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티끌 세워 웅대한 국가의 터전을 세우노라”
웅대한 국가 세우는 것은 모든 것 다 꿰뚫고
두려움 없는 지혜와 자비심 아니면 불가능하다.
선지식 노릇하는 것이 어디 그냥 되는 일이던가.
과연 그것을 갖춘 이가 있기는 한 것인가.
그 경지에 이른 사람이라면 천하가 본래 적멸하며,
언제나 맑은 바람 분다는 것을 알 것이다.
중국 대동 운강석굴의 돌로 된 부처님께서 설파하시는 한 말씀을 들을 수 있는가!
강설
본래면목을 완벽하게 깨달은 선지식이라면 진리의 깃발을 드높여 휘날릴 것이고, 무엇이 핵심인지를 분명히 드러낼 것이다. 또한 탁월한 지도자라면 깨달은 이와 범부를 곧바로 가릴 것이고, 지혜로운 이와 어리석은 자를 순식간에 구분할 것이다.
뛰어난 선지식이라면 후학을 지도함에 있어 부정적 방법을 쓸 것인지 긍정적 방법을 쓸 것인지를 명확히 알 뿐더러, 후학이 지도를 받을 수 있는 시절인연이 되었는지도 본다. 따라서 그 후학을 어느 정도의 강약으로 지도해야 할지도 분명하게 안다.
그건 그렇고 공부한 사람이라면 적어도 온 우주를 삼켜버릴 한마디쯤은 해야 되지 않겠는가? 만약 그런 한마디를 하는 이를 만난다면 그 한마디를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풍혈 연소화상(風穴延沼和尙, 896~973)은 남원 혜옹화상(南院慧顒和尙)의 제자이며, 임제화상(臨濟和尙)의 4대 법손(法孫)이다. 여주(汝州) 풍혈산(風穴山)에 주석했으므로 풍혈화상이라고 한다.
화상은 여항(餘杭) 출신으로 처음엔 월주(越州)의 경청 순덕화상(鏡淸順德和尙)에게 출가하였으나 깊은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이윽고 양주(襄州)의 화엄원(華嚴院)에서 남원화상의 제자인 수랑(守廊)스님을 만나 남원화상을 찾게 되었다.
처음 남원화상을 찾아갔을 때 절도 하지 않은 채 불쑥 물었다.
“입문(入門)해서는 반드시 주인(主人)을 가려야 하는데, 그 참된 뜻을 분별해 주십시오.”
남원화상이 왼손으로 무릎을 만지자 연소가 할(喝)을 하였다. 남원화상이 다시 오른손으로 무릎을 만지자 연소가 또 할(喝)을 하였다. 이에 남원이 왼손을 들면서 말했다.
“이것은 그대를 따르겠다.”
다시 오른손을 들면서 말했다.
“그럼 이것은 어찌 하겠는가?”
연소가 말했다.
“눈멀었군요.”
남원화상이 주장자를 들려는데, 연소가 말했다.
“무엇 하려고요? 주장자를 뺏어 노화상을 때려도 말하지 못했다고 하지 마십시오.”
남원화상이 말했다.
“30년 주지를 지냈으나 오늘에야 누런 얼굴의 절강성 사람이 문턱에 와서 비단 짜는 꼴을 보았다.”
“화상께서는 마치 발우도 얻지 못한 이가 거짓으로 시장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대는 언제 남원에 왔는가?”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노승이 분명한 것을 그대에게 물었느니라.”
“그래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우선 앉아서 차나 마셔라.”
연소가 비로소 제자의 예를 올렸다.
본칙 원문
擧 風穴垂語云 若立一塵 家國興盛 不立一塵 家國喪亡
雪竇拈拄杖云 還有同生同死底衲僧麽
진(塵) - 티끌. 번뇌. 생각.
본칙 번역
이런 얘기가 있다. 풍혈선사께서 법문을 말씀하셨다. “만약 한 티끌을 세우면 나라가 흥성하고, 한 티끌을 세우지 않으면 나라가 망해 버린다.”
설두선사께서 주장자를 들고 이르셨다. “자, 함께 살고 함께 죽을 수행자가 있느냐?”
강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모두 한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옳다거나 그르다거나 하는 것도 한 생각이 만든 것이고, 깨달음이니 번뇌니 하는 것도 또한 한 생각의 작품이다. 이처럼 한 생각이 움직이면 온갖 것이 일어나는 것이다. 온갖 철학과 종교가 경쟁하듯 일어난 것도 한 생각에서 벌어진 일인데, 온갖 것 다 만들어 놓고 다시 우열을 가리며 옳고 그름을 논한다.
그럼 어떻게 이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 것인가? 어떻게 하면 모든 사람이 행복해질까? 이미 모든 가르침 다 펼쳐 놓았는데 무얼 다시 보태려고 하는가. 한 생각도 두지 말라. 그러면 적멸해지리라.
그런데 이게 또 함정이 되니 어쩌겠는가! 한 생각도 두지 말라고 하니 그저 바위처럼 고목처럼 되려고 한다. 밝은 사람은 종일 생각을 해도 지혜롭고 편안하지만, 어리석은 이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도 캄캄하고 불안하다.
설두스님이 풍혈선사의 이 멋진 법어를 예로 든 후에 노파심이 일었나보다. 주장자를 치켜들고는 후려칠 듯이 쏘아보며 일갈하셨다. “이 풍혈선사와 생사를 같이할 자가 있느냐?”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무도 한 마디 못한 걸 보니, 그 경지에 이른 자가 없었군 그래.
송 원문
野老從敎不展眉 且圖家國立雄基
謀臣猛將今何在 萬里淸風只自知
종교(從敎) - …하도록 함.
부전미(不展眉) - 눈썹을 펴지 않음. 눈썹을 찡그림.
송 번역
시골 노인 눈썹을 펴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선 국가의 웅대한 터전 세우도록 하리라.
지모의 신하 용맹한 장수 지금 어디 있나?
만 리의 맑은 바람 다만 스스로 알 뿐이네.
강설
설두노인네는 제1구와 제2구에서 “시골 노인 눈썹을 펴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선 국가의 웅대한 터전 세우도록 하리라”하고 읊었다.
이것은 본칙에서 풍혈선사의 세워 흥하는 것과 세우지 않아 멸망하는 것의 두 가지 중에서 흥하는 쪽을 들고 있다. 그래서 한 티끌을 세워 나라가 흥성할 때 한가로운 시골의 노인이 귀찮아 하며 눈썹을 찡그린다고 하더라도, 자신은 웅대한 국가의 터전을 세우겠다고 하였다. 석가모니께서 성을 나가시어 보리수 아래 깨닫고 천하를 다니신 것이나. 달마대사가 머나먼 동녘으로 오신 것이 바로 그러하기 때문이다. 두 양반이 한 마디도 할 것 없는 경지에 홀로 머물러버렸다면, 후인들은 부처니 조사니 하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될까? 그믐밤에 가시밭길 걷는 나그네다.
설두선사께서는 제3구와 제4구에서 “지모의 신하 용맹한 장수 지금 어디 있나? 만 리의 맑은 바람 다만 스스로 알 뿐이네”라고 설파하셨다.
웅대한 국가를 세우는 것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을 다 꿰뚫고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지혜와 자비로운 보살심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선지식 노릇하는 것이 어디 그냥 되는 일이던가. 과연 그것을 갖춘 이가 있기는 한 것인가?
만약 그 경지에 이른 사람이라면 천하가 본래 적멸하며, 언제나 맑은 바람 분다는 것을 알 것이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착각의 늪에 빠진 이가 숲을 이루고, 어두운 동굴 속에서 멍한 상태로 낮과 밤을 모르는 자가 강가의 모래보다 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