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 남도유배길(다산수련원-영랑생가)-2
![](https://t1.daumcdn.net/cfile/cafe/236D474D5339017634)
![](https://t1.daumcdn.net/cfile/cafe/267C2E4D5339017B2C)
백련사 만세루를 빠져나와 주차장 쪽으로 내려가는 길에도 울창한 동백나무가 아름답게 꽃을 피우고 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7330E4D5339017F0C)
백련사주차장에서 왼쪽 산길로 접어든다. 지금까지 북적거렸던 사람들은 어디가고 한적하기 이를 데 없다.
평범한 야산에는 후박나무와 사스레피나무 같은 온대성 식물이 소나무 등 다른 나무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진달래가 활짝 피어 봄 향기를 전해준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40B3D4D5339018324)
산 아래로는 푸른 보리밭이 산뜻하고, 보리밭 너머로 강진만의 바닷물이 출렁인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2051C50533902532B)
산자락을 내려오니 길은 강진만 제방으로 길게 이어진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26DEF4D5339018833)
강진만은 강진군 강진읍·도암면·신전면과 칠량면·대구면·마량면 사이에 형성된 만(灣)으로 구강포라고도 부른다.
아홉 개의 물줄기가 만난다는 구강포(九江浦)는 강진만 어딘가에 있는 포구 이름이라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디를 일컫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37EC750533902582D)
이곳 강진만에서는 겨울이면 천연기념물인 고니(백조)를 비롯하여 청둥오리·도요새·백두루미 등
각종 철새가 서식한다. 드넓게 펼쳐진 갈대와 갯벌, 바지락, 꼬막, 맛조개, 갯지렁이 등
먹잇감이 풍부하여 철새들이 겨울을 나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강진만 너머로는 칠량면·대구면·마량면의 산들이 다가오고, 그 뒤로 장흥 천관산도 버티고 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40696505339024529)
![](https://t1.daumcdn.net/cfile/cafe/2148A4505339024A05)
길게 이어지는 제방 길을 걷다보니 만덕산에 기대고 있는 마을이 푸른 보리밭과 어울리고,
물이 빠져 갯벌을 이룬 강진만이 질박하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14A59505339024F05)
![](https://t1.daumcdn.net/cfile/cafe/21041E50533902B02D)
길은 자전거도로를 겸하고 있어 가끔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사람들도 볼 수 있다.
걸을수록 강진읍내가 점점 가까워진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1088850533902B42B)
![](https://t1.daumcdn.net/cfile/cafe/24188D50533902BA22)
탐진강이 바다와 만나는 곳이라 넓은 습지를 이루었다. 습지에는 섬처럼 갈대밭이 형성되어 있고,
갈대밭 사이로 구불구불 갯벌 길이 형성되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324AE50533902BE1C)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이곳에서는 장어와 재첩이 서식한다. 그래서 장어 잡이 소형 배도 있고, 게와 재첩을 잡으러 가는 할머니도 만난다.
“갯벌에서 게와 재첩을 잡는디 옛날 같이 많이는 안 잡혀.”
![](https://t1.daumcdn.net/cfile/cafe/2656E250533902C301)
이곳에서 자연산 장어를 잡는 방법은 옛날 방식 그대로다. 바다 속에 돌무덤을 만들고 나서
돌무덤 밖으로 그물을 빽빽이 친 다음 돌을 밖으로 끄집어낸 후 그 안에 있는 장어를 잡는 방식이다.
이렇게 잡은 장어는 탐진강 하구에 놓인 목리다리 밑 식당에서 인기리에 판매 되었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목리장어 하면 알아주는 음식이었다.
지금은 잡히는 양이 적기 때문에 미리 주문해야 자연산을 맛볼 수 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3393648533903743B)
2월 중순부터 5월 중순까지 약 3개월 동안은 이곳에서 실뱀장어를 잡는다.
아직도 인공적으로 장어를 부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부화가 되어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오는
실뱀장어를 잡아 민물에서 양식한 후 시판된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14E26485339037830)
바다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리면 청보리밭이 싱그럽고 눈부시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33F9D485339038237)
3km 정도 제방길을 걷고 나서 남포교를 건너니 남포마을이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22159485339038607)
2번 국도가 지나는 도로 아래 굴다리를 지나니 강진읍내가 지척이다.
금방 읍내로 들어설 것 같은데, 길은 외곽으로 한참을 돌아서간다.
탐진강변에 자리를 잡은 큰 마을인 목리로 들어선다. 목리에는 이학래의 가옥이 있었다.
다산선생이 1806년부터 1808년까지 2년 가량 머물렀던 이학래 가옥은 집터만 남아있을 뿐이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524014D5339040725)
이어 강진읍내의 북동쪽 변두리에 있는 사의재로 향한다.
복원된 사의재는 초가를 얹은 정면 본채와 문간채, 화장실로 구성되어 있다.
사의재는 다산이 강진으로 유배를 왔을 때 최초로 4년 동안 머물렀던 주막집이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662404D5339040C05)
다산선생이 한양에서 강진까지 370km가 넘는 삼남길(동작나루-천안-정읍-나주-영암-강진-해남)을 걸어
강진에 도착해 가장 먼저 짐을 푼 곳이 바로 동문주막이다. 대역죄인이라고 모두가 등을 돌릴 때
유일하게 주막집 노파가 다산에게 방을 내주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15DC14F5339060631)
선생은 이곳 주막 뒤편의 작은 골방에서 4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다산은 이 방에 사의재(四宜齋)라는 이름을 붙였다.
사의(四宜)란 네 가지 마땅함을 가리키는데, “생각은 마땅히 담백해야 하고,
외모는 마땅히 장엄해야 하고, 말은 마땅히 과묵해야 하고, 동작은 마땅히 중후해야 한다”는 것이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53CE44D5339041017)
![](https://t1.daumcdn.net/cfile/cafe/2236AC4D533904191B)
사의재 옆에는 작은 연못과 나무다리가 있어 운치를 더하고,
주변의 느티나무와 팽나무들이 다산이 외로움 속에서도 꿋꿋함을 잃지 않고 살았던 당시의 모습을 회상케 한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535114F533905F707)
![](https://t1.daumcdn.net/cfile/cafe/213B994F533905FC04)
사의재 뒤편에 설치해 놓은 주모상이 길손에게 후덕한 인심을 전해준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24A5E4D5339041410)
사의재 문간채에서는 간단한 식사(추어탕)와 막걸리·차류를 판매하고 있어,
옛 동문주막을 상상하며 요기를 할 수 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56BCA4F533906012A)
![](https://t1.daumcdn.net/cfile/cafe/255BD04F5339060B32)
![](https://t1.daumcdn.net/cfile/cafe/233F354F5339068B05)
사의재를 나와 영랑생가로 가는 길은 강진읍내를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뒷길이다.
밭길을 지날 때는 화사하게 핀 벚꽃이 길손을 즐겁게 해준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637DD4F5339068F08)
![](https://t1.daumcdn.net/cfile/cafe/276A014F533906942F)
우리는 영랑생가 뒤에 있는 금서당(琴書堂) 옛터로 들어선다.
금서당은 강진중앙초등학교 전신으로, 강진 신교육의 발상지이다.
원래 서당이었던 금서당은 1905년 사립금릉학교로, 1909년 다시 강진공립보통학교로 개편되어
1914년 이전하기까지 이 자리에서 초등교육이 이루어졌다.
영랑 김윤식도 금서당에서 보통학교를 다니고 서울 휘문의숙에 입학하였다.
금서당은 1919년 3.1운동 당시 구두에 독립선언문을 감추고 내려온 영랑이 금서당을 거쳐 간 200여명의 학생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던 곳이기도 하다.
현재의 금서당 건물은 1950년 완향 김영렬 화백이 매입하여 평생을 이곳에서 작품활동을 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133DE4F533906990B)
금서당을 나오니 시문학파기념관과 영랑생가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서 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40BBE4F5339069D1D)
시문학파기념관에는 1930년 3월 창간한 <시문학>지를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했던 영랑 김윤식을 비롯하여
용아 박용철, 정지용, 이하윤, 정인보, 변영로, 김현구, 신석정 등의 사진과 약력, 시집 등이 전시되어 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143324E533906E91D)
영랑은 1934년 <시문학> 제3호에 자신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발표하였고,
1935년 <영랑시집>을, 1949년에는 <영랑시선>을 출간하였다. 영랑 선생은 조국 해방이 이루어질 때까지
창씨개명과 신사참배, 삭발령을 거부한 채 의로운 민족시인으로 살았다.
그러나 한국전쟁 때 부상을 당하여 1950년 47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26EE84E533906ED09)
영랑 선생은 생애에 모두 87편의 시를 남겼다. 영랑생가는 1948년 선생이 서울로 이사한 후 여러 차례 전매되었으나, 1985년 강진군이 매입하여 복원하였다.
1986년 전라남도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었다가 2007년 10월에는 국가지정문화재로 승격되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57DD94E533906F201)
돌담길을 돌아 영랑생가로 들어선다. 생가 입구의 조그만 광장에서 그의 대표작인 ‘모란이 피기까지는’이라는
시가 새겨진 시비가 방문객을 맞는다. 생가는 크게 두 블럭으로 나누어져 있다.
정면에서 볼 때 오른쪽이 사랑채, 왼쪽이 본채로 각각 문간채를 통하여 들어갈 수 있고,
본채와 사랑채 사이에도 통행할 수 있는 문이 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54B5C4E533906F715)
먼저 본채로 들어서니 정면 5칸 측면 2칸의 초가집이 영랑을 그리며 고즈넉하게 앉아 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246174E533906FC1B)
초가 뒤의 동백나무와 대나무는 사시사철 푸름을 유지해 준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236934D533907482F)
마침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영랑생가를 붉게 물들이고 있다.
집 옆의 살구나무와 장독대, 우물도 영랑의 시적 상상력을 불러일으켜 주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672504D5339074D11)
사랑채 앞에 서 있는 거목의 은행나무는 영랑의 마음을 굳건하게 지켜주던 지주였을지도 모른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345C74D5339075227)
생가 곳곳에 새겨놓은 영랑의 시를 읽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영랑생가 마루에 앉아 영랑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음미한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2014. 4. 6)
*여행쪽지
-‘다산 정약용 남도유배길’은 강진의 다산수련원에서 영암 구림마을까지 총 61.5km, 4개 코스로 나누어져 있다.
-그중 1코스는 다산수련원에서 다산초당-백련사-철새도래지-남포마을-사의재를 거쳐 영랑생가까지 15km로 5시간 정도 걸린다.
-다산수련원(다산초당) 가는 버스는 강진버스터미널에서 06:35, 07:35, 09:40, 10:40, 11:30, 12:40, 14:10, 17:20, 18:40에 출발한다. 20분 소요.
-강진 목리장어는 옛날부터 유명했다. 목리장어센터(061-432-9292)는 2대째 하고 있는 장어전문식당인데, 양식장에서 1주일 전에 가져와 민물수조에서 항생제 성분을 빼내고 나서 요리를 한다. 장어양념구이와 장어소금구이 1인분에 14,000원이다. 탐진강 하구에서 잡히는 자연산 장어를 먹으려면 사전에 전화로 주문을 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