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형제 떡카페 두 곳이 있다. 종로구 가회동의 ‘소담떡방’과 강남구 삼성동의 ‘자이소’이다. 주인들 나이? 젊다. 떡집 형제들의 평균 나이는 30세다. ‘소담떡방’이 예스러운 정취의 공간에서 전통 떡을 고집스레 선보인다면, ‘자이소’는 현대식 인테리어로 무장하고 퓨전 떡케이크 위주로 공략한다. 좋은 재료를 가지고 입에 착착 감기는 떡을 내놓는 젊은 형제들의 떡카페에 젊은층과 외국인 등 새로운 고객층이 몰리고 있다. 두 떡카페의 추석 준비 현장을 찾아갔다.
|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자이소’는 떡카페 명소다. 코엑스와 선릉 사이의 큰길가에 있다. 무방부제·무색소를 내세우고 떡의 주원료는 국내산을 원칙으로 하되 부재료까지 원산지를 하나하나 밝힌다. 한 TV프로그램에서 ‘착한 떡집’으로 소문나면서 고객층이 한층 두꺼워졌다. 이곳의 특제품은 ‘즉석 떡케이크’. 주문과 동시에 1인용 떡케이크를 즉석에서 만들어내는데, 포슬포슬한 백설기를 베이스로 만들어내는 케이크는 떡케이크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앙증맞고 화려하다. 가장 인기 많은 ‘치즈는 블루베리를 싣고’는 떡케이크의 진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백설기 가운데 달콤쫄깃한 찰떡을 심고 위에 부드러운 치즈를 듬뿍 올린 후 새콤달콤 블루베리를 얹었다. 위에서부터 뭉텅 크게 잘라 물면 고소한 치즈와 새콤한 블루베리, 달콤한 찰떡 사이사이로 담백한 백설기가 조화를 이루며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내린다.
이곳은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다. 일본과 대만에서 여러 번 방송 촬영을 해갔고 지도를 들고 찾아오는 일본 관광객도 많다. 자이소는 떡카페의 이름인 동시에 인터넷 쇼핑몰의 이름. 창업한 지 4년이 채 안 됐지만 연매출 20억원이 넘는 떡가게로 훌쩍 컸다. 송파구 가락동 본사에 자체 생산라인을 갖추고 있다. 생산직 직원까지 합쳐 17명 정도이니 1인당 생산 매출액이 1억원이 넘는 셈이다.
‘자이소’는 학창 시절 꼴찌를 도맡아 하던 연년생 형제 박호성(32)·박경민(31) 공동대표의 합작품이다. ‘자이소’라는 상호에 회사의 콘셉트와 운영철학이 담겨 있다. 고급스럽고 글로벌한 어감의 이 상호는 ‘드셔 보십시오’라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 대구 출신인 개구쟁이 형제 둘이 아무 말이나 툭툭 던지면서 상호를 고민하던 중에 건진 이름이다. ‘자이소’에서 만난 형제는 “자이소(慈利笑)에는 자애롭고 이로운 미소라는 뜻이 있는 데다가 받침이 없어 외국인들도 편하게 발음할 수 있다”며 으쓱해했다. 형제는 주로 가락동 본사를 지키고 카페에는 누나처럼 보이는 어머니가 상주한다.
형제는 ‘회사놀이’ 하듯 자이소를 운영해 왔다. 떡카페에 있는 떡케이크 메뉴는 고정관념을 깬다. ‘갈릭을 기다려’ ‘블루베리 마돈나’ ‘바람난 버거’ 등. ‘바람난 버거’는 빵 대신 쌀과 합쳐졌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제품 개발 후 형제 둘이 카페에 앉아 생각나는 대로 툭툭 내뱉다가 ‘이거다’ 싶은 이름을 고른다고 한다. 제품 개발 과정 역시 진지함이나 심각함과는 거리가 멀다. 먹다 남은 백설기 위에 편의점에서 산 치즈를 전자레인지에 녹여 잼을 발라 먹으니 의외로 궁합이 잘 맞았다는 것. 그때부터 치즈 종류와 잼 종류를 바꿔 가며 퍼즐 맞추듯 실험을 해보면서 최상의 하모니를 찾아갔다. 이렇게 해서 자이소 최고의 베스트셀러 ‘치즈는 블루베리를 싣고’가 탄생했다.
형제는 본인의 인생을 이렇게 표현했다.
“인생, 모르는 겁니다.”(형 박호성)
“완전 인생 역전이죠.”(동생 박경민)
- ▲ ‘자이소’의 박호성(32·오른쪽)·박경민(31) 형제.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형제는 공부를 심하게 못했다. 형은 “얼마 전 고등학교 생활기록부를 떼 봤는데 딱 하나만 ‘우’였고 전부 ‘양’ ‘가’였다. ‘우’는 체육이다”라고 말했다. 동생은 “꼴찌였다. 50명 중 50등. 게다가 (학교폭력조직) 일진의 꼭짓점이었다. 중학교 때 정학도 받았다”고 웃었다. 형제는 고졸이다. 형제의 성적으로 갈 수 있는 대학이 없었다고 한다. 이런 형제에 대해 어머니는 공부로 채근하지 않았다. “공부 못해도 괜찮다. 뭘 해도 그 분야 1등이면 된다. 구두닦이도 괜찮다”며 여유를 줬다. 형제는 둘다 집중력 없고 산만하기로 유명하지만 하나에 꽂히면 무섭게 파고드는 성향이 있다. 그게 바로 떡이었다.
형 박호성 대표가 먼저 떡판으로 뛰어들었다. 대구에서 이름난 떡집을 운영하는 외삼촌을 보면서 탄력받은 그는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맛있는 떡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군대 제대 후 외삼촌 떡집에서 5년간 일을 배웠다. ‘호프집 사장’이 꿈인 동생도 떡판으로 끌어들였다. 동생 박경민 대표는 “호프집 면접을 보면 외모 때문에 다 떨어졌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못생겼다. 지금은 많이 고급스러워진 거다. 받아주는 호프집이 없어서 형을 따라 떡을 만들게 됐다”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자이소’의 떡은 세련되고 감각적이다. 게다가 맛까지 갖춰 젊은 여성들에게 호응이 높다. 쇼핑몰 고객의 70~80%는 20~30대 젊은 주부. 한 유명 육아카페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백일과 돌 케이크와 답례떡 등 행사용 떡집으로 인기몰이를 해 갔다. 휴일이나 밤낮 없이 근무해야 하는 날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단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형제가 함께 즐기면서 일을 하기 때문이라고.
형제의 목표는 떡집의 몸집을 키우는 것이 아니다. 느리게 가고 싶어 한다. 떡카페 자이소 분점을 내 달라는 요청이 쇄도하고 서울을 넘어 수원, 심지어 중국 상하이에서도 분점 요청이 있었지만 동생 박 대표는 “아직은 품질 관리에 자신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꼴찌 출신의 형제는 꿈이 생기면서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삶의 태도가 바뀌었다.
“자이소, 하면 ‘좋은 회사’라는 이미지가 떠올랐으면 좋겠습니다. 학교 다닐 때에는 공부와 담을 쌓았는데 요즘에는 경영학 공부가 진짜 재밌습니다. 연세대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배우고 있습니다. 인생 공부, 경영학 공부를 통해 속도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굉장히 느리게 갈 겁니다.”(동생 박경민 대표)
“예전에는 꿈도 없고 희망도 없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랐고 앞이 안 보였습니다. 꿈을 찾으면서 앞도 보고 옆도 봅니다. 요즘 진짜 행복합니다.”(형 박호성 대표)