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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7일 살아나서 살리는 교회 주일 설교
제목 : ‘교회 이야기’ - 1. 함께! 한 마음으로!
본문 : 사도행전 1장 14절
이들은 모두,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동생들과 함께 한 마음으로 기도에 힘썼다. <새번역>
들을 때만 해도 그냥 가볍게 생각해서 별 것 아닌 거 같은 질문이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자꾸 생각나서 오래 곱씹게 되는 질문이 있습니다. 어떤 집사님께서 제게 하신 질문이 그랬습니다.
“교회를 사랑하세요?”
“교회가 어떤 의미인가요?”
“진짜 교회란 무엇일까요?”
사실 아주 복잡한 질문이지만 당시에는 그냥 간단하게 단답형으로 대답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단답형으로 끝날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교회를 사랑하기 위해서 교회에 대해서 정확히 알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그럴수록 진짜 교회가 무엇인지 명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교회’에 대해서 배운 것이 많이 없었습니다. 신학교를 다닌 저도 그럴진대 일반 성도님들이 찾아서 공부하지 않는다면 실제로 아는 듯 했지만 잘 모르는 것이 현실인 지식의 영역이 ‘교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교회를 반드시 지식으로 잘 알고 있어야만 ‘믿음이 좋다’라고 하는 공식으로 이어가고 싶은 생각이 아닙니다. 교회에 대하여 안개에 가려져 있는 듯 침침하다면 안개를 걷어낸 후 명확하게 보아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4월에서 5월까지 2달여간의 여정을 통하여 ‘교회’에 대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들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음성을 통하여 성경 중 특별히 사도행전이 들려주고 있는, 사도행전을 통하여 발견할 수 있는, 교회의 본질에 대하여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도행전 1장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40일이 지난 시점부터의 이야기로 문을 열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고난을 받으신 뒤에, 자기가 살아 계심을 여러 가지 증거로 드러내셨습니다. 그는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여러 차례 나타나시고,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일들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장 3절, 새번역>
그리고 예수님은 성령의 임재에 대한 약속과 그 성령 임재 후에 제자들이 걸아가야 할 길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모든 믿는 자들은, 물론 성령의 임재에 대한 기대도 있었지만, 솔직히 예수님이 승천하시는 것이 두려웠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다시 혼자 남겨지는 것만 같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반드시 승천하셔야 했습니다. 그래야 다시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보혜사! ‘성령님’이 임재 하셔야 할 때가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멈춰 서 있는 교회가 아닌 전하는 교회로, 진정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교회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제자들과 모인 자들은 예수님이 잡히시던 그 날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입니다. 더 이상 도망치지 않습니다. 부활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활’ 이라는 기점이 너무도 중요한 것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 것이 되었기에, 이 전에 두려웠던 것이 이제는 더 이상 두렵지 않고, 이 전에 행하던 실수의 반복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과 모인 이들의 선택은 한 곳에 모여, 함께 한 마음으로, 기도에 힘쓴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동생들과 함께 한 마음으로 기도에 힘썼다. <사도행전 1장 14절, 새번역>
바로 이 구절에서, 오늘 ‘교회’를 이해하기 위한 아주 중요한 문구가 등장합니다. 바로 ‘함께 한 마음으로’라는 부분입니다. 저는 오늘 이 문구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나누고 싶습니다.
첫째, 교회는 ‘함께’ 라는 단어로 시작됩니다.
1.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께서 너무도 사랑함으로 지으신 아담과 하와, 즉 인간과 ‘함께’ 하고 싶어 만드신 곳이 에덴동산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현 시대의 ‘에덴동산’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야훼 하느님께서는 동쪽에 있는 에덴이라는 곳에 동산을 마련하시고 당신께서 빚어 만드신 사람을 그리로 데려다가 살게 하셨다. <창세기 2장 8절, 공동번역>
에덴동산이 만들어진 목적은 하나님과 사람의 공존이었습니다. 창조주가 피조물과 함께 하기 위하여 만들어주신 공간이었다는 것입니다. 지구라는 공간을 만들어주셨지만, 그 지구에서도 특별히 구별하여 에덴동산을 마련하시고, 그 곳에 사람을 데려다가 살게 하셨습니다. 그 에덴동산이 바로 ‘교회’입니다. 온 우주가, 지구가 그 어디라도 하나님의 집이지만 하나님은 특별히 교회를 세우셔서 그 교회에서 인간과 함께하기 원하는 마음을 나타내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를 볼 때마다 하나님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마련해 주신 공간입니다. 그 곳에서 먼저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시며 더욱 특별히 인간과 함께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가 중요한 것입니다. 삶의 예배도 중요하고, 일상의 예배처소도 중요하지만 교회가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함께’하기 위하여 마련한 장소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결코 아담과 하와 둘을 위한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뱀과 대화 나누며 하나님이 마련하신 공간과 그의 목적에 대해서 고민하는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언제든 하나님이 찾으시면 기쁨으로 화답하며 만날 수 있는 공간이며, 우리가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도 기쁨으로 만나주시는 공간이 에덴동산이고 교회입니다.
절대적으로 교회는 하나님이 먼저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기초로 해야 합니다. 절대 인간들의 모임이 우선되어 하나님을 손님인 듯 초청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마련하시고, 하나님께서 모으신 것으로 하나님이 주인 된 교회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철저히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을 지향하고,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그 외에 다른 목적은, 특히 인간의 생각이나 계획 등은 교회에서 배척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인간들과 함께 하기 위하여 손수 만들어 주신 ‘에덴동산’입니다.
2. 하나님을 믿는 이들의 함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손수 마련해주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아주 단순하게 ‘믿음’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공간에서 하나님을 제외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을 얼마든지 만들어주실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데,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공간인 에덴동산에 더 큰 관심을 두었기에 그들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믿지 않으면 절대 거주할 수 없는 공간이 에덴동산이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하나님을 믿고자 하는 사람들, 하나님과 믿음에 대해 관심이 있는 이들이 함께 하는 공간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예배’를 드리는 이들이 함께 하는 곳이 교회여야 하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현대 사회에서 교회는 어느 순간 ‘템플스테이’처럼 ‘힐링과 위로와 쉼의 장소’로 변질되어 버린 것이 사실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인들이 자발적으로 원해서 그런 교회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위로와 도움이 필요하고, 평안을 찾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곳이 교회가 되어 주어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 것이 교회에 주목적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의 모임을 통해 교회로 형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위로가 필요하기에 하나님을 전해주고, 도움이 필요하기에 하나님을 전해주고, 평안을 찾기에 하나님을 전해 주어,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복음을 전해주는 곳이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더욱 교회는 인간들의 친목을 위한 공간이 아닙니다. 교회는 인간의 꿈을 펼치는 무대가 아닙니다. 교회는 믿는 이들이 함께 모여 예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사도행전 1장 15절은 예수님의 승천 후 모인 인원이 약 120명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부활 후에 만나 주신 인원은 이보다 훨씬 더 많았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그 후에 그리스도께서는 한 번에 오백 명이 넘는 형제자매들에게 나타나셨는데, 그 가운데 더러는 세상을 떠났지만, 대다수는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5장 6절, 새번역>
훨씬 더 많은 수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지만 함께 모여 있는 이들은 120명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들이 모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그들 위에 성령님이 임재하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교회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외면해야 하고, 믿음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을 교회에 발도 들이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 드리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믿지 않는 이들에게 믿음으로의 발판과 통로가 되어주는 것이 교회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는 자들의 모임을 만들어가야 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기초가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그렇게 믿는 자들의 모임이 되기 위하여 말씀과 기도, 예배가 회복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직 믿지 않는 많은 이들이 주변에 있습니다. 그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믿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교회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사람의 방법이나 이벤트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결코 사람 중심의 교회로 남겨 두지 말아야 하고, 특정 인물 위주로 모이는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들의 ‘함께’여야 합니다.
3. 평등으로서의 ‘함께’
하나님께서 손수 마련해주신 교회에서 하나님을 믿는 이들은 반드시 상호 존중과 기회의 평등과 발언의 자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 어떤 차별도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직분에 따라 해야 하는 일의 차이가 있고, 개인적 능력에 따른 차이도 있고, 나이에 따른 예절도 존재해야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차별로 가도록 내버려 두는 공동체가 아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로가 지체이기에 상호 존중이 필요하고, 서로가 해야 할 역할이 다르기에 평등한 기회가 주어져야 하며, 각 자가 소중하기에 발언의 자유가 보장되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몸에 많은 지체가 있으나, 그 지체들이 다 같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여럿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있으며, 각 사람은 서로 지체입니다. <로마서 12장 4~5절, 새번역>
심지어 뱀도 자기의 생각을, 다른 장소도 아닌, 에덴동산에서 이야기할 수 있었다는 자체도 한 번쯤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뱀은, 주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들짐승 가운데서 가장 간교하였다. 뱀이 여자에게 물었다. "하나님이 정말로 너희에게, 동산 안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느냐?" <창세기 3장 1절, 새번역>
저는 하나님께서 이 발언을 못하게 충분히 막으셨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너무도 사랑했던 인간이 그 뱀의 말에 호통을 치며 에덴동산의 질서를 바로 잡아 주시기를 기대하셨는지도 모릅니다. 얼마든지 범죄 하지 않도록 개입하실 수 있었지만 개입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은 그만큼 창조주와 피조물이 아닌 인간과 평등하게 지내시고자 노력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가끔은 도대체 하나님의 허용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신비로울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 말씀이 하나님의 허용에 대해서 더 깊은 묵상을 불러오게 합니다.
예수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마가복음 2장 17절, 새번역>
교회는 이 말씀을 잘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인간은 불완전하고 부족한 존재입니다. 누구도 누구 위에 설 수 없으며, 그 누구도 서로를 구원할 수 없는 피조물일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 이들답게 평등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땅히 상호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며, 원하는 이라면 누구나 평등하게 기회가 주어져야 하고, 공동의회를 통해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도록 막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차별이 존재하는 교회가 되지 않도록, 평등으로서의 ‘함께’를 추구하는 교회가 되도록, 다음에 나오는 말씀들을 주의 깊게 묵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어찌하여 너는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마태복음 7장 3절, 새번역>
겸손함과 온유함으로 깍듯이 대하십시오. 오래 참음으로써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십시오. 성령이 여러분을 평화의 띠로 묶어서, 하나가 되게 해 주신 것을 힘써 지키십시오. <에베소서 4장 2~3절, 새번역>
모든 사람이 이 말을 좋게 받아들여서,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인 스데반과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안디옥 출신의 이방 사람으로서 유대교에 개종한 사람인 니골라를 뽑아서, 사도들 앞에 세웠다. 사도들은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였다. <사도행전 6장 5~6절, 새번역>
둘째, 교회는 ‘한 마음으로’ 라는 단어를 추구한다.
교회는 많은 마음들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각 자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기에 정말로 하나가 될 수 없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그런 인간들의 모임이다보니 교회도 똑같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반은 맞고, 반을 틀린 이야기입니다.
교회는 흩어 진 마음에서 한 마음으로 변해가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각 자가 다른 마음에서 이 한 가지 마음으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이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5~7절A, 새번역>
한 마음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의미합니다. 교회에서 말하는 마음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감으로 ‘한 마음으로’ 가는 길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무엇입니까? 빌립보서 2장은 아주 친절하게 나열해 주고 있습니다.
1. 무슨 일을 하든지, 경쟁심이나 허영이 아닌 겸손으로 행하라!
교회 안에서 ‘한 마음으로’ 일을 한다는 것은 철저히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의 무슨 일이든지 사람 간의 경쟁은 없어야 하며, 사람에게 보여 지는 것에 경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해 주셨기에 가능하고,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은혜로 이 일을 감당하는 것이며, 무익한 종으로 순종하여 행하는 겸손이 필요한 것입니다. 겸손은 절대 사람의 칭찬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인정을 바라보며, 하나님으로 만족하는 일의 진행 방법입니다.
2. 자기보다 서로 남을 낫게 여기라!
우리 각 자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이고, 존귀한 존재들입니다. 확실합니다. 그런데 그건 절대 나에게만 적용되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 각 자 모두 특별하고 존귀하다는 뜻입니다. 내가 남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평등하게 임하기에 더 사랑하고, 덜 사랑하는 개념을 언제나 우리의 견해일 뿐입니다. 열등감을 벗어버려야 하는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결코 서로가 서로보다 낫지도 못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초의 마음에서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까지 갈 수 있다면 교회는 얼마나 건강한 공동체가 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으로부터 이 마음을 반드시 배워야 합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8절, 새번역>
내가 특별한 만큼 상대도 특별합니다. 내가 존귀한 것 이상으로 상대방도 하나님께 존귀한 존재입니다. 그러니 상대를 인정해 주고, 높여 주십시오. 예수님처럼 자기를 낮추고 순종하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축복을 경험하시길 소망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9절, 새번역>
네가 초대를 받거든, 가서 맨 끝자리에 앉아라. 그리하면 너를 청한 사람이 와서, 너더러 '친구여, 윗자리로 올라앉으시오' 하고 말할 것이다. 그 때에 너는 너와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을 받을 것이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면 낮아질 것이요, 자기를 낮추면 높아질 것이다. <누가복음 14장 10~11절, 새번역>
3. 자기 일만 돌보지 말고,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일도 돌보아 주라!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장 구별된 거룩한 삶이 있다면 바로, 타인을 위한 삶입니다. 누구나 자기 일을 돌보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조금도 특별할 것이 없습니다. 하지 말라고 해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일이라면 최선을 다합니다. 그런데 그 최선만큼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주라는 것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냥 흘려들었던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둘째 계명도 이것과 같은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한 것이다. <마태복음 22장 39절, 새번역>
자기 몸을 사랑하는 것에 얼마나 최선인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자기 몸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동일하게! 이웃을 사랑하고 하신 말씀이 하나님 사랑과 함께 예수님께서 알려 주신 가장 큰 계명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냥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나에게 베풀 수 있는 최대한 사랑만큼! 그 사랑의 크기만큼! 남을 낫게 여기며 사랑하는 모습이 가진 존재가 교회라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예배자 여러분, 교회는 ‘함께! 한 마음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아직 교회라는 이름이 등장하지 않았을 때에 그들을 규정짓는 가장 명확한 말씀이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동생들과 함께 한 마음으로 기도에 힘썼다. <사도행전 1장 14절, 새번역>
하나님께서 손수 마련해 주셔서 인간과 ‘함께’ 하고 싶어 하시는 에덴동산이 바로 교회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들이 함께 모여야 합니다. 그렇게 모인 이들은 평등으로 함께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교회는 ‘한 마음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한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를 통하여, 예수를 배워, 예수를 닮아, 겸손으로 행하고, 남을 낫게 여기며, 다른 사람을 돌보아 줄 줄 아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 땅의 모든 교회들이, 우리 살아나서 살리는 교회가 이렇게 시작되고, 이런 가치를 추구하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함께! 한 마음으로!”
이 시간은 말씀의 삶 속 임재를 위하여 믿음으로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삶의 기도를 다함께 선포하겠습니다. 한 주간 동안 이 선포와 같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1. 하나님과 함께 하는 그리스도인,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2. 교회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추구하기 위한 공동체가 되기를 원합니다. 서로가 믿음의 동역자를 되게 하시고, 더 많은 동역자를 보내주시기 원합니다.
3. 교회가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대로 평등, 용서, 사랑을 통하여 하나가 되기를 원합니다.
4. 무슨 일을 하든지, 경쟁심이나 허영이 아닌 겸손으로 행하는 동역자가 되기 원합니다.
5. 자신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동역자가 되기 원합니다.
6. 자신의 일을 넘어 다른 사람의 일까지 돌보아주는 동역자가 되기 원합니다.
7.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교회가 되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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