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기의 공연산책 제45회 서울연극제 선정작 연극집단 반 김민정 작 안경모 연출의 미궁의 설계자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제45회 서울연극제 선정작 연극집단 반 김민정 작 안경모 연출의 미궁의 설계자를 관람했다.
<미궁의 설계자>는 연극집단 반이 김지은 대표체제로 전환되면서 제45회 서울연극제 공식 선정작이 된 작품이다. 김민정 작가가 남영동 대공분실 미궁의 설계자를 소재로 공간사옥을 건축한 건축가 김수근의 도면을 따라 유신정권과 80년대 폭력의 시대를 거치며 현재 시간까지 그려낸다. 과거와 국가보안법 깃발로 빨갱이 덫을 씌워 죽음의 공간이 되어버린 남영동 대공분실을 설계한 미궁의 '그 사람'을 소환하며 붉은 타일 바닥으로 사라져간 고문과 핏물의 역사를 현재의 시선으로 묘사한다.
김민정은 1974년 충남 당진 출생. 단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예술전문사 극작 전공 졸업. 작품: '가족 왈츠' '십년 후,' '나, 여기 있어' '해무' '길삼봉뎐' '그 길에서 너를 만나다' '미리내' '너의 왼손'. 각색: 국립극단 '오이디푸스' 연출 한태숙, 대잔 문화예술의 전당 '인형의 집(家)', 연출 최용훈. 수상: '04 제7회 국립극장 신작희곡 펫티벌 당선 (가족 왈츠)' '05 제5회 작은 신화 우리연극 만들기 희곡 공보 당선 (십년 후,)' '07 서울연극제 '희곡아 솟아라!' 신작 희곡 공보 당선 (나, 여기 있어)' '07 2007년 한국연극 베스트7 선정 (해무)' '08 2008년 서울 아트 마켓 팜스 초이스 쇼케이스 선정 (해무)' '09 2009년 창작 팩토리 우수작 선정 (해무)' '09 2009년 서울 문화재단 공연예술작품공모 창작지원 사업 선정 (김삼봉뎐)' 지원: 2009년에서 2010년 한국문화 예술위원회 AYAF (영 아트 프론티어) 연극부문 지원 선정' '2010 서울문화재단 문화창작활성화-작가활동 지원사업 선정된 발전적인 극작가다.
김상열연극사랑회와 극단 김상열연극사랑은 제23회 김상열연극상 수상자로 연출가 겸 예술교육가 안경모(51)씨를 선정했다고 11일 알렸다. 안씨는 ‘해무’, ‘오페라 스토킹’ 등 초기작부터 단단한 문제의식과 감각적인 무대로 주목받았다. 이후 극동대 연극연기학과 교수, 극단 연우무대 연출 등을 맡으며 교육과 행정으로도 보폭을 넓혔다. 다수의 연극과 뮤지컬을 연출하고 무용 작품의 대본을 써 왔고, 서울연극제 인기상(2006), 한국연극베스트7(2007), 서울연극제 대상(2012) 등을 수상했다.
김민정 작가가 미궁의 설계도를 그리고 안경모 연출이 무대로 건축한 연극 <미궁의 설계자>는 미궁의 설계 도면을 중심으로 1975년 김치열과 김수근의 설계를 조력(조수)한 극 중 인물 양신호(이종무 분)을 중심으로 유신 시대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事犯)들을 잡아들이기 위해 미궁처럼 빠져나올 수 없는 죽음의 공간으로 설계되어 가는 시간이 그려진다. 극 중 인물 대학생 송경수(김시유 분)는 남영동 대공분실로 향하던 박종철 열사를 떠올리며 잔혹한 고문의 80년대를 소환한다. 다큐 감독 권나은 (이가을 분)은 남영동 대공분실을 취재 하기위해 찾아가고 기록의 공간을 현재 시점에서 해설하고 있는 윤미숙(전국향 분)과 70, 80년대와 현재 시간으로 교차시키며 핏자국으로 진실이 실종된 설계도의 미궁을 떠도는 시간과 마주치도록 한다.
안경모 연출이 김민정 작가의 미궁의 설계 도면을 들고 무대에 배치한 시간과 공간은 미궁의 설계 도면이 작성되던 시간과 남영동 대공분실의 역사적 공간이다. 설계도면을 국가권력으로 청탁받고 설계 해야 하는 한 인간의 고뇌와 시간이 80년대 죽음으로 이어지면서 그 핏자국을 지워낼 수 없는 현재 시간까지 그려낸다.
무대는 중앙에 설계도 탁자가 놓여 있다. 좌우에는 육중한 철문이 이동식으로 움직여 과거와 현재를 잇는 통로가 된다. 무대와 장면 사이로 70, 80년대의 권력과 고문의 폭력으로 사라진 망자(亡者)와 현재의 인물들이 미궁의 역사와 80년대와 현재의 시간으로 남영동 대공분실에 등장한다.
무대 하수쪽은 5층 취조실 철재 문이 겹으로 되어 있고, 남영동 대공분실 무대 도면 위로 시대가 연속적으로 흘러가도록 연출한다. 시간과 역사가 한 지점으로 고여지는 특정 장면에서는 무대 스크린으로 확장되어 남영동 대공분실 역사 공간을 투영한다. 나선형 계단, 검은 벽돌, 좁은 직사각 창틀, 설계도면, 509호의 붉은 타일과 욕조, 철제 책상과 좁은 간의 침대를 투사한다. 연출은 작가의 설계 도면에서 한 발 더 들어간다. 희곡으로 등장하지 않은 '응시자들'을 배치해 1975년 도면이 그려지던 시점과 80년대의 죽음, 현재 시간으로 기록되고 있는 역사의 현장을 응시하도록 한다. 진실을 바라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의 시선이다. 연출은 대학생의 고문 장면과 죽음의 구조가 만들어지는 설계 도면을 카메라로 투사해 죽음과 사건의 현장을 현재시선으로 확장하고 극적인 이미지로 무대를 확대하고 있다. 경수의 고문 장면과 양신호가 설계 도면에 써놓은 미노스 '미궁'의 낱말을 카메라로 확대한다. 미궁의 설계 도면은 진실을 거부할 수 없는 죽음의 공간구도로 미로처럼 설계도면에 각인된다.
극은 대학생 송경수를 통해 1986년 사건과 죽음의 공간, 건축설계 조력자 양신호을 통해서 1975년의 유신시대의 진실을 지워낼 수 없는 시간의 공간을 그려낸다. 해설자 윤미숙(전국향 분)과 다큐감독(이가을 분)의 남영동 대공분실은 기록의 공간이다. 1975, 1986, 2020년도의 1월 23일 즈음으로 설정된 시간 배경은 한 장소(공간)에서 여러 개 사건이 현재로 교차하며 연출되고. 또한 한 장소로 역사의 시간을 묶으려는 작가의 의도된 설정이다. 연출은 작가가 설계한 특정한 세 개의 시간이 교차 되는 시간을 유기적으로 흐를 수 있도록 장면과 무대를 배치해 연출한다.
극 중 인물들인 송경수, 양신호의 기억의 시간은 현재로 흐르는 것처럼 극 중 인물들은 시간을 뚫고 움직임과 분위기로 장면을 형태화 시킨다. 윤미숙과 다큐감독은 남영동 대공분실을 돌아보며 시간을 여행하는 것처럼 그려지고 한쪽 공간으로 양신호, 허일규를 중심으로 설계되어 가는 시간이 비쳐진다. 미궁의 설계구조가 선명해질수록 한쪽에서는 대공분실로 끌려와 취조받고 물고문으로 죽음에 이르는 송경수의 시간이 연속되어 진다.허일규가 막걸리를 마시는 장면과 월북한 양신호 삼촌 얘기며, '바닥에는 타일을 까는 겁니다. 목욕탕처럼. 그래야 피가 나도 닦기가 편할 거 아니요?(중략) 한 명씩 간첩 새끼들을 가두는 겁니다. 그런 놈들을 방마다 하나씩 넣고서 피고름을 짜내는 기지요. 자, 어서 그려 보시오. 빨간 타일이 깔린 방을.'허일규가 설계도면을 권력의 위협으로 완성 시키려는 극 중 장면에서는 유신시대를 환기하면서도 권력의 등을 타고 성공하려는 건축가의 이면(裏面)도 보인다.
설계조력자(조수) 양신호는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가두고 고문하는 빨갱이를 잡는 검은 벽돌 건물의 설계도와 인간이 품속에서 예술가의 순수를 고뇌하는 장면들에서는 영혼과 자아가 균열되고 파괴되어가는 내면의 모습들을 '김'(수근)의 어린 시절로 형상화해 극 중 인물 아이(전민재 분)의 시간을 교차시킨다. 아이는 권력으로부터 예술가로서 순수한 욕망이 파괴되어간다. 검은 벽돌을 쌓고 놀았던 아이는 설계 도면의 윤곽(輪廓)이 드러날 때쯤 대공분실 외벽의 벽돌을 쌓고 물고문과 폭력, 조작과 은폐로 죽음의 방이 되어버린 붉은 타일에 박혀 있는 욕조 공간을 테이프로 죽음의 구역을 그리며 그 앞으로 검정 벽돌을 세운다. 아이는 양신호 자아의 분신이자 김수근의 어린 시절로 동일화된다. 명동 거리에서 여자친구 윤정이를 만나기로 한 86년 그날의 대학생 송경수는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에서 차디찬 죽음으로 붉은 타일 바닥 욕조에서 허일규가 원하던 피고름이 되어 사라져 간다. 마지막 장면은 양신호가 자신이 설계한 욕조에 몸을 구겨 놓고 아이는 검은 벽돌을 쌓으며 무너져 가는 거장의 흐느끼는 절규의 소리를 듣고 있을 뿐이다.
작가는 미궁의 설계도면 구조를 배치한 인물을 김수근으로 겨냥하지 않고 한 발짝 뒤에서 표현했다. '김'의 어린 시절로 형상화되는 아이를 설정해 설계 도면을 동일한 인물로 바라보는 작가적 설정은 <미궁의 설계자>를 통해 극의 긴장감을 높이고은 남영동 대공분실 공간의 역사를 취재하던 작가의 객관적인 시선을 투영하고 있다.
한 장소에 여러 개의 사건과 죽음, 기록, 역사의 시간 들을 유기적으로 배치하고 가상 인물들을 설정해 70, 80년대와 현재 시간을 연결하는 <미궁의 설계자>를 90분 동안 긴장감 있게 표현해 죽음, 속죄를 선명하게 그려내고 영상과 장치이동을 통해 연출력이 돋보이도록 만든 연극이다.
전국향, 손성호, 이종무, 이가을, 김시유, 최지환, 송현섭, 송지나, 유지훈, 박양지, 전민재 등이 출연하여 호연과 열연으로 극을 이끌어 간다.
드라마투르기 이은기, 음악 윤현종, 안무 이경은, 무대 도현진, 조명 김영빈, 영상 김장연, 의상 오수현, 분장 이지연, 사진 김명집, 조연출 안유승, 영상오퍼 배근호, 조명오퍼 장인아, 음향진행 박성제, 무대감독 이미현, 홍보 지나다. 기획홍보 방은영 노민주, 프로듀서 김지은 등 스텝진의 열정과 기량이 드러나 제45회 서울연극제 선정작 연극집단 반 김민정 작 안경모 연출의 미궁의 설계자를 괄목할만한 걸작공연으로 탄생시켰다.
박정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