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축제 · 기념일 백과 - 옥토버페스트[ October Festival ]
hanjy9713
2023.11.14. 21:44조회 19
옥토버페스트
[ October Festival ]
요약 독일 뮌헨(München)에서 매년 9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열리는 민속 축제이자 맥주 축제
1. 축제 정의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는 독일 남부 바이에른(Bayern) 주의 주도(州都) 뮌헨(München)에서 개최되는,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민속 축제이자 맥주 축제다. 매년 9월 15일 이후에 돌아오는 토요일부터 10월 첫째 일요일까지 16~18일간 계속되는 축제는 1810년에 시작되어 2013년에 제180회를 맞이했다. 전 세계에서 옥토버페스트를 즐기기 위해 몰려드는 방문객은 매년 평균 600만 명에 달하며 1985년에는 최대 710만 명을 기록하기도 했다.
축제는 화려하게 치장한 마차와 악단의 행진으로 시작되며, 민속 의상을 차려 입은 시민과 방문객 8,000여 명이 어우러져 뮌헨 시내 7킬로미터를 가로지르는 시가행진으로 흥겨움을 더한다. 축제 기간에는 회전목마, 대관람차, 롤러코스터 같은 놀이기구 80종을 포함해 서커스, 팬터마임, 영화 상영회, 음악회 등 남녀노소가 함께할 수 있는 볼거리와 즐길거리 200여 개가 운영된다.
옥토버페스트는 19세기 중반부터 뮌헨을 대표하는 6대 맥주 회사(bräu, 브로이)의 후원을 받음으로써 세계 최대 맥주 축제로 발돋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축제에 참여하는 맥주 회사들은 시중에 유통되는 맥주보다 알코올 함량을 높인(5.8~6.3퍼센트) 특별한 축제용 맥주를 준비한다. 그리고 최대 1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천막을 세워 맥주를 판매하는데, 축제 기간 동안 팔려나간 맥주는 평균적으로 약 700만 잔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커다란 맥주잔들과 더불어 흥겨운 노래와 춤으로 떠들썩한 맥주 천막들은 옥토버페스트의 열기와 분위기를 한눈에 알려준다.
뮌헨 옥토버페스트
매년 전 세계에서 600만 명이 넘는 방문객이 찾아오는 뮌헨 옥토버페스트는 세계 최대 민속 축제이자 맥주 축제다.
2. 축제 유래
1810년 10월 12일, 바이에른 왕국의 황태자 루트비히(Kronprinz Ludwig)와 작센(Sachsen)의 테레제 공주(Therese von Sachsen-Hildburghausen)의 결혼식이 뮌헨에서 거행됐다. 이 왕실 결혼을 기념해 1810년 10월 12일부터 10월 17일까지 축하 연회와 민속 스포츠 경기가 벌어졌고, 바이에른 근위대는 축제 마지막 날인 10월 17일에 대규모 경마 경기를 개최해 새로운 왕족 부부의 탄생을 경축했다. 근위대 소령 안드레아스 폰 달라르미(Andreas von Dall’Armi)가 기획한 경마 경기는 왕족이 함께한 가운데 많은 관람객의 환호를 받으며 결혼식 기념 축제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바이에른 왕실은 뮌헨 시민들이 크게 열광한 경마 경기를 상기해 이듬해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경마 경기를 다시 개최했고, 이로써 10월에 열리는 축제, 옥토버페스트의 전통이 시작됐다. 옥토버페스트는 1819년에 연례 행사로 확정됐다.
바이에른에는 옥토버페스트 이전에도 가을에 열리는 축제가 있었다. 1553년에 확정된 바이에른 맥주 제조법에 따라 맥주는 매해 9월 29일부터 이듬해 4월 23일 사이에만 제조할 수 있었는데, 해마다 새로운 맥주 제조 기간이 시작되기 전에 저장해 둔 메르첸비어(Märzenbier: 3월에 제조한 맥주)를 소진하기 위한 가을 축제를 열었다. 이 가을 맥주 축제가 매년 10월에 경마 경기를 중심으로 떠들썩하게 즐기는 축제와 결합하면서 그 규모가 확대되어 19세기 말,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민속 축제이자 맥주 축제로서의 옥토버페스트가 그 모습을 갖추었다.
3. 축제 어원
옥토버페스트는 독일어로 ‘10월 축제’라는 의미다. 옥토버(Oktober)는 10월, 페스트(Fest)는 축제를 뜻한다. 독일인들은 옥토버페스트를 흔히 ‘비즌’(Die Wies’n)이라고 부르는데, 비즌은 축제가 열리는 장소의 명칭이다. 옥토버페스트의 시초가 된, 1810년 10월 루트비히 황태자와 테레제 공주의 결혼 기념 경마 경기가 뮌헨 도시 성벽 앞 잔디밭(비제, Wiese)에서 열렸다. 이후 이 잔디밭은 축제의 주인공인 테레제 공주의 이름을 따서 ‘테레지엔비제(Theresienwiese, 테레제 공주의 잔디밭)’라고 불렸다. 지금도 매년 옥토버페스트는 테레지엔비제에서 개최되며, 사람들은 이를 간단히 ‘비즌’이라고 한다. ‘비즌’은 ‘비제’의 바이에른식 표현이다.
4. 축제 역사
1) 19세기 초반
1810년 10월 왕실 결혼 기념 축제의 한 행사로 개최된 경마 경기의 열기는 이듬해에도 계속됐다. 1811년, 두 번째 경마 경기가 열릴 때 테레지엔비제의 한쪽에서는 바이에른 농업협회가 주관하는 가축 시장과 우량 가축 경연대회가 함께 개최됐다. 이는 독일어권 지역에서 최초로 열린 농업 전람회로, 이듬해 ‘바이에른 중앙농업축제’(Bayerisches Zentral-Landwirtschaftsfest)라는 공식 명칭이 확정된 후 농업 기술 전람회로 발전했다. 오늘날에도 바이에른 중앙농업축제는 옥토버페스트 기간에 테레지엔비제의 남쪽 구역에서 개최되어 축제에 풍성함을 더하며, 1996년부터는 4년마다 열리고 있다.
1813년에 옥토버페스트는 나폴레옹 전쟁으로 인해 열리지 못했으나 이후 축제의 규모는 점점 확대됐다. 1818년 축제에는 처음으로 맥주를 파는 작은 이동식 판매대와 회전목마가 등장했고, 1819년에는 뮌헨 시 주관하에 옥토버페스트를 매년 개최하기로 결정하면서 안정적인 축제 운영의 기틀이 마련됐다.
2) 19세기 중 · 후반
옥토버페스트가 열리는 테레지엔비제에 1850년에는 20미터 높이의 바바리아(Bavaria) 여신상이, 1853년에는 바이에른 역사를 빛낸 인물들을 기리는 명예의 전당 루메스할레(Ruhmeshalle)가 세워져 바이에른과 옥토버페스트의 상징으로 오늘날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뒤이은 몇몇 해에는 축제가 열리지 못했다. 1854년과 1873년에는 전염성 콜레라 때문에, 1866년에는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때문에, 1870년에는 프로이센-프랑스 전쟁때문에 옥토버페스트가 중단됐다.
1880년대부터 옥토버페스트는 비약적으로 발전해갔다. 우선 1880년에 뮌헨 시가 맥주 판매를 공식적으로 허용하여 이듬해인 1881년에 구운 닭고기와 함께 맥주를 판매하는 헨들브라터라이(Hendlbraterei)가 처음 문을 열었다. 또 1881년부터 축제 현장에 전기가 공급되어 4백여 개의 간이 상점, 놀이기구, 공연장 등을 환하게 밝힘에 따라, 저녁 늦게까지 축제를 즐기기 위해 몰려드는 연주자, 공연자, 방문객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더 많이 필요해졌다.
그러자 1880~90년대에 뮌헨의 맥주 회사들은 악단의 연주와 공연을 보며 맥주를 마시고 허기를 채울 수 있는 비어할레(Bierhalle, 비어홀)와 1만 명 이상이 함께할 수 있는 초대형 맥주 천막인 비어첼트(Bierzelt)를 축제 기간 동안 테레지엔비제에 설치하기 시작했다. 또한 이 무렵에, 바이에른 지역의 전통 맥주잔으로 옥토버페스트를 상징하는 1리터짜리 맥주잔(마스크루크, Maßkrug)이 도기 재질에서 유리 재질로 바뀌었는데, 이는 맥주의 양을 속여 팔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3) 20세기
1910년, 100주년을 맞이한 옥토버페스트에는 새로운 놀이기구와 상점들이 계속 추가되며 많은 방문객을 맞이했고, 좌석 1만 2,000석으로 당시 규모가 가장 컸던 맥주 천막 브로이로슬(Bräurosl)에서만 맥주 120만 잔이 팔려나갔다. 그러나 곧 독일이 제1 · 2차 세계대전의 중심지가 되면서 옥토버페스트는 여러 해 동안 개최되지 못했다. 전쟁 전후의 어수선한 기간에는 소규모 가을 축제만 열렸고, 옥토버페스트의 시초이며 축제의 중심 행사 역할을 하던 경마 경기는 전쟁 이후 축제에서 사라졌다. 경마 경기는 옥토버페스트 150주년인 1960년과 200주년인 2010년에 특별 행사로 개최됐다.
뮌헨은 전쟁을 겪으며 피폐해지고 분열된 시민들을 위로하고 한데 모으기 위해 1949년부터 다시 옥토버페스트를 재개하여 뮌헨을 대표하는 민속 축제이자 관광 상품으로 발전시켜나갔다. 1950년 옥토버페스트에서는 뮌헨 시장 토마스 빔머(Thomas Wimmer)가 축제의 첫 번째 맥주통을 개봉했는데, 이후 뮌헨 시장이 맥주통을 개봉하며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전통이 시작됐다.
20세기 옥토버페스트의 역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1980년에 벌어졌다. 축제가 한창이던 1980년 9월 26일 밤, 축제 현장 입구에서 폭탄이 터져 13명이 사망하고 200여 명이 부상을 당한 것이다. 극우 성향의 군돌프 쾰러(Gundolf Köhler)가 저지른 이 범행은 전쟁이 끝난 뒤 독일에서 발생한 최악의 폭탄 테러였으나 옥토버페스트 주최 측은 축제를 중단하지 않았다. 축제장 입구 폭탄이 터진 자리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추모비가 2008년에 세워졌다.
4) 2000년 이후
오늘날 옥토버페스트는 전 세계에서 찾아온 600만 명의 방문객이 함께하는 세계 최대의 민속 축제이자 맥주 축제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민속 의상을 차려 입은 독일인과 관광객이 어우러지는 축제장에는 뮌헨의 유명 맥주 회사들이 운영하는 크고 작은 맥주 천막 30여 개가 늘어선다. 축제가 시작되기 석 달 전부터 설치되는 천막은 1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것에서부터 1백 명 정도가 들어가는 것까지 다양하다. 천막 안에 빼곡히 들어찬 사람들이 손마다 커다란 맥주잔을 들고 크게 웃고 떠들고 마시고 춤추는 분위기는 옥토버페스트의 흥겨움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풍경이다.
마스크루크(Maßkrug)
1리터짜리 맥주잔 마스크루크는 옥토버페스트의 상징이다.
한편 주최측은 축제 기간 중 알코올 소비 급증에 따른 사고 발생을 방지하고 지나치게 소란스러워지는 것을 경계해 2005년부터 ‘조용한 옥토버페스트’(ruhige Wiesn)를 표방하고 있다. 무한정 흥청망청해지지 않고 남녀노소 모두 즐기는 축제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다. 이에 따라 대형 맥주 천막에서는 오후 6시 이전에는 바이에른의 전통 관악곡만 음량 85데시벨 이하로 연주할 수 있고 대중음악과 신나는 파티음악은 그 이후에 연주하도록 규제됨으로써 축제 분위기가 과열되는 것을 억제하고 있다. 또 축제에서는 일반 맥주에 비해 알코올 함량이 높은 맥주가 판매되는 만큼 음주로 인한 사상 사고를 줄이고자 독일 적십자사가 의료 자원봉사자 1백 명과 함께 매일 대기한다. 더불어 뮌헨 시 공무원 · 경찰 · 소방 공무원이 합동으로 구축한 서비스센터에서는 축제 질서 유지와 방문객의 편의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벌인다.
2010년, 옥토버페스트 200주년에는 테레지엔비제 남쪽, ‘바이에른 중앙농업축제’가 열리는 공간 한쪽에 옥토버페스트의 과거를 추억할 수 있는 ‘역사적인 옥토버페스트’(Historische Wiesn)가 기획됐다. 이때는 옥토버페스트가 처음 개최된 그날로 돌아간 듯, 경마 경기가 열리고 오래 전 놀이기구, 맥주 천막, 솜사탕 판매대 등이 다시 등장했으며, 맥주 회사들은 19세기의 제조법을 따른 특별 맥주를 판매했다. 이후 ‘역사적인 옥토버페스트’는 옥토버페스트의 전통을 계속 되새기자는 의견에 따라 경마 경기 등을 제외하고 ‘오이데 비즌’(Oide Wiesn: ‘옛날의 비즌’이란 의미의 바이에른식 표현)이란 명칭으로 지속되고 있다.
5) 옥토버페스트의 확장
뮌헨 옥토버페스트는 세계 각지로 퍼져나가 유사한 성격의 민속 축제, 맥주 축제로 자리 잡았다. 뮌헨 옥토버페스트의 뒤를 이어 가장 규모가 큰 축제는 중국 칭다오(靑島)의 옥토버페스트로, 매년 3백만 명의 방문객이 축제를 찾는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 키치너(Kitchener), 브라질 남부 산타카타리나 주 블루메나우(Blumenau)에서 개최되는 옥토버페스트에는 연간 60~70만 명의 방문객이 몰려든다.
이밖에 미국, 호주, 러시아에서도 비슷한 축제가 열리는데, 미국 신시내티에서 1976년부터 개최된 옥토버페스트 친치나티(Oktoberfest Zinzinnati)는 미국에서 열리는 가장 규모가 큰 옥토버페스트로, 그들의 독일계 조상을 기리는 의미에서 축제 명칭을 독일어로 지칭한다. 뮌헨에 이어 독일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큰 하노버(Hannover) 옥토버페스트에는 매년 방문객 90만 명이 축제를 함께한다. 한편 2011년에는 오스트리아 빈(Wien)에서 처음으로 빈 옥토버페스트(Wiener Wiesn)가 개최됐는데, 대형 맥주 천막 3개가 설치된 가운데 방문객 15만 명이 처음 열린 축제를 함께했다.
5. 축제 주요 행사
옥토버페스트는 1810년에 시작된 이래 전쟁, 전염병 등으로 열리지 못한 24차례를 제외하고 꾸준히 계속됐다. 10월의 뮌헨 날씨가 야외 축제를 즐기기에 쌀쌀해지는 것을 감안하여 1872년부터 옥토버페스트는 매년 9월 15일 이후 돌아오는 토요일에 시작하여 10월 첫째 일요일에 끝나는 일정으로 조정됐다. 2000년부터는 이러한 일정에 다음의 규칙이 추가됐는데, 10월 1일 또는 2일이 일요일인 경우 축제는 독일 통일 기념일인 10월 3일까지 연장된다. 따라서 축제는 최단 16일에서 최장 18일간 열린다.
옥토버페스트 기간 동안 맥주 천막들은 축제 첫날 오전 9시에 문을 열지만, 맥주통이 공식 개봉되는 오후 12시가 지나야 맥주 판매를 시작한다. 천막들은 주중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11시 30분까지, 주말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11시 30분까지 운영된다. 축제 기간에 판매되는 맥주 가격은 해마다 조금씩 인상되는데, 2013년에는 1리터 맥주가 9.40~9.85유로(약 1만 4천 원)에 판매됐다.
1)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행진
옥토버페스트 첫날인 토요일 오전, 축제 주최자 · 맥주 회사 관계자 · 상인 · 공연자 등 1,000여 명이 뮌헨 거리를 행진하며 공식적으로 축제의 시작을 알린다. 이 행진은 1887년에 축제 관계자와 공연자들이 축제를 시작하며 테레지엔비제로 입장한 데서 유래했다. 오늘날에는 뮌헨 시를 상징하는 ‘뮌헨의 아이’(Münchner Kindl)와 뮌헨 시장을 태운 화려한 마차가 행렬을 이끌며 맥주통을 실은 맥주 회사의 마차, 공연자, 상인, 악단 등이 뒤따른다.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행진
축제 첫날 오전, 옥토버페스트 주최자, 공연자, 맥주 회사 관계자 등이 거리를 행진하며 축제의 시작을 알린다.
‘뮌헨의 아이’는 16세기부터 사용되고 있는 뮌헨 시의 문장(紋章)이다. 뮌헨은 베네딕트회 수도사들이 세운 도시로, 뮌헨이라는 지명은 ‘수도원, 수도사들의 공간’을 의미하는 무니헨(Munichen)에서 유래했다. 문장 속에서 ‘뮌헨의 아이’는 황금색 테를 두른 검은색 수도복을 입고 빨간 신발을 신으며, 왼손에 빨간 책을 들고 있는 것으로 표현된다. 옥토버페스트에서 ‘뮌헨의 아이’는 뮌헨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행렬을 이끄는데, 일반적으로 20~29세의 젊은 여성이 역할을 맡고 손에는 책 대신 맥주잔(마스크루크)을 든다.
뮌헨의 아이
16세기부터 사용되고 있는 뮌헨 시의 문장(紋章)이다.
2) 맥주통 개봉
축제 첫날인 토요일 오전에 시작된 옥토버페스트 주최자와 관계자들의 행렬이 끝나고 정확히 정오가 되면 쇼텐하멜(Schottenhamel) 천막에서 ‘뮌헨의 아이’가 지켜보는 가운데 뮌헨 시장이 첫 번째 맥주통을 개봉한다. 이때 “오 차프트 이스”(O’zapft is: ‘맥주통이 열렸다!’는 의미의 바이에른식 표현)라고 외침으로써 비로소 옥토버페스트가 시작된다. 이어 바바리아 여신상 아래 계단에서 축포 열두 발이 발사되며 이제부터 맥주를 판매할 수 있음을 온 축제장에 알린다. 전통적으로는 바이에른 주 정부의 수상이 첫 번째 맥주를 마시고 나서 다른 천막의 맥주통이 개봉되어 방문객에게 판매된다.
맥주통 개봉식
축제 첫날 정오에 뮌헨 시장이 축제의 첫 번째 맥주통을 개봉함으로써 공식적으로 옥토버페스트가 시작된다. 이는 1950년부터 이어져온 전통이다.
3) 민속 의상과 소총부대 행렬
옥토버페스트의 첫 번째 일요일, 즉 축제 둘째 날 오전에 각종 민속 의상을 차려 입은 사람들 8,000~9,000명이 바이에른 주 의회 건물 막시밀리아네움(Maximilianeum)을 출발해 뮌헨 시내를 가로질러 축제가 열리는 테레지엔비제까지 7킬로미터 거리를 행진한다. 이는 1835년 옥토버페스트에서 바이에른의 왕 루트비히 1세와 테레제 왕비의 은혼식을 축하하며 열린 민속 의상 행렬에서 비롯됐다. 1895년에 바이에른 출신의 작가 막시밀리안 슈미트(Maximilian Schmidt)가 민속 의상을 갖춰 입은 단체 150개, 1,400여 명으로 구성된 행렬을 기획하며 한 단계 발전시킨 후, 1950년부터 민속 의상 행렬은 옥토버페스트의 연례행사로 자리 잡아 축제의 하이라이트가 됐다. 민속 의상 행렬로는 세계 최대 규모라고 한다.
민속 의상과 소총부대 행렬
축제 둘째 날 오전, 뮌헨 시내를 가로질러 펼쳐지는 행진은 민속 의상 행렬로는 세계 최대 규모라고 한다.
‘뮌헨의 아이’를 선두로 바이에른 주 정부 수상 또는 뮌헨 시장을 태운 마차, 독일 여러 주의 민속 의상을 입은 사람들, 소총부대, 각종 깃발을 든 기수들, 악단과 유랑음악단, 팡파르 연주자들, 스위스 · 이탈리아 · 오스트리아 등지에서 민속 의상을 입고 참여한 방문객들, 화려하게 치장한 축제용 마차 40여 대가 뒤를 따른다.
행렬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민속 의상은 레더호젠(Lederhosen)과 디른들(Dirndl)이다. 남자들은 무릎길이 가죽바지 레더호젠에 멜빵을 차고 재킷을 걸친 후 모자를 쓴다. 여자들이 입는 디른들은 소매가 봉긋한 블라우스 위에 무릎 밑으로 내려오는 원피스를 입고 앞치마를 두르는 형태다. 레더호젠은 바이에른 · 오스트리아 등 알프스 지역 사람들이 힘든 노동을 할 때 입던 가죽바지였으나 오늘날에는 여가 활동을 할 때 흔히 입는 옷이 됐다. 디른들 또한 알프스 지역의 농가와 하녀들의 작업복이던 것이 1870년대 오스트리아의 상류층이 이를 선호하면서 민속 의상으로 자리 잡았고, 오늘날에는 매우 값비싼 형태가 등장하기도 한다.
민속 의상을 입은 악단의 행렬
축제 둘째 날 오전, 8,000여 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행진이 뮌헨 시내를 가로질러 펼쳐진다.
폴란드 민속 의상을 입은 방문객들
축제 둘째 날 오전에 펼쳐지는 행진에는 독일뿐 아니라 이탈리아,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에서 온 방문객들도 각자의 민속 의상을 입고 행렬에 참여한다.
4) 맥주와 전통 음식
① 맥주
옥토버페스트에서는 매년 평균 600만 리터의 맥주가 팔려나간다. 맥주의 기원에 대해 학자들은 다양한 견해를 보이나, 인류가 보리와 밀을 경작하기 시작한 시기부터 공기 중에 떠다니는 이스트에 의해 자연 발효된 보리음료가 존재했을 것이라는 데 대부분 동의한다. 맥주 주조 연대를 밝힐 수 있는 유적과 기록이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문명에서부터 발견되고 있으며, 바빌로니아인들이 남긴 유적에는 지푸라기 빨대를 이용해 맥주를 마시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맥주처럼 곡물을 이용한 음료는 여러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발전한 것으로, 동남아시아에서는 쌀을, 아프리카에서는 기장을, 중앙아메리카에서는 옥수수를 발효시킨 음료의 전통이 전해지고 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맥주는 음료이기보다 치료약으로 여겨져, 히포크라테스는 ‘보리를 졸인 액체’를 발열과 불면에 도움이 되는 치료제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포도주를 즐겨 마시던 민족은 맥주의 쓴맛을 쉽게 즐기지 못해, 로마 공화정 시대의 콘술이자 역사가인 타키투스는 “게르만인들은 보리와 밀을 발효시킨 역겨운 음료를 마신다”고 기술했다. 그러나 카이사르가 갈리아와 브리타니아 원정에 나설 때 맥주가 군사들의 영양 공급원으로 큰 역할을 하면서,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은 지역을 중심으로 맥주는 흔히 마시는 음료로 퍼져나갔다.
맥주
맥주처럼 곡물을 이용한 음료는 인류가 농작물을 경작하기 시작한 이래로 여러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발전했다.
중세에는 기독교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며 곳곳에 생겨난 수도원들이 맥주의 발전을 이끌었다. 수도사들은 검약한 식단을 보충해줄 수 있는 영양가 높은 음료로 맥주를 선호했고, 특히 사순절 금식 기간에 액체 음식은 허용됨에 따라 맥주는 수도사들의 일상에서 중요한 것이 됐다. 이에 수도원 내 소비를 위해 주조되는 맥주의 양이 크게 늘어났으며 수도사들은 일반에 판매하기 위한 맥주도 주조하기 시작했다. 도시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맥주는 수도사는 물론 도시 서민들도 즐겨 마시는 음료로 확산됐이고 맥주의 주조와 판매는 어느덧 도시 경제의 한 축을 맡게 됐다. 1220년 자유도시(Reichsstadt) 울름(Ulm)에서 독일 최초로 맥주에 세금을 부과한 이후 맥주세가 의무화되는 도시가 늘어나자 그동안 납세의 의무에서 자유롭던 수도원들의 맥주 주조와 판매는 점차 위축되어갔다. 따라서 수도원 주조장이 줄어들고 민간 맥주 회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한편 수도사들은 맥주의 맛을 향상시키는 주조법을 연구해 홉(Hop)을 첨가하면 맛이 한층 좋아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브라반트 공국(Duchy of Brabant)의 수도원들이 처음으로 홉을 맥주 주조에 포함시킴으로써 맥주의 풍미와 보관성을 높일 수 있었다. 그러나 맥주 주조업체들 간에, 홉을 시작으로 맥주에 각종 약초를 첨가하는 경쟁이 과열되면서 맥주가 혼탁해지게 됐다. 이에 홉마저도 첨가하지 못하도록 금지됐다가 1516년 바이에른 대공 빌헬름 4세(Herzog Wilhelm IV)가 맥주는 보리, 홉, 물로만 제조되어야 한다는 맥주순수령(Reinheitsgebot)을 선포함으로써 오늘날의 맥주 형태가 자리 잡게 됐다. 홉의 첨가로 보관성이 높아진 독일 맥주는 전 유럽은 물론 멀리 인도까지 수출됐다.
맥주의 원료인 홉으로 장식한 모자
15세기 이후 맥주에 홉을 첨가함으로써 맛을 향상시킬 수 있음을 알아냈다.
19세기에 맥주는 새로운 과학기술에 힘입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의 박테리아와 발효 연구 덕분에 액체에 열을 가함으로써 맥주를 더 오래 보관할 수 있게 됐고, 1873년에 카를 폰 린데(Carl von Linde)는 냉장 기술을 선보여 맥주의 주조와 보관에 도움을 주었다. 그전까지 평균 4~9도가 유지되는 겨울에만 만들던 맥주를 연중 언제든 주조해 일정한 온도에서 보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외에 독일의 가브리엘 제들마이어(Gabriel Sedlmayer), 오스트리아의 안톤 드레어(Anton Dreher), 덴마크의 에밀 한센(Emil Hansen)은 맥주에 첨가되는 효모 순수배양에 성공해 맥주의 잡맛을 없애고 일정하게 안정된 맛을 유지할 수 있게 했다.
인류의 역사를 함께해온 맥주는 오늘날 대학의 전문 연구소에서 실험, 연구되며 계속 진화해가고 있다. 15세기 독일 바이에른에서 발효를 위해 맥주를 일정 기간 창고에 저장해두었다 마시는 데서 비롯된 ‘라거(Lager)’(독일어로 ‘창고’라는 의미) 맥주가 전 세계 맥주의 90퍼센트를 차지함으로써 맥주의 본고장은 독일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졌으나, 영국과 아일랜드는 물론 최근에는 뉴질랜드, 아시아 등도 맥주의 주조, 소비 시장으로 큰 영향력을 떨치고 있다.
② 뮌헨을 대표하는 6대 맥주 회사
옥토버페스트에는 뮌헨 시가 선정한 6대 맥주 회사만 대형 천막을 설치하고 맥주를 판매할 수 있다. 뮌헨을 대표하는 6대 맥주 회사는 다음과 같다.
· 아우구스티너(Augustiner)
아우구스티너는 1328년에 아우구스트 형제회 수도사들이 설립한 뮌헨에서 가장 오래된 맥주 회사다. 500년 역사를 이어오던 수도원의 양조장이 1803년에 민간으로 넘어갔고, 1829년에 다시 바그너(Wagner) 가문에 인수되면서 ‘아우구스티너 브로이 바그너 KG’(Augustiner-Bräu Wagner KG)가 됐다. 옥토버페스트에서 아우구스티너는 9,000석 규모의 천막 아우구스티너브로이(Augustiner-Bräu)와 4,000석 규모의 피셔프로니(Fischer-Vroni)를 세우고 알코올 농도 6퍼센트인 아우구스티너 옥토버페스트 맥주를 판매한다.
· 하커 프쇼르(Hacker Pschorr)
1417년에 문을 열고 수백 년 동안 역사를 이어오던 레스토랑 알테스 하커하우스(Altes Hackerhaus)는 18세기에 이르러 레스토랑 집안의 딸 마리아 테레지아 하커(Maria Theresia Hacker)와 주조장 직원 요제프 프쇼르(Joseph Pschorr)가 결혼하면서 맥주 회사 하커 프쇼르 브로이(Hacker-Pschorr Bräu)로 발전했다. 1841년에 요제프 프쇼르가 사망한 뒤 아들 게오르크와 마티아스가 회사를 하커 브로이와 프쇼르 브로이로 나누어 독립적으로 운영하다가 1972년에 다시 합쳐 하커 프쇼르 브로이가 됐다.
오늘날 하커 프쇼르는 파울라너(Paulaner) 맥주 회사의 브랜드로 합병됐다. 옥토버페스트에서 하커 프쇼르는 알코올 농도 5.8퍼센트의 맥주를 하커 페스트첼트(Hacker-Festzelt)와 브로이로슬(Bräurosl) 천막에서 판매한다. 이 맥주는 옥토버페스트에서 판매되는 맥주 중 가장 약한 것이다.
· 호프브로이(Hofbräu)
호프브로이는 1589년에 바이에른 대공 빌헬름 5세(Herzog Wilhelm V)가 직접 세웠고 현재 바이에른 주 정부가 운영하는 맥주 회사다. 처음 이 회사가 설립된 장소에서 운영되는 비어홀 호프브로이하우스(Hofbräuhaus)는 뮌헨 시민들과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명소다. 18세기 후반에는 모차르트가, 제1차 세계대전 직전에는 당시 뮌헨에 거주하던 레닌이 호프브로이하우스를 자주 방문했다고 전한다.
또 1919년에는 뮌헨의 공산당 정부가 호프브로이하우스를 당사로 삼았고, 1920년대 초에는 히틀러와 나치가 당의 주요 정책을 발표하는 장소로 호프브로이하우스를 이용하기도 했다. 옥토버페스트에서 호프브로이는 알코올 농도 6.3퍼센트의 가장 강한 맥주를 1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호프브로이 페스트첼트(Hofbräu-Festzelt) 천막에서 판매한다.
호프브로이의 맥주 천막
바이에른 주 정부가 운영하는 호프브로이의 맥주 천막은 최대 1만 명이 함께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 있다.
· 뢰벤브로이(Löwenbräu)
뢰벤브로이의 역사는 14세기 말부터 시작되어 19세기에 브라이(Brey) 가문이 회사를 맡으면서 뮌헨에서 가장 큰 맥주 회사로 성장했다. 뢰벤브로이는 1997년에 슈파텐 프란치스카너 브로이(Spaten-Franziskaner-Bräu)와 합병해 슈파텐 프란치스카너 뢰벤브로이 그룹(Spaten-Franziskaner- Löwenbräu -Gruppe)이 됐다. 독일어로 뢰베(Löwe)는 ‘사자’를 뜻하므로, 뢰벤브로이는 ‘사자의 주조장’이라는 의미다. 옥토버페스트에서 꼬리를 흔들며 포효하는 거대한 사자가 있는 천막이 뢰벤브로이가 운영하는 뢰벤브로이 페스트첼트(Löwenbräu-Festzelt)와 쉬첸페스트첼트(Schützenfestzelt)이며, 알코올 농도 6.1퍼센트의 뢰벤브로이 옥토버페스트 맥주를 판매한다.
뢰벤브로이의 맥주 천막
꼬리를 흔들며 포효하는 사자는 뢰벤브로이 맥주 회사의 상징이다.
· 파울라너(Paulaner)
15세기 이탈리아의 성인 프란체스코 디 파올라(Francesco di Paola)의 기사단 수도원이 1634년에 처음으로 맥주 주조를 시작한 것이 오늘날의 파울라너 맥주로 발전했다. 수도원에서 소비하기 위해 주조되던 파울라너의 슈타르크비어(Starkbier: 알코올 함량과 풍미를 높인 맥주)가 도시의 크고 작은 축제가 벌어질 때 뮌헨 시민들에게 판매되면서 큰 호응을 얻어갔다. 1799년에 수도원이 폐지된 뒤 주조업자 프란츠 크사베르 차허를(Franz Xaver Zacherl)이 수도원 주조장을 사들였고, 슈타르크비어의 전통을 이어 ‘구세주’라는 의미의 맥주 살바토르(Salvator)를 생산했다. 살바토르 맥주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판매되고 있다.
현재 파울라너는 브라우 홀딩 인터내셔널(Brau Holding International AG)에 속해 있다. 옥토버페스트에서 파울라너는 빈처러 팬들 파울라너 페스트할레(Winzerer Fähndl-Paulaner-Festhalle), 아름브루스트쉬첸첼트(Armbrustschützenzelt) 천막에서 알코올 농도 6퍼센트의 파울라너 옥토버페스트 맥주를 판매한다.
파울라너 브로이의 맥주 천막
빈처러 팬들 파울라너 페스트할레의 높은 탑 꼭대기에 설치된 6미터 크기 맥주잔은 축제장 어디에서든지 눈에 띈다.
· 슈파텐(Spaten)
슈파텐은 1397년에 설립돼 1807년부터 제들마이어(Sedlmayer) 가문이 맡아서 운영하는 맥주 회사다. 1922년에 슈파텐 맥주 회사와 프란치스카너 맥주 회사(Franziskaner-Leist-Bräu)가 합병해 슈파텐 프란치스카너 브로이(Spaten-Franziskaner-Bräu)가 됐고, 1997년에 뢰벤브로이와 합병해 슈파텐 프란치스카너 뢰벤브로이 그룹(Spaten-Franziskaner-Löwenbräu-Gruppe)이 됐다. 슈파텐 프란치스카너 뢰벤브로이 그룹은 현재 벨기에-브라질 맥주 회사인 안호이저 부시(Anheuser-Busch InBev)에 속한다. 슈파텐은 옥토버페스트에서 첫 맥주통을 개봉하며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쇼텐하멜(Schottenhamel) 천막과 히포드롬(Hippodrom), 오크센브라터라이(Ochsenbraterei) 천막에서 알코올 농도 5.9퍼센트의 맥주를 판매한다.
슈파텐의 맥주 천막
슈파텐 맥주 회사가 운영하는 히포드롬 천막에서는 알코올 농도 5.9퍼센트의 맥주를 판매한다.
③ 맥주와 함께 즐기는 전통 음식
옥토버페스트에서는 맥주와 함께 다양한 독일 전통 음식이 축제의 분위기와 방문객의 입맛을 돋운다. 가장 흔히 먹는 것으로는 구운 닭고기 브라트헨들(Brathendl), 구운 소시지 브라트부르스트(Bratwurst), 흰 소시지 바이스부르스트(Weißwurst), 매듭 또는 막대 모양의 빵 브레첼(Bretzel)이 있다. 그밖에 돼지나 소의 간과 양파를 섞은 반죽을 삶아 국물과 함께 먹는 레버크뇌델(Leberknödel), 감자샐러드를 곁들인 바이에른식 소시지 레버케제(Leberkäse), 구운 돼지고기에 흑맥주 소스를 끼얹은 슈바인스브라텐(Schweinsbraten), 돼지 관절을 오래 익힌 슈바인스학세(Schweinshaxe), 감자나 흰 빵을 반죽해 삶아낸 크뇌델(Knödel)을 곁들이는 돼지 내장요리인 보이셸(Beuschel) 등이 인기 있다.
후식으로는 파이의 일종인 슈트루델(Strudel), 효모를 넣은 반죽을 굽다가 쪄내 커스터드 크림과 함께 먹는 담프누델(Dampfnudel), 커다란 도넛인 아우스초게네(Auszogene), 1886년 바이에른의 섭정 왕이 된 루이트폴트(Luitpold von Bayern)를 기념해 만든 초콜릿 케이크 프린츠레겐텐토르테(Prinzregententorte)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옥토버페스트 [October Festival] (세계의 축제 · 기념일 백과, 류정아, 오애리, 김홍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