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내내 전화기를 잡았습니다.
먼저 직장에 있던 아래 직원들, 연락 한 번 없어서 그들은 죄송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출근하면 퇴근할 때가 되고 월요일이면 금세 토요일이 되는 직장 생활이고 제 앞가림이 바쁜 세상에 가버린 자에 대한 회상은 참 사치이기에 나는 그들의 안부를 묻습니다.
그리고 내 상사였던 분들에게 전화를 드립니다.
바로 내 위였고 회사를 그만 두고 차린 비디오 가게도 무망한 세월에 되지를 않고 속끓어 생긴 병으로 신경장애가 되어 휠체어 인생이 된 이사에게 전화 드립니다.
우성과 신동아와 유원의 전무로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아들 일을 봅네하며 자신만만하던 김전무께서는 아들의 부도로 당신이 보증선 업으로 집이 날아가고 지금은 어느 곳인가 전화도 끊고 사는 데 , 그 아우는 아직 회사를 다니는지라 안부의 말씀에 다리를 놓아달라고 부탁합니다.
내게 무얼 하냐고 묻는 말마다 한 계단씩 공부가 진도가 나가고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합니다.
기가 죽을 이유도 없고 죽는 소리를 한 들 스스로 비참하니 나 자신 인생에 긍정적입니다.
인생은 塞翁之馬이어서 몇 번 이고 그런 과정이 있어왔고 누구나 그런 단계가 있지 않습니까.
한 바탕 전화 뒤에 기쁜 마음입니다.
17년 동안 작가가 혼신의 힘을 다했고, 자신의 생명과 맞바꾼 혼불을 여러분이 한 번 보기를 권합니다.
사람의 일생은 무망하게 흘러갑니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하여야겠다고 깨닫는 그 순간, 한 번쯤 자기 인생을 걸만합니다.
비록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구차하게 사는니 당차고 보람되게 자기가 정한 목표를 향해 갈만합니다.
그 목표를 찾아 갔던 이의 작품을 찾아보는 것으로 우리는 자신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우주 자연과의 교감'
글 / 최 명 희
어둠과 빛이 서로 통류하며 하나를 이루듯이 예전의 사람들은 저 무궁한 우주의 자연과도 항상 혼연일체로 교감하였다.
아주 간단히 민간의 습속에 나타난 행위를 예로 들어본다면, 우선 吸月精이 있다. 흡월정이란 혼인한 여인이 아들 낳기를 간절히 원할 때, 몇날 며칠 공을 들여 목욕재계하고 더러운 것을 피하여 마음을 정하게 한 다음, 초열흘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달 아래 서서 행하는 것으로 집안의 뒷마당 정결한 곳에 잡인들을 물리치고 오직 도와주는 사람만 곁에 둔 채, 온 전신의 핏줄과 폐장에 달이 차기를 빌며, 단전에 힘을 모아 달을 들이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달과 한 몸이 된다. 그리고는 삼킨 달이 흔들리지 않도록 고요히 배앝는다. 이것이 한 숨통인데, 아홉 숨통까지 해야 한다.
한낱 인간의 몸속으로 저 우주의 광명인 달의 심오 신묘한 정기를 그대로 빨아들인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리.
또 다른 것으로 飮月이 있다. 꼭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을 때, 매년 새해가 시작되는 정월 대보름날, 그 해 들어 맨 먼저 뜨는 보름달을 물로 마시는 것이다. 이는 삼경의 깊은 밤, 부정한 사람들의 발길이 그친 시각에 우물로 나가 , 우물에 동그랗게 잠긴 달을 두레박으로 정성껏 길어 온전히 떠낸 다음, 정화수 사발 깨끗한 그릇에 달이 쏟아지지 않도록 따라서, 마지막 한 방울까지 숨을 쉬지 말고 소원을 빌며 마시는 것이다. 그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 정월 대보름달을 맨 먼저 보는 사람이 그 해에 큰 행운을 잡는다고 한다. 그래서 달맞이를 할 때 아직 아무도 안 본 새 달을 어서 보려고 사람들은 저녁밥도 제대로 안 먹고 앞을 다투어 동산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한눈도 팔지 않고 달뜨기를 기다렸다가 금빛 눈썹이 산마루에 실금같이 비치면 목이 터져라고.
"달봤다아" 하고 외쳤다. 마치 산삼을 캔 심마니가 온산이 쩌렁 쩌렁 울리도록 "심 봤다아." 함성을 지르듯이 이렇게 하면서 소원을 빌면 달님은 소리 지른 사람의 것이 되어 반드시 소원을 이루어 준다고 했다.
저 광활한 우주 공간 속에 자신을 투영시키고 또한 자연을 자신의 몸속으로 빨아들여 한 덩어리가 되는 사람들은 아무 가진 것없는 상민조차도 밤하늘의 은하수를 올려다보며 말한다.
"나는 시방 요천수가 은하수먼 우리는 머잉가, 허고 생각험마. 은하수 옆으가 저렇게 별이 많응게, 요천수 옆으 사는 우리도 무신 별이나 될랑가아요? 저 별들에서 보먼 우리가 별이겄네."(<혼불> 제2부 4권 14장 '별똥별')
세상은 거칠고 험하지만 이렇게 사람들은 자연과 친화하며 '저 별들에서 보면 우리가 별' 이라고 전 우주적인 존재로서의 자기를 자각하니. 오늘의 처지가 비록 초라하다 할지라도 자기 삶의 남루를 조각보처럼 곱게 가위 잇고, 인생의 구석진 자투리조차 함부로 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 고달픈 귀퉁이에 공을 들여 조그만한 꽃밭이라도 가꾸어 보는 마음. 그러면서 자기의 마음자리를 넓히던 사람들. 거기에는 양반과 상민이 따로 없고, 남자와 여자가 따로 없었다. 오로지 삶에 대한 지극함이 있을 뿐. 그 지극함은 어떤 고난과 슬픔을 당하더라도 우리 삶을 살 만한 것으로 바꾸는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