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七 章 이상한 招待
---- 삼패천(三覇天)!
중원에 살고 있는 자라면 며칠 전 관(棺)에 들어간 사람이나 오늘 아침 태 어난 느릅나무 집 딸에 이르기까지 모두 알고 있는 이름이다.
오륙 년 전 부터 갑자기 강호에 등장한 세 명의 패도적인 인간들을 이름하 는 것이 바로 삼패천이었다.
그리고... 그들 3인이 만드어 낸 거패조직의 이름이기도 했다.
처음에 한낱 녹림도적에 불과했던 황하 36채(黃河三十六寨)를 정복한 뒤 그 자리에 삼패천이란 조직을 세웠을 때만 해도 무림인들은 별 대수로운 일로 보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가히 공포적 상징이 되고 말았으니...
황하의 한 귀퉁이에서 시작한 삼패천의 힘은 이제 강북무림 전체를 관장하면서 전 무림을 위협하고 있었다.
더더구나 몇 년 전 그들의 조직을 규제하기 위해 가졌던 구파일방이 중심이 된 숭산회합이 채 열리지도 못하고 도중에 삼패천에 궤멸됨으로써 그들은 명실공히 강호의 패자로 군림하고 있었다.
구파일방은 숭산혈겁을 당한 이후 급격히 침체일로를 걸어 당금에 이르러서는 아예 봉문(封門) 상태에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정작 무서운 것은 그들의 행동이었다.
그들은 공공연히 청부업(請負業)을 일삼는 것이다.
그들의 청부업은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이행되었다.
또한 단 한 번의 어떤 청부의 거절도 하지 않은 그들이었다.
가히... 공포였다.
그리인해 무림은 나날이 피폐해 지고 있었으며, 흑도가 설치고, 마도가 기고만장하며, 백도정의는 바닥을 헤매는 실정이었다.
아무래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삼패천의 목적이었다.
그들은 무림을 아예 말살하려는지 뚜렷한 이유도 목적도 없이 패도적인 살상을 벌이는 것이었다.
만일 무림통일이 목적이라면 각파로 하여금 굴복하게 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설득이나 협박보다는 먼저 피를 뿌림으로써 엄청난 혈살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대체... 왜? 무엇 때문에?
삼패천은 악마의 집단이란 말인가?
중원의 하늘에는 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여인의 옷에는 가을이 다가오고 있었다.
무창(武昌).
대도(大都)답게 무창의 거리에는 인파가 항상 북적댄다.
밤이나 낮이나 무창 거리가 북적이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장사꾼이나 떠돌이 여행자, 관인들, 또는 하다못해 거지드에 이르기까지 거리를 메우는 것은 인파, 인파였다.
그런데...
한 사니이가 손에 섭선을 흔들며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는 언뜻 보면 이상할 것이 없는 평범한 서생이었다.
그런데 자세히 관찰해 보면 그가 매우 이상한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같은 거리를 계속 오락가락 하면서 끊임없이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다.
그것도 특히 여인들을 만날 때마다 그이 눈은 힐끗힐끗 여인의 표정을 살피는 것이었다.
때로는 일부러 여인의 곁을 스치며 여인의 반응을 보는 것이었다.
어찌보면 건달같기도 하나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여인을 집적거리지도 않았다.
이 사나이가 무창에 나타난 것은 꽤 오랜 일이었다.
아는 사람은 어느 정도 그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기이한 것은 서생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거리를 가로지르며 똑같은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서생이 그토록 신경을 쓰는 여인들의 반응이 있기는 있었다.
그것은 그가 접근할 때마다 여인들은 입을 손으로 가리며 키득거리는 것 이었다.
그만큼 서생의 행동은 우스운 것이다.
서생의 이름은 종리연이었다.
그는 괄창산을 떠나 출도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배운 공부를 시험하기 위해 이 대도시 무창에 온 것이었다.
벌써 한 달 째...
그러나 대실망이었다.
그가 노리는 것은 여인들이 자신에게 반하는 것이었다.
그는 여인들이 그를 보고 웃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눈칫밥만 10년이 아닌가?
그러나 그는 결코 포기하려 들지 않았다.
(언젠가는...)
그는 복잡한 거리를 일부러 걸으며 걸음의 종류를 바꾸고 있었다.
(이번에는 풍류옥선보(風流玉旋步)...)
그는 휘적휘적 걸으며 섭선을 손가락으로 탁탁 치며 걸었다.
제대로 풍류옥선보를 시전한다면 분명 길 가던 여인들이 걸음을 멈추고 넋을 잃은 채 그를 바라보아야만 한다.
거기서 한 단계 더 나간다면 이후로는 온통 그의 생각에 사로잡혀 상사병을 앓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역시 마찬가지였다.
길 가던 여인들이 걸음을 멈추긴 멈추었다.
그러나 그에게 홀리기는 커녕 손가락질까지 해대가며 비웃는 것이 아닌가? 종리연은 한숨을 쉬었다.
(큰 일이야... 아직도 반응이 없으니...)
그는 어제 저녁 강변을 거닐며 시를 읊기까지 했다.
가을의 밤공기를 즐기러 나온 낭자들이 많았다.
일부러 그녀들의 곁을 스치며 시를 읊고 군자보까지 걸어보았으나 그는 별무신통했다.
아니, 도리어 다섯 번 째로 그녀들의 곁으로 접근하였을 때는 미친 놈 취급 을 받아 돌멩이 세례를 받지 않았던가.
그는 밤새 걸음을 연습한 뒤 오늘 다시 나온 것이다.
그런데도 나아진 상황이 아니었다.
종리연은 답답하기만 했다.
(여자들아... 어째서 나을 보고도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한단 말이냐?)
그는 애원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사형 남궁환인의 유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성녀를 만나기 전까지 어떻게든 완벽한 기술(?)을 닦아 두어야 하는 것이다.
벌써 한 달째...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벌써 그는 이곳 거리에서 명물로 통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별호까지 생긴 판국이었다.
광서생(狂書生), 월하산보객(月下山步客), 몽유서생(夢遊書生), 소소공자 (笑笑公子) 등등...
그에게 붙여진 별호는 무려 이십여 개나 되었다.
그러나 종리연은 꿋꿋하기만 했다.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그의 운명이기에, 만일 이곳에서 여인들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면 아예 사성녀에게는 가 볼 필요도 없기 때문에 그는 오늘도 열심히, 그야말로 지성으로 이곳의 여인들에 게 환심을 사기위해 오늘도 도합 열 여덟 종의 보법을 밟고 있는 중이었다.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종리연은 이제 다소 지치고 있었다.
하루종일 걸었기 때문에 배도 고프거니와 다리가 욱신거리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번화가의 거리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무창 외곽에 객점을 마련해 두고 있었다.
그곳으로 가기위해 그는 부지런히 걸었다.
그러나 가는 동안에도 그는 군웅보(群雄步)를 시전하고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저... 여보세요."
"...?"
그는 불현듯이 들려온 음성에 고개를 돌렸다.
아무도 없었다.
그가 의아하게 생각하는데 문득 한 대의 마차가 그를 향해 다가왔다.
마차가 다가왔을 때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차 이외에는 자신에게 말을 걸만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마차는 따그락거리며 그를 따라오고 있었다.
마부석에 마부도 없는 마차였고, 안에는 들여다 볼 수 없도록 두터운 휘장 이 쳐져 있었다.
마차는 문득 그이 앞을 가로 막으며 멈춘다.
종리연은 기다렸다.
그런데 마차로부터는 아무런 말도 들려오지 않는 것이 아닌가? 그는 참지 못 하고 입을 열었다.
"방금 날... 불렀소?"
그러자 마차 안으로부터 여인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예."
간단한 대답이었다.
아직은 나이가 어려 보이는 소녀의 음성이었다.
"무슨 일로 날 불렀소?"
종리연이 의아하여 묻자,
"저... 시간이 있으시면 함께 동행을 해 주셨으면 해서요."
종리연은 눈썹 을 쫑긋했다.
"그렇다면 용건부터 말씀하셔야 할 것이 아니오? 명분도 없이 내 어찌 따라 나설 수가 있단 말이오?"
그러자 마차 안의 음성이 대답했다.
"공자님을 뵙고 싶어 하는 분이 있어서랍니다."
종리연은 흠칫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짚이는 것이 있어 그는 느긋하게 가슴을 펴면서 물었다.
"날 찾는 사람이 남자요, 여자요?"
"예?"
마차 안의 음성은 무슨 말인지 몰라 당황하는 것 같았으나 곧 깨달은 듯 말했다.
"아하... 여자에요. 여자."
종리연의 입이 벌어졌다.
"그렇다면 좋소이다."
그러자 휘장이 반쯤 열리고 손 하나가 나와 그를 불렀다.
"이리 오르세요."
종리연은 득의만만하여 성큼 마차에 올랐다.
마차 안은 호사스럽게 꾸며져 있었다.
그리고 마차 안에는 그의 예상대로 나이가 16~7세 가량 밖에 되지 않아 보이는 소녀가 타고 있었다.
한 눈에 시비임을 알 수 있는 복장을 하고 있었다.
종리연의 눈치는 고차원적인 수준이다.
(아하... 아마도 이 시비의 여주인이 날..., 이제야 군웅보의 위력이 드러나는가 보다.)
두두두...
마차는 그의 희열에 찬 기쁨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디론가로 힘차게 달려가 기 시작했다.
마차는 2리도 못가 멈추었다.
"내리시죠. 공자."
소녀의 말에 종리연은 호기심을 가득 안은 채 마차에서 내렸다.
"..."
꽤나 큰 장원이었다.
종리연은 장원을 둘러보았다.
한 명의 중년인이 대문 안으로부터 나와 그를 맞이했다.
"어서오시오. 공자. 장주님께서 아까부터 기다리고 계시오. 나를 따라 오시오."
그 말에 종리연은 고개를 돌려 시비를 보았다.
약속이 틀리지 않느냐는 뜻이었다.
그러나 시비는 그에게서 고개를 돌려 버렸다.
아까와는 달리 차가와진 표정이었다.
(이거... 어떻게 된 거지?)
종리연은 의혹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여자가 자신을 만나고자 한다고 했는데 약속이 틀린 것이다.
그러나 내친걸음이었다.
중년인이 그를 안내하여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종리연은 할 수 없이 그를 따라가며 내심 투덜거리고 있었다.
(정말 되는 것이 없군.)
넓고 호사스런 대전의 대청을 지나 그는 한 칸의 넓은 거실로 안내되었다.
거실 안에는 호안(虎眼)이 중년금포인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앉으시오. 공자."
"...?"
종리연은 의문을 느끼며 그가 권하는 의자에 앉았다.
어찌나 푹신한지 그는 뒤로 넘어자는 줄 았았다.
그는 자세를 잡은 후 호안의 금포인을 보았다.
순간적으로 기가 질리는 기분이었다.
금포인의 호안이 부리부리하게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그의 뇌리에는 사형인 남궁환인이 떠올랐다.
그러자 용기가 나며 그는 가슴을 자연스럽게 폈다.
막 뭐라고 입을 열려는데 금포인의 음성이이 들렸다.
"허허... 공자께선 왜 이곳에 불리어졌는지 궁금하실 것이오."
종리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말이라고 하시오?)
금포인의 인사는 정중하고 기품이 있었다.
그는 수염을 손으로 꼬면서 말을 이었다.
"...?"
뜻밖의 말이었다. 종리연은 더욱 궁금해졌다.
자신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기에 도움을 청하기 위해 특별히 자신을 찾아
왔단 말인가?
금포 노인의 말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아! 노인에겐 불행이도 불미한 여식이 하나 있소이다. 그런데 그 아이가 그만 어릴 때 받은 충격으로 그만 실어증(失語症)과 함께 심한 우울증에 걸렸소이다. 그래서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을 뿐더러 웃음마저 잃어버렸 소이다."
"..."
"그런데 얼마 전부터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졌소이다. 바로 공자 때문에 말이오."
"...?"
종리연은 어리둥절했다.
(나 때문이라니?)
"글쎄 얼마 전부터 바람이나 쏘일까 하여 여식을 데리고 저자거리를 산보나가기 시작했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공자를 보고는 여식이 그만 웃음을 터뜨리는 것이 아니겠소?"
"...!"
종리연은 그만 실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로소 환히 짐작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실어증과 우울증에 걸린 자신의 딸을 그가 위로해 달라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실로 어이없는 일이었다.
동시에 분노마저 들었다.
(기껏 나를 납치하다시피 데려와 놓고... 뭐 딸의 동무나 해달라고?)
그의 표정이 짐작된 듯 금포인은 빙그레 웃으며 설득했다.
"부디... 여식의 곁에 있어 주시오. 내 공자께 사례는 충분히 해 드리겠소."
종리연은 막 입을 열어 거절하려고 하다가 생각을 바꾸었다.
(아니다. 그런 바보 같은 여자를 대상으로 시험을 해 보는 것도 괜찮을 거야. 오히려 내 마음이 편하니...)
그는 빙그레 웃었다.
"죽은 사람의 소원도 들어 준다고 했는데 산 사람의 소원을 못 풀어 주겠습니까? 마침 그것도 선행이니 기꺼이 응하겠습니다."
실로 기이한 일이었다.
그런 일을 시키는 사람이나 이렇게 이론까지 달아가면서 생색내며 승낙하는 사람이나...
아무튼 종리연은 이상한 일이 인연이 되어 장원에 머물게 되었다.
그는 몇 마디 더 이야기를 하다가 곧 아까의 시비에 의해 금포인의 딸이라는 여자의 방으로 안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