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미카제 기념관
강 문 석
일본열도 최남단인 가고시마鹿兒島의 지란知覽. 이곳 ‘특공평화회관’은 전쟁기념관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가미카제神風 기념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서울 용산의 전쟁기념관을 떠올리며 찾았다가는 규모가 너무 작아서 실망하기 십상이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희생된 가미카제를 추모하기 위해 만들었기 때문에 여타 전쟁기념관들처럼 클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일본은 역사 속 전범국이란 오명이 부끄러웠는지 전쟁기념관마다 평화란 글자를 갖다 붙였다. 이곳 지란은 물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그리고 오키나와의 전쟁기념관까지도 그랬다. 이렇게 본질을 호도하기 위해 붙인 평화는 오히려 갈등만 증폭시킬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일본은 정작 독일 다하우수용소나 폴란드의 아우슈비츠수용소와 같은 반성과 사죄를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전쟁을 일으킨 죄의식 때문에 전시물 정보가 밖으로 새나가는 것이 부끄러웠는지 전시관에서의 사진촬영은 금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난 일제의 강제징용에 끌려갔던 아버지가 떠올라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기념관 내부를 하나하나 꼼꼼하게 살피며 돌다가 그 나라 남자중학생을 만났다. 곧 사그라질 정도로 심하게 부식된 전투기를 배경으로 셔터를 눌러달라는 부탁을 하자 학생은 두 손으로 공손하게 카메라를 받아들었다. 그러곤 셔터를 누르려다가 멈추고선 카메라를 그대로 내밀었다.
바닥에 붙은 촬영금지 팻말 때문이었다. 평일인데도 관람객은 끊이지 않았고 사오 명 또는 칠팔 명씩 무리지어 찾은 학생들이 전시물 관람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 또래들은 인간 자살폭탄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궁금해서 유심히 살폈다. 우리나라 학생들처럼 장난을 치면서 떠들거나 엉뚱한 곳으로 빠져 모바일 폰을 만지작거리는 아이들은 한 명도 볼 수 없었다. 어릴 때부터 몸에 익힌 남을 먼저 배려하는 예절교육은 결국 애국심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가미카제는 신이 일으키는 바람이란 뜻으로 2차 대전 때 폭탄이 장착된 비행기를 몰고 자살공격을 한 일본군 특공대를 이른다.
당시 일본군이 점령하고 있던 필리핀에 연합군이 상륙하자 일본군은 연합군의 진군을 막는 수단으로 가미카제 특공대를 편성하여 공격하기 시작했다. 조종사들은 천황을 위해 죽는 것을 명예로운 일이라고 생각하여 연합군 함대에 동체와 함께 부딪치는 무모한 공격을 가했다. 1945년에는 오키나와를 방어하기 위해 천 명이 넘는 특공대원이 가미카제 공격을 했다. 가미카제 공격으로 30척 이상의 연합군 군함과 350척이 넘는 전함이 피해를 입었으나 주요 목표물인 항공모함은 침몰시키지 못했다. 가미카제의 공격 성공률은 15퍼센트에 달했지만 전세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가미카제는 연합군에 입힌 피해보다는 연합군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일본이 자국민을 전쟁에 무모하게 동원하는데 더욱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 뒤 가미카제라는 말은 위험을 무릅쓰고 무모하게 행동하는 것을 이르는 말로도 쓰였다. 가미카제 폭격기가 가장 많이 출격한 곳이 바로 이곳 지란비행장이다. 그런 연유로 이곳 비행장에다 앉힌 게 전시관이다. 1975년 지란특공유품관으로 개관했다가 1987년 지금의 특공평화회관으로 바뀌었다. 1941년 12월 육군비행학교의 분교로 출발한 이곳 비행장은 전세가 점점 악화되자 특공기지로 바뀌었던 것이다.
전국의 부대에서 차출된 특공 조종사들은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까지로 1036명이 오키나와 해역으로 날아가 미군 함정에 자살공격을 감행하고 사라졌다. 기념관엔 ‘일본을 넘어 민족을 초월하여 세계 인류의 평화를 여기에 맹세한다’는 <통곡, 맹세의 비석>도 서있다. 기념관은 세계평화를 기원하고 전쟁을 반대한다는 표면적 설립목적을 내걸고 있지만 당시 일본이 일으켰던 전쟁의 본질과 가미카제와 같은 비인간적인 작전이 전개된 성찰이나 반성은 찾아볼 수가 없다. 전쟁에 이용되었던 전투기와 소형정 등 자살공격 장비와 병사들이 남긴 안타까운 사연과 사진 편지 같은 것들만 전시되어 있다.
그래서 태평양전쟁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전후 일본의 지배이념이 된 반전사상 때문에 공개적으로 외치지는 못하지만 가미카제들이 조국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자랑스러운 일본의 젊은이란 걸 무언으로 외치고 있는 현장이다. 그러니 야스쿠니靖國신사처럼 일본 우익의 성지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쩌면 전쟁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인류의 평화는 요원하다는 교훈을 말해주는 기념관인지도 모른다. 관음당에 내걸린 ‘관음의 유래’는 더 기가 찬다.
‘대동아전쟁 중에 조국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몸을 탄환삼아 산화해간 국민충성의 정화 육군특별공격대의 숭고한 불멸의 영령들을 대자 대비한 평화 관음상에 현현하여 그 명복을 빌면서 세계평화의 재건과 중생제도의 공적을 기원하고자…’ 정말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가미카제 특공대원들을 불멸로 기릴 가치가 있다면서 그들이 살아 돌아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다시 똑 같은 자살공격을 한다면 그것을 찬양할 것이란 말이 아닌가. 도대체 이들이 꿈꾸는 나라는 어떤 나라인지 헷갈리면서 두려움마저 든다.
전시에 자주 비행장을 공습했던 미군기의 눈을 속이기 위해 소나무 숲 사이에 반지하를 파고 막사를 지은 후 지붕에는 어린 삼나무를 얹어 위장했던 시설도 그대로 남아있다. 전국에서 모인 가미카제들은 이곳에서 이삼일 지내는 동안 술을 마시며 군가를 부르거나 유서나 작별편지를 쓰는 등 생의 마지막 순간을 보낸 후 날아올라 오키나와 바다에서 숨져갔다. 한반도 출신 가미카제 열한 명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노래비엔 ‘아리랑 노랫소리 멀리 어머니의 나라에 미련을 남기고 스러져간 꽃들이여’란 탄식이 새겨져 마음이 아려왔다. 하지만 가미카제에 참여했던 조선인들을 친일파로 매도하여 더 이상 언급을 할 수 없어 안타까운 현실이다.
가미카제만 있고 평화는 실종된 기념관에는 대원들의 유서와 사진 중에서 본인 이름이 확인되고 직필로 쓰인 것들을 골라 작년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해 줄 것을 유네스코에 신청했다고 한다. 그래서 더더욱 이곳 기념관이 정말 평화를 위해서 만든 기념관인지 의심스럽게 만든다. 일본의 보수 우익들이 2차 대전 이전의 영광스러운 대일본제국의 부활을 위해 교묘하게 위장해 놓은 기미가 농후하기 때문이다. 평화보다는 패전한 전쟁을 잊지 말고 그 속에서 산화한 전쟁영웅들을 본받자는 국가주의적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한 자살공격으로 희생된 젊은이들의 영혼을 달래고 다시는 이런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유족과 각계각층의 지원으로 세워졌다고 하는데 전시내용은 엉뚱하게도 제목처럼 평화나 반전 침략전쟁의 반성은 어디에도 볼 수 없고 침략전쟁의 미화와 자폭한 대원들의 영웅화에 치우쳐 있다. 특공평화관음당은 가미카제와 평화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를 조합하여 만들었다.
이곳에는 나라奈良 호류지法隆寺의 관음상을 본떠 만든 높이 54센티미터의 불상이 모셔져 있고 희생된 대원의 명단이 무려 9.5미터 길이로 봉납되어 있다. 매년 5월 3일이면 이곳에서 위령제를 지내는데 이날은 오키나와 방어전 당시 출격한 자살특공대원들이 가장 많이 사망한 날이다. 오키나와는 최후의 격전지로 일본 영토로선 유일하게 전쟁을 치룬 곳으로 그만큼 국토의 파괴와 인적피해도 컸던 곳이다. 전쟁은 1945년 3월말부터 석 달이나 계속되었고 이때 오키나와의 문화유산은 대부분 파괴되었으며 20여만 명이 사망했다.
오키나와 전투는 유일하게 현지주민을 총동원한 지상전으로 태평양전쟁에서 최대 규모의 전투였기에 민간인 사망자가 군인 전사자를 넘어선 십수만 명에 달한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조선의 청년 1만여 명이 일본의 강제징집으로 오키나와로 끌려가 전사 또는 학살당하였다.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원혼들을 위해 파도 출렁이는 바닷가 언덕에다 위령탑을 세웠고 탑에다 노산 이은상이 글을 썼다.
영령들에게 바치는 노래
‘바라보던 조국은 원한의 먹구름 / 첩첩이 쌓이고 가린 천리만리 / 역사의 흙탕물 폭포같이 쏟아질 적에 / 양떼처럼 희생의 제물이 되어 /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곳으로 끌려와 / 광풍에 생명의 등불 꺼지던 날 / 하늘도 울고 파도도 울고 / 핏줄기 뻗혀 오색무지개처럼 / 용솟고 치솟아 해달을 덮고 / 산과 바다를 회오리바람처럼 돌고 / 조국을 향하여 기원하던 목소리 / 지금도 귀에 들리는 영원한 메아리 / 피를 머금은 저주의 원혼들 / 광풍 속에서 불꽃처럼 피어올라 / 불의의 가시덤불 활활 태우고 / 다시 밝아진 뜨거운 태양 아래 / 눈부시게 영롱한 자유의 깃발 / 겨레의 얼은 영원한 것 / 그 깃발 속에 의젓이 나타나는 / 불사조처럼 살아 뛰는 젊은 모습들 / 죽은 씨알에서 열린 광복의 열매 / 그 열매 제단 위에 올려놓고 / 겨레의 정성과 이름으로 바치는 위로 / 넋들이여 웃으며 여기 내려와 / 영광스럽게 받으시라 / 맺혔던 원한 연기같이 사라진 오늘 / 조국이사 단숨에 달리는 지척일세 / 산천이 울리게 승리의 합창 부르며 / 돌아가 그 품에 안기시라 / 그 품에 안겨 겨레의 힘이 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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