴 것보다도 質이 문제입니다. 그 質이 좋으면 좋을수록 사는 보람이 있고 그리고 드디어 세상을 떠날 때가 와도 「나는 태어나기를 잘 했다, 의미가 있었다.」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 老人의 生命의 풍요로움 「老化」와「늙음」
老化라는 것은 生物學的 하나의 表現입니다. 그리고 늙음(老い)이라는 멋진 日本語는 人間學的인 表現입니다. 우리들은 老化됨과 同時에 늙는다는 것 두 가지를 경험하게 됩니다. 노화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分析하는 방법이 있습니다만 대충 분석하면 하나는 生理學的 老化입니다. 生理學的 老化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어떤 유전적인 요인에 의해 규정되어진 나이에 따른 변화로 모든 사람에 있어서 피할 수 없는 現象입니다.
病的 老化라고 하는 것은 環境의 要因 또는 疾病등에 의해 몸 내지 정신적 능력이 減退한 狀態입니다만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일어난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75세 이상이 되면 모든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環境의 影響을 받아 지금까지의 생활습관이 그 나이만큼 되는 病的인 老化를 가져오기 때문에 피하기는 어렵다 고 할 수 있습니다.
數年前에 聖路加國際病院의 一週間의 人間독크(dock)에 85세의 老人이 입원해서 정밀 검사를 받았습니다. 이 노인에게는 병적인 곳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80세를 넘어도 生理的인 老化 뿐으로 병적인 노화가 없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나는 놀랐습니다. 그리하여 그 노인이 돌아갈 때에「당신이 이 상태를 유지한 것은 지금까지의 環境이나 生活 習慣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一週間의 食事 그 외 生活行動을 적어 報告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그것으로 硏究(工夫)해 보고 싶습니다.」 라고 부탁하였습니다.
나는 "그것이 언제쯤 올까" 하고 생각하면서 一週間 二週間을 기다렸지만 二週後에 新聞紙上에서 그가 사망했다는 기사를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解離性大動脈瘤의 破裂이라도 일어났다는 것인가, 아니면 心筋梗塞이라도 일어났다는 것인가, 人間독크(dock)의 診斷이라는 것은 信用할 수 없다고 하는 말도 念慮 안 할 수가 없어 바로 宅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랬더니 며느리가 받더니「선생님 정말 미안합니다.」하고 도리어 사과를 하지 않겠습니까.「어떻게 된 것입니까,」 했더니「二層에서 굴러 떨어져 돌아 가셨습니다.」이러한 해프닝은 老人에게 종종 일어나는 일입니다.
노인은 몸의 바란스가 좀 까다로워서 그것이 원인이 되어 사고가 생긴 것이 아니겠습니까. 美國의 NIH(國立衛生硏究所)의 쇽크박사의 老化現象 進行에 관한 연구를 알기 쉽게 설명하겠습니다. 30세부터 80세까지에 나이를 더해가면서 더불어 空腹時의 血糖値는 변하지 않지만 心臟計數는 조금씩 腎血瘤量도 내려가고 肺의 最大換氣量도 내려가고 最大酸素攝取量도 내려갑니다.
건강한 노인일지라도 심장의 기능검사를 하면은 若干 濃縮力이 떨어진다든지 또는 血中尿素窒素가 높은 편입니다. 그러나 노인은 특히 많은 淡白質을 취할 것도 아니고 마라톤을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 정도의 低下는 노인의 正常的인 생활에는 전혀 支障이 없습니다.
부족한 제가 감히 日野原重明 (히노하라 시게아키)님의 저서를 먼저 양해도 없이 이런 무례를 범하게된 것이 罪라면 저의 기력이 날로 쇠퇴해 가는 초조함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넓으신 아량으로 해량해주시기 바라면서....... 감사합니다.
문헌출처: 저자/日野原重明 [풍요로운 노년의 삶] 中에서-
2003년여름/ 번역/ 김종이
첫댓글 은총, 우매한 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聖事를 통하여 보여 주십니다. 행복, 수없이 많은 제 주변 이웃의 사랑을 느낌으로서 만끽하고 삽니다. 찬미 예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